173화. 챌린저스 아트워크 (3)
‘소실점은 강한데 작품은 완전히 평면적이야.’
원근을 살리는 건 굉장히 초보적인 기술이었다.
그림을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사람도 한두 시간의 강습만 맏는다면 바로 해낼 수 있을 만큼 말이다.
할 줄 몰라서 표현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자세한 표현에 원근감만 빼놓는 게 오히려 어려운 기술이었다.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렸어요?”
설명을 마치고 내가 묻자 솔로몬은 눈을 뜨고 나를 마주보았다.
시야가 좁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분명히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시력을 잃으면 이 빈 캔버스마저도 그리운 풍경이 될 것 같더라구요. 그리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그렸어요.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한 시절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겪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상실감을 겪을 때마다 그걸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번역해서 받아들인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게 인간의 감정적인 생존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들은 즉시 그림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의 평면성이 감상자를 미리 소실점에 데려다 놓고 있네요.”
“네. 그 반대이기도 하고요.”
그림 속에 표현된 길은 소실점으로 향하는 연인의 뒷모습을 통해 시간성이 부여된 상태였다.
연인의 후방에 있는 감상자와 가까울수록 과거, 소실점과 가까워질수록 미래인 것이었다.
하지만 길 중간 지점에 선 연인들은 소실점을 완전히 가렸고, 또 감상자의 시선이 시작되는 그림의 표면에 그려져 있었다.
그 평면성 덕분에 연인은 과거, 현재, 미래 세 지점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단풍잎들은 비를 맞고 곧 다 떨어져 버리겠지만…… 이 연인은 아마 작년 가을에도, 내년 가을에도 이 길을 지났고, 또 지날 거예요. 그리고 정말로 소실점에 가 닿았을 땐 이 모든 길을 완전히 평면화시켜 그리워하겠죠.”
굉장히 완성도가 높은 그림이었다.
시력을 완전히 잃고 나면 이런 표현 기교를 되찾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텐데.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 물감 냄새도 되게 중요해요.”
“냄새가 왜요?”
솔로몬의 말에 부모는 코를 킁킁대며 아직 마르지 않은 그림 냄새를 맡았다.
그냥 물감 냄새였다.
“저는 이 바로크 물감 냄새를 맡을 때마다 항상 비 비린내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냄새까지 맡아지니까 진짜 비가 오는 것 같지 않으세요?”
같은 물감이라면 무엇을 그리든 같은 물감 냄새만 맡아지는 법이었다.
마찬가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주변에 무엇이 있든 비 냄새만 맡아지게 되었다.
그 같은 냄새로부터 다들 서로 다른 기억을 돌이켜보는 것이었다.
“정말 노스텔지아라고 부르기 딱 적절한 냄새네요.”
모네의 <수련> 연작과 <비 오는 날>이 떠올랐다.
특히 비 오는 날의 풍경을 그리는 방식은 화가마다 제각각 다른데 인상만큼은 동일했다.
솔로몬의 이 작품은 그 모든 분위기를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아. 그 단어 정말 멋지네요. 이 작품 이름 노스텔지아로 해도 돼요?”
“화가 마음이죠.”
그렇게 솔로몬의 작품 이름은 <노스텔지아>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노스텔지아>의 연작이 될 만한 그림들을 함께 그리기 시작했다.
솔로몬은 자신의 소원을 하나 이뤘다고 즐거워했다.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녀를 포함한 장애 화가들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꼭 제 사연을 밝혀야 하나요?”
그림을 그리던 솔로몬이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강제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전시회 의의도 있어서 사연을 알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문제가 있나요?”
“저 HHC잖아요.”
솔로몬은 HHC 환자에 대한 사람들 인식이 굉장히 안 좋다고 했다.
HHC는 온몸에 거대한 음성 종양이 끝도 없이 생기는 질환이었다.
솔로몬은 그 종양이 안구 안쪽에 생긴 것일 뿐이고 말이다.
어쨌든 온몸이 종양으로 뒤덮이기 시작하면 몸 곳곳이 터서 피가 나고 고름이 잡혀 보기에 좋지 못했다.
면역 질환일 뿐이라 사람에게 옮길 일이 없는데 체액을 교환하면 전염될 수도 있다는 낭설이 너무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다.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가 되듯 사람 간에도 그게 가능할 거라는 유치한 믿음이었다.
솔로몬의 어머니가 ‘바이러스’라는 지칭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있었다.
“도대체 왜 걸린 건지만 알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저 때문에 우리 엄마 아빠도 고생했거든요.”
“부모님은 괜찮으신데 말이죠?”
“네. 저 때문에 친구도 몇 명 잃으신 것 같아요.”
솔로몬이 목울대를 떨며 말했다.
HHC는 아직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전병이었기 때문에 뜻밖에도 부모님이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마에 진단서를 붙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정도 어려움이라면 종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자고 말하려던 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윤예준 화가님 맞으시죠? ‘세계도시예술가연대’입니다.
그는 이번 챌린저스 아트워크에 참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세계도시예술가연대라는 곳에 소속된 예술가들과 함께 말이다.
“저희는 언제나 환영이죠. 그런데 전화 주신 세계도시예술가연대라는 곳이 정확히 어떤……”
내가 묻자 그들은 도저히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트밸리에서 한번 만나기로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엄청 통화 길게 하셨네요. 누구한테 온 전화예요?”
전화를 끊자 솔로몬이 물었다.
“그, 이번 일로 제가 HHC 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중증 HHC를 앓게 되면 외출 자체가 힘들어졌다.
보기 흉한 데다가 감염된다는 오해까지 있으니 그럴 법했다.
표현이 과한 사람들은 좀비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화가로서 유명세를 얻으면 HHC에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신체의 극히 일부분이라도 HHC 증상은 확연히 티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받아주는 전시회 찾기도 어려웠다.
나는 시력을 잃은 것도 아니고 HHC에 걸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솔로몬은 그 둘 다였다.
어쩌면 화가로서의 솔로몬에게 그 두 가지 장애 요소를 완전히 없애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세계도시예술가연대는 HHC에 걸린 예술가를 포함한 장애 예술가들이 모인 사회운동 단체였다.
화가부터 음악가, 문인까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소속되어 있다고 했다.
예컨대 미니멀리즘 소설가로 유명한 안톤 카버나 작곡가 엔니오 윌리엄스, 은둔 화가 페르난도 모리스도 세계도시예술가연대 소속이었다.
특히 엔니오 윌리엄스는 대부분의 미국 TV 광고 배경음악을 제작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HHC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거나 장애를 가지게 된 뒤부터는 활동이 어려워져서 대부분 인식 개선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나마 안톤 카버의 작품은 아직 호평이 남아 다뤄지고만 있는 수준이었다.
-다들 건강이 별로 좋지 않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사람들의 괄시예요. 절대 전염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외쳐도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죠. 아무리 확률이 없어도 HHC 환자 공연은 안 가는 게 확실히 전염 확률 0%니까.
그들은 처음 <챌린저스 아트워크> 소식을 들었을 땐 별로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 중 감염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은 사연을 밝혀야 한다는 조건이 싫었고, 이미 알려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챌린저스 아트워크>를 실패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제안이라도 해보기로 결정했다고.
정 싫으면 내가 거절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윤예준 화가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저희는 이번 전시회에 모든 걸 걸어볼 생각입니다. 아트밸리와 윤예준 화가님의 파급력이면 사람들 인식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거기 저희의 사연이 필요하다면 제공하기로 결정했죠.
굉장히 큰 결심을 한 것이었다.
그들로 살아본 적이 없어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을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솔로몬과 그녀의 부모는 지인들에게 감염 사실이 밝혀져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이 그 정도 각오를 했다면 나도 동조를 해줘야 할 것이었다.
솔로몬에게는 굳이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녀가 너무 캐묻는 바람에 알릴 수밖에 없었다.
HHC 환자들이 그런 도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꼭 판돈을 따갈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라고 말이다.
“......엄청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꼭 성공해야죠.”
곰곰이 생각하던 솔로몬이 결단을 내렸다.
“저도 동참해야겠어요.”
“괜찮겠어요?”
“네. 어차피 지인들에겐 다 알려진 상태인데요.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 도시예술가연대의 성공 확률을 올릴 수 있을 텐데. 저도 그분들이 꼭 성공하기를 바라거든요.”
솔로몬의 부모는 그녀를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도 그랬다.
이건 그림을 그리기 전에 꼭 이겨놓아야만 하는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챌린저스 아트워크> 전시회엔 장애가 있었던 유명 화가인 모네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하는 체험 전시도 포함되었다.
솔로몬과 모네 모두 앞을 볼 수 없게 된 화가라는 공통점은 나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겠지만, 그런 걸 제하고도 솔로몬의 화풍은 모네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네는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데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가 여러 작품으로 남겼던 지베르니의 모습은 굉장히 생기가 넘치면서도 깔끔했다.
그 풍경을 보았는데 누군들 그리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모네가 눈을 감기 전 무엇을 보았는지 이들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랬던 만큼 그의 정원과 최대한 흡사하게 체험 전시장을 디자인해야만 했다.
정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실내 디자인은 어머니가 진행했다.
모네의 정원을 그대로 구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또 대부분 시각장애인들이 전시회장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편히 전시회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디자인하겠다고 했다.
<노스텔지아> 전시관의 마지막 순서는 존 브리트의 <예술의 눈> 전시 장소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솔로몬과 함께 그 그림의 배치에 대해 고민했다.
<노스텔지아> 연작 전시관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바로 옆 전시관에 있기에도, 멀리 떨어져 있기에도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이분 앞이 아예 안 보인다던데, 진짜예요? 조금 보이는 거 아니고?”
“네. 아예 안 보이신대요. 물감을 촉감으로 구분한다던데.”
솔로몬은 존 브리트에 대해 물으며 쉽게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정황상 안도하고 있으리라.
앞이 아예 보이지 않아도 이런 눈부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 하나를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점자 없이 그냥 물감을 만져서 색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건, 그의 촉각이 거의 초인 수준으로 발달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누구도 그런 경지에는 쉽게 오를 수 없었다.
솔로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위로는…… 오히려 그녀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존 브리트의 경우를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간절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솔로몬의 눈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말이다.
그때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분위기만 봤을 땐, 전시회에 익숙한 듯한 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의학 쪽에 가까운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