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70화 (170/241)

170화. 르네상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로드아일랜드 특유의 한적한 분위기는 여전했던 아트밸리였다.

하지만 연구소와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신진화가들과 협업하기 시작한 존스의 영화사 직원들도 오가고 있고 말이다.

존스와 신진화가들의 작업실은 아트밸리에서도 개방되어 있는 편이었다.

덕분에 존스의 차기작에 관한 소식은 예술가들에 의해 처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아트밸리의 신진화가, 일명 ‘윤예준 세대’가 산업계에 발을 내디딘 첫 성과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남미에서 진행한 비엔날레가 호평받은 것도 사람들의 기대감에 크게 한몫했다.

더러 내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언론사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일정을 최대한 당겨 잡아 처리하려 노력했다.

신진화가들의 일은 널리 알려져야 했지만, 내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은 절대로 알려져선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도난당했던 그림 13점에 대한 일 말이다.

그림이 도착하는 일정에 맞춰 윤예종에 있는 복원 전문가들을 아트밸리로 불렀다.

리처드에게 들었던 대로 보관상태가 엉망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때문에 질감이 훼손된 것들은 복원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탄흔이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지금 복원 시작하는 건가요?”

복원실 바깥에서 복원가들과 역할을 맞추고 있는 사이 한 무리의 남성들이 건물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드너 관장과 관계자들이었다.

“이번에 감쪽같은 모작도 해주셨는데 복원까지…… 직접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신세 져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위한 일인데요, 뭐.”

관장과 관계자들은 상당히 지친 얼굴들이었다.

이번 일을 길게 끌기 시작하면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모작을 전시하는 동안은 입장료를 없애고 후원금만으로 버텼다고 들었다.

유사도가 100%에 이른다고는 해도 결국 모작은 모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림을 도둑맞은 건 절대 과시할 수 없는 실수였지만, 그래도 그림과 관람객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복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나와 복원 전문가들은 복원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관장과 관계자들은 유리창 너머로, 마치 수술을 참관하듯이 모여 앉아 우리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첫 작품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이었다.

외젠 들라크루아,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의 대표 화가로서, 강렬한 색조와 생생한 명암의 대비, 활달한 필치가 특징적인 화가였다.

총을 맞은 다섯 점의 작품 중 가장 앞에 있었던 이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에도 그의 그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색조와 명암의 대비는 루벤스를 연상시켰고, 스페인 그림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내게 익숙하기도 했다.

나는 복원 전문가들과 들라크루아에 대한 대화를 짧게 나눈 뒤 바로 지지대층 작업에 돌입했다.

***

파리국제아트협회(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사무실.

인터폴의 수배령이 해제된 이후 협회장과 회원들은 사무실에 모였다.

“마네부터 들라크루아까지…… 도저히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까지 객지에 떠나보낸 미술사 유산들 때문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건지 원.”

인터폴로부터 오렌지색 수배가 떨어진 이후로 IAA 협회장은 전 세계 미술 기관에 가드너 미술관에 대한 신뢰도를 지적해왔다.

미술품 도난은 미술관의 존폐 여부를 뒤바꿀 수 있는 사안이었다.

단 한 점만 사라져도 말이다.

하지만 13점이나 잃고도 저렇게나 당당하게 운영을 계속해나가는 꼴이라니.

“누가 벼락출세한 졸부 국가 아니랄까 봐. 내 그들이 돈으로 작품을 끌어모을 때부터 알아봤지요.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없던 교양이 생긴답니까?”

협회장의 그 원색적인 비판에 회원들은 내심 통쾌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쨌든 이번 도난 사건을 계기로 가드너 미술관을 더는 신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듣기로 가드너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만 골라서 도난당했다던데. 그게 다 19세기 서유럽 화가들의 작품 아니었습니까?”

“그랬죠.”

새로운 사조나 상업예술이 아니라면 그런 작품들은 역사와 전통의 땅 유럽 대륙에서 선보여야 했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화가가 그린 프랑스 그림을 상업 도시 한복판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심지어 그림을 찾은 인터폴도 본부가 프랑스였다.

결정적으로 그들을 돕고 지금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윤예준도 초기에 마네로부터 큰 영감을 받은…… 이를테면 신 마네주의자 아니던가.

그런데도 가드너는 도난당했다는 사실마저도 숨기고 버젓이 작품을 계속 전시하려 하고 있었다.

“좋든 싫든 전 세계적으로 미술 1번가는 프랑스입니다. 각지 미술관에게 강력하게 전파하기로 하죠. 이번에 도난당했던 작품들을 포함해 유명한 그림들을 프랑스로 들여와 임시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말입니다.”

소유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아예 다시 돌려받기는 어려웠다.

큰 문제를 일으킨 가드너의 13작품은 어떨지 몰라도 말이다.

대신 지금 IAA가 준비하고 있는 루아르 성 전시회에 사용하기 위해 잠시 빌려오는 건 가능했다.

“그렇죠. 저희뿐만 아니라 미술계 각지에서 그 작품들을 걱정하고 있을 텐데. 그림이 잘 복원되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가드너 미술관 방문자의 대부분이 해당 13작품을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었다.

방금 회원의 발언대로 그 작품들이 잘 복원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그러니 복원 후 첫 전시는 가드너가 아니라 파리 근교 쉴리쉬르루아르 성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좋아. 그 작품들만 확보된다면……’

협회장은 입맛을 다셨다.

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루아르 성이었지만 아직 세계 유산으로 선정되지는 않았다.

그곳을 관광 명소로 만든다면 세계 유산 등재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

“이럴 수가! 이렇게나 감쪽같이 복원하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내가 복원해놓은 그림을 본 리처드가 감탄했다.

“이런 일이 앞으로 언제 있을지 모르니 그림을 복원할 인력을 준비해둬야겠어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유명한 그림은 워낙 비싸지다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거기 윤예준 화가님이 있으시다면 아주 딱일 것 같은데……”

나는 그의 거듭된 스카웃 제안을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아, 정말 큰 일이네. 예준아, 이것 좀 봐봐라.”

복원이 끝나고 그림을 인계하려는 때에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버지가 보여준 건 유럽 내 여러 미술관의 연명서였는데, IAA 앞으로 가드너의 13작품을 돌려보내라는 요청서였다.

“그 작품들이 없으면 나머지 작품들도 경매를 부쳐야 합니다. 그걸 그냥 거저 달라니, 이게 상식적인 요구입니까?”

관장이 발끈하며 번쩍 뛰었다.

그들이 달란다고 그냥 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 수도 없이 대뜸 달라고만 요구하는 건 아닐 터였다.

분명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림을 안 주면 도난 사실을 폭로하려나 보네요.”

“예? 그럴 리가요! 우리 가드너 미술관뿐만 아니라 인터폴부터 윤 화가님까지 관련된 일 아닙니까?”

이런 위기 상황을 이용해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려고 한다니.

화가 치밀었지만, 상황 해결이 우선이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문제에 대해서 냉정하게 인정을 해놓는 게 좋았다.

“일단 가드너 미술관은 이 작품들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못하겠네요.”

“왜요?”

“IAA가 입을 열면 저나 인터폴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가드너만큼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요.”

특별 수배를 내릴 때엔 그들의 사명감을 믿고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이 끝나자마자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이번 일로 그들이 그림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면 그들에게는 이 전략의 성공사례 하나를 제공해주는 셈이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곰곰이 생각에 빠진 관장이 제안했다.

“가드너 미술관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결말은 바꿀 수가 없겠네요. 어차피 저희 가드너 미술관 건물이 굉장히 오래되어서…… 체계적인 보안 시스템을 가동할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그랬군요.”

“대신 그림 소유권을 누구에게 넘길지 정도는 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관장은 그렇게 말한 뒤 나를 빤히 보았다.

“고전 미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고 신진화가들 지원도 확실한 아트밸리가 IAA보다는 더 적절한 곳 같습니다. 앞서 윤예종 복원가들과 윤 화가님 실력도 뛰어나시더군요. 저희 작품들은 솜니움 미술관에 기증하고 싶습니다.”

관장은 13작품을 기증하는 건 물론이고 전시 계약 중인 다른 작품들도 양도하겠다고 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요. 그래도 제게 선택권이 남아는 있으니 더 좋은 방향으로 진행시키려는 겁니다. 윤 화가님도 이 작품들이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솜니움 미술관에 있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IAA가 어느 미술관에 이 작품들을 전시할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무명 예술가들이 빈번하게 찾는 솜니움보다는 접근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아마 관광 명소 정도나 되는 곳이겠지.

관장의 말대로 솜니움이 작품을 기증받는 게 최선이었다.

“알겠습니다. 과감한 결정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림을 다 옮겨오고 나면 관장님을 솜니움 총 관장으로 임명해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만 저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을 쓰시는 게…… 저는 그림 13작품을 도난당해본 사람입니다.”

전 세계에서 명작 13점을 한 번에 도난당해본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놈들의 범행 수법을 인터폴이 알아내지 못하는 한 비슷한 도난 사고가 더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적어도 한 번 당해본 관장이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관장은 가드너 미술관을 솜니움 미술관에 합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당시에는 그리 많은 기자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 소식이 전파를 탄 이후로는 가드너 미술관과 솜니움 미술관에 굉장히 많은 기자들이 진을 쳤다.

다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한 것이었다.

관장은 가드너 미술관을 오래 운영해오면서 재정난이 심하게 쌓였다고 밝혔다.

일주일간의 휴관도 그 재정난과 관련이 있었다는 해명이었다.

실제로 그게 아니고서는 그 많은 작품들을 그냥 기증할 이유가 없었다.

[충격. 가드너 미술관, 개관 225년 만에 ‘폐관’. 작품들은?]

[윤예준 아트밸리와 손잡은 가드너 미술관. 소장작품 3만 점 전체 이송 시작.]

나름 역사가 있는 가드너 미술관은 보스턴시에 기부되었다.

건물은 철거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하기로 결정되었다.

가드너 미술관의 작품이 솜니움으로 옮겨진다는 소식을 들은 협회장은 탁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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