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통과 의례 (3)
그렇게 무함마드와 카산드라의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결혼식 예행연습이 굉장히 철저했다.
개인적인 일이긴 했어도 각국 왕실에 청첩장을 돌렸으니 최대 규모의 외교 행사이기도 했다.
내가 할 일은 식순을 외우고 ‘결혼식 증언’ 대사를 아랍어로 외워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전생에 그림을 팔 때 아랍어를 몇 번 해본 적 있는 나로서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부터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대신 내빈들이 야외 결혼식장을 오갔다.
물의를 빚었던 태국 왕실부터 시작해 곳곳의 왕국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한국 외교부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듣기로 석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한국 외교부에서 청첩장 좀 보내 달라고 갖은 알랑방귀를 뀌었다는데, 결국은 실패한 모양이었다.
“오, 윤예준 씨군요.”
태국 왕가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무함마드 카프탄에게 큰 실수를 범할 뻔했는데, 내 덕분에 원만하게 해결한 것 같아 감사하다고 했다.
우선 태국 쪽에는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것 같았다.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식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덴마크의 왕세자 부부, 그리스의 니콜라오스 왕자 부부, 일본의 타카마도 히사코 왕자비 등 하나같이 지체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들어 대화를 나눠볼 생각으로 다가가는데, 오히려 그들 쪽에서 나를 먼저 보고 말을 걸어왔다.
“윤예준 화가님! 이렇게 실제로 뵙게 될 줄이야. 유럽, 아메리카 어디든 가신다던데, 이렇게 아랍에서까지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왕족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나의 활동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솜니움에 직접 다녀온 이도 있었고, 해저터널 완공 일정을 구체적으로 묻는 이도 있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블루 다이아몬드에 대한 언급은 꺼리는 모양이었지만, 다들 알고는 있는 눈치였다.
그렇게 얼마간 대화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아랍 전통악단의 연주가 시작되더니 결혼식장 뒤편의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신랑과 신부가 좌우에서 동시에 등장하더니 주례 연단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섰다.
입장식을 시작하면 함께 걷기 시작해 연단 앞에 마주 설 계획이었다.
집무 중엔 그래도 현대적인 옷차림이었는데,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카산드라가 상당히 긴장한 데에 비해 무함마드는 평소처럼 빙글빙글 웃었다.
카산드라를 웃기기 위해 갖은 장난을 쳐대는 모습이었는데, 왕가에서 진행하는 행사라서 얼마나 가벼워져도 되는지 전혀 모르는 카산드라였다.
차림새가 낯설었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면 변한 건 전혀 없었다.
YJ아트밸리가 이런 식으로 계기가 되어 둘이 결혼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나로서도 기분이 묘한 광경이었다.
주례가 식순에 맞춰 둘의 결혼을 진행하면 하객들은 타이밍 맞춰 박수를 쳤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여러 탈도 많았지만 둘은 크게 감동받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나의 증언 식순이 되었다.
나는 주례가 내어준 연단 앞으로 가 섰다.
“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두 사람의 많은 모습들을 봐온 것 같습니다. 격의 없이 소탈한 성격이던 신랑의 진중한 모습, 그리고 매사 냉철하기만 할 줄 알았던 신부의 아랍 전통 옷을 입은 모습까지. 빨리 이 결혼 준비가 끝나서 두 사람이 행복한 일상을 펼쳐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죠. 물론 신랑에게 왕자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했던 것도 있구요.”
간단한 농담으로 증언식의 운을 떼자 왕가 내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때였다.
-쿵!!!
왕실 정문 먼 곳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소리가 크지 않아 하객들이 많이 동요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 정문 바깥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나 본데요, 아마 근위대가 있으니 조사하러 갔을 겁니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쿠구궁!!!!
하지만 폭발음은 한 번 더 들려왔다.
처음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굉음이었다.
분명 살상용 무기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식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만, 왕궁 분위기는 굉장히 삼엄해졌다.
살만도르 왕이 굉장히 분기 가득한 표정으로 왕궁 곳곳을 쏘다녔다.
리야드 궁전 정문 근처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때문이었다.
“아, 이거 참. 결혼식만 끝나고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네. 예준이 너는 그만 돌아가 봐도 돼. 결혼식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무슨 일인데요?”
인명 피해를 의도하고 범해진 테러는 아니었지만, 의도가 매우 불순하다고 했다.
테러리스트는 여러 나라의 예술작품 모작들을 모아다가 폭탄을 붙여 폭파시키는 테러를 범했다.
제대로 된 내용물을 보지는 않았지만, 각국 왕실 사람들은 그 잔해를 충분히 목격했다.
결혼식이 진행되기로 한 날 일부러 맞춰서 퍼포먼스를 한 것이었다.
살만도르 왕이 충분히 화가 날 만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는 건데요?”
“뻔하지. 살람파라고, 앞뒤 꽉 막힌 교조주의자들 있어.”
‘살람파’.
아랍 외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건 모조리 반대하고 교리에만 충실하기를 바라는 이들이라고 했다.
그냥 듣기에도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코란이 얼마나 오래된 경전인데, 코란 등장 이후 아랍을 거쳐간 외래 문화가 얼마나 많겠는가.
특히나 살람파의 활동은 주로 예술작품 테러로 드러났다.
우상숭배에 특히나 보수적인 리야드 왕실도 종교적인 목적이 있는 그림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인간 묘사는 허용해주었다.
‘무함마드 자크’나 ‘아시라프 막툼’처럼 급진적인 작품만 안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 누가 마호메트 얼굴을 그리면 법적으로 어떻게 돼요?”
“당연히 사형인데 단속을 거의 안 해. 그냥 눈감아 주는 거지. 이번 블루 다이아몬드 건처럼.”
그 단속을 살람파가 대신해주는 것이었다.
대신 그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말이다.
일전에는 상가에 있는 모든 마네킹 머리를 부숴놓아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고 했다.
“놈들은 아예 사람 형상 자체를 싫어해. 동물이라도 종교적 상징이 있는 동물은 무조건 싫어하지. 놈들한테 살해당한 예술가들만 몇 명인지 몰라.”
“그럼 감독님도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좋은 차 타잖아.”
어쨌든 그들은 이번 과격 테러 행위로 인해 살만도르 왕의 분노를 샀다.
군과 경이 모두 투입돼 살람파 사원을 뒤집어엎고 관련자를 색출하고 있었다.
아마 다 잡혀들어올 거라고 했다.
“이번엔 진짜 사형시킬지도 몰라. 왕궁 바로 앞에서 테러를 저지르는 건 살면서 본 적도 없다. 특히나 외국 왕족들에게 못 볼 꼴을 보였으니까 본보기를 보일 것 같아.”
“좀 테러가 과하긴 했어도 죽일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요.”
실제 작품을 가져다가 폭발시킨 거라고 해도 사형은 지나쳤다.
아무리 예술을 좋아하는 나라고는 해도 사람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방법이 없어. 아버지는 이미 화가 나셨거든. ……지난번처럼 도망칠 수밖에 없지.”
무함마드 말대로 도망치면 됐다.
그럼 이 모든 고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해결책은 별로 원하지 않았다.
꼭 살인으로만 그들의 과격한 행동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건 아니잖은가.
“살만도르 폐하를 좀 만나야겠어요.”
“...... 떠나기 전에 작별인사 드리려는 거지? 다른 생각 있는 거 아니지?”
내가 대답을 않자 무함마드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혹시 ‘사형은 안 됩니다.’라거나,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굉장히 무서우신 분이라고.”
“그런 말 안 해요. 그러니까 집무실로 좀 데려다주세요.”
“알겠어.”
그렇게 다시 전차에 올라탔다.
마치 큰 전투를 하러 가는 것 같았다.
***
“사형은 안 됩니다.”
무함마드는 알현실로 들어가자마자 살만도르 왕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게는 그러지 말라고 말렸으면서, 어차피 말리지 못할 것 같으니 왕자인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치자는 속셈인 듯했다.
왕의 심기를 거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외려 살만도르 왕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무슨 사형 말이냐?”
“이번에 잡혀들어올 테러리스트들 얘기입니다. 사형시킬 거잖아요? 재고해주십시오.”
무함마드의 말을 듣던 살만도르는 미간을 좁히며 턱을 매만졌다.
“카프탄 너도 예술가라고 알고 있는데 그들을 옹호하다니. 의외구나? 그런데 죄 선고부터 형 집행까지 모두가 나의 지엄한 권한이다. 지금 그 얘기가 왕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건 자각하고 있느냐?”
“도전이라뇨. 건의라고 해주시지.”
분위기를 가라앉혀볼 심산인지 무함마드가 가벼운 말투로 받아쳤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살만도르는 여전히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했다.
물론 그 내용과 표정은 굉장히 살벌했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기죽지 않았다.
“살람파 놈들은 우리 왕가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 건방진 참견을 일삼으며 ‘이단주의자’라는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에 더해 이번 정문 테러까지 생각해보면 놈들이 우리 왕실의 권위를 얼마나 업신여기고 있는지 알 만하지. 어중간하게 꼬리를 내렸다간 더욱 기세등등해진 저놈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
“전 세계 왕가 요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테러를 벌인 놈들이다. 평민 예술가 백 명, 천 명이라도 못 죽이겠느냐? 놈들을 찢어 죽이든 태워 죽이든 해서 무고한 사람들 목숨을 구하는 게 나의 의무다.”
말다툼으로는 무함마드에게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예술가의 자율성이라는 좋은 근거를 오히려 살만도르 왕에게 업혀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토론은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누가 아무리 타당한 말을 하더라도 살만도르 왕은 어차피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었다.
“공포는 저항을 낳지 않습니까? 살람파 전원을 처형할 게 아니라면 무의미한 처벌입니다.”
내가 끼어들어 말하자 무함마드가 당황했다.
정작 충언을 들은 살만도르는 처음부터 내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듯 시선을 돌려왔다.
“지속적인 분파갈등과 살상의 역사를 끊을 수 있다면 학살자라는 악명도 감수해야겠지.”
“그럼 그다음 순서는 자크나 막툼 같은 급진 예술가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의 말에 살만도르 왕이 잠시 멈칫했다.
“갈등을 초래하는 사람들을 계속 찢어 죽이면 과연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분파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해결책은 과격을 부추기는 문화를 바로잡고 결국 그들을 화합시키는 것뿐입니다.”
“......그 화합을 기다리는 수천 년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새로운 사상자가 생기기 전에 제가 화합시켜보겠습니다. 그러니 그 전에 사형만 안 일어나게 해주십시오.”
수천 년짜리 다툼의 역사였다.
하지만 나는 예술의 힘을 믿었다.
미국에서 이뤄냈듯 이번에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
“......예준 자네가 얼마나 대단한 예술가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지. 무슨 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잠시 사형을 미루는 정도라면 받아주지 못할 건 없다. 하지만 시간을 많이 할애해줄 순 없으니 딱 한 달 주마. 한 달 안에 네가 말하는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형을 바로 집행할 것이다.”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만약 실패하면.”
살만도르가 조건을 달았다.
“천하의 윤예준도 실패한 일. 앞으로 아랍 예술가들의 화합이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간주하고 철저히 통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