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예술의 허브 (2)
아트밸리에 섬이 생기다니.
나로서는 굉장히 좋은 제안이었다.
미국 남부 연안에 있는 바다, 그것도 로드아일랜드 근처라면 풍경도 상당히 매력적일 것이었다.
“원래 로드아일랜드주에서는 카지노를 짓고 싶어 했지만…… 저는 섬에 짓는 카지노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아요. YJ아트밸리가 주에 가져다주는 수익도 굉장할 테니 함께 주장해주신다면 당연히 배려해주지 않겠습니까?”
도연도 YJ아트밸리의 풍경이 굉장히 좋았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일반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곳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예술을 마음먹은 방랑 예술인들이 찾아왔을 뿐이었다.
만약 관광지화에도 성공한다면 더 많은 예술인을 끌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존의 두 배, 세 배는 더 많이 말이다.
“저는 환영이에요.”
“좋습니다. 만약 가능하시다면 다른 예술인분들께서도 YJ아트밸리 쪽으로 힘을 모아주시면 좀더 수월하게 좋은 터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달리스트들도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게 ‘예술의 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메달리스트들이 전부 참여한 상태로 말이다.
예술의 섬과 아트밸리를 여러 배가 수시로 오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통령의 중재 하에 로드아일랜드와의 협의까지 마친 뒤 노스브라더 섬을 방문했다.
백악관 사업 담당자와 메달리스트 11명, 그리고 주지사 찰리, 찰리의 수행까지 총 14명이었다.
찰리는 내가 백악관 관계자와 함께 등장하니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동공을 흔들었다.
YJ아트밸리가 미국에 자리 잡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찰리였다.
덕분에 총기 난사 사고로 떨어진 지지율을 모두 회복하고 주지사 연임에 성공했다.
“저, 저는 물론 예술의 섬으로 하고 싶었지만, 카지노 세율이 너무 쏠쏠하다 보니…… 미들타운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도 카지노를 지지하기도 하고 당의 압박도 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틈만 나면 당의 압박 핑계를 대는 게 조금 괘씸하긴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실제로 틈만 나면 당의 압박을 받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노스브라더 섬은 마치 처음 발견된 유적지 같았다.
흉흉하기도 했지만, 11명의 예술가는 그 풍경이 주는 희귀한 풍경에 잠시 매료되었다.
잔 부속 없이 콘크리트 뼈대만 남은 건물들은 덩굴에 둘러싸여 지형의 일부처럼 보였다.
숲은 굉장히 울창했고, 정체불명의 동물과 벌레 울음소리를 곳곳에서 퍼뜨려댔다.
“으윽, 시체 나올 것 같아!”
나를 제외하면 가장 어린 도연이 미간을 구기며 몸서리쳤다.
정확히 1963년부터 아무런 출입이 없었다고 했으니 시체가 방치되었더라도 지금은 유골만 남았을 것이었다.
아니, 이 기후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남아 있지 않을 확률이 컸다.
그러니 걱정 말라고 말했더니 도연은 그런 말을 듣고 퍽이나 안심되겠다며 입꼬리를 올렸다.
찰리의 수행으로 나온 중년의 주의회 직원은 지적도와 사진 자료를 계속 대조하며 우리를 안내했다.
“아, 저기 보이는군요. 주둔지가 있던 옛 공터인데 저곳이 가장 고도가 높습니다. 위대한 학자 이자 낙오된 간호장교인 메리 아렌트도 저곳에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죠.”
주의회 직원의 낙오된 간호장교 에피소드에 현재가 사색이 되었다.
“왜 그러세요?”
“너무 슬픈 일이긴 한데, 좀 무섭네요…… 제가 심약해서.”
현재가 은근히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주둔지 옛터는 방치된 계단식 밭 꼭대기 부분에 있었다.
현재의 우려대로 누군가의 유해가 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에피소드가 알려졌다면 당연히 시체를 수습했다는 뜻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옛터에 발을 디디고 서면 울창한 숲 너머로 파란 바다가 내다보였다.
굉장히 온순하고 평화로운 바다였다.
“굉장히 아름답네요!”
침묵의 건축가, ‘안도 다지오’가 감탄했다.
현대에 와서는 보기 힘든 자연경관이었다.
가끔 인공적인 구조물이 보이기는 했지만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오래 방치되기는 했다지만 겨우 60년 남짓이었다.
60년 만에 이렇게 자연에 잡아먹힌 모습이라니.
‘이런 곳에 나만의 미술관이 지어진다면……’
솜니아 미술관을 짓기는 했지만, 그곳은 사조 형성을 위해 모든 대중예술을 모아놓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짓고 싶은 미술관은 사실 따로 있었다.
화가 윤예준만을 위한 미술관.
예술의 섬 가장 높은 곳에 그런 미술관을 짓는다면 무엇보다도 뜻깊은 업적이 될 것 같았다.
“여기 기념비가 하나 있죠?”
주 직원이 한 비석을 마주 보고 말하자 예술가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장티푸스를 정복했을 당시 미국 정부가 세운 기념비라고 했다.
“우리 배가 정박한 바다를 등지고 이 비석을 마주 보면 이제 본격적으로 노스브라더의 산림이 시작되는 겁니다.”
직원은 넓게 펼쳐진 노스브라더 섬을 넓게 가리키며 관광 가이드처럼 말했다.
모두가 꿈의 땅을 바라보듯 눈빛을 빛내며 섬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기념비는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예술의 섬을 조성하더라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굉장히 풍경 좋은 곳인데, 아쉽네요.”
예술가들은 입맛만 다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북쪽으로는 바다가 내다보이고, 남쪽으로는 숲이 시작되는 부분, 그 모든 걸 내다볼 수 있는 요지.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위치에 미술관을 지어야겠어요.”
“예? …… 기념비의 외관을 수정하면 안 되는데요……”
“그럼 외관 수정 없이 만들면 되잖아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안 그래요?”
내가 현재와 샐리, 그리고 안도 다지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은 놀라는 한편으로도 각자 주둔지 옛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
“일단 저 반대편에 어엿한 미술관 하나를 짓고, 그다음부턴 지하 공간을 활용하면 될 것 같아요.”
내가 제안하자 세 명의 건축가는 머릿속에 건물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인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기념비 반대편을 내다보았다.
너무 큰 미술관이 기념비 전망을 해친다면 지하에 지으면 될 일이었다.
지하에 있다는 것만 해도 독특한 특징이 될 수 있고, 서늘한 기온 덕에 미술품 보관도 용이할 것이었다.
“너무 크지 않고 풍경과 잘 어울린다면 안 될 것도 없지만, 가능하겠습니까?”
“디자인은 나옵니다. 문제는 얼마나 깊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느냐겠죠.”
주 직원의 질문에 현재가 대신 답했다.
큰 규모의 미술관이어야 했기에 적어도 지하 4층 규모는 되어야 했다.
“으음…… 외딴섬이라면 아마 화산섬일 겁니다. 제대로 지질 검토를 해봐야겠지만 식생으로 보아 아마 해안가 쪽은 대부분 암석, 고도가 높은 곳은 흙이 대부분이겠죠.”
안도 다지오가 말했다.
“그럼 가능하다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너무 깊게는 힘들 것 같습니다. 땅이 그리 무른 편은 아니지만 붕괴 위험은 여전하거든요. 깊어야 1, 2층이 고작입니다. 그 이상은 주저앉아요.”
그의 비관적인 말에 샐리가 끼어들었다.
“불가능하지 않아요. 10층, 20층까지도 내려갈 수 있어요. 필요하다면 해발고도 아래로까지.”
샐리는 이보다 지반이 훨씬 약한 곳에 고층 빌딩을 세운 경험이 있다고 했다.
“기둥을 실제 깊이보다 훨씬 깊게 시추해서 지하 암석에 고정하면 돼요. 그럼 시간이 지나더라도 미술관이 내려앉을 일은 없어요. 유실 방지 대책만 있으면요.”
깊이 파서 암석까지 닿을 수만 있다면 다지오와 샐리 모두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단지 다지오는 너무 깊어지면 흙이 너무 무겁게 건물을 짓누르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건물이 조금씩 주저앉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스털링에는 그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건축가들은 조금씩 대화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지하 미술관 건축 담당이 정해졌다.
지반 검사부터 기본 건축 구성, 공법은 스털링에서 맡기로 했다.
“전시관 실내 디자인은 다지오 씨가 맡아주실 수 있나요? 지하 공간 특유의 칙칙하고 갑갑한 분위기를 작품 감상에 좋은 분위기로 역전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려운 일 아니에요. 제가 하겠습니다.”
그렇게 유실 대책과 지하 실내 디자인은 다지오가 맡았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으면서도 환경적 가치가 있는 지상 미술관은 현재가 담당했다.
최대한 높은 건물을 설계하면서도 삭막해 보이지 않도록 할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다.
***
그렇게 본격적으로 예술의 섬 프로젝트의 첫발을 뗄 수 있었다.
예술가들은 아트밸리에 모여 각자의 설계에 몰두했다.
조각가들은 올림픽 기념 조각 공원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브레이크 댄스 선수들은 음악가들의 아트밸리 진입을 위해 공연장 스타디움 사업 실무를 진행했다.
현재와 샐리, 다지오는 샐리의 전체 조감도를 두고 문제점을 계속 검토했다.
이미 스털링의 건설 장비들을 노스브라더 섬에 들여놓은 상태였다.
“이 정도 크기면 지하 4층 정도 넓이로 하더라도 대형 미술관 수준이네요.”
“이대로 진행할까요?”
건축가들은 완성된 설계도를 두고도 선뜩 확정 선언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반 조사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그들의 설계가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보이기는 했다.
“실내 디자인은 어떻게 하기로 하셨나요?”
내가 묻자 다지오는 자신의 스케치들을 꺼냈다.
“일단 진현재 소장님이 지상에 큰 유리 돔을 구상해주셨어요. 안에 빛이 최대한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요. 하지만 그걸로는 지하 1층이 한계죠. 2층부터는 1층의 광선이 최대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벽을 밝은 무지 디자인으로 통일할 예정이에요.”
요컨대 하얀 벽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현대의 미술관을 가보면 대부분 하얀 내벽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색이 가장 합리적이긴 했겠지만 ‘하얀 상자’라는 이미지는 조금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하얀 상자라는 느낌은 과거에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았다.
살롱전의 경우 최대한 고급스러운 실내 디자인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항상 피상적인 변화만 생겼을 뿐, 상자는 상자였다.
“미술관 자체가 작품의 기능도 동시에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요……”
내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샐리가 동의했다.
“그렇죠. 하지만 섬에 있는 지하 미술관이라는 게 걸려요. 저희도 보다 다양한 시도를 원했지만, 이미 지친 관람객에게 특수한 동선을 요구하기는 조금 부담스러운 구석이 있어서요.”
그녀의 말도 맞았다.
일반적인 실내 설계 자체의 장점이라고 할 것도 있었다.
동선 탐구에 체력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관이 예술의 섬 정상에 있기 때문에 관람객에 대한 체력 부담은 최소화해야 했던 것이었다.
“계속 동선을 찾아 움직이며 길을 헤매기도 할 테니까……”
원래 동선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 건 아니었다.
배경으로서의 공간을 오가는 일반적인 움직임이 바로 동선이었다.
설계 단계에서 유도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돔 아래 설계한 광장형 미술관은 마치 구겐하임의 지하 미술관 버전 같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중앙 로비를 제외하면 동선이 엄밀하게 정해져 있었다.
지난번에 봤던 구겐하임은 건물 안쪽 비상구에서부터 좁은 길만 따라 이동해 로비에 닿게 되지 않았던가.
그 뒤 2층으로 올라갈 땐 하나의 계단만 사용해 달팽이형의 복도만을 따라 꼭대기 층에 다다랐다.
언뜻 동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닫혀있는 만큼 효율적인 구조로 보이지만 사실상 1층으로 되돌아 나올 땐 굉장히 긴 길을 지나야 했다.
아마 일상적 관리에도 굉장한 비용과 수고를 쏟아야 했을 것이었다.
“만약 동선에 작품을 전시한다면요?”
“동선에 작품을 전시한다뇨?”
“보통 작품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한 다음 그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동선을 짜잖아요? 작품을 따라서.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동선을 먼저 짜고 설계를 시작하는 거예요.”
나는 배에서 내려 주둔지 옛터까지 오르던 길을 떠올렸다.
체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중에 두어 번은 쉬어야 했을 경사였다.
선착장에서 산 정상에 이르는 길 전체를 동선으로 활용하면 관람객의 모든 체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선착장 근처 언덕이 시작되는 부분에 입구를 짓고, 지하에 복도식으로 구성된 미술관은 정상에 이르는 순간 끝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