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명예의 관 (6)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ABC(American Broadcasting Corporation)’라는 방송사에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다.
LA폭동 현장을 돌아보며 완성한 메달 디자인한 도안이 통과되어 세간에 공개되었기 때문이었다.
메달에 디자인한 한인타운의 야경은 나뭇가지처럼도, 심각한 균열로도 보였다.
하지만 니케와 함께 안정감을 확보한 구도는 위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고 들었다.
발리에게 전달들은 내용일 뿐이지만 아마 빈말은 아닐 것이었다.
같은 디자인으로 기념주화를 발행할 계획이라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ABC사의 리처드만이라는 기자는 메달을 디자인하는 동안 기울였던 심혈이나 감상 같은 것들을 주로 물었다.
아마 내가 그 디자인 하나를 두고 며칠은 혼신의 힘을 쏟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새로운 종목 경기복도 디자인하셨고, 메달부터 기념주화까지…… 굉장히 기여한 게 크신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믿고 맡겨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죠.”
미국뿐만 아니라 이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의 경기복 디자인을 다급히 찾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경기복 규정 발표가 늦는 바람에 그들도 시간이 촉박해진 것이었다.
발리는 아직도 도안을 바꾸지 않은 국가들을 위해 나머지 디자인들도 미리 생산해놨다고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와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복장 점검부터 하고, 1회 경고는 감점 없이 진행하기로 이야기도 마쳐놓은 상태였다.
그래야 경고를 받은 뒤 경기복을 바꿔입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올림픽 준비는 잘돼가십니까? 이 많은 준비를 함께 해오셨으니 연습 시간이 별로 없으셨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아버지는 올림픽위원회와 여러모로 많은 협업을 한 내가 우승한다면 편파 판정 의혹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예술에 점수는 주는 것 자체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건 절대 수준 차이를 고려할 수 없는 작품들을 등급화시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걱정은 그만큼 예술이 엄밀하지 못하다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참가자들보다 확연히, 엄밀히 더 잘 그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누가 봐도 1등다운 작품을 그려내면 되었다.
그럼 편파 판정 의혹을 제기할 동기도 없게 되겠지.
물론 많은 사람이 보는 언론사 인터뷰에서 다른 화가들을 깔보듯 말해선 안 되겠지만 말이다.
“제겐 YJ아트밸리에서 진행해온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전부 연습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믿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내는 데에만 집중할 거예요.”
“그렇군요. 정말 멋진 대답입니다.”
리처드만과의 그 인터뷰는 생방송으로 보도되었다.
그 무렵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격할 뻔한 브레이크 댄스 선수들을 내가 도왔다는 식의 기사가 퍼져 있었기 때문에 인터뷰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LA 올림픽만을 기다렸다.
우승 국가를 점치는 것을 제외하면 관심 포인트가 총 둘이었다.
자국팀 브레이크 댄스 선수들은 어떤 복장을 입게 될 것인가.
그리고 회화 경기에서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
그렇게 LA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나와 아버지는 선수단 입장을 마친 뒤 들어와 대기실에서 개막식을 관람했다.
아버지는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네 가지 부문에서 각각 금은동을 가릴 예정이라고 했다.
개막식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수십 대의 드론에 매달린 거대한 오륜기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나의 메달 디자인 플래그가 그 뒤를 이었다.
오륜기 모양의 불꽃이 터질 땐 대기실까지 불꽃 소리가 전달되어 왔다.
“어? 대기실이 겹쳤네요.”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문 쪽을 보았다.
현재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 현재 소장님이 여기 어쩐 일이세요?”
“저도 출전했는데 모르셨구나. 미국에서 너무 바쁘게 지내셔서.”
그러고 보면 예술 종목에 건축 분야도 있었다.
건축 분야 경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잠깐 궁금해하기만 한 게 다였지, 그가 참가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러고 보면 현재는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건축가였다.
사업 규모로 봤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 바쁘시지 않아요? 올림픽 나오기엔 시간이 빠듯하실 텐데.”
“엄청 빠듯하죠. 그래도 앞으로 더 바빠지려면 나와야 해요. 유명세는 돈 주고도 못 사잖아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뵈니 반갑네요.”
한국 선수 대기실만 열 개는 넘었다.
그중 겹친 것만 해도 용했다.
곧 팬터마임 픽토그램까지 끝난 뒤 미국의 한 유명 마라토너가 성화에 불을 댕기면 개막식이 마무리됐다.
예술 분야 경기들 중에서도 가장 처음으로 시작된 건 브레이크 댄스였다.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관객들도 그 퍼포먼스 자체에 굉장히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 현재는 브레이크 댄스 경기가 진행되는 실내 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말 기대되네요. 한국팀 경기복도 디자인하셨다면서요? 엄청 난리던데요?”
처음엔 규정 미준수 문제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욕하는 여론이 상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규정을 갑자기 협의할 시간은 없었고, 그렇다고 규정을 확 열어주기는 곤란했다.
댄서들이 몸에 LED를 두른 채 와이어 같은 걸 타고 날아다니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욕하는 한편으로도 국민들은 모두 체념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한국올림픽위원회에 전달된 게 바로 나의 디자인이었다.
“구국지사가 나타났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요. 윤예준 화가님 옷 입고 꼭 수상하겠다는 인터뷰도 있었는데.”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아마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비슷한 시기,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팀씩 등장해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든 과정이 마치 나만의 패션 위크처럼 느껴졌다.
여러 팀이 등장해 퍼포먼스를 펼쳤지만, 박수 소리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관객들은 경기복에 한 번, 퍼포먼스에 두 번 박수를 보냈다.
그대로만 진행된다면 별일 없이 평화로운 경기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사건은 어김없이 터졌다.
바로 캐나다 팀과 미국 팀이 맞붙는 결승전에서 말이다.
캐나다 팀은 기존부터 스트릿 패션으로 기획해 입고 나왔고, 디자인을 바꾸지도 않았다.
끝까지 디자인을 바꾸지 않아도 되었던 소수의 국가들 중 하나인 것이었다.
“와, 저 팀도 잘 춘다.”
“그러게요. 우승하겠어요.”
아버지와 현재가 박수를 치며 그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역시 결승전이기 때문인지 가장 화려하고 난이도가 높은 퍼포먼스를 준비해온 상태였다.
음악이 점점 고조되었고, 메인댄서는 손바닥을 바닥에 붙인 채 빙글빙글 돌았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물구나무를 선 상태이기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회전력은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선수는 팔로 바닥을 밀쳐 뛰어올랐다.
완벽히 성공한 기술이었지만 문제는 착지할 때 생겼다.
굳이 멋진 착지가 아니더라도 발이 지면에 닿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다 성공해놓은 기술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선수는 회전 방향 그대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실수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관객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우승은 미국팀이 했다.
발리와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서는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현장 상황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엉덩방아를 찧었던 캐나다 선수가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언론 반응을 알 도리가 없어 몰랐지만, 그 선수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신발 탓을 했다고 들었다.
캐나다팀은 빅토리의 신발을 신었는데, 몇 번의 동작으로 신발 바닥 코팅이 벗겨지니 접지가 형편없게 되었다고 했다.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릴 신발이니 소재를 저급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선수가 시범을 보이는 영상에서는, 일반적인 연습실 바닥에서도 해당 신발은 모래 위처럼 길게 미끄러졌다.
그 일로 인해 ‘왜 다른 팀은 빅토리의 신발을 신지 않았나?’ 하는 의문점이 제기되었고, 나의 경기복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끌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세계 언론이 올림픽 경기장으로 와 경기장 내 빅토리 광고판과 중간중간 노출되는 나의 얼굴을 보도했다.
***
다음 날, 인근 다른 실내 경기장에서 회화 경기가 진행되었다.
굉장히 넓은 곳에 이젤이 규칙적으로 배치돼 있었다.
“와! 진짜 크다. 기둥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큰 경기장이 생길 수 있지?”
“저 천장에 기둥이 필요 없는 공법이 활용돼 있습니다.”
“아…… 그냥 놀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당연히 안 무너지게 어디든 조치가 되어 있겠죠.”
거대한 경기장을 보며 아버지와 현재가 짧게 소감을 나눴다.
나는 그동안 이젤의 배치와 경기장 내 풍경을 살폈다.
‘완전히 직선적이고 기계적이야. 여기선 아무런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겠어.’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자리 위치에 따라 풍경 차이가 커지면 그야말로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 선수들은 대기실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한참도 전부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예술 분야 특성상 담당 코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 개인적인 행동이 자유로웠다.
혹시 길을 못 찾을 수도 있으니 미리 도착해 있으려는 생각이었는데, 거의 도착하자마자 집합 명령이라니.
나와 아버지는 현재와 헤어지고 대기실에 앉았다.
대기실에 있는 동안 익숙한 얼굴들을 많이 봤는데, 다들 기대가 만만한 얼굴들이었다.
빌헬름 쿠닝, 샤리아 유스, 조지 오웰 등 솜니아에 작품을 내건 화가들도 많았다.
복도를 지나는 게리도 보았지만, 대기실이 또 달라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곧 경기가 시작되면 화가들이 지정된 자리로 가서 섰다.
-지금부터 회화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건 자유이지만 그림을 그리지 못하도록 물리력은 행사하지 않길 바랍니다.
배치가 틀어져 아버지와는 떨어져야 했지만, 덕분에 게리의 옆에 서게 되었다.
“역시, 게리 선생님도 오셨군요.”
“네. 책임감이라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하하. 그나저나 윤 화가님도 참가하면 손해가 만만찮으실 것 같은데요.”
“에이. 그림을 손익 따지면서 그리나요?”
게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경기장은 어수선해졌다.
다들 아는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회화 주제가 표시되었다.
[올림픽]
올림픽 그 자체가 주제였다.
화가들은 바로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몇 번 경험해본 적은 있지만 생소하긴 마찬가지야. 다른 화가들에 비하면 내 경험이 확실히 적겠지.’
파나티네코 경기장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했지만, 그 모습이 현대의 올림픽과 얼마나 다를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화가들처럼 올림픽 현장 묘사로 정면 돌파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아, 고민하다 시간 다 가겠네. 이번엔 진짜 나한테 지려고?”
안 그래도 막 첫 붓을 떼려고 하던 차였다.
어딘가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가 등 뒤에서 꽂히고 들었다.
“네? 지금 저한테 말씀하신……”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며 물었다.
명백한 한국어였기 때문에 내가 아닐 리도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한 뒤엔 말문이 막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