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명예의 관 (5)
예준의 이름을 들은 위원들은 그의 디자인을 다시 살폈다.
화가로서도 정점에 있고 의상도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와만 협업하는 예준이었다.
경기복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그가 스트릿 패션을 디자인하다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이슈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위원들은 위원장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위원장은 건조한 눈을 빛내며 예준의 도안과 발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런. 사업하시는 분이라는 걸 깜빡하고 시간을 지체할 뻔했네요.”
“그럼 바로 진행하죠.”
위원장이 뭐라 입을 열기 전에 위원들은 빠르게 투표를 진행했다.
빅토리의 유리는 이미 체념한 것 같았다.
처음 디자인을 보고 기가 죽었던 유리는 예준의 이름을 들은 뒤로는 아예 말을 않았다.
위원장을 포함한 올림픽위원회 위원들에게 그 이름이 크게 와닿았듯 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위원들은 일전에 만들어두었던 빅토리와 발리서클의 투표 폼을 다시 실행했다.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만장일치.
발리서클의 승리였다.
“자, 그럼. 귀중한 시간 빼앗아 죄송합니다.”
발리가 마음속으로 깊은 쾌재를 불렀다.
파트너사가 되려면 일단 골드파트너십을 500억 원가량 지불해야 했다.
큰 금액이었지만, 노출판매 증대, 주가 상승 효과 등을 생각해보면 500억은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올림픽위원회에서도 ‘너희들 이익 많이 보게 될 테니 이 정도는 나눠줘라.’ 하는 심보일 것이었다.
그동안 위원들은 쫓기듯 정리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허튼일이었다.
“발리 씨!”
위원들의 안내를 받고 자리를 뜨려던 발리를 위원장이 다급히 불렀다.
“네, 위원장님.”
“지금 그 윤예준 화가님은 어디 계십니까?”
올 것이 왔다.
위원장은 이제 올림픽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을 다급히 변경하려고 들 것이었다.
올림픽 실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준비를 끝내둔 위원들은 이제 여유롭게 올림픽 날만 기다릴 생각이었다.
“지금 LA에 계십니다. 한국 측 회화 대표 선수로 선발되셔서.”
“그거 잘됐네요! 저희도 곧 LA에 임시 본부를 설치할 예정 아닙니까?”
위원장이 위원들에게 동의를 구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미국은 의심할 여지 없는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선입견도 가장 강하게 받는 나라예요. 그래서 나라에서 이번 올림픽에 갖는 기대가 굉장히 큽니다.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도 예술적이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죠.”
“그런데 지금 메달 디자인이 너무 골치를 썩이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이번 LA 올림픽은 메달로 기억에 남을 텐데…… 무결하다고는 할 수 없는 디자인이 주어져서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지금쯤이면 메달 디자인이 확정되고도 남았을 시기였다.
어떤 문제가 있느냐는 발리의 질문에 위원장은 담당 디자이너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서는 의미 있는 올림픽을 만들기 위해 LA 출신 산업 디자이너를 메달 디자이너로 선정했다.
LA 출신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진행한 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최고 디자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그 전엔 여러 기업의 의뢰를 받아 유명한 디자인을 해준 거물이었다.
LA 올림픽이 아니었어도 메달 디자인을 담당하기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굉장히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문제는 그분이 심각한 군사주의자라는 겁니다.”
담당 디자이너는 미군의 군사력에 굉장히 심취해 있는 인물이며, 종종 파병안이 있으면 열렬히 지지하기도 했다.
세계의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건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 성향은 그가 젊었을 시절인 베트남 전쟁 장기화 시절부터 아주 유명한 일이라고 했다.
“그 생각에 맞서려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올림픽에는 어울리지 않는 겁니다.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게 평화 정신인데, 사실 그분의 생각과는 달리 군사적 권위로 이뤄진 평화는 그리 낭만적인 평화가 아니지 않습니까?”
위원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기껏 예술 종목을 통해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떨쳐낼 준비는 다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상업주의보다 더 미국을 꺼리게 하는 건 바로 세계 최강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바로 그 위압감이었다.
“여태까지 다른 디자이너를 선정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서 손 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예준 화가님처럼 더 뛰어난 디자이너가 나타난 이상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과거에 총기 반대 시위 때 발 벗고 나서셨던 만큼 인간적으로도 적임자이십니다.”
예술 종목 경기복은 모두 예준이 디자인했다.
그 중 브레이크 댄스는 미국이 유력 1위 후보이니 그 의상을 전 세계인이 볼 것이었다.
하지만 예준에게 그보다 탐나는 건 메달이었다.
메달은 모든 종목의 1위 후보들에게 모두 주어지는 상품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떤 나라든 적어도 메달 하나씩은 따갈 것이고, 그럼 정말로 전 세계인이 그 디자인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듣던 위원들이 위원장을 말리고 나섰다.
“듣기로 윤예준 화가님께서 한국 측 회화 대표 선수라던데, 이 이상 올림픽위원회에 관여해도 되겠습니까? 회화 부문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 편파 판정 의혹이 생길지도 모르겠는데요.”
중요한 문제였다.
실제로 그런 논란이 있을 법했다.
그리고 그 논란이 터진다면 올림픽위원회뿐만 아니라 예준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었다.
물론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서 예준을 편파 판정할 이유가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발리는 위원장과 위원들을 사이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발리가 빨리 결정해주기를 기다렸다.
“이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군요.”
발리의 선언에 위원장과 위원 모두 안도 섞인 한숨을 쉬었다.
“제가 알아서 결정하기엔 너무 중요하고 위험한 결정입니다. 어차피 윤예준 화가님이 하기 싫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렇죠. 올림픽 참가면 준비하실 것도 워낙 많으실 테니.”
“일단 전달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어보죠. 다음 연락은 윤예준 화가님께 직접 받게 되실 겁니다.”
금방 연락 주기로 한 뒤 발리는 위원회 건물을 빠져나왔다.
예준이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감히 대신 확답하지는 못했지만 발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예준은 무조건 위원장의 제안을 수락할 터였다.
***
LA에서 지내는 동안은 마치 긴 휴가를 받은 기분이었다.
왜 아버지가 LA행을 그렇게 반겼는지 알 것 같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한인타운 상인들은 저마다 밝은 표정이었다.
그들이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 한인타운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들뜬 느낌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한인타운 광장으로 나서 함께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올림픽이 즐거운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나.’
1870년, 파나티네코 경기장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유럽엔 항상 소규모 스포츠 축제가 실시되었다.
그때마다 인근 동네는 연중 가장 붐비곤 했다.
사람이 붐비면 붐빌수록 분위기는 들떴다.
그리고 해 질 녘, 파장을 맞으면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워졌다.
똑같이 사람이 없는 풍경인데도 그랬다.
그들이 남기고 간 뜨거운 자취 때문이었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유럽사람들이었기에, 당시의 파나테니코 경기장엔 경이로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3만 명이라고 했다.
당시 상상력으로 3만 명은 한 공간에 모이기 불가능해 보일 만큼 경악스러운 숫자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니었다.
아마 LA 올림픽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모일 것이었고, 해마다 솜니움 Halloween Night에는 하루 10만 명이 미술관을 출입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올림픽은 2년에 한 번씩 한다던데.’
동계올림픽이 있었을 2년 전에는 너무 바빴다.
신인화가전 일로 런던 거리를 걸으며 노상 텔레비전으로 조금 본 게 다였다.
결국은 현대 올림픽을 경험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인데, 그 분위기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시민들 심리는 1870년의 파나티네코 경기장에서 한 번 느껴본 적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올림픽 대비 매물 준비로 한창인 상인들의 모습을 한 명씩 그려보기로 했다.
발리의 연락을 받은 건 미처 한 명을 다 그리기도 전의 일이었다.
“네, 발리 선생님.”
-잠깐 통화 가능하신가요?
요즘 그와의 연락은 나라별 경기복 디자인 확정 상황을 전달받을 목적으로 주고받는 메일이 다였다.
오늘은 디자인 확정 검토를 위해 콜로라도에 가 있을 것이었다.
디자인이 확정되었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위해 전화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올림픽위원회에서 메달 디자인 담당을 윤 화가님으로 변경하고 싶어 하네요.
“아 그런가요? 그런데 변경이라면…… 기존 담당자가 있는 건가요?”
-네. 그렇긴 한데 올림픽위원회에서는 그분을 올림픽 담당 디자이너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더 좋은 디자이너가 있으니 변경하고 싶은 거라고 하더군요. 미들타운에 설치미술도 하고 유엔 평화 연설도 한 적 있으시잖아요? 디자인도 세계 최고 수준이시고요.
발리가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나는 이미 메달 디자인으로 적합한 안을 캔버스에 스케치하고 있었다.
올림픽 개막까지 석 달밖에 안 남은 상황에 기존 담당자 변경 건이라면 아마 시간이 촉박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종목별로 우승한 사람에게 걸어주는 메달 디자인이라면 평화의 심볼이기도 한데. 좋네요.”
-그럼 하시는 건가요?
“당연히 해야죠. 오래 걸릴 일도 아니고요.”
발리는 메달 디자인을 제안받은 나보다도 기뻐하며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로 보아 내가 수락하자마자 다시 올림픽위원회 본부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뭐래?”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듣던 아버지가 물었다.
“메달 디자인 의뢰가 들어왔대요. 하기로 했어요.”
나의 말에 아버지는 굉장히 놀란 기색이었다.
그 좋은 기회가 들어왔다는 것도 그랬지만, 아마 올림픽 메달 디자인 의뢰 치고 시기가 너무 늦기 때문일 것이었다.
“아. 그래서 계속 통화 중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던 거구나? 구상하느라고.”
발리와 통화하는 동안 어떤 디자인이 좋은지 생각해보았다.
LA라는 장소와 올림픽의 평화 정신을 생각하면 할수록 한인타운 대표에게 들었던 LA폭동 사건이 떠올랐다.
도처에서 총성이 울려대는 전쟁에 참여해본 나는 알았다.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언제 내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전장에 몸을 내던질 수 없었다.
전장이 아닌 곳으로부터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거나, 아니면 생명을 내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특수한 목표가 있어야만 했다.
한국인들은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옥상에 올랐다.
흑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한인타운을 공격했을 것이었다.
나는 내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LA폭동의 현장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그 결과 마치 현재 1992년 폭동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주민과 흑인들의 총은 각각 골목 바닥과 옥상 난간에 탄흔을 남겼다.
그들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한인타운 골목으로 몸을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겼다.
자신의 자식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그 공포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탕-
그때 마치 바로 등 뒤에서 전쟁에서나 들릴법한 소리가 들려왔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