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명예의 관 (3)
회의를 마친 뒤 나와 아버지는 한인타운 거리로 나섰다.
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아트밸리 초반 운영이 일단락된 뒤 바로 신인화가전을 진행하느라 한국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갖출 만큼 갖춘 김치찌개를 먹어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반가운 한국어 간판을 살피며 가게를 정하고 있을 때였다.
“예준아! 저기 봐봐라.”
아버지가 웃으며 길목 정면을 가리켰다.
온통 가게 쪽으로만 신경을 쓰느라고 정작 정면은 보지 못했는데, 그곳엔 내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있었다.
-한국의 자랑, 천재 화가 윤예준의 한인타운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 현수막을 보자 상가의 모든 가게에 마치 나를 환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완전히 착각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한인타운 대표가 나서서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환영합니다, 윤예준 화가님, 윤민제 화가님. 올림픽 일로 LA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봤는데, 부담스럽진 않으실지 모르겠네요.”
“아, 아닙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해요.”
대표는 길가에 선 채로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이곳이 한인타운이긴 해도 다른 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윤예준 화가님이 미국에 들어오신 뒤로 살기 편해졌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유 차이니즈? 재패니즈? 항상 그런 질문들 때문에 피곤하기 짝이 없었는데, 요즘은 한국인이냐고 먼저 묻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거든요.”
애국심이 상당한지 대표는 한국인으로서의 내 성과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그리곤 잠시 주변을 돌아보더니 발리를 찾았다.
“발리 선수도 같이 오신다고 들었는데. 급한 일이 생겼나 보네요?”
“네. 사업도 같이 진행하다 보니 일이 많으시더라구요.”
발리는 세계 각국의 올림픽위원회에 연락을 취하러 갔다.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저지른 실수 때문이었다.
새로운 종목이 채택된 만큼 경기복 규정을 분명히 공시했어야 했는데, 출전국 명단을 확정한 뒤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경기복이 자유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옷에 무슨 트릭을 숨겨놓느냐에 따라서 선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 수가 무궁무진하게 많아졌다.
규정이 없을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발리와 함께 미국올림픽위원회와 국제스트릿댄스연맹 사이를 전전한 끝에 잠정적인 경기복 규정을 입수할 수 있었다.
나와 발리처럼 알아보지 못한 국가에서는 틀림없이 탈락하게 될 정도로 세부적인 규정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아직 검토할 게 많다는 이유로 규정을 여전히 공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제스트릿댄스연맹에서 제시한 타협안이 채택되지 않을 리도 없었다.
그들만큼 브레이크 댄스에 능통한 사람도 없을 테니.
그래서 미리 모든 국가의 경기복을 디자인해둔 것이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실격 처리가 되어버리면 재미없으니까 말이다.
“식사를 하러 오신 거죠? 저희가 대접하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대표가 안내했다.
***
대표는 우리를 고층 루프탑으로 이끌었다.
그곳엔 굉장히 고급스럽게 조성된 식당이 있었다.
‘Kokobab’이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해봤을 때 퓨전 한식당 같았는데, 메뉴 이름은 대부분 완전한 한글에 작은 영어 이름이 하단 병기된 상태였다.
“아마 타국 생활에 그리워하셨을 음식이 다 있을 겁니다. 미슐랭 5스타에 빛나는 식당이니만큼 모든 메뉴가 맛있을 테니 안심하고 고르세요.”
신기한 구조였다.
완전히 옥상에 지어진 듯 주방부터 홀까지 모두 노출되어 있었다.
벽면은 모두 뚫려 한인타운 골목이 완전히 내려다보였다.
나는 메뉴판을 들고 김치찌개를 찾다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저 비석은 뭔가요?”
대표는 내가 가리키는 비석을 보더니 마침 잘되었다는 듯 이야기했다.
“1992년에 있었던 LA 폭동 기념비입니다. 지금 계신 이 옥상은 굉장히 역사적인 장소예요.”
대표는 92년도 당시 한국인의 인종적 계층이 그 어떤 인종보다도 낮았다고 했다.
흑인들의 백인에 대한 불만을 한국인들에게 돌릴 수 있었을 만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흑인 거주 구역에 있던 흑인들이 한인타운으로 총을 들고 들어와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가 터졌다.
당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총기를 통해 스스로 마을을 지켰다.
“당시 파괴된 가게와 물건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죠. 나라에서 나서주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참다못한 한국인들이 뭉친 겁니다.”
한국인들은 흑인들을 대상으로 시가전을 펼쳤고, 그때 전략적 고지가 되었던 게 바로 건물 옥상이라고 했다.
치열한 전쟁이나 다를 바 없었다고.
“그 당시 참전했던 한국인들을 루프탑 코리안이라고 부르죠. 그만큼 미국 내 한국인 권리와 인권에 대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곳, 한인타운 주민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이곳 어디를 가더라도 윤예준 화가님께 음식값을 받으려는 점주는 없을 겁니다.”
대표는 당시 백인에 대한 불만을 한국인에게로 돌렸다는 의혹에 대해 한 국회의원이 했던 발언을 언급했다.
백인은 다수이고, 다수가 폭동의 피해를 보는 것보다는 소수의 한국인들이 대신 피해를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한인에게 살해된 흑인 아이에 대한 언급을 지나치게 과장했고, 그 선동은 성공했다.
대화 끝에 가까스로 김치찌개를 발견해 주문했다.
일반적인 김치찌개가 나오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안에 들어가는 고기의 식감만 조금 다를 뿐 제법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한 김치찌개가 나왔다.
“아, 이게 그래도…… 겨우 김치찌개 하나 대접하려니 조금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니에요. 김치찌개가 가장 먹고 싶었어요. 다른 걸 시켰어도 계속 김치찌개 생각이 났을 것 같아요.”
같은 자리에 앉아 김치찌개가 끓는 걸 보던 대표가 나의 말에 웃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시끄러운 남성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 다들 시원한 국물 음식 먹고 기분 좀 풉시다.”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 진성 한국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보니 전형적인 코카서스 백인들이었다.
그들은 카운터에서 주문을 마치고 바로 뒤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속이 탈 땐 바지락국이라느니, 매운 걸 넣어줘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느니 음식이 나올 때까지 얼마간 계속 떠들었다.
“미국계 한국인인가 봐요.”
“그러게. 한국계 미국인은 많이 봤는데 그 반대는 처음이네.”
내가 속삭이자 아버지는 키득키득 웃더니 그들을 조금씩 살폈다.
나를 기준으로 해서는 뒤 테이블이었지만 마주 앉은 아버지 입장에서는 건너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왜 저러나 했더니 저 사람들 빅토리 임직원들이네.”
“그래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돌아본 뒤에야 그들 목에 출장용 직원증이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근데 그거랑 미국계 한국인인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빅토리 아웃도어가 한국 매출 1위거든. 한국에서는 등산복이 일상복이잖아.”
빅토리에게는 한국 지점이 효자 지점이라는 것이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바지락탕 껍데기까지도 씹어먹을 수 있는 게 사업가들이었다.
그제야 그들의 한식 사랑이 이해가 되었다.
“아, 그나저나 유리 선생님. 이번 디자인 정말 훌륭하더군요.”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자존심 상해서 어떡합니까. 유리 선생님 같은 거장에게 디자인 경쟁을 붙이다니. 그것도 발리서클 같은 이류 기업과 말이에요.”
그 대화가 시작된 순간 나와 아버지는 벽지에서 제 이름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놀라 관심을 기울였다.
“참 그…… 유리 선생님께는 면목이 없습니다. 발리서클에서 그렇게 저돌적으로 로비를 해올 줄은 몰랐습니다. 괜한 사업가들 욕심 때문에 유리 선생님 같은 예술가께서 피해를 보시니 참……”
“그러게 말입니다. 데이비스 그 사람이 스포츠 선수 출신이라 상도덕이 아주 못돼 먹은 것이죠. 그래도 걱정 마세요. 벼락출세한 삼류 브랜드에서 만든 경기복에 하자가 없겠습니까?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후원사를 변경시킬 테니 기다려주세요.”
의외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로비라니.
금시초문이거니와 발리 데이비스는 그런 부정행위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발리서클이 이류에서 삼류까지 위상을 낮추고 있는 동안 나와 아버지는 온 신경을 기울여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유리라는 사람의 표정을 보아하니 직원들의 그런 아첨을 내심 반기는 것 같았다.
어림도 없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그들의 장삿속을 오히려 부추기려는 듯했다.
‘로비는 이제 저쪽에서 할 생각인가 보군.’
사업이 병행되는 창작 활동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생기는 법이었다.
“애초에 국민 브랜드로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빅토리가 발리서클과 나란히 선정된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양심상 갑질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찬밥신세라니.”
“맞아요. 발리 그 사람 원체 주심 경고 유도로 유명한 선수 아니었습니까? 이번에도 분명 무언가 수를 쓴 거죠.”
이대로 뒀다가는 페어한 스포츠 정신이란 개막 전부터 다 더럽혀질 듯했다.
보다못해 나섰다.
“듣던 중에 죄송한데, 그 주심 경고 유도로 유명하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갑자기 끼어들어 당황한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왜, 프리미어리그에 있을 당시에 상대편 선수 발이 닿지도 않았는데 엄살을 부리며 굴러서 페널티킥을 얻어냈잖아요? 그거 때문에 상대편은 몇 년을 갈고 닦은 결승 진출에 실패했죠.”
고작 한 번의 사건으로 선수 시절 커리어 전체를 깎아 먹다니.
조금 약이 올랐지만 반박할 만한 배경 지식이 없어 손을 놓고 있을 때였다.
“그거 발리 선수가 트리본에 있을 때 일 아니에요?”
“그런가? 예, 맞아요.”
옛날에 발리 팬이었다던 아버지가 나섰다.
“그때 발리 선수가 얼마나 다쳤는데요? 아예 발목이 돌아가 버려서 선수 생활 접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대요. 그런데 몸값 떨어질 게 겁나서 알리지도 못했고, 스스로 리그를 나오고 몇 달간 재활 훈련만 했죠. 그래서 바로 이듬해 브뤼셀 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잖아요? 이유를 모르는 미국 국민들에게 욕을 된통 먹기도 했고.”
그 후로도 빅토리 직원들은 몇 가지 발리 흉을 보았지만, 지식으로는 아버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점잖은 척만 하고 있던 유리가 약이 올랐는지 나섰다.
“그럼 쭉 빅토리가 도맡아오던 올림픽 경기복 디자인에 발리서클이 끼어든 이유가 뭡니까? 발리가 대단한 선수라서 그렇다는 겁니까?”
“아뇨. 아무래도 NBA에서, 그것도 결승전에서 농구화가 찢어진 사건이 결정적이었겠죠.”
“그 한 번이잖아요. 그 한 번으로 빅토리는 미국에서 모든 신뢰를 잃어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그동안 빅토리가 해온 사업이 몇 갠데.”
빅토리를 그렇게까지 변호하는 걸로 보아 거의 직원이나 다름없는 외주 디자이너인 모양이었다.
“들어보니 선생님도 예술가라고 하시는 것 같던데, 그럼 잘 아시겠죠. 그림을 그리다가 실수했을 때 단순히 덧바르기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걸요. 그것만 놓고 봤을 땐 고작 한 번의 실수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시 그려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예?”
“지금의 빅토리는 다시 그려진 그림인가요, 덧그린 그림인가요? 왜 그 선수의 농구화가 찢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공정상의 문제를 검토해보긴 했나요? 빅토리에서는 해당 선수의 발 볼이 너무 넓었다는 식의 해명만 했죠. 그럼 빅토리의 축구화도 언제든 찢어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현재가 어머니의 디자인에 대해 평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은 여태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해왔지만, 당시 어머니가 나와 아버지를 위한 디자인을 했다고 했다.
기성 신발을 만들면서 모든 선수들의 발 형태를 고려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일이 터졌을 땐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끔 뭐든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게 기성복 디자이너의 최소한이었다.
국민 브랜드라는 빅토리에는 그게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기성품 농구화 발 볼을 넓힐 수도 없었던 거 아닙니까?”
조금 화가 난 직원 하나가 반문했다.
그 말을 들으니 대표에게 들은 LA 폭동 당시 국회의원의 말실수가 떠올랐다.
“소수 대신 다수더러 피해를 보라는 게 아니에요. 적어도 그 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봤냐는 거죠. 반성조차도 하지 않았잖아요?”
진정한 예술가라면 주먹구구식으로 실수를 덧바르지 않았다.
물감이 아깝더라도 과감히 새 캔버스를 꺼내는 게 좋은 자세였다.
실수와 과오를 인정하고 새로움에 도전해야만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법이니까.
만약 내가 빅토리 농구화의 디자이너였다면, 보통보다 힘점이 많이 모이더라도 절대 찢어지지 않도록 내구성을 강화했을 것이었다.
빅토리가 그랬다면 지금쯤 빅토리가 디자인한 브레이크 댄스 경기복 도안이 공장에 보내졌을지도 몰랐다.
“아예 후보에서 제외된 게 아니라 경쟁하게 된 거잖아요? 이 기회에 발리서클한테 한 수 배워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나의 그 말에 빅토리 직원들의 얼굴이 울긋불긋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