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명예의 관 (2)
발리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매주 지사별로 상품 판매량 추이 보고서가 전달되어 왔다.
어떤 상품이 잘 팔리고 무엇이 부진한지를 기반으로 판매 동향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같은 상품이라도 잘 팔리는 물건의 종류가 현저히 차이 났다.
접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역 심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해 물량을 조절하는 게 발리의 일이었다.
한창 바쁘게 자료를 살피던 도중 전화벨이 울렸다.
영업부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올림픽위원회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올림픽 공식 골드파트너사 후보 우리 브랜드가 거론됐답니다.
원래 올림픽 경기복 디자인은 대부분 빅토리가 독식하고 있었다.
역사가 깊은 브랜드이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지만 발리서클이 한다면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새로운 종목이 생겼다기에 혹시 몰라 후원사 신청을 해본 것이었다.
예술과 스포츠의 접목이라는 특수한 사업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위원회에서도 좋게 봐줄 거라고는 생각했다.
“정말입니까?! 다른 후보사로 또 어디가 있답니까?”
-저희 발리서클과 빅토리. 이렇게 두 회사뿐이랍니다.
후원사 신청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덜컥 되다니.
물론 아직은 후보 중 하나였지만 적어도 빅토리와 겨뤄볼 기회 정도면 충분했다.
발리는 수화기를 가리고 홀로 거친 세리머니를 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TF팀을 꾸려야 하니까 각 부서 부장들에게 대회의실로 모여달라고 해주세요. 임원진에겐 제가 따로 연락하겠습니다.”
-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서 세계 최고의 사업가로.
차근차근 목적을 달성해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브레이크 댄스라……’
발리는 인터넷에 브레이크 댄스 영상을 검색해보며 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엔 모든 브레이크 댄스팀의 복장이 단순하고 멋이 없기에 자신감이 샘솟았다.
하지만 영상을 몇 개 더 돌려본 뒤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디자인이라야만 동작이 잘 보이는구나.’
실크 재질의 펑퍼짐한 의상을 입고 있기 때문에 옷 속 몸의 움직임이 아주 잘 보였다.
올림픽에서라면 저보다 더 잘 보여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을 상대로 스포츠웨어를 많이 만들어본 발리는 알았다.
기능성만 추구하면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올림픽 후원사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발리서클 소비자들의 니즈로부터 등 돌릴 생각은 없었다.
‘달라붙는 의상을 하면 움직임이 제한될 것이고, 저렇게 펑퍼짐한 의상으로 제작하면 동작이 잘 안 보여. 그렇다고 실크 재질의 의상을 착용하면 멋이 없어지지.’
역시 디자인에 대해서는 혼자 골머리를 썩여 봤자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발리의 머릿속에 발렌티나가 떠올랐다.
디자이너로서도 탐구심이 강한 발렌티나였기에 발리에게 당연하다는 듯 답을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회사 창립부터 의견을 함께해온 디자이너는 따로 있어.’
윤예준.
그는 처음 발렌티나의 패션위크에 참여한 것 제외하고도 의상 디자인을 여러 번 해봤다.
예술과 스포츠의 접목이라는 가치도 잘 이해하고 있고 말이다.
발리는 휴대폰을 꺼내 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발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윤 화가님.”
변성기를 거친 예준의 목소리는 많이 낮아져 있었다.
“요즘 많이 바쁘십니까?”
-당장 하고 있는 일이 있기는 한데. 왜요? 뭔가 제안하실 일이 있으신가 보죠?
예준의 반문에 발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너무 용건 있을 때만 연락 드리나요? 바쁘실까 봐 시시콜콜한 용건으로는 연락드리기가 어려워서 그래요.”
-에이. 저희끼리 그럴 필요가 어디 있어요? 제가 얼마나 선생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아무튼. 무슨 일이신데요?
발리는 이번에 올림픽 후원사로 발리서클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차피 올림픽까지 1년도 넘게 남았고, 예준이 지금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좋네요. 1년 전에 동계올림픽 하는 거 봤는데 전 세계인이 다 본다죠?
“네. 심지어 이번에는 새로 생긴 브레이크 댄스 종목 경기복을 맡은 거라서, 아마 전보다 관심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건이죠.”
-아, 예술 종목이 생긴다는 건 들었는데. 브레이크 댄스요?
예준이 관심을 가졌다.
발리는 브레이크 댄스라는 장르에 대해 설명했다.
“한번 고민해보세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참여하죠. 예술 종목이 올림픽에 생긴다는데. 그걸 제가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예준은 흔쾌히 수락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나 예술에 관심이 많은 예준이었으니, 이 정도면 제안이 아니라 통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발리는 본격적으로 임원진에게 전화하기 전에 의자 등받이에 몸을 눕혔다.
올림픽 후원사도 모자라 윤예준의 디자인까지.
마치 시작도 하기 전에 성공을 거둔 것 같았다.
***
나는 아고라 센터에서의 갑작스러운 인터뷰를 마친 뒤 바로 로스앤젤레스로 와야 했다.
경기복 디자인 경쟁 pt가 코앞이었다.
가능하면 인터뷰에 길게 응하고 싶었지만 일이 바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비행하는 동안 아버지와 오랜만에 사소한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다.
“요즘 아빠도 많이 바쁘시죠?”
“어, 아주 죽겠다. 안 그래도 조금 쉬고 싶었어.”
발리는 이번에 생긴 예술 종목은 총 회화, 조각, 건축, 브레이크 댄스로 총 네 개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미국인들은 특히 브레이크 댄스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을 기회를 나와 발리가 얻은 것이었다.
올림픽 종목 중 회화 종목이 추가되었다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가 한국회화미술협회 임시 소속 화가로서 국가대표로 선출됐기 때문이었다.
바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국가의 부름엔 당연히 응해야 한다’라는 미명으로 치장하며 함께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도 잠을 쪼개가며 올림픽 준비에 매진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제갈사월과의 연을 계속 쌓아가며 아모리 위크를 진행한 아버지였다.
LA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작업량을 줄이고 짧은 휴가를 만끽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난번 아모리 위크 때 작품 엄청 비싸게 파셨잖아요. 한국 돈으로 89억이었죠? 축하드려요.”
거기 참석한 VIP가 아버지의 작품을 사 갔다.
VIP에게 팔 정도였다면, 뉴욕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아트 페어이니만큼 아버지는 미국 유명 화가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
“에이, 뭘 이제 와서. 다 예준이 네가 도와준 덕분이지. 나도 그렇고, 너희 엄마도 그렇고.”
아트밸리가 조성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 남은 어머니는 처음엔 언제쯤 돌아오느냐고 자주 전화했지만, 요즘은 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머니도 많이 바빠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출국할 때 당시 계획하고 있던 을지로 상가 리모델링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동대문 신발 도매상가 되살리기 프로젝트까지 성공시켰다.
도매상가 옥상을 친환경적인 정원으로 조성한 것이었다.
그 옥상 정원을 ‘옥상낙원’, ‘DRP(Dongdamoon Rooftop Paradise)’라고 다양하게 불렀다.
그 결과 감각건축의 ‘착한건축’ 사업은 국가 지원 사업으로 채택되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로봇 전시관’, ‘천체관측관’ 등을 만든 현재와 함께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곧 서울역에서 국무총리상 시상식도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 갈고 닦으신 거죠.”
내가 도움을 준 것도 당연히 결정적이긴 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열정을 가지고 임하지 않았다면 이만큼 성공하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예술가들 중에서 가장 진정성이 있었다.
어머니도 건축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이 남달랐다.
그게 부모님을 성공한 예술가로 만든 핵심 ‘소양’인 것이었다.
그렇게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해 공항을 빠져나왔다.
거기서 미리 연락을 주고받은 발리를 만났다.
“이럴 수가! 뉴스에서 몇 번 보기는 했는데 이만큼이나 커졌을 줄이야!”
발리가 놀랐다.
내 키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발리가 못 본 사이 많이 크기는 했다.
거의 190cm에 가까운 발리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편이었지만 말이다.
구겐하임 때는 겨우 명치 근처에나 닿았을 키가 지금은 그의 턱 정도에만 가 닿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 모두 키가 큰 편이었으니 곧 따라잡겠지.
발리의 안내를 받아 한인타운 근처 호텔 내 회의실에 도착했다.
안엔 발리서클 사내 디자이너들이 미리 도착해 앉아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아주었다.
다른 경기복을 디자인하면서 화상회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몇 번 본 사람들이었다.
“일단 아고라 센터에서 간략히 고안했던 도안들 보여드리겠습니다.”
발리의 도움을 받아 내 도안들을 프로젝터로 표시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들과 발리는 내 도안을 보며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굉장히 멋지네요. 그런데 이게 안전성 면에서 트집을 잡히진 않을지 의문이 듭니다. 혹시 경기장 안에 옷감이 걸릴 만한 요철이 있지는 않겠죠?”
그런 것들도 사전에 미리 파악해야 하겠지만, 혹시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못 자국 같은 게 있을지도 몰랐다.
디자인에서도 그걸 고려할 필요는 있었다.
“도안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바지 밑단을 접어놓으면서도 미적으로 의미 부여할 수 있는 방식을 다양하게 고려해뒀습니다.”
나는 페이지를 넘겨 바지 밑단 디자인 여럿을 디자이너들에게 보여주었다.
한복처럼 끈으로 묶거나 활동성 있는 부츠로 잡아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브레이크 댄서들이 입는 공연 의상이 땀 배출이 잘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땀 배출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소재가 발리서클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이번에 개발한 신소재인데, 그 소재를 고려하신 건가요?”
“맞습니다.”
보통의 소재는 안료를 먹이면 통풍, 통습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선수들이 무색의 경기복만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안료 색깔과 관계없이 성능이 동일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했다.
나는 디자인 초기부터 해당 소재 특유의 질감을 고려해 작업했다.
“그런데 몇몇 도안들은 특정 나라 색깔이 너무 짙게 묻어 있는 것 같은데. 미국 선수들이 저 디자인을 입어도 될까요?”
“안 되죠.”
“예?”
질문한 디자이너가 나의 단답에 당황했다.
“저 도안들은 미국 선수가 입을 경기복이 아닙니다.”
“예? 다른 나라의 경기복도 함께 디자인하셨다는 뜻인가요?”
로스앤젤레스로 떠나오기 일주일간 브레이크 댄스 종목 출전 국가들의 디자인도 함께 구상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왔다.
“각국 올림픽위원회에서 알아서 디자인 업체를 선정했을 텐데. 왜 굳이 그 도안까지 생각하신 거예요?”
“아마 저희 쪽에서 디자인한 경기복을 채택해 진행하게 될 테니까요.”
아무리 발리서클에서 만든 디자인이 훌륭하더라도 기존 업체와 계약을 중지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도 확신은 있었다.
오히려 모든 국가가 나의 디자인을 채택했을 때의 생산 속도를 걱정해야 했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 과반수의 국가 선수들이 저희 발리서클의 경기복을 입고 춤을 추게 될 거예요. 과반수가 아니라 거의 전체겠죠.”
위원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자신들의 면면만 두리번거렸다.
이미 사정을 알고 있는 발리만이 웃으며 나의 도안들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