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40화 (140/241)

140화. 명예의 관

그렇게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솜니움 개관식도 이젠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평상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YJ아트밸리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ABC방송사 리포터 세리 존슨도 그중 하나다.

“안녕하세요, <예술 속으로> 시청자 여러분! 미들타운에 나와 있는 리포터 세리 존슨입니다. 지난 2025년 10월에 솜니움 미술관 개관식이 진행되었던 거, 다들 기억하시죠?”

방송사 현장 스탭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도중, 큐사인을 받은 리포터 세리가 진행을 시작한다.

장소는 YJ 아트밸리.

개관식이 있기 전까지 한산했던 분위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

“개관식뿐만 아니라 매해 10월 31일이면 할로윈 파티를 열겠다고 밝혀 많은 시민들로부터 기대를 받아온 바 있습니다! 저도 가족들과 함께 개관식에 참여했던 기억이 생생한데요.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난 지금, 아트밸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우리가 몰랐던 아트밸리의 모습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대체 아트밸리의 무엇이 솜니움 미술관을 미국 2대 미술관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었던 걸까요! 지금부터 저, 세리와 함께 살펴보시죠!”

3년 전 개관식 개회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던 아트밸리 입구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럼 카메라를 든 여댓 명의 촬영기사들이 세리와 아트밸리 곳곳을 촬영하며 함께 들어선다.

개관식이 성황리에 이루어진 이후로 각국의 수많은 예술가가 찾아와 더욱 발전된 모습이다.

세리는 카메라를 향해 건물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YJ재단, 미디어아트센터, VR센터, 아고라 센터 등.

예술가 간 교류를 중요시한 만큼 마치 복합 문화 단지처럼 유기적인 건물 배치가 가장 눈에 띈다.

세리는 제일 처음 미디어아트센터로 들어선다.

“아. 저기 <예술가의 눈>이 있네요. 윤예준 화가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미디어 아트라고 하죠?”

입구를 지나쳐 센터 안으로 들어가면 예술가의 눈이 방문객을 맞는다.

마치 카산드라 스튜디오의 <헤엄치는 고래> 같다.

대신 훨씬 더 큰 사이즈가 방문객을 시각적으로 더욱 강하게 압도한다.

세리는 그 근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던 세 사람을 발견하곤 놀란다.

“어? 저기 굉장히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는데요!”

세리가 인사를 하며 다가오자 어수선한 방송국 인파를 발견한 그들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각각 필립, 카산드라, 무함마드다.

“<시간을 거스르는 자>의 필립 감독님 맞으시죠?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세리는 그중 필립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묻는다.

“아. 필립 영화사는 정리했습니다. 대신 직원들과 함께 이곳 아트밸리로 모여 정착했죠.”

“이미 잘되고 계신 필립 영화사를 포기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포기한 건 아닙니다. 영화란 게 원래 많은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길을 택한 거죠.”

세리는 필립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카산드라에게 마이크를 돌린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쌓인 노하우를 기반으로 예술가들에게 좋은 영상 작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특히 필립 감독님께 말이에요.”

필립과 카산드라가 마주 보며 웃는다.

“창단 멤버분도 계십니다. 무함마드 카프탄 감독님. 솜니움 개관식 때부터 쭉 함께하셨다죠?”

“물론이죠.”

무함마드가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인다.

“이번에 할로윈 배경의 애니메이션 <토토>가 크게 히트를 쳤는데, 솜니움 개관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굉장히 큰 관련이 있죠! 제가 드림캐쳐 스튜디오에 있던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창작해온 캐릭터들인데, 솜니움 개관식 때 선보인 캐릭터 코스튬 플레이 애니메이션이 크게 성공했거든요. 실력 있는 감독들에게 인정을 받았어요. 덕분에 그들과 협업을 할 기회를 얻게 됐고, 그 결과물이 바로 <토토>니까요.”

그의 가능성을 본 예준이 미리 영입 준비를 해온 것이다.

세리는 현재 무함마드가 아트밸리 안에서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란다는 멘트를 마지막으로 미디어아트센터를 나선다.

두 번째는 VR센터다.

VR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다.

입구를 찾아 들어가면 마치 우주선에 탑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세리는 VR고글들 사이에 있는 모바일 기기를 들어 올려 카메라를 향해 비춘다.

화면엔 카메라가 켜져 있는데, 그 뒤로 비치는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카메라 화면에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AI큐레이팅 어플리케이션 ‘아이필’이 세계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온 것도 벌써 옛날 일이 돼버렸네요. 그 뒤 윤예준 화가는 아이필의 개발자 아이다 씨와 함께 아트밸리에서 활용할 만한 AI미술튜터링 기술을 개발했는데요. YJ아트밸리를 방문하시면 AI미술튜터링 서비스의 오프라인 버전인 VR튜터링을 체험해보실 수 있습니다.”

세리가 고글을 하나 착용하면 한쪽에 설치된 화면으로 세리의 시선이 표시된다.

명화 속에 들어와 있는 세리는 곳곳에 증강현실처럼 표시되는 설명들을 확인하며 연신 감탄한다.

VR관에서 나와 아고라 센터를 향해 걷던 세리가 문득 떠오른 듯 말한다.

“아, 그리고. 숙박이 번거로울까 봐 방문이 망설여지신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트밸리 직원들뿐만 아니라 방문객들도 이용할 수 있는 호텔식 숙소, 쇼핑몰, 레스토랑,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까지 다 마련돼있다고 하니까요, 걱정 없이 찾아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세리는 편의시설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이동하다 펌킨 노아의 조각공원에 다다른다.

“YJ 아트밸리가 낳은 굴지의 예술가, 팜킨 노아의 조각공원입니다. 잭 오 랜턴 조각으로 가장 유명한 펌킨 노아이지만 이 조각공원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석회석부터 시작해 나무, 가죽 등등 펌킨 노아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 수없이 전시돼 있다.

3년 전 개관식이 있은 이후 작품활동에만 전념한 결과다.

“저기 솜니움 미술관이 보이네요.”

세리는 조각공원을 완전히 지나친 뒤 수많은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솜니움 미술관 앞으로 가 선다.

“지금까지 많은 건물들을 지나쳐왔는데요. 최근에 소장 작품 수가 10만 점을 넘겨 한 번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죠? 로드아일랜드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교류해 얻은 결과물이 바로 저곳, 솜니움 미술관에 모여 있다고 합니다.”

세리는 솜니움 입장권 수익 전체가 미술관 운영비와 신인 화가 발굴 지원금으로 사용된다는 걸 언급하며 지나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리는 아고라 센터에 도착한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건축된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고즈넉한 거리처럼 조성돼 있다.

마치 프랑스에서 본 카페 게르부아 같다.

“다른 장르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해 조성된 아고라 센터입니다. 연중 휴일 없이 24시간 개방돼 있는 곳인데요. 매주 목요일에 정기 회의가 진행된다고 하죠. 마침 목요일인데, 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네요!”

세리가 거리 안쪽 한구석을 가리킨다.

많은 화가들이 캔버스를 펼치고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방송국 직원들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다들 이쪽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들 틈으로 언뜻 예준의 모습이 보인다.

“어? 윤예준 화가님도 계시군요! 잠깐 인터뷰 가능할까요?”

세리가 마이크를 들고 다가서자 화가들이 물러서 준다.

17살이 된 예준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다.

2차 성징기를 막 지나 세리보다도 키가 커진 모습이다.

어렸을 때부터 활동해온 예준이라 사람들에겐 그의 어린 모습이 익숙하지만 세리는 놀라지 않는다.

아트밸리를 운영해오면서 지금의 모습도 언론에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세리가 의자 하나를 끌어와 예준 옆에 앉으면 인터뷰가 시작된다.

“아트밸리가 생긴 이후로 신인화가전을 열어 많은 관심을 받으셨죠?”

“그랬죠. 신인화가전은 계속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을 옮겨 다니고 있죠. 파리부터 시작해서 베니스, 모스크바…… 한국만 못 가본 것 같네요.”

예준은 도시 방문 전에 미리 무명들 대상으로 작품전을 연다는 소식을 전한다.

거기 출품한 많은 화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솜니움 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할 화가를 고른다.

그때 교류한 화가들 중 상당수는 지금 아고라 센터에 모여 있다고 한다.

지금 예준 근처에 모여 있는 화가들도 절반은 로드아일랜드 출신, 나머지 절반은 타지 출신이다.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앞으로도 계속 신인화가 발굴에 시간을 쏟으실 것 같은데, 차기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유독 바쁜 시기라서요. 올림픽 경기복 디자인을 맡게 돼서.”

세리가 놀란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이번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 경기복을 디자인하게 되셨죠?”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고요. 이번에 처음으로 예술 올림픽이 생겼잖아요? 그중 브레이크 댄스 부문 경기복 디자이너 후보로 거론된 상태예요. 이미 작업은 진행 중에 있지만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됐다.

아트밸리로 유명해진 예준을 의식하고 이번 1회만 예술 종목을 추진해보기로 한 것이다.

예술 종목이란 1948년까지 비공식 종목으로 있던 게 다였으니 상당히 역사적인 일이다.

인터뷰가 조금 더 진행된 뒤 예준이 다음 일정이 있음을 밝힌다.

올림픽 관련한 일로 로스앤젤레스에 가볼 일이 있다고 한다.

“네, 그럼 아쉽지만 인터뷰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17살 예술가, 윤예준 화가님을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신 윤예준 화가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준과 세리가 인사를 마치고 돌아선다.

***

예준이 경기복 후보 디자이너로 거론되기 전,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서는 ‘브레이크 댄스’ 종목의 경기복 때문에 오랜 기간 회의를 거쳐야만 했다.

새로 생긴 종목이니만큼 경기복 생산을 어떤 브랜드에게 맡겨야 할지 몰랐던 것이었다.

“보통 다른 종목은 빅토리가 맡고 있죠? 이번 종목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데 브레이크 댄스가 다른 경기 종목만큼 몸을 많이 쓰는 편도 아니라서 스포츠웨어로 분류하기가 어렵잖아요. 빅토리에 똑같이 맡기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빅토리는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골드파트너로서, 미국 각 체육 협회와 경기복 제휴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추가된 종목들에 대해서는 후원을 지지해줄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

골드파트너십 계약 당시 없었던 항목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빅토리가 미국스트릿댄스연합을 개인적으로 만나 경기복 계약을 성사시키더라도 미국올림픽위원회로서는 중계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회화, 건축, 조각 분야 경기복은 빅토리에게 그대로 맡겼다.

의상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으니까.

하지만 브레이크 댄스는 달랐다.

미리 알아본 결과 기존의 빅토리엔 브레이크 댄스 의상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다른 중소 브랜드의 브레이크 댄스복은 대부분 일상 캐주얼복으로 소비될 뿐 댄스 그 자체의 기능성에 집중한 건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일단 활동성을 고려하면 스포츠웨어 브랜드에 의뢰하는 게 적절합니다.”

“맞아요. 규모만 봐도 어쨌든 노하우라는 게 있을 테니까요.”

“그럼 빅토리가 좋을까요?”

조금만 더 대화가 진행되었다면 빅토리로 결정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의원 중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번 NBA 경기 중에 한 프로농구선수의 농구화가 찢어져 크게 부상 당한 적이 있습니다. 선수들 안전이 걱정되기도 하고, 지금 빅토리에 대한 신뢰가 그리 높은 상황은 아닌데요.”

“그렇긴 하죠.”

“다른 후원사 후보 중엔 또 어디가 있었죠?”

명단을 보던 의원 한 명이 데이비스 발리의 브랜드, ‘발리서클’을 거론했다.

“브레이크 댄스라는 종목 자체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르인데, 빅토리보다는 발리서클이 그런 니즈를 잘 충족시켜주는 브랜드이긴 합니다.”

“그렇죠. 활동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멋이 없으면 젊은이들이 안 입을 테니까요.”

“음…… 발리서클이 적당할 것 같네요. 발리서클이 항상 강조하는 게 ‘예술과 스포츠’잖아요. 실제로 예술성을 많이 추구하고 있기도 하고요.”

후보 브랜드들 중에서 발리서클만큼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많은 곳도 없었다.

그들에게 디자인을 맡긴다면 편의성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아마 경기 도중 농구화가 찢어질 일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럼…… 발리서클로 할까요?”

답을 정해놓고도 위원들은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NBA 사건을 생각하면 비슷한 중견 브랜드인 발리서클이 합당했지만, 그래도 빅토리는 수십 년간 국민 브랜드 지위를 지켜온 곳이었다.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발리서클에게 경기복을 맡겼다가 더 큰 사고가 날지 누가 알겠는가.

위원 중 한 사람이 고민 끝에 결정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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