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35화 (135/241)

135화. Somnium

조금 퀭한 얼굴이었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FC코리아의 조상철이었다.

그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는 나름대로 잘나가는 기자였다.

수많은 특종을 잡았던 것만 봐도 기자로서의 그의 열정은 잘 알 수 있었다.

그 열정이 행해지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 열정에 박수쳐 줄 생각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나와 관련된 기사 때문에 기자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아마 다시 기자가 될 수도 없을 터였다.

내 얼굴을 보기 싫어서 피해 다니지 못할망정 오히려 이곳까지 찾아오다니.

나쁜 마음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림 보러 오신 거예요?”

나는 그가 잘못된 기사를 쓰게 될 걸 알고서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남과 관련된 거짓 기사였다면 어떻게든 사전에 설득시키려 했을 것이었다.

나와 관련된 기사였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기사를 나서서 막지 않은 건 그가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마 이번 입학식을 통해 그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눈빛으로 보아 내게 복수 같은 걸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자초한 일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것 같아 보였다.

조상철은 잠시 나를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내 그림을 보았다.

“사람이 많다기에 미루고 미루다 이제 왔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다.

내가 아버지이거나 다른 ‘어른’ 선생님이었다면 그를 아예 학교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을 것이었다.

조상철은 어쩌면 돌을 맞게 될지도 몰랐다.

나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를 내게서 떨어뜨려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림 보러 왔다는 그의 한마디만 듣고도 나는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았던 경계심마저 풀 수 있었다.

그의 말투는 전보다 많이 온화해져 있었다.

이일섭의 집 앞, 그러니까 이 근처에서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말 속도가 빠르고 귀에 날카롭게 박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항상 그는 무언가로부터 쫓기듯이 취재했다.

지금은 그를 쫓는 무언가가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FC코리아가 그리 큰 전문지는 아니지만, 인터넷 신문사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이었어요. 저는 그런 FC코리아 문화부에서 가장 특종이 많았던 기자였죠.”

그는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사명감도 컸었죠. 사명감보다는 오만을 좀 더 많이 가진 느낌이지만…… 아무튼 그 오만에 비해 제 직급은 낮아서 승진이라는 걸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만큼이나 능력이 좋은데 지금 위치에 만족해서 되겠나 싶었죠.”

그는 승진 욕구와 기자로서의 사명감, 그리고 오만이 합쳐진 결과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아버지가 나의 이름을 빌려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상철은 확신했다.

그가 승진 욕심을 조금만 버렸어도, 사명감이 조금만 덜했어도, 조금만 덜 오만했어도 그런 기사를 쓸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입학식 직전까지도 확신하고 있었어요. FC에서 나를 다시 불러줄 거라고 믿었죠. 그리고 그날 밤부터 시작된 나에 대한 조롱엔 화가 치밀었어요. 분명 내 실수는 맞지만 이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 기사에 당신은 별로 타격을 받지도 않은 것 같았으니까. 내 모든 걸 잃게 되었다는 허탈함 때문에 당신이 너무 밉기도 했고요. 그냥 남 탓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게 며칠간 칩거하던 중 그의 선배인 ‘장두식’이라는 기자가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YJ예술학교에서 출판한 책 <그림의 힘>을 들고 말이다.

두식은 상철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과 함께 그 책을 건네고 떠났다.

처음엔 그 책을 버려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왜인지 선뜻 그렇게 하지 못했다.

표지에 그려진 <기다림>이 계속 그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림으로만 그려진 책이기도 하니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결국 책을 펼쳤다.

“그 책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내가 그동안 내 잘못에 너무 관대해 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쩌면 그 책에 있는 300점의 그림들은 내가 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기만 했다면 그런 그림들은 그려질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자신이 상처 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적절한 반성이지만 과한 자책은 금물이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려던 게 많이 길어졌네요. 그래도 입학식까지 두 달간 스트레스가 심했을 텐데. 못난 기자였던 것 같아요. 받아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상철이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도 그의 잘못에 대해서는 확실히 못박아 말했다.

그가 모처럼 해놓은 반성을 해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턴 어쩌실 생각이에요?”

“글쎄요. 일단 미국으로 가볼 생각이에요. 어디든 가서 두 번째 인생을 살아야죠.”

아마 한국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판단하고 도망치는 것이리라.

“큰 잘못을 저지른 건 맞지만 바로잡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예요. 지금까지 하셨던 실수를 차근차근 만회하다 보면 두 번째 전성기가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예.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윤예준 씨 학교도 대성하길 바랍니다.”

조상철은 무거운 표정으로 떠났다.

아마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한국을 떴겠지.

그로부터 6개월이 더 지난 후, 나도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미국의 YJ아트밸리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조상철의 격려대로 윤예준종합예술학교는 크게 대성했다.

특히 힐링 전시회 이후 열린 두 번째 전시회는 선생과 학생들의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분반 체계를 도입했다.

그게 ‘쿠르베 반’, ‘마네 반’, ‘피카소 반’이었다.

스타일이 완고하고 엄격한 학생들은 쿠르베 반으로, 자유롭고 화려한 작품을 주로 그리는 학생들은 마네 반으로, 추상적이고 전위적인 스타일의 학생들은 피카소 반으로 분반시켰다.

비슷한 화풍을 가진 학생끼리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실력을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당장의 방향성을 설정하지 못한 학생들도 있을 것이었고, 너무 엄밀한 분반 체계는 화가로서의 잘못된 정체성이 되기 일쑤였다.

분반 체계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정형화를 방지하기 위해 분반 체계는 1, 2년 과정으로 국한시켰다.

그럼 2학년, 적어도 3학년 학생들은 자신의 화풍을 의심하고 다양한 화풍의 학생들과 교류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체계가 잡혀갈 무렵 대통령이 약속을 이행했다.

신인 발굴 전시회를 국가 주도로 확대시켰고, 팔리지 않는 작품을 국가가 적당한 가격에 사 주기도 했다.

게다가 신인 화가의 작품을 거래할 경우 값의 일정 비율을 국가가 대신 지원해주는 제도도 생겼다.

작품활동을 열심히 계속하기만 한다면 돈 걱정에 전처럼 매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림의 힘> 표지 디자인 저작권료로 내 몫 250억이 들어왔다.

정부 지원이 늘어난 덕분에 그 수익금을 모두 아이필에 투자해놓을 수 있었다.

또한 민수와 정 선생, 김선을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학교에서의 제 역할에 완전히 적응했다.

재정지원도 확대됐겠다, 더는 신입생 선발부터 학사 운영까지 걱정할 여지가 없었다.

마음 편히 미국으로 돌아가도 되는 상황이었다.

***

그렇게 다시 로드아일랜드로 도착했다.

미국에 더 길게 남게 되면서 아버지는 숙소를 따로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아트밸리가 완성되면서 그 안에 나와 아버지가 묵을 곳도 함께 마련되었다고 들었다.

우선 짐을 챙겨 공항을 나서는데, 저 멀리 시커먼 SUV가 햇볕을 받아 반짝였다.

무함마드는 주기적으로 전화해 내 안부를 물었다.

이번에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비행 일정을 물었지.

그런 정황을 따지지 않더라도 저 집채만 한 SUV는 카프탄의 차일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 서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예준! 이렇게 기쁠 수가…… 어서 타!”

나는 우선 짐을 뒷좌석에 올리고 조수석에 앉았다.

“못 본 사이에 키가 많이 컸나 본데? 조수석에 혼자서 올라타고 말이야!”

“너무 과장이 심하시네요. 패스트푸드점 의자라면 몰라도……”

내가 그의 농담을 맞받아치자 그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영상을 만들던 옛날 생각이 나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대체 이런 차는 어디서 얻어오시는 거예요? 제가 청와대 의전차도 타봤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아트밸리로 이동하는 길에 물었다.

지난번 코믹 콘서트에 갈 때 탔던 차와는 또 다른 차였다.

당시엔 그냥 빌렸다고만 했지만, 이젠 그가 아랍 왕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무함마드도 더는 둘러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말했다.

“집에서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거야. 아빠는 아직도 미국 민가가 틈만 나면 시민들끼리 총질하는 곳인 줄 알고 있거든.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도 막내니까 걱정하시는 거지.”

왕가에 돈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정도면 내놓은 자식이라고 하긴 어렵지 않은가?

“근데 내가 차량 절도범이라면 백날 이 차만 훔치려고 호시탐탐 연구할 것 같아. 오히려 더 겁난다고! 그렇다고 받은 차 놔두고 다른 차를 살 수도 없고. 내 집보다 주차장이 더 넓어!”

공간이 부족하면 팔면 되는데 무함마드는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 성의는 앞으로도 계속 받을 생각인가 보다.

좀 시시덕거리고 있으니 아트밸리에 도착했다.

총기 난사 사고로 인해 로드아일랜드 거리가 한산해졌던 건 이제 먼 옛날의 일이었다.

오히려 현재는 굉장히 활기 넘치는 지역이 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아트밸리 입구부터 펼쳐진 멋진 조경이 인상적이었다.

허드슨 리버 밸리가 부럽지 않은 환경이었다.

“이번에 아트밸리가 열리고 미들타운 주민들한테 물어보니까 인기가 엄청 좋더라고. 거의 버려진 부지에 아트밸리를 지었잖아? 없던 땅이 갑자기 생긴 느낌이 든다더라. 게임으로 치면 지난번까지 벽으로 막혀있던 곳에 새로운 지역이 업데이트된 거지.”

무함마드는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차를 몰았다.

<아마란스> 판매 수익부터 후원금까지.

아트밸리 조성에 사용한 돈 3000억 원 중 절반이 이 조경에 지불되었다고 했다.

비쌀수록 좋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이 정도면 돈값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곧 탁 트인 곳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차가 마주 본 곳에는 거대한 신축 건물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건물이 대부분 신축이었지만, 그 건물엔 낡은 종이 달려 있었다.

지난번에 주의원과 함께 찾아왔던 폐기차역이었다.

‘솜니움 미술관’

리모델링 및 확장 공사만 진행시킨 건물이었다.

생각보다도 더 괜찮게 디자인된 모습에 놀랐다.

‘솜니움 미술관’이라는 간판 디자인도 훌륭했고 군데군데 박혀 있는 YJ로고가 잘 어울렸다.

“이미 있었던 건물을 보수한 거라 공사는 가장 빨리 끝났는데 개관은 가장 늦을 거라고 하더라. 들어갈 그림이 없어서.”

“괜찮아요. 개관식 때 홍보만 잘하면 좋은 그림을 꽤 들여올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앞으로 솜니움 미술관 전시를 원하는 화가들이 많아지겠죠.”

리사대학교와 협력 관계에 있을 아트밸리였다.

미술관 명성에 규모도 큰 몫을 하게 될 테니, 적어도 리사 미술관과 비슷한 수의 작품을 걸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영상예술 쪽은 이미 리사가 잡고 있으니, 아마 거기 없는 화풍의 그림들 위주로 전시하는 게 좋을 것이었다.

그러려면 이미 있는 거장들의 그림으로 미국 미술계에 멋진 신고식을 치를 필요가 있었다.

“리사미술관에 그림이 몇 점 있죠?”

“6만 5천 점 정도? 그런데 그건 왜?”

6만 5천 점이 모일 정도의 파급력을 위해서라면 보통 신고식이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그 정도 규모 되는 미술관이면 얼마나 가지고 있나 궁금해서요. ……그런데 아까부터 그 요란한 바지는 대체 뭐예요?”

차 안에서는 그리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차에서 내리니 그의 그 반짝이는 호박색 바지에서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색이 그렇게 예쁘지도 않았고……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색채가 바뀌는 반짝이는 어지럼증까지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오, 예준. 요란하다니…… 네가 아무리 도나텔라와 콜라보를 했다고 하더라도 내 패션 감각을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어. 10월엔 미국 대명절인 할로윈이 있잖아!”

할로윈이 뭔진 몰라도 명절이라고 부를 만한 기념일일까?

내가 알기로 10월 대명절은 추석뿐이었다.

“그게 뭔데요?”

무함마드는 코믹콘 때보다 더 신나서 할로윈에 대해 설명했다.

요컨대 무서운 복장을 하고 사탕을 주고받는 행사였다.

사탕을 받는 아이들, 사탕을 주는 어른, 코스프레를 즐기는 젊은이들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행사로 여겨졌다.

호기심이 일었다.

“그 행사로 가장 유명한 곳이 어디예요? 할로윈 축제를 가장 크게 하는 곳.”

“글쎄……? 그런 곳이 있나? 아무래도 뉴욕일 것 같은데.”

많이 즐기기는 해도 할로윈으로 유명한 지역 같은 건 따로 없는 듯했다.

잘만 하면 활용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축제를 통해 아트밸리 개관식을 홍보하면 거장들을 모을 화제성은 충분할 것이었다.

대명절이라고까지 표현하는 할로윈이지 않은가.

“개관식과 할로윈이라……”

나의 혼잣말을 들은 무함마드가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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