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그림의 힘 (3)
<그림의 힘>은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위로를 던져주는 그림’이라는 부제와 함께 출판되었다.
나의 작품 <기다림>이 책 표지를 장식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위로의 한마디를 한 문장씩 적어서 제출했는데, 책 디자인이 잘 되어서 문구와 그림이 잘 어우러졌다.
지친 현대인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책이라는 평론가들의 평가가 있었다.
예상하기로는 학생들의 또래인 10대부터 20대가 주요 독자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전 연령에 걸쳐 고르게 판매되었다.
그림의 인기에 입학식 라이브 보도가 크게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나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림책이 잘 팔리고 있으니 실물 그림이 궁금한 사람도 많을 것이었다.
나는 전시회 일정을 예정보다 앞당겨 바로 YJ예술학교를 개방했다.
전시회 이름은 <힐링 전시회>로 결정했다.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그림 출판을 하고 이런 전시회까지 열게 된 데에 대해 설레고 기뻐했다.
그래서 관람객들을 기쁘게 안내했고, 다른 학생들의 그림을 구경하기도 했다.
역시 야외 전시회가 접근이 제일 좋았다.
하지만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성황리에 진행되었다고는 해도 전시회는 안 오면 그만, 책은 안 사면 그만이지 않은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더 침투시킬 방법은 여태까지 많이도 고려해보았다.
삼성역에 입체 광고를 의뢰하기도 했고, 광고 모델이 되어 작업 영상을 전 세계에 퍼뜨리기도 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데이비스 발리의 로고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걸 생각해보았다.
의외로 팬덤 바깥에서도 사 입곤 했던 블랙퍼플 단체티였다.
옷은 직접 사 입지 않아도 거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스포츠웨어 브랜드인 발리의 로고를 제작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역시 옷이 좋겠어.’
패션 디자이너 하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뉴욕 패션위크 때 연을 쌓은 발렌티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이니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인터넷에 발렌티나 데이비스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가 관리하는 브랜드인 ‘도나텔라뉴욕’은 한국 지점도 가지고 있었다.
[뉴욕 감성 컨템포러리 유니섹스 브랜드, ‘도나텔라뉴욕(DONNA TELLA NEWYORK)’]
조금 더 조사해보니 도나텔라뉴욕은 매월 전문가들과의 협업 컬렉션을 월간 시리즈 프로젝트로 선보이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다른 디자이너들의 피드백에 상당히 열려 있는 발렌티나다운 프로젝트였다.
발렌티나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발신음이 몇 번 이어지지도 않았는데 발렌티나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
-어? 윤 화가님! 저도 막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잘 지내시죠?
“네. 잘 지내죠. 근데 왜 전화하려고 하셨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건 아니고, 제가 지금 서울에 있거든요.
발렌티나는 마침 서울 패션 위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있는 상태라고 했다.
내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만약 시간이 된다면 밥이라도 한 끼 제안하려고 했다고.
마침 잘됐다.
<그림의 힘>을 옷에 담으려면 실물 그림을 보여주는 게 좋을 테니까 말이다.
“바쁘지 않으면 혹시 몇 시간만 내줄 수 있으세요? 보여드릴 게 있어서요.”
-물론이죠. 아무리 바빠도 윤 화가님이 부르시면 가야죠.
나는 잠시 통화를 멈추고 YJ예술학교 주소를 전송해주었다.
전화를 마치자마자 바로 출발했는지, 발렌티나는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전시회 안내판이 있기는 하지만 길이 복잡해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뵈니까 너무 반가워요!”
“저도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잠시 인사를 나눈 뒤 그녀를 YJ예술학교 안으로 안내했다.
발렌티나는 학교 부지로 들어서자마자 상당히 크게 놀랐다.
“와! 학교인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면 웬만한 대학교 크기인데요? 윤 화가님이 여기 이사장이신 거죠?”
“그런 셈이죠.”
학교 부지를 둘러보던 발렌티나는 <힐링 전시회> 현수막을 보고는 물었다.
“저기 뭐라고 쓰여 있는 건가요?”
“힐링 전시회예요. 보여드리고 싶은 게 바로 저 힐링 전시회였어요. 옷을 좀 만들어보고 싶거든요.”
나는 힐링 전시회 시작지점으로 발렌티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미리 정해둔 동선을 따라 걸으며 ‘미술치료’라는 상담 기법과 <그림의 힘>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발렌티나는 내 설명을 진지하게 들으면서도 그림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가끔 발렌티나를 알아본 학생들이 모여들기도 했는데, 그럼 발렌티나는 짧은 한국어로 인사하며 친절하게 사인을 해주었다.
“이 그림들을 다 저 학생들이 그린 건가요?”
“네. 책도 굉장히 잘 팔리고 있어요. 이 그림들은 실제로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됐죠.”
발렌티나는 조금 차분해진 모습을 계속 그림들을 감상했다.
누구든 그렇게 만들어놓는 좋은 작품들이었다.
“예술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이 있죠? 그건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라고 여겨왔어요. 뭐, 누군가는 치유를 받겠거니 했죠. 현대 미술엔 그런 것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작품들도 많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예술을 있게 하는 건 표현에 대한 욕구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더더욱 패션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네.”
“아, 뭐라고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인상적이라는 거였어요. 제 말 이해하셨죠?”
치료는 소통의 극대화된 형태다.
발렌티나도 나의 그 생각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엔 옷으로 치유를 시도해보고 싶으신 거죠?”
“맞아요. 이 작품들을 활용해서 말이에요. 찾아보니까 매달 월간 시리즈를 기획하시는 것 같던데. 그 프로젝트를 통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발렌티나는 300점의 그림을 모두 살폈다.
감수성이 풍부하기 때문인지 때때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창작자인 그녀가 그만큼 이입을 많이 했다면 옷으로 만들었을 때의 디자인도 자동으로 떠올랐을 것이었다.
“월간 시리즈 프로젝트로 아주 적절해요. 어떤 그림들은 투박하기도 하고 너무 어둡기도 했지만…… 세상엔 투박한 사람도, 어두운 사람도 있는 법이죠. <그림의 힘>이라는 책이 왜 잘 팔렸는지 알겠네요.”
발레티나의 말대로 이 그림들은 전시회에서 각각 하나의 색채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그럼 함께해주시는 건가요?”
“네. 제가 그 책을 봤다면 오히려 먼저 제안했을 것 같은데요?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고 있어요! 아예 이번 시즌 특별 상품으로 선정해도 반응이 매우 좋을 것 같고요.”
뜻이 맞은 참에 바로 디자인 일정을 잡았다.
발렌티나는 서울 패션위크가 끝나면 바로 이번 프로젝트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
발렌티나는 서울 패션위크를 끝낸 뒤 귀국 일정을 미루고 YJ의 작업실로 왔다.
나는 그녀가 패션위크를 진행하는 동안 옷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옷감을 포함한 기본적인 장비들을 구입해 놓았다.
발렌티나는 서울 패션위크로 인해 한국에서 꽤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인터뷰나 방송 출연 같은 섭외들을 모두 고사했다.
그녀가 일명 ‘치유 패션’에 얼마나 진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300벌에 대한 디자인을 모두 달리 구성해야 했다.
바로 다음 월간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조급하긴 했어도 확실히 할 필요도 있었다.
단순히 일반 티셔츠에 그림을 프린팅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패션으로 재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나와 발렌티나는 그 그림의 감성을 살릴 수 있는 선에서 뭐든 제한 없이 시도했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학생과 어른 모두 입을 수 있는 캐주얼 복으로 디자인하기.
그리고 일반 기성복처럼 활동성을 극대화하기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상은 부드러운 파스텔톤으로 채택되었다.
이벤트성 상품에 그치지 않도록 실루엣도 편안하게 디자인했다.
며칠 뒤 모든 디자인이 마무리되었다.
발렌티나는 평소 주문을 맡기던 공장으로 디자인 도안을 모두 전송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네, 그러게요. 정말 고생 많았네요.”
“아니라고는 말씀 안 하시는군요.”
나의 농담에 긴장이 풀린 발렌티나가 큰 소리로 웃었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작품성은 놓칠 수 없어 예민한 시간을 보내온 게 느껴졌다.
“원래 뭔가를 배운다는 게 힘든 일이긴 하잖아요? 작업하는 동안 배운 게 많거든요.”
“그런가요?”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로서 매월 이런 협업을 해왔을 발렌티나였다.
“네. 저는 항상 뭐가 더 미학적인가, 뭐가 더 예술적인가 하는 고민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어요. 지난번 뉴욕 패션위크 때 윤 화가님과 함께 작업했을 땐 사람들의 표현 욕구를 어떻게 하면 더 적극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를 배웠죠.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 느낀 게 더 큰 것 같아요.”
작업 중 발렌티나가 가장 많이 자문했던 질문은 ‘이 옷이 과연 위안이 되는가?’였다.
모든 디자인마다 내게 검토를 받으면서 위안이 되는지를 물어왔다.
“예술적 권위를 쌓는 일과는 거리가 먼 작업이었지만, 예술의 본질과는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요. YJ에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미술치료를 하신다면 그걸 제가 후원하고 싶을 정도예요.”
발렌티나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미술치료에 관해 어떤 이벤트를 추진할 수 있을지는 당장 생각해본 게 없었다.
대신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더 확실한 지지를 받아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옷들은 얼마에 팔릴 것 같으세요?”
“글쎄요. 가격 선정은 따로 팀이 있는데. 근데 평소보다 투입 비용이 적어서 싼 편이기는 할 거예요. 예술가 섭외비도 많이 절약이 됐고 원단도 보통보다 조금 들어갔거든요. 완전히 캐주얼이라서.”
그래 봐야 비쌀 것이었다.
홈페이지에서 보니 도나텔라의 이름값이 있어서 벌마다 몇만 원씩 했다.
“옷 판매 저작권 수익은 모두 학생들의 몫이에요. 저는 얻는 게 없죠. 발렌티나 씨도 얻는 거 없는 장사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네……? 하하하하!”
발렌티나는 나의 제안이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가격을 최저가로 낮춰달라는 말씀이신 거잖아요? 저도 이 옷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입기를 바라요. 이대로 가다간 학생들이 사기는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출품됐겠죠.”
기업가 입장에서는 어려운 부탁이었을 텐데도 그녀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그리고 다음에 다른 미술치료 프로젝트 계획이 생기면 꼭 말씀해주세요. 무조건 후원할 테니까요. 이 힐링 전시회는 매년 하실 거죠?”
“네. 매년 입학식을 이런 식으로 진행할 것 같아요.”
“그럼 매년 도나텔라에서 옷을 만들게 해주세요. 어때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나와 발렌티나는 그 장기적인 약속을 확정 지은 뒤 악수를 나눴다.
며칠째 옷감만 만졌기 때문인지 발렌티나의 손은 상당히 갈라져 있는 상태였다.
발렌티나는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한다며 당일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달이 바뀌어 도나텔라 코리아에서는 ‘그림의 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따로 쇼핑몰을 열었다.
옷마다 3만 원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옷 이름은 <그림의 힘> 출판 당시 학생들이 적어서 제출한 위로의 한 문장으로 대체되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문장형의 옷 이름, 무엇보다도 싼 가격이 상당히 큰 이슈를 몰았다.
물론 옷은 전부 품절이었다.
학생들 중에는 정작 자신의 그림을 모티프로 한 옷을 구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였다.
곧 도나텔라 측에서 한 벌씩 빼놓은 옷들을 YJ예술고등학교로 보내주긴 했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정식 화보도 공개되었는데, 마치 <그림의 힘> 패션잡지 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모델이 옷을 입고 선 사진 옆에 ‘위로의 한 문장’이 언어별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은 학생들의 원본 작품과 도나텔라의 디자인을 연일 호평했고, 덕분에 <그림의 힘>도 전 세계에 번역되어 팔려나갔다.
힐링 전시회는 4월의 막바지에 끝이 났다.
굉장히 큰 성과를 거둔 프로젝트였다.
함께 작품을 정리하던 민수는 내년엔 더 박터지겠다며 죽는 소리를 냈지만 뿌듯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윤예준 선생님 덕분에 우리 입학하자마자 바로 화가가 된 기분이에요.”
그림 정리를 담당한 학생들이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림을 그리면 누구나 화가라는 말이 혀끝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지 않았다.
학생들도 질리도록 들었을 테니까.
마저 그림을 정리하려는데, 마지막 내 그림 <기다림> 앞에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전시회가 끝났으니 아직 외부인이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 선생님? 그만 그림을 정리해도 될까요?”
내가 묻자 남성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어?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