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그림의 힘 (2)
미리 언질을 주긴 했어도 하루 이틀쯤은 지나야 반박 보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역시 도효정 기자의 행동력은 알아줘야 했다.
FC코리아가 워낙에 허튼짓을 많이 하기 때문에 <미,감> 내엔 FC코리아만의 모니터링 체계가 갖춰져 있다고 했다.
밤늦은 시간에 알림이 울리기에 수상해서 봤더니 내가 예고한 ‘재미있는 기사’였다.
그래서 미리 작성해둔 반박 기사를 10분간 조금 손본 뒤 바로 게시했다고.
블랙퍼플 의상과 독도 프로젝트 덕분에 나의 인기도가 꽤 높은 상태였고, <미,감>의 전문성도 한몫해서 FC코리아의 찌라시에 별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FC코리아에서 재빨리 기사를 내리고 사과문까지 홈페이지 팝업창으로 게시했다.
하지만 그 사과문을 보기는 좀 어려웠다.
아예 FC코리아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조상철 기자의 사설은 그새 캡처가 완료되어 곳곳에 퍼졌다.
대부분이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암적인 격언을 인용하며 나를 의심하기는 했지만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 소동은 YJ 입학식 때까지 계속되었다.
확실히 조상철의 솜씨였다.
처음 <블랑쉬네즈>를 팔 때 그의 기사가 서울옥션 경매의 열기를 확 끌어올려 주었듯 이번 입학식도 마찬가지였다.
그 관심에 힘입어 김선과 함께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홍보도 톡톡히 치렀다.
입학식은 YJ예술종합학교 부지 내에 크게 조성된 중앙 광장에서 진행했다.
300명의 신입생과 시민들, 기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YJ예술학교 제 1회 입학식에 많은 관심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행사는 입학식이니, 신입생들에 대한 환영의 마음으로 자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자회견 아니니까 주의하시고요.”
단상에 올라서서 그렇게 입학식의 첫 운을 떼자 학생들과 기자들이 크게 웃으며 환호했다.
연단 후방엔 김선, 민수, 정 선생, 어머니를 포함한 직원들이 섰다.
보통 입학식이라고 하면 교장과 이사장의 훈화, 신입생 대표의 선서, 신입생과 재학생의 신구 대면식 같은 식순이 보통이던데.
내 경험상 격식은 굳이 차리는 것이 아니라 차려지는 것이었다.
윤예준예술고등학교에서 입학식을 미술치료프로젝트로 진행하면 그게 바로 윤예종만의 격이 되고 식이 되겠지.
나는 간단한 환영 인사만 마친 뒤 물러나 김선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신입생 여러분. 저는 이번 입학식을 진행하게 된 미술치료사 김선입니다.”
김선이 자신의 소개를 마치자 신입생들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나와 김선이 계획한 프로젝트는 ‘한 사람을 위한 그림’이었다.
보통 미술치료 도중 미술치료사가 그림을 그리면, 내담자는 그 실력에 기가 죽어 상담에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김선은 내담자와 그림 실력을 맞춰서 마치 같은 언어로 소통하듯 그림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데에 익숙한 미술치료사였다.
그건 일반 화가로서도 좋은 능력이었다.
치료는 소통이 극대화된 형태였으니.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남을 치료할 수 있으려면 그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한 명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앞으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게 될 거예요.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는 법이잖아요?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는 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의 상처에 공감한 뒤 그를 위로해주세요.”
김선의 소개가 끝나자 학생들은 저마다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엔 이미 미술 도구들을 모두 준비시켜둔 상태였다.
기자들과 방송 보도국 사람들은 교내 곳곳을 돌며 학생들의 작업을 카메라에 담았다.
학생들은 제법 신기한 그림을 그렸다.
원근 표현법이나 사실적인 드로잉에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감성만을 그려내는 데에 몰두한 것이었다.
YJ예술학교가 미술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홍보가 된 보람이 있었다.
학생들도 틀을 깰 준비를 하고 모여든 것이었다.
이젠 나도 그려볼 차례였다.
기자와 방송국 사람들 때문에 학생들의 신경이 거슬릴 테니 조금 주의를 모아줄 필요도 있고 말이다.
내가 빈 교실에 캔버스를 펴고 앉자 기자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벽을 등지고 그리려고 했건만, FC코리아 찌라시 건으로 취재할 것도 있을 테니 캔버스가 잘 보이도록 앉았다.
‘뭐가 좋을까……’
두 달 전 김선이 면접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자신은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치료해왔다는 소회였다.
아이다의 AI의 경우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신이 감상하는 건 완전한 독백에 불과하겠지만 인간의 그림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그림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듯, 치료 또한 가능한 것이었다.
나를 위해 그리는 그림.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바로 구상이 하나 떠올랐다.
손 하나를 크게 스케치한 뒤 채색을 시작했다.
그림 전체적으로 옛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처리했다.
빛을 어둠 속에 잘 녹여내는 게 관건이었다.
언제나 내겐 그림뿐이었다.
병 앞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어도 계속 빈손으로 붓을 잡을 수 있게 될 날만을 기다렸다.
그리지 못해 애가 탈 때마다 내 오른손만을 내려다보았다
내 원망과 희망을 동시에 받은 게 바로 그 오른손이었다.
아직도 마네였던 시절의 내 오른손 손바닥 주름 모양을 정확히 기억했다.
전체적으로 흐리지만, 손바닥의 주름만큼은 완전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말이다.
그렇게 그림을 완성시켰다.
여태까지는 그 병든 몸으로부터 드디어 탈출했다는 안도감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하지만 그 당시의 좌절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건지 그 그림은 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현생의 마네가 전생의 마네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실력인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이젤에 <기다림>이라는 제목을 적어두고 감상자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학생들의 그림에 도움을 줄 생각으로 교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단순히 친구의 초상화를 그린 학생도 있었고, 자신만이 아는 등굣길 등을 통해 개인적인 소재를 활용해 분위기를 내는 학생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가는 건 시소를 그리는 학생이었다.
시소였는데, 각각 몸집이 작은 아이와 큰 아이가 타고 있음에도 시소는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이 그림은 뭘 그리고 있는 거예요?”
“아. 저랑 제 친구예요.”
그림 속 몸집이 작은 아이가 학생, 큰 아이가 친구였다.
너무 무거웠던 친구에게는 시소를 함께 탈 친구가 없었는데, 학생이 먼저 다가가 함께 시소를 탔다. 두 아이의 몸집 차이는 아무리 바짝 다가가 앉아도 수평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근데 의외로 탈 만하더라구요. 나중에 그 친구한테 듣기로는 자기 엉덩이가 바닥에 완전히 닿기 전에 재빨리 바닥을 힘껏 차 올렸다고. 저랑 계속 놀고 싶어서 티 안 나게 조절하느라 무던히도 애썼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계기로 지금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친구는 다음 날 다리가 아파 고생을 해야 했지만,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했다고 한다.
어깨높이를 나란히 할 친구를 만들기 위해 쏟았을 노력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그림에서는 두 친구 모두 다리를 편안히 모으고 있었다.
그 동화 같은 분위기가 따뜻한 감상을 주었지만, 설명을 들어야만 친구의 노력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환상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긴 한데, 반대로 너무 무난하기도 해요. 보통의 학교 같았으면 높은 점수를 줬겠지만, 이곳에서는 점수를 주지 않거든요. 조금 더 과감해져 보는 건 어때요? 이렇게 멋진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라면 꼭 단서가 있어야 해요.”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
어느새 따라온 기자들이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학생은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다시 붓을 들었다.
어떻게 발전시킬지 궁금했지만 혼자 몰두할 시간을 주기로 하고 교실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곧 입학식이 끝났다.
다른 직원들도 정리를 마친 뒤 그림을 모아둔 보관고로 모여들었다.
나는 가장 먼저 시소를 그린 학생의 그림을 찾았다.
작품명은 <시소>였다.
“음.”
내가 짧게 감탄하자 민수가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분위기도 여전했고, 아이들의 화사한 표정도 똑같았다.
바뀐 곳은 딱 한 군데뿐.
몸집이 큰 아이의 신발에만 흙이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뭘까요? 반대편 아이 신발은 엄청 깨끗한데. 그리다 시간이 부족했나?”
민수가 중얼거리기에 변호해주었다.
“시간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이 아이 신발만 바닥에 닿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민수는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더니 뭔가를 깨달은 듯 소리쳤다.
“와……! 뽑을 때 그림 실력도 보기는 했는데, 이 정도로 잘 그릴 줄은 몰랐네요.”
“맞아요. 좀 놀랐어요.”
민수의 감탄에 동의한 김선이 학생들의 그림을 하나씩 확인하며 장점 찾기에 매진했다.
예술고등학교의 미래가 기대가 될 정도였다.
그때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아, 네네. 바꿔드릴게요.”
어머니는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매니저 역할은 어머니가 해주고 있었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도서출판마루 편집실입니다. 방송 보고 책 출판을 제안하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는 오늘 YJ예술고등학교 입학식 현장 생방송 영상에서 내가 <시소>를 그린 화가에게 조언을 해주는 장면을 보고 단행본 편찬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 프로젝트도 너무 감명 깊었는데 윤예준 화가님의 짧은 조언도 울림이 상당하더라구요. 그래서 관련된 내용으로 책을 낼 생각이 없으신지 여쭙고 싶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학생들 모두의 그림을 모아다가 그림책을 출판할 생각이었다.
슬슬 출판사를 알아보려던 차에 마침 잘된 일이었다.
“대신 책 내용 기획은 저희가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네. 물론이죠.
그래도 지속적으로 출판사와 연락을 취하며 북디자인을 구체화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 과정은 김선과 어머니가 지속적으로 관리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이번 프로젝트는 <그림의 힘>이라는 책으로 출판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울림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첫 출발부터 순조롭네요.”
민수가 자찬의 박수를 유도하자 어머니와 김선도 웃으며 호응해주었다.
가장 중요한 신입생과 직원 선발을 마쳤으니 1년간은 큰일 없이 잘 진행될 것이었다.
그것으로 FC코리아와의 다툼이 완전히 끝났다.
뉴스로 보도된 후 올라간 전체영상에는 FC코리아와 조상철을 손가락질하는 댓글이 한가득 달렸다. 조작 의심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지 굉장히 좋은 구도로 촬영된 영상이었다.
-지난번에 윤예준 사기꾼이라고 하던 분들 다 어디 숨으심? ㅋㅋㅋ 고소 각이다.
-상철아~ 살아있냐?
-근데 그림 개 잘 그리네. 한 100년은 고인 솜씨 같다.
일찍이 FC코리아에서는 담당 기자와의 면담 끝에 징계 처분했다고만 발표했다.
들려오는 말로는 해고된 것 같다는데……
그의 생계에 큰 문제가 생길 수는 있어도 과한 조치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가 쓴 기사들 중 아직 허위로 밝혀지지 않은 가짜 뉴스가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었으니까.
학교는 예상대로 잘 운영되었고, 나는 학생들의 그림이 마르는 즉시 ‘작은 전시회’를 준비했다.
아니, 작품이 300점이나 되니 오히려 대형 전시회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었다.
그때 아이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번에 아이필에 투자를 하고 감사 전화를 받은 뒤 두 번째 통화였다.
“연락하기가 힘드네요. 어플리케이션 일로 많이 바쁘신가 보죠?”
-아니에요. 별로 안 바빠요. 그냥 눈코 뜰 새 없는 정도? 저보다는 윤예준 화가님이 더 바쁘시겠던데요.
“전 눈코 뜰 새는 있어요. 하하하. ……그나저나 무슨 일이세요?”
아이다는 뭔가 좋은 소식이 있는지 자꾸 뜸을 들였다.
-그냥. YJ회계사분한테는 계속 개발 상황을 브리핑하기는 했는데 좀 중차대한 것들은 윤 화가님한테도 전달을 직접 해줘야 할 것 같아서요. 이번에 아이필 개발 끝났거든요.
반년이 조금 덜 된 시간이었다.
빠른 편이었지만, 이미 AI가 다 개발된 상태에서 응용만 바꾸면 되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 그래요? 축하해요! 역시 일류 개발자시네요.”
아이다는 이 모든 투자가 다 내 덕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이다의 어플리케이션은 미술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반대로 미술이 대중화되면 될수록 사용량도 많아질 것이었다.
현재 미국에서 스털링과 함께 짓고 있는 예술밸리에 아이다의 AI가 있다면 훨씬 사조 수립을 앞당길 수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YJ예술밸리 만들고 있는 거 아시죠?”
-당연하죠.
“거기에 보다 전문화된 아이필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나중에 기회 되면 거기서 같이 일해보고 싶은데 혹시 관심 있어요? 아이필 데이터 수집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나의 제안에 아이다는 굉장히 기뻐했다.
어떤 표정으로 웃고 있을지 상상이 될 정도였다.
-전 좋죠! 그 제안한 거 나중에 까먹지나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