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외로운 섬 하나 (6)
윤예준에게 대통령 훈장을 준다는 소식이 전달되어 왔다.
상철은 그 소식을 FC코리아 사무실에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다라는 화가와 예준이 함께 만든 <태극도> 원본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는 기사도 났다.
그 큰 건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은 멀뚱히 눈만 끔뻑이고 있었던 것만 같아 모멸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다른 신문사의 기사로 소식을 접하는 걸 최대의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상철이었다.
“어휴…… 니가 무슨, 뭐, 서재필 선생님이라도 되세요? 욕심부려봤자 니 골치만 아파진다니까?”
종일 죽상으로 있는 상철에게 두식이 타박했다.
모든 소식을 자신이 먼저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분할 수는 있지만, 그 분함을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한 법이었다.
마지막 건수 이후로 여태 특종이랄 것을 잡아본 적이 없는 상철이었다.
문화계에서는 윤예준의 활동이 가장 활발해 그쪽이 노다지였는데.
독도에 다녀온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설마 어린 그림쟁이인 윤예준이 독도 문제에도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상철은 카메라를 챙겨 훈장 수여식이 이루어진다는 청와대로 향했다.
그 자체로는 별 내용 없는 기사가 나오겠지만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충 사진이나 찍어올 생각은 아니었다.
상철은 올해 문화부장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한 시기에 있었다.
혹시 아는가.
대통령이 수여식 도중 방귀라도 뀌어줄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몰라도 일단 그 장소에 가봐야 하는 것이었다.
청와대에 방문해 FC 기자증을 제시한 뒤에야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보도 기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수여가 이루어지는 본관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내빈으로 앉아 있었다.
‘참나. 겁나게 고급스럽구만.’
아직 윤예준도 대통령도 없었지만 마치 궁궐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십수 년간 독도를 못 빼앗아가서 안달이었던 일본에게 크게 한 방 먹였으니 이 정도 유난은 떨어주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들어보니 수여식과 기증식을 동시에 한다던데.
잠시 후 윤예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와대 직원들과 함께 말이다.
순발력 있게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른 기자들이 뒤이어 터뜨리는 플래시는 이후 대통령이 등장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훈장을 전달하고, 기증 증서를 주고받고, 대통령이 감사패까지 전달하면 식은 마무리되었다.
그때까지 사진을 한 수십 장은 찍었는데 별로 비싼 것들도 아니었다.
윤예준이 훈장을 받고 그림을 기증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훨씬 더 좋은 기사가 필요했다.
훨씬 더 자극적인 기사 말이다.
‘뭐 없나……?’
윤예준이 아직 성인이 아니라서 스캔들을 잡기도 까다로웠다.
단순 인성 문제를 잡기엔 이번 독도 프로젝트 때문에 잘 먹히지도 않을 것이었다.
뭐든 미담 기사보다는 험담이 더 자극적인 법이었다.
그리고 그 본인에게 험담할 거리가 없으면 보통 주변 사람들을 조사해보는 게 기본이지.
그런데 이젠 뭐,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라 주변 사람이라곤 부모와 스승밖에 없잖은가.
일섭은 이미 큰 건을 터뜨려 남은 게 없고.
상철은 일단 미국에 특파원으로 가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예, 상철 형님. 왜요.
“야. 너 윤민제라고 아냐? 윤예준 아빠.”
국제전화라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예, 알죠. 잘나가요.
“많이 잘나가? 그림도 그리냐?”
얼마 전에 파리 경매장에서 그림을 팔기도 했고 최근엔 시민 큐레이터로 화제를 모았단다.
요즘도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 같긴 한데, 아직 작품이 공개된 건 없었다.
그리기만 하고 발표는 드물다는 것이었다.
상철은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시민 큐레이터로 유명세를 모은 윤민제는 그림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럼 실제로도 자주 그리겠지.
하지만 정작 발표된 그림은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윤예준도 수상했다.
화단에 등장하자마자 리틀마네로 수많은 관심을 받았다.
100%에 가까운 마네 모작도 해서 거의 세계인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재능이 많은 건 그렇다 쳐도 마네의 그림을 그렇게 완벽하게 복원하는 건 설명이 안 된다고.
역시나 예술적 재능은 설명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고들 떠들었지.
물론 상철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재능 때문에 마네의 그림을 그렇게 잘 흉내 내는 거라면 왜 피카소, 마그리트, 고흐 같은 사람들의 그림은 흉내 내지 않았을까?
‘참나….. 하하하하. 그럼 그렇지.’
바보도 아니고 왜 그동안 그 생각을 못했을까.
마네를 연구하지 않은 이상 그런 그림은 불가능했다.
재능 따위가 아니었다.
마네를 좋아하는 건 윤예준이 아니고 윤민제였던 것이었다.
윤예준이 혼자 한국으로 들어와서 그린 그림도 아이다라는 화가의 기계를 통해서 그린 것이고.
그럼 출국하기 전에 한국에서 미디어아트만 하려고 했던 이유도 납득이 됐다.
그런 건 기술자들에게 오더만 대충 내리면 되는 거 아닌가.
‘딱 걸렸어 윤민제, 이 새끼.’
평소에는 화가로서 관심을 잘 못 받으니까 아들을 이용해서 대중 기만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괘씸할 때가.
서정학처럼 만들어 주지.
***
왕에게 영지라도 하사받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수여식이 끝난 뒤 대통령은 나를 영빈관으로 불렀다.
이 일이 잘되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던 약속을 지켜주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좋은 일을 굉장히 많이 하고 계시더군요! 예술학교를 지으셨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듣기로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고……”
당장 한국에서는 나는 YJ예술학교로 가장 유명하지.
“좋게 봐주시니 영광입니다.”
“이렇게 독대를 요청한 걸 보면 뭔가 부탁이 있으신 모양인데. 예술학교에 관련한 부탁이겠지요? 알아보니 국가 지원이 좀 박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던데요.”
“아, 그건 아닙니다.”
나는 그보다 더 좋은 걸 받을 생각이었다.
“이번에 예술학교에서 함께할 화가들을 구하는 중인데, 이력서를 보니 다들 가난해서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사람이 태반이더라구요. 우리나라가 이미 기술 쪽으로는 우수하잖아요? 그래서 이젠 예술인들 지원도 조금 늘릴 순 없을지 여쭤보고 싶어요.”
이야기를 듣던 대통령이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이번에도 결국 독도를 지켜낸 건 기술도 재력도 아닌 예술이었으니까요. 국가 자체의 브랜드 가치를 올려주는 건 언제나 예술인이죠. 앙뎅팡당(Indépendants) 같은 걸 원하시는 건가요?”
“앙뎅팡당이라뇨?”
대통령은 앙뎅팡당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앙뎅팡당은 1884년에 프랑스에서 조직된 독립예술가협회로, 참가비만 내면 그림을 전시해주는 전시관 문화였다.
그때부터 유럽에 성행했다고.
내가 죽은 뒤부터가 ‘좋은 시절’이었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죽자마자 생기다니….
“결국 예술가에 대한 조직적인 지원을 두고 앙뎅팡당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이미 진행되고 있어요. 지역마다 여러 센터와 연결해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돕고 있죠.”
대통령이 있다면 있는 거겠지만 나로선 들어본 적 없었다.
“네. 그런데 왜 여전히 예술은 비싸다는 인식이 있는 걸까요. 실제로 예술학교에 다닐 때 드는 비용이 더 비싸기도 하잖아요. 집이 잘살아야만 예술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효과가 없었던 것 아닐까요? 지금도 돈 문제로 작품활동을 하지 못한 화가 수십, 수백 명이 YJ로 이력서를 보내오고 있어요.”
들어본 게 없으니 그 사업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정확히 지적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나의 제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해줄 용의가 있어 보였다.
문제의식 정도는 공유가 된 것 같았다.
대통령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인 복지를 조금 더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시켜달라는 말씀이신 것 같네요. 저보다는 예술계에서 종사하는 윤예준 화가님이 실상을 더 잘 알고 계시겠죠. 알겠습니다. 관련 지원사업을 조사해본 뒤 전문가와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저희 아버지도 돈 걱정하느라 오랫동안 그림을 못 그리신 분이에요. 그러다 제가 그림 그려서 판 돈으로 최근에야 여유가 좀 생겼고요. 그래서 다시 그림을 그리시게 되었고, 좋은 기회를 얻어 작품을 팔게 됐어요. 아마 돈이 없었으면 그 작품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걸요?”
마지막 쐐기를 박자 대통령이 동의했다.
“좋네요. 저 혼자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국가기념일 승격처럼 회의 절차를 다 밟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밀어준다고 했으니 아마 조만간 이루어지겠지.
대통령은 생각보다도 더 바쁜 사람이었다.
딱 30분의 독대가 끝난 뒤 다음 일정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영빈관에서 나온 뒤 의전원들에게 다가가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FCK 조상철
지난번에 착한건축 관련해서 저장해뒀다가 일부러 연락처에 남겨둔 번호였다.
굉장히 계산적인 기자이니 도움받을 일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여보세요?”
-조상철 기잡니다, 윤예준 씨. 저 기억하시죠?
기억하다마다.
“당연하죠. 무슨 일이세요?”
-아까 말씀 좀 여쭤보려고 했는데 바로 영빈관으로 가시더라구요. 혹시 이번엔 뭐 좋은 기삿거리 없습니까?
대통령과는 그냥 소소한 대화 정도만 나누고 왔다고 전달했다.
혹시나 미리 소문이 나버려서 법안 추진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됐으니까.
하지만 상철은 별로 아쉬워하는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내 차기작에 대해 묻더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유도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차기작이 언제쯤 나올 것 같으세요? 사람들이 엄청 기다리고 있잖아요. 저도 너무 궁금한데.
“아, 글쎄요. 지금은 YJ학교 일로 빠듯해서. 당장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래요? 음…… 그럼 아버님 돌아오실 때쯤이면 차기작이 나올까요?
거기까지 들었을 때 조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전생에도 기자들은 마음속에 이미 작성된 매력적인 기사가 있으면 항상 이렇게 유도심문 비스무리한 걸 하곤 했다.
혹시나 자신의 기사가 허위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최대한 진위를 티 나지 않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다.
계속 나의 차기작과 아버지의 귀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걸 보면 뻔했다.
내가 계속 아버지의 그림을 내 것처럼 속여서 팔고 있는 줄 아는 것이었다.
“아……”
해명해봤자 먹히지도 않겠지.
일섭 관련 기사도 그렇게 날치기로 내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는 그 기사가 사실이었으니 잘 넘어갔겠지만, 그 성공이 오히려 현재의 상철에게 확신을 주고 있었다.
딱 혼쭐이 난 뒤에나 정신 차릴 타입이었다.
“네. 아마 아빠 귀국하시고 한 한두 달 뒤쯤이면 한 점쯤 낼 수 있지 않을까요? 확실하진 않지만요.”
-그렇군요……!
그럼 그냥 그대로 기사를 쓰고 직접 혼나보면 될 것이다.
그 뒤엔 바뀌겠지.
프랑스에서 직접 그림 그리는 영상도 찍혀 SNS에서 유명했던 적도 있는데.
한국에 있어서 잘 몰랐나?
-알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귀찮게 했네요……아, 그리고. 이번 독도의 날 제정도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 감사드립니다.
“뭘요. 저도 한국인인데요.”
나는 상철과의 통화가 끝난 뒤 바로 <미,감>의 도효정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윤예준 화가님. 무슨 일이세요?
“조만간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터질 텐데, 그거 관련 정정 보도거리 좀 미리 드리려구요.”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이기는 전술을 이번 독도 프로젝트 때 겪어보았다.
상철은 아마 기사를 내는 순간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기사를 올리는 순간 내가 이기게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