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외로운 섬 하나 (5)
나는 관계자와 이야기를 마치고 잠시 독도에 남아 아이다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조금 침통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노력한 자신의 모든 게 부정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모든 걸 일시에 부정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었다.
애초부터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를 세웠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온 모든 시도들이 없는 게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제 AI그림은 이번에 윤예준 화가님의 발목만 붙잡은 것 같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처음부터 화가님이 혼자 구상하고 그렸다면 더 훌륭한 그림이 나왔을 거예요.”
주어진 그림을 통해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조건으로 작용하기는 했다.
“발목 같은 건 붙잡히지 않았어요. 지금 제 성과물이 부족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요.”
“저는 어떤 조건에서도 그릴 수 있어요. 장애 요소 같은 건 없죠.”
기계는 명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번 AI그림의 장점을 몇 가지 짚어줄 순 있지만,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그래도 AI를 통해 그림을 그리려는 아이다의 의도엔 공감했다.
“아까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서 모두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하셨죠?”
“네.”
구상부터 드로잉까지가 모두 그림의 일부였다.
그중 특히 드로잉은 화가가 오랜 시간 쏟아부어야만 얻어낼 수 있는, 화가로서의 얼굴 같은 거였다.
드로잉 개성만 봐도 누가 그린 것인지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런데 그 모든 걸 기계로 대체해버리면 미술의 중요한 요소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술에 금기란 없는 법이었다.
드로잉 실력이 떨어져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화가로서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AI 미술이 다른 미술을 사라지게 할 것도 아니고.
이젠 화가가 장인의 영역에서 조금 내려와야 할 때도 됐다.
물론 아이다의 그 시도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다른 걸 먼저 만들어보시는 건 어때요?”
“다른 거라뇨?”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AI도 좋지만 조금 더 AI다운 방법으로 기여할 수 있지 않겠어요? 어쨌든 아이다 씨도 AI가 창작 도구에 불과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시는 거잖아요.”
AI 개발에 성공해 미술계로 진입한 창작 계층이 많아지면 그만큼 다양한 그림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아이다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였다.
미술계의 다양화.
내 이야기를 들은 아이다는 고민에 빠졌다.
AI로서 미술에 기여할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AI의 최고 장점이 뭐죠?”
내가 묻자 아이다는 즉답했다.
“분석 능력이죠.”
아이다는 AI가 인간에 대해 가지는 가장 극명한 차이점은 입력과 출력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는 점이라고 했다.
인간은 직접 그리면서도 계속 창작 능력이 성장했다.
굳이 다른 명작들을 붙잡고 공부하는 것만이 성장의 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AI는 그렇지 않았다.
AI의 창작은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풍경을 그림으로 재구성해 출력할 뿐이었으니까.
학습 대상으로 할 만한 완성 작품이 없으면 절대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은 뭘까요?”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행됐을 때 나와 아이다의 머리에서 동시에 한 가지의 답이 떠올랐다.
“AI큐레이터?!”
그랬다.
아이다의 AI는 좋은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석 시스템도 상당히 체계적으로 발전시켜두었을 것이었다.
학습의 대상을 기계에서 사람으로 바꾸기만 하면 될 뿐, 이미 AI큐레이팅에 필요한 모든 기술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는 셈이었다.
“그거라면 확실히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성과도 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작품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대부분이긴 하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도 있고요.”
뭐, 색채 구분의 정도가 어느 정도이고, 그에 따라 시선이 어떻게 이동할 수밖에 없고……식의 큐레이팅이 될 것 같다는 뜻이었다.
그 자체만 놓고 보아도 흥미로우니 성공적일 것이었다.
사용된 소재에 대한 전통적인 의미 같은 작품 외적인 분석은 앱 개발 단계에서 비평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될 테니.
“정말 좋은데요? 아이디어 주셔서 고마워요!”
“아이디어를 제가 줬나요? 같이 동시에 떠올린 것 같은데.”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으로 깨우쳐주셨잖아요.”
같이 고민해보자는 뜻이었는데, 그렇게 느껴준다면야 나야 고마운 일이었다.
“아무튼, 어플리케이션 만드실 거죠?”
“당연히 그래야죠.”
“그럼 앱 이름은 뭘로 하실 거예요?”
아이다는 조금 고민해보더니 바로 지었다.
“감정이 부족하다고 하셨으니 ‘아이필(Ai feel)’이 좋겠네요. 그런데 어플 이름은 벌써 왜요? 다운로드하시게요?”
크게 성공할 것 같은 사업이 있으면 당연히 투자를 해야 하겠지.
***
문체부에서는 예준의 그림대로 도안을 따다가 바로 대량 인쇄를 시행했다.
독도의 날이 코앞이라서 촉박한 것도 있겠지만 마치 일본과의 속도전에 돌입한 듯한 인상이었다.
독도를 떠날 때 관계자는 국민들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뜻은 실제로 독도의 날이 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전까지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승격시키라는 요구는 독도 홍보의 수단처럼만 요구되어 왔다.
빨리 법안을 제정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국가기념일 승격을 수단이 아니라 목표처럼 여겼다.
어쨌든 독도를 확정적인 한국 땅으로 인식시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할 수 없도록 독도의 인지도를 높인 뒤 법안을 체결해야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투 없이 이기는 전략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더니. 정말 그렇네.’
10월 25일, 서울 어디를 가도 <태극도>를 걸어놓지 않은 집이 없었다.
실거주자가 없는 빈집에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부동산업소에서 나서서 깃발을 꽂아두었다.
국민들의 자발 의사에 기대려는 생각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진짜 광복절 같다.”
어머니가 그 추세에 감탄하면서 광복절에 비유했다.
내 기억상으론 광복절에도 이렇게 많은 태극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당장 독도를 빼앗기게 생겼으니 아마 더 많은 관심들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겠지.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이번 홍보의 키포인트였는데 애국심 하나로 해결이 된 것이었다.
감탄할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독도로 가는 항해 일정이 이전의 몇 배는 뛴 것이었다.
SNS에는 이번 블랙퍼플 훈민정음 팬덤 티를 입고 독도를 방문한 수많은 외국인들이 올린 인증샷으로 가득했다.
독도의 날이 한참 지난 뒤까지도 말이다.
독도 관련해서 살 게 <태극도> 깃발뿐이라 팬도 아닌 사람들이 블랙퍼플 팬덤 티를 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값이 오를수록 팬들은 팬덤 티를 더 소중히 여길 뿐, 되파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물이 들어오면 굳이 노 젓지 않아도 배는 알아서 잘 가게 되어 있었다.
이대로만 가도 국가기념일 승격은 가능할 듯했으니까.
하지만 안 저을 이유가 없는 노를 굳이 가만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친김에 기획서를 한 통 더 써서 보냈다.
설마하니 이번 홍보가 소비문화로 자리 잡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 사람들이 살 만한 굿즈를 좀 만들기로 했다.
올을 뒤집으면 독도의 색깔이 바뀌는 태극도 스팽글 쿠션.
그리고 <브리오슈 먹는 브리오슈>의 경험을 살려 만든 마스코트 캐릭터 <도독이> 인형.
사람별그램에 찍어 올리면 좋을 것 같은 태극도 감성 소이캔들까지.
생산하는 족족 외국인들에게 팔려나가 물량이 부족할 정도였다.
-애국마케팅 개지리네. 질리지도 않나? 다행이당.
-이 정도면 그냥 국가에서 기념을 한 거 아님?ㅋㅋㅋ 왜 국가기념일 아닌 척함?
-윤예준이 애국 다 하네.
-블랙퍼플 팬덤 티도 나라에서 팔아줘요ㅜㅜ 대신 귀여운 지지율을 드리겠습니다.
처음엔 일본 측에서 맞대응을 하는 것 같았지만 반발 여론이 거세서 오래가지는 못했다.
누군가 높은 건물을 빌려 일본 집권 여당 당사 건물에 <태극도> 모양 프로젝터를 쏘아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덕분에 그들은 <태극도>를 뒤집어쓴 채 이틀 밤을 보내야 했다.
결국 일본에서 진행하기로 한 일본 무용이나 다케시마 애니메이션 제작 등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곧 모든 국민들이 기뻐할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 총리, ‘현 진행되고 있는 다케시마의 날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 발표]
일본 정부가 대외적인 비난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결국 꼬리를 내린 것이었다.
시기의 문제가 아닌 것을 두고 그런 애매한 발표를 한 걸 보면 나중을 기약하겠다는 뜻 같은데, 성명이 있은 후 한국 정부가 못을 박아버려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한국 정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승격시켜버린 것이었다.
일이 진행되는 동안 조바심을 느낀 국민들이 계속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다.
정부의 의도를 일찍이 눈치챈 헌재에서는 마지막 선고 과정만 특별 과정으로 앞두고 일본의 패배 선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내년부터는 달력에 독도의 날이 표시되게 되었고, 독도는 서울보다도 더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꽤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러 시민단체에서 강연을 부탁하기도 했고, 방송사 인터뷰 일정도 많았다.
“어? 예준아. 정부에서 돈 들어왔다.”
간만에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는데, 아버지에게 통장을 인계받은 어머니가 말했다.
딱 성과가 나자마자 계산을 해주다니.
프로 관리들이라 그런지 일 처리가 빨랐다.
“사업 사례금으로 예산 분배된 게 200억이었대. 거기다가 <태극도> 판 값이 5억이고.”
어머니는 무감정하게 말했다.
살면서 생각도 못해본 큰돈들이라 얼마나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었지.
아무튼 지난번에 만든 한글 디자인 저작권료가 2억 8천만 원이었고, 블랙퍼플 의상 사용료는 4000만 원, 팬덤 티 수익금이 250억이었으니……
총 458억 2천만 원이 통장에 있는 것이었다.
“이 돈으로 뭐 할 거야? YJ에 쓸 거지?”
“아뇨. 어차피 YJ는 길게 할 사업이니까 일단 더 많이 벌어야죠.”
나는 바로 테레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윤 화가님. 테레즈입니다.
“좋은 투자처가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돈도 좀 생겼고.”
-독도 관련해서 바쁘시던데요?
테레즈는 이번 소식을 다 접하고 있었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이제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다들 한국 땅인 건 안다고.
소식을 들었다면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그 <태극도>는 제가 혼자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아이다라는 AI 미술가가 개발한 기계와 함께 그렸죠.”
-오…… 이젠 기계가 창작까지 다 해주는군요. 그거참……
테레즈는 쓰게 감탄했다.
“걱정 마세요. 기계가 지배할 세상 오려면 멀었겠더라구요. 아직 그림은 무리였고, 대신에 AI큐레이팅 어플을 개발하겠다고 했거든요?”
어플의 이름과 아이다에 대해 일러주자 테레즈는 그 이름 앞으로 난 법인을 조사했다.
-네. 있네요. 그런데 아직 어플이 개발되지도 않았는데 투자하기는 좀 위험할 것 같은데요. 확신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아이다의 AI가 그 방면으로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분명한 근거는 없는 확신이었다.
하지만 꼭 아이필은 만들어져야만 하는 어플이었다.
투자할 이유가 벌써 둘이나 되는 것이었다.
“기술 발달이 굉장히 빠르잖아요? 아마 몇 개월 안에 급격히 성장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여태 제 선택이 틀렸던 적이 없는데, 이 정도면 투자에 재능 있는 거 아닌가요?”
-그야 그렇죠.
테레즈는 계속 아이다의 법인을 검토해보더니 말했다.
-음…… 확실히 전도유망한 곳이긴 한가 보네요.
“왜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삼송디스플레이’ 측에서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쪽에서 선수 치기 전에 빨리 투자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