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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제일 쉬움-129화 (129/241)

129화. 외로운 섬 하나 (4)

형편없는 그림이었다.

기계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 기대했던 보람은 전혀 없었다.

물론 놀라운 구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우선 보통의 프린팅 그림처럼 잉크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었다.

프린터기 안에 든 붓이 이동하며 물감을 묻혀 그린 것이었다.

기법적으로는 인간을 완전히 모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둘째로 독도에 대한 나름의 변형을 시도했고, 성공했다는 점이었다.

그대로만 그리면 사진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변형하면 독도 그림이 아니게 됐다.

그 변형의 적정선을 파악해 그리는 게 그림의 기본이면서도 인간만의 재능이었다.

적정선이란 기준이 그리 엄밀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계의 암석 질감 표현도 제법 인간이 그린 그림 같았다.

특히 선착장의 사람들을 생략하고 독도 한편을 가리고 있는 의용수비대 건물은 구도에 맞게 변형시켜놓았다.

“어때요?”

아이다가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솔직하게 감탄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다는 기뻐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죠? 아직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어요! 이 시스템을 발전시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앱을 만드는 게 제 꿈이죠.”

발전 가능성은 높았지만 적어도 그림의 본질적인 부분은 한 치의 변화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다 씨의 그림은 훌륭하지만 별로 감동적이지는 않아요.”

“감동적이지 않다뇨?”

붓과 잉크로 그린다거나, 변형의 적정선을 파악한다는 건 미술의 부차적인 부분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계로는 그 부차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데에도 벅찬 현실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그림이 ‘누구의’ 그림이냐는 것이었다.

무명 화가의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삶과 예술혼이라는 게 담기는 법이었다.

하지만 아이다의 독도 그림은 독도를 그려내기에 수학적 ‘최선’이라는 점만 느껴질 뿐 별로 공감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공감할 대상인 화가가 없으니까.

“저는 감동적인데요……?”

내 말을 듣고 자신의 그림을 유심히 보던 아이다가 조심히 반론했다.

“뭐에 대한 감동인가요. 자신의 기계가 그만큼이나 성장했다는 데에 대한 감동 아닌가요?”

아이다는 훌륭한 CEO이자 개발자였다.

하지만 예술관으로는 아마추어만도 못했다.

자신의 감정에도 집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표현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듣고 보니까 그런 것도 같네요.”

인정이 빠른 걸 보니 함께하지 못할 바는 없는 듯했지만.

“아직 러닝 초기 단계에 있어서 그래요! 계속 학습시키다 보면 그런 부분까지 완전히 보완이 되겠죠.”

“아마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네? 왜요?”

감정은 풍경 자체에 티 안 나게 묻어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다들 ‘멋지다’, ‘장엄하다’는 식으로 비슷한 감상을 내놓으니 그 감정이 풍경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감정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었다.

딥러닝 개발 체계로 감정을 습득시키려면 차라리 사람들의 일기장이나 입력시키는 게 나을 것이었다.

물론 그걸 그림 자원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겠느냐만.

“그건 좀 아니죠! 제 AI예술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건가요?”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계신데 왜 굳이 기존의 미술 장르만 모방하려고 하시느냐는 거죠. 기계적인 채로도 좋은 쓰임을 만들 수 있잖아요?”

“기계적이기만 하면 안 돼요! 제 그림은 100% 사람을 위한 그림이 돼야 해요.”

잠시 흥분했던 아이다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말했다.

“그래도 윤 화가님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어쩔 수 없죠. 조금 섭섭하지만 윤 화가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당장 제겐 없으니까요. 제 AI가 완전하지 않은 줄은 알았지만 도움 정도는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니 여태까지 협업해본 예술가들 중에서는 아이다가 가장 어렸다.

“그럼 이건 어때요?”

아이다는 최후통첩을 날리듯 제안했다.

“제 그림에 없는 걸 윤 화가님이 채워주시겠어요? 그러니까 좀 더…… 감정적이게요.”

나는 아이다의 그림을 보며 그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가 처음 AI미술을 한다고 했을 때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상이 하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프린트기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프린트기라도 굉장히 훌륭한 프린트기였다.

내가 처음 상상했던 대로 활용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좋네요. 한번 해보죠.”

천재 화가이자 AI미술의 대가인 그녀에게 AI미술에 대해 가르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이번 작품으로 세계인을 설득해야 하는데.

아이다 하나도 설득 못시켜서야 되겠는가.

***

예준은 챙겨온 미술도구들을 펼쳐 앉아 아이다의 그림을 보았다.

AI는 바다를 따로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독도를 파랗게 그려 독도 자체에서 바다를 연상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다는 그 그림이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게 감정이든 뭐든, 뭔가가 부족해 보이지는 않았다.

러닝 초기 단계라고는 했지만, 이미 세계 어느 미술가보다도 더 많은 그림을 보고 그렸을 AI였다.

그것도 훨씬 자세히, 효율적으로 말이다.

인간의 두뇌도 결국은 고도로 설계된 이진법의 기계에 불과했다.

지금 AI가 낸 결과물이 화가로서는 그야말로 최선이라는 뜻이었다.

“아이다 씨. 딱 이 크기의 캔버스 있어요?”

예준의 물음에 아이다는 바로 프린터에서 캔버스 한 장을 꺼내주었다.

예준의 시도가 실패하면 AI의 성능을 증명하는 게 됐다.

반대로 성공한다면…… 감정적인 면에서 아직 미진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아이다도 알았기에 큰 문제는 안 됐다.

오히려 예준에게 관련 도움을 받아볼 수 있을 테니 나쁠 것도 없었다.

예준은 빨간색 물감을 사용해 AI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그냥 그리는 것보다 모방이 더 어려운 일이었는데, 예준의 그림은 굉장히 빨리 완성됐다.

“와. 실력이 엄청 좋으시네요. 이렇게나 똑같다니…… 그런데 좌우 대칭이 돼 있네요?”

“네. 곧 완성이에요.”

예준은 AI의 그림을 뒤집더니 그 위에 자신의 그림을 얹었다.

그러자 두 배 크기의 캔버스가 이젤 위에 세워졌다.

그림은 완성된 채로 말이다.

“이래서 대칭이 되게 그린 거였군요!”

예준은 두 그림이 맞물린 캔버스 틈에 파란 물감을 활용해 수면을 표현했다.

그랬더니 AI의 그림은 예준의 붉은 독도 아래 비친 상처럼 보였다.

“완성됐습니다.”

예준은 아이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이다는 캔버스 앞으로 가서 그림을 자세히 감상했다.

AI의 그림의 기법을 따르면서도 아예 그걸 잡아먹어 버렸다.

빨강은 열정의 색깔이었다.

붉게 표현하니 독도에서 계속되어온 분쟁뿐만 아니라 삶의 간절함마저 느껴졌다.

대신 수면 아래에 있는 푸른 독도에서는 그 열정이 서늘하게 내려앉은 듯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원래 그림은 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림의 인상이 확 변했다.

예준이 AI 그림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같은 소재라도 어디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는 건 아이다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런 그림들까지 다 학습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던가.

“이 그림은 뭔가요?”

아이다의 질문에 예준은 의외의 대답을 해주었다.

“한국 태극기 아시죠? 태극문양을 형상화한 거예요.”

태극.

태극이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AI의 인상이 바뀔 수 있었던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0과 1처럼, 태극도 음과 양의 배치에 있었다.

그리고 음과 양은 어떤 위계상에 놓여 있는 게 아니었다.

정확히 대응하는 두 축인 것이었다.

하지만 예준은 AI의 그림을 수면 아래 깔아 위상을 낮춰놓았다.

AI가 그린 건 표면적인 상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AI가 표현하려 했던 건 예준의 진짜 독도에 있었다.

아마 AI가 독도에 대해 더 잘 알았다면 푸른색으로만 표현하려 하지 않았겠지.

독도에 정말로 어울리는 색은 예준이 한 것처럼 붉은색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 깨달았을 때 러닝 시스템에 어떤 알고리즘이 부족한 것인지까지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예준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을 추가하면 그 방향으로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예준의 예술적이고 인문학적인 그 안목은 애초에 컴퓨터로 구현할 수가 없는 지식이었다.

“이런 걸 통틀어서 감정이라고 하겠네요.”

감정 없는 그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표현물엔 감정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왔다.

AI가 독도를 이 정도 기법으로 이런 색으로 그렸다면, 그 선택으로부터 이미 감정이 발견되는 것이다.

감정의 미학적 표현은 아까 인정했듯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세요? 제 그림.”

“음……”

보면 볼수록 허탈한 웃음밖엔 안 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솔직히 윤 화가님이 감정이라는 심리적 사건에 대해 엄밀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그림을 보니까 알겠네요. 애초에 예술은 엄밀한 게 아니고, 제가 그냥 엄밀성에 빌어 감정을 너무 편의적으로 다뤄왔다는 걸요.”

아이다는 골치가 아파왔다.

갑자기 불투명해진 AI미술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예준은 동행한 정부 관계자를 불러 그림을 보여줬다.

그녀는 예준의 그림이 태극도를 형상화했다는 걸 바로 알아채고 감탄했다.

“이 그림 제목이 뭡니까?”

“<태극도>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태극(太極)에 ‘섬 도(島)’자 써서요.”

관계자는 예준의 그림을 카메라로 찍었다.

바로 다른 관계자들과 회의를 거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반응만 놓고 봤을 땐 어차피 뭘 하든 추진시켜줄 것 같았다.

“이 그림을 일단 스캔해서 정부 관광앱 독도 배너로 해주세요.”

“좋습니다. 한국 전통 무늬인 태극과 독도가 직관적으로 와닿는 게 홍보물로 아주 딱이네요.”

“깃발로 만들어서 독도 곳곳에 태극기처럼 꽂아두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관계자는 예준의 말을 하나하나 받아적었다.

훌륭한 그림이었으니 독도든 제주도에든 곳곳에 노출시키는 게 좋을 것이었다.

관계자는 아예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배너에 이 그림을 걸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깃발은, 독도에만 있으면 별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 같지 않아서 아예 대량 생산해 보급하기로 했습니다.”

“그건 당연히 전 국민에게 주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다가오는 독도의 날까지 인쇄를 마쳐 보급하면 전 국민이 집에 태극기를 걸듯 이 <태극도>를 걸게 하겠다고 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적극적으로 독도 홍보에 동참하느냐는 것이었다.

보급이야 가능은 하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직접 굳이 창문을 열어 깃발을 걸고 걷는 수고를 해줘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호응해줄지 기대가 되었다.

<태극도> 디자인이라면 그 화제성만으로도 캠페인은 성공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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