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외로운 섬 하나 (2)
“뭐? 정말이야?”
간만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어머니가 외쳤다.
아마도 아버지와의 통화일 것이었다.
“어어, 그래? 알았어. 뭐라고 검색해야 나와?”
어머니는 노트북 앞으로 가 앉아 동영상 사이트에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도 어머니 옆에서 화면을 같이 확인했다.
어머니는 ‘Korean Curator in USA’라고만 검색했다.
단순한 검색어였는데도 여러 동영상에 아버지의 얼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뉴스 채널이었다.
“와. 이거 혹시 그거예요? 시민 큐레이터 한 거?”
내가 묻자 어머니는 통화를 스피커 모드로 바꿔주었다.
-어때? 인기가 꽤 많지?
영상을 틀면 아버지가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 앞에 수십 명씩 둘러앉아 아버지의 설명을 들었다.
“이거 하길 너무 잘한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이야. 책도 내자고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 아직 더 연구해둔 게 없어서 아쉽게 거절해야 했지만. 제갈사월이라는 화가도, 아빠도 동시에 유명해져 버렸다니까.
“진짜 대단한데? 역시 큐레이터 커리어 어디 안 간다니까?”
어머니가 목소리 톤을 높여 칭찬했다.
“그래도 그림 전시를 못한 건 좀 아쉽다. 당신은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잖아?”
-그것도 그렇지.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곧 뉴욕에서 열릴 창고형 전시회에 작품을 내게 됐어. 이번 일이 계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아버지가 큐레이팅을 한 작품의 화가인 ‘제갈사월’이 연결해주었다고 했다.
들어보니 꽤 괜찮은 전시 기획인 것 같았다.
요즘은 꼭 고상 떠는 미술관에서만 명작 전시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처음엔 거기서 불러줬다기에 큐레이터 의뢴 줄 알았다니까? 아무래도 이번 일로 내 그림들도 같이 주목을 받게 된 것 같아.
“축하드려요! 전시회 시작하기 전에는 한 번 들러야겠는데요? 정확한 날짜가 언제인데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크게 만류했다.
-에이, 그럴 거 없어. 한국에서 많이 바쁘잖아? 예술학교 일로 엄청 바쁠 텐데 올 시간이 있겠어? 할로윈 할 때쯤일 것 같긴 한데……
“어차피 거기 아트밸리도 진행 상황 보러 가봐야 해요. 처음부터 왔다 갔다 할 생각이기도 했구요.”
물론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곧 통화를 마치고 나와 어머니는 잠시 정적을 지키고 앉았다.
마치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게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인 것처럼.
“예준이 덕분에 엄마 아빠 다 호강하네.”
“에이. 어떻게 제 덕분이에요? 엄마 아빠가 잘하신 덕분이죠.”
어머니는 을지로에 붕괴위험이 있는 상가 건물을 다시 디자인해 문화 시설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변에 건물이 많아 상당히 위험하고 값도 비싸 굉장히 큰 프로젝트라고 했다.
이제 어머니는 성공적인 건축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아니야. 그래도 예준이 덕분이지. 세상에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예준이처럼 없는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재능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평소 같았으면 달리 생각했겠지만, 이미 수많은 교사 지원서를 보고 온 나였다.
덕분에 그 ‘기회’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동안 어머니가 보내온 암흑기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감사는 받아두기로 했다.
아버지 영상이 끝난 후 바로 다른 채널 뉴스가 자동재생되었다.
한국 뉴스였다.
-지난 2월, 일본이 우리 영토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17년째 되풀이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일본 공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하고 도발 중단을 요구했는데,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앞둔 지금 총리 주도로 규탄 회견이 강행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기자입니다.
어머니가 뉴스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 제주도도 빼앗기는 거 아닌가 몰라?”
“에이, 설마요.”
“앵커 말대로 17년 동안은 다들 에이 설마 했지.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른 것 같아.”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원래 다케시마의 날이라는 걸 주장하는 일본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아 왔다.
하지만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공식 기념일로 선정한 이후로 독도 분쟁이 깊어지기 시작했고, 이번엔 아예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엄청 들고 일어서겠는데요?”
“글쎄. 그럴까?”
“남의 나라 땅을 빼앗으려는 거니까 당연히 그렇겠죠.”
어머니는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국내에서 시위 같은 걸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시위하러 일본까지 가볼 순 있겠지만, 그래 봤자 관광객만 돼주는 꼴이잖아?”
두고 볼 수밖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이 사안은 정부보다는 군중들이 해결하게 될 것 같았다.
10살 남짓 예준으로서도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교육을 받은 기억이 생생했다.
그럼 한국인들에게 그건 상식이라는 뜻이었는데, 상식을 부정당한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
일본 측의 도발에 국민들은 한국도 독도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자고 분노하고 나섰다.
국회에서는 국민들의 반응에 맞춰 국가의 날 제정 안건을 발의시켰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간 어떤 난리가 날지 몰랐다.
국회의사당에서 해당 법안을 두고 긴급회의가 벌어지는 동안 청와대에서도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어차피 국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더라도 대외적으로 중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국무회의의 심의까지 거쳐야 했다.
사안을 빨리빨리 처리하기 위해 동시에 진행하려는 듯했다.
청와대는 출입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광화문에서부터 거리도 너무 멀었다.
그래서 기자들은 대부분 국회의사당 바깥에 진을 치고 있었다.
FC코리아 문화부 기자 상철과 차장 ‘장두식’도 마찬가지였다.
“어, 이거 회의 참 긴데요?”
“그러게 너는 사회부도 아닌 놈이 뭐 한다고 여기까지 쫓아왔냐. 원래 국회의원들 말 존나 많아. 끝나려면 멀었다.”
“그러는 차장님은요?”
두식이야 FC코리아 부서 곳곳을 돌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상철로서는 국회 취재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직 10월인데 밤엔 꽤 추웠다.
“하기야. 그렇게 발 멈출 줄 모르니까 특종도 따내는 거겠지.”
“저도 와볼 만해서 와보는 거예요. 오만 군데 다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고요.”
지금 분위기는 굉장히 험악했다.
한국과 일본 땅이 붙어 있으면 국민들끼리 석전이라도 벌일 판이었다.
넓고 깊은 동해 바다에 감사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특히나 예술가들 중에는 또라이가 많아서 혹시 몰랐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가 모 예술가가 불도저 타고 국회로 돌진할지 말이다.
“이번에 특종 꽤 잡았지?”
“네. 이 정도면 올해 진급하려나 모르겠네요.”
“글쎄다. 특종도 애매한 것들이 많아서. 지난번 이일섭 건이 최고였는데.”
그렇긴 했다.
딱 그런 건 한두 개만 더 했으면 승진이 확정이었을 텐데.
서울옥션을 버린 게 큰 실수였다.
윤예준이 그렇게 갑자기 미국으로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앞으로 이일섭 건 비슷한 거 몇 개 더 잡으면요?”
“그럼 나 밟고 문화부장 가는 거지.”
“어이쿠. 그럼 안 되겠네. 걸음 맞춰 가야지.”
상철이 너스레를 떨자 두식이 실없이 웃었다.
“됐다, 임마! 눈치 안 주니까 제발 좀 밟고 올라가라. 옛다, 여기 정수리.”
“그럼 진짜 갑니다? 나 부장 달면 그때 가서 괜히 속상해하면 안 돼요?”
“그래.”
상철은 휴대폰을 들더니 예술가나 연예인들의 SNS 계정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누가 또 소신 발언이라도 했으면 바로 옮겨다 기사로 써두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너무 특종에만 목매지 마라. 열심히 팩트만 체크하다 보면 진귀한 사실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두식이 충고하자 상철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두식을 가만히 응시했다.
“...... 쫄았네.”
“뭐, 임마?”
“팩트만 찾으면 팩트만 나오죠. 특종을 찾아야 특종이 나오는 거고. 너무 견제가 심하신데?”
두식은 제 이마를 탁 쳤다.
“진짜야. 서두르다 다친다. ……그렇게 사람 말 안 들어먹는 귀 달고 기자는 어떻게 했냐?”
“저 귀 밝습니다.”
“됐다, 됐어. 제발 부장 좀 돼라. 나는 너 같은 부하직원 돼줄 테니까.”
두식은 상철을 따라 다시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
경고는 했지만, 앞으로 상철이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 건 두식도 마찬가지였으니.
***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초를 다루면서도 최대한 신중해지려 노력했다.
어쩌면 일본의 이번 규탄 회견은 많은 게 함의된 수일지도 몰랐다.
잘못 말렸다간 역풍이 강하게 몰아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독도 분쟁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시끄러워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국가 기념일로 동시에 지정해버리면 분쟁만 더 커지겠죠.”
장관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국회는 아무래도 국민적 요구가 있으니 법안을 통과시킬 텐데, 그랬다간 분쟁지역으로 선정돼 독도를 반 토막 내야 할지도 몰랐다.
동해 어민들에게 돌 맞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했다.
“그랬다가 분쟁지역이 되면 어쩌겠습니까? 공식 분쟁이 시작되면 하나하나 따지려 들 텐데, 국가 기념일로 선정된 시기가 일본보다 늦다고 하면 우리가 뭐라고 주장할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그 사실만 놓고 보면 뭔가 한국이 일본의 다케시마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차라리 기념일 맞불을 놓는 게 맞는 일일지도 몰랐다.
“일본 대사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심심한 유감의 말씀을 전한답니다. 당최 뭔 소린지 원.”
잠시 일본 대사 이야기가 나오자 일대가 조용해졌다.
“...... 분쟁이 시작되면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을까요?”
“지금으로서는 일본 쪽 주장이 터무니없어서 별걱정 없지만 저쪽에서도 뭔가 해볼 만하다 싶어서 덤비는 거 아니겠습니까? 국제적인 인지도가 일본과는 승부도 안 되고 어디 로비할지도 모르니. 그 싸움은 피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이 나서서 한마디 했다.
“그럼 우리도 인지도를 좀 올려야죠.”
6.25 이래 70년간 못해온 일이었다.
잠시 서로의 눈빛을 살피던 국무위원들이 반박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야 좋겠지만…… 어떻게요?”
“해외에서 인지도를 얻고 있는 인물들 좀 없겠어요? 그 사람들을 통해 독도 관련 캠페인을 열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 설마……”
듣던 국무위원들이 동시에 외쳤다.
“블랙퍼플?”
“축구선수 권지성?!”
“영화감독 송만대?”
“화가 윤예준!”
동시에는 외쳤지만, 이구동성은 아니었다.
“윤예준, 그분 좋네요. 최근에 엄청 국위 선양도 하고 계시잖아요? 그분이라면 나서주실 거예요.”
윤예준의 이름이 중요하게 거론된 상황에 국무위원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말씀은 분쟁을 준비하자는 겁니까?”
문체부 장관이 물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쟁 없이 이기는 게 진짜 이기는 거죠.”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일본은 기념일 등록을 포기할 것이고, 오히려 우리나라만 독도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등록할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이 목소리를 낮추자 국무위원들은 비밀 이야기를 나눠 듣듯 머리를 모았다.
대통령이 책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무위원들은 그 말을 듣고 조금씩 일본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