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20화 (120/241)

119화. 아트밸리를 향한 첫걸음 (2)

아트밸리에 대한 반대 여론이 끓어오르기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미국 내 영향력 있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힘 써준 것이 틀림없었다.

존이 큰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니, 아마 대부분이 그의 도움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조용해진 틈에 스테이트 하우스를 방문했다.

건축 규제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도 고생 많으셨겠던데요?”

내가 먼저 찰리에게 묻자 찰리는 완전히 질려버렸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 덕분에 살았죠.”

기타 시민단체에서 ‘윤예준 추방 시위’를 벌이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지지 선언을 해주었다.

<화합> 설치 작업을 도왔던 도시부흥시민연대 사람들과 미들타운 시민회, 그리고 RISA대학생들, 불꽃놀이를 없앤 걸로 나를 좋게 보고 있던 환경단체까지.

시위에 직접 맞불을 놓지 않고 여론전을 잘 이끌어 냈다.

“아주 쌤통이죠. 상대를 보면서 덤벼야지. 재선 앞두고 있다고……”

찰리가 말을 하다 말았다.

“재선이요?”

“솔직히 시민단체에서 추방 시위를 벌인 게 누구 때문이겠습니까? 다 해리슨 가문을 비롯한 정치 명문가 때문이죠.”

외국인에 대한 이기심을 통해 시위에서 이기려는 대표적인 세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당은 찰리가 속한 바로 그 당이었다.

그들은 직접 나서서 나를 비호하고 시민단체에게 관용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그 뒤로 시민단체가 얌전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정치인이 그만하란다고 시민단체가 그만할 리가 없죠. 애초에 그런 여론에 불씨를 제공한 것도 해리슨이었고, 갑자기 당론을 통해 중단시킨 것도 해리슨인 거예요. 해리슨가 애호단체나 다름없으니 애초에 시민단체라는 명색도 허위인 거고요.”

“재선을 위해서 그런 일을 벌였다면서 왜 얼마 못 가서 중단한 거죠?”

“으음……”

찰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속삭였다.

“존 선생님께서 나선 것 같더군요.”

찰리에 의하면 존은 굉장히 유명한 자산가인데 정치인들에겐 스폰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폰을 하면 그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암묵적 정경 유착 시대에선 찾아보기 힘든 청렴하신 분입니다.”

존에 대한 찰리의 평가였다.

대신 경제계에서 누가 어떤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는지는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했다.

스스로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어느 정도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제계 잠룡 취급을 받기는 했지만, 존이 실제로 움직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큰 도움을 받았네.’

미들타운에서의 나는 평화와 화합의 대표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내가 진행하는 사업에서 시민 간 다툼이 일어난다면 아트밸리에 평생 갈 오점이 되고야 말았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주지사님도 굉장히 많이 알고 계시네요. 존 선생님이 나섰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뭐. 이 자리에 있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되지요.”

찰리는 헛기침을 했다.

그도 부단히 노력한 것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

나는 숙소로 돌아와 비용을 정리해보았다.

1000억 원은 부지 매입에 사용했으니 스털링 의뢰비와 건설비를 마련해야 했다.

우선 테레즈에게 부탁해서 ETF에 있는 돈 280억 원을 모두 빼달라고 했다.

거기다 <발레리나 크로마키>를 판 돈 100억, 패션위크 수익 60억에 남은 경매 수익 중 140억을 더해 600억 원을 마련했다.

600억 원이면 재단 사무소 건물과 미술관 리모델링이 가능할 것이었다.

그 밖에 필요한 돈은 제때제때 벌어 충당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해리슨 때문…… 아니, 덕분이었다.

아트밸리를 반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적을 둬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지령을 내린 시민단체마저도 스스로 배신해버렸으니 누가 해리슨을 지지하겠어요. 오히려 그간의 명성만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인권, 장애인, 환경단체 등에서 윤 화가님을 후원하고 나선 거지요.

“그 사람들 덕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하네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끝에 일이 이렇게 결정지어진 거라고 보는 게 옳죠. 해리슨 그 작자들이 어디 윤 화가님을 도우려고 도운 거겠어요?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내 돈을 쓰듯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는 없으니 이 분야 전문가인 테레즈에게 조언을 얻기로 했다.

-어떤 의혹도 없으려면 후원 계좌를 따로 마련하는 게 좋겠지요.

후원 계좌.

이 사업을 위한 계좌를 따로 개설할 생각까지는 해보았지만, 후원을 받기 위한 계좌를 세울 생각은 한 적 없었다.

설령 떠올렸더라도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후원 계좌가 있으면 후원을 해달라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테레즈는 후원 계좌의 역할은 모금용이라기보다는 운영용으로 사용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했다.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따로 개설했다고 홍보하면 오히려 호응이 좋을 것 같은데요? 말씀만 해주시면 그것도 제가 직접 관리해드릴 수 있습니다.

“음. 그렇겠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감사받기 민망할 만큼 작은 도움이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사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가 조심히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할 거야?”

한국으로 돌아가느냐는 것이었다.

제임스 스털링과 아트밸리 계약을 맺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현재에게 연락이 왔었다.

윤예준예술종합학교 건설이 완료되었다고 말이다.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해야 하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돌아가야죠. 아빠는 그 시민 큐레이터 전시회 일정 언제예요?”

“얼마 안 남았어.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공항까지만 바래다주시면 되죠.”

환생한 뒤 비행기도 꽤 타보았다.

티켓 발권부터 자리를 찾는 절차까지 다 아버지가 해줬지만, 어깨너머로 봤을 땐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기차를 타는 것과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아버지의 걱정만 조금 문제될 뿐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재단 설립부터 건축 허가까지 단번에 완료되었다.

시위 때문에 늦어질 뻔했지만, 그동안 찰리가 미뤄둔 일정 없이 착실히 진행한 것이었다.

바로 건축 장비를 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이제 재단 로고만 만들면 된다고 했다.

‘로고라.’

YJ 재단의 아트밸리는 미국을 주름잡는 하나의 브랜드가 될 것이었다.

그러니 간단한 디자인이면 안 되었다.

독창적이면서도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기억되는 로고여야만 했다.

발리서클의 로고를 기획할 때 해본 일이었다.

찰리는 로고 전문가에게 슬슬 외주를 맡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그 좋은 기회를 남 줄 수는 없었다.

내가 직접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아트밸리에 어울려야 한다는 게 제일 중요한 조건이야.’

예술, 하면 보통 떠올릴 수 있는 것들로 ‘YJ’문구를 디자인하는 게 좋을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예술의 키워드로 떠올렸다.

그렇다면 미술의 키워드는?

‘아무래도…… 붓과 팔레트 같은 미술 도구들이겠지.’

나는 YJ라는 알파벳을 써두고 그것들을 대치할 만한 미술 도구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좋아. 바로 시작해봐야겠어.’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로고로 발전시켰다.

그것들이 이미 미술의, 예술의 심볼로 활용될 만하다고는 하지만 디자인도 적절해야 제대로 된 기능을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로고를 완성하고 있으니 점점 디자인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붓과 팔레트로 시작했지. 지금은 더 많은 장르에 도전해 성공해보았고.’

그렇게 로고를 완성시켜 제임스와 현재에게 보냈다.

재단 본사와 윤예준예술학교 건물에 거대하게 걸어둘 예정이었다.

“오! 예술학교 로고 그리는 거야?”

숙소 거실에서 노트북을 만지고 있던 아버지가 다가왔다.

“네. 어떻게 보이세요?”

“으음.”

아버지는 턱을 매만지며 내 그림을 보았다.

“Y는 팔레트를 들어 올린 손, J는 캔버스 위를 지나는 붓으로 활용했네. 엄청 절묘한데?”

“그거 다행이네요.”

내 의도가 잘 반영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착공이 시작된 걸 본 뒤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미리 아버지가 나의 출국 사실을 알렸던 것인지 생일파티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배웅을 나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출국이 아니라 입국인데도 말이다.

“건물 제대로 짓는지는 제가 잘 감시하도록 할게요.”

발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엔 드림캐쳐 스튜디오 직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드림캐쳐 직원이 아니라 RISA대학 관계자로서 배웅을 나온 것 같았다.

“학장님께서 YJ아트밸리를 엄청 기대하고 계세요. 예술학교로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근처에 아트밸리가 들어온다고 하니 더 높은 성장 가능성을 얻게 된 셈이거든요.”

“RISA대학이 있어서 부지 선정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어요.”

노라도 존처럼 침착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옆에 선 무함마드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정말 가는 거야……?”

“아예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트밸리가 다 지어질 때쯤엔 올 거예요. 그땐 제가 구내식당 쏠게요.”

“게임기는 챙겼지? 가는 길 지루하지 않게.”

나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게임기를 꺼내 무함마드에게 보였다.

무함마드는 그제야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는 수하물로 맡기지 않을 손가방에 해열제와 진통제, 심장약과 산소 스프레이 등을 챙겨 넣어 주었다.

비행기에서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챙겨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기야 항공사 직원보다는 뭣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직접 챙겨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저 그럼 이제 가볼게요.”

“조심히 가고. 엄마가 시간 맞춰서 공항에 마중 나와 있을 거야.”

“네. 안 계시면 전화해볼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게 탑승 수속을 밟았다.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게임기는 수하물 가방에 넣어 그냥 맡겨버렸다.

대신 태블릿을 꺼냈다.

게임할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게 나았다.

미국에서 한국까지는 14시간이 걸렸다.

시차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도로 낮이었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환생한 뒤 보낸 시간의 절반 가까이 외국에서 지냈는데도 내게 고향은 한국 같았다.

프랑스는 140년 동안 많이 변했지만, 한국은 윤예준이 현재를 보낸 그 시간대에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일 터였다.

입국대를 지나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보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예준아!”

가까운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입국대 바로 옆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어? 엄마!”

“비행기 들어온다길래 나와 있었지! 미국에서 정말 고생 많이 했지?”

어머니는 나를 꽉 껴안았다.

그렇게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껴안고 있었다.

한국에서 계속 혼자 지냈으니 가족이 매우 그리웠을 것이었다.

공항을 빠져나가며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어머니는 특히 아버지가 작품을 비싸게 팔았다는 데에 가장 기뻐했다.

“예준이랑 너희 아빠 둘 다 이번에 최고가에 그림을 팔고 온 거네!”

“맞아요.”

내가 마네의 붓 작품을 비싸게 팔았다는 건 아무래도 한국에까지 알려졌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힐끗대는 게 느껴졌다.

‘음?’

그런데 나만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열 명 중 두어 사람쯤은 어머니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엄마도 알아보는 것 같은데요?”

“그래? 하긴. 엄마도 그동안 한국에서 많이 유명해졌거든.”

놀라운 일이었다.

“정말로요? 어떻게요?”

어머니를 스타로 만들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미,감>의 도효정 기자였다.

나도 처음엔 그녀의 덕을 봤는데, 어머니도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그분이 착한건축 갈등 사건 있은 후부터 계속 감각건축을 취재해줬거든. 그런데 이번엔 예술학교프로젝트가 진행되니까 더 기사를 많이 쓸 수 있었지. 미술 전문잡지니까.”

도효정의 물량 공세에 이번 윤예준예술종합학교는 거의 예술적 대안 공동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걸 추진한 나는 물론이고 건축을 진행하는 현재와 어머니의 단독 인터뷰만 해도 열 건이 넘었다.

건축 하나하나, 인테리어 세부사항까지 전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네요.”

“그러니까. 듣기로는 이번에 아예 <미,감> 올해의 기자상 유력 후보가 됐다던데?”

오랜만에 한국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서 나와 현재, 어머니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미,감>에서 새로 개설한 사이트의 사보부터 시작된 취재 자료들이 곳곳의 인터넷 신문사와 블로그를 통해 퍼날라지고 있었다.

가장 많이 조회되는 키워드는 ‘건축 완료’였다.

그래도 기사 사진으로 예술종합학교의 모습을 처음 접할 수는 없지.

집으로 가기 전에 바로 그곳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예술학교에서는 지난번에 현재에게 보냈던 ‘YJ’로고 간판이 설치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도 그 간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 환경 조성은 일섭이 나서서 진행해준다고 했는데, 정원을 관리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했다.

“여기가 종합학교 정문이야.”

어머니가 정문을 지나며 말했다.

근처에 있던 일섭이 나와 어머니를 발견하곤 밝게 웃었다.

“왔구나!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일섭에게 다가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마침 이 근처를 산책하고 있다고 했다.

평소에도 건강 삼아 산책을 즐기는 일섭이었는데, 이렇게 부지에 산책로도 조성되니 아주 편해졌다고 했다.

“이렇게 된 김에 걸으면서 이야기하자꾸나.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려주마.”

우리 셋은 우선 환생관으로 향했다.

환생관을 관리할 메건은 완공된 틈에 잠시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 최초 청소년 복원 체험관 기획도 마무리된 상태였다.

“그분 경험이 정말 풍부하시더구나. 환생관 건물이 다 지어지는 즉시 이 복원체험관뿐만 아니라 지망생들을 위한 전문적인 직업 체험 프로그램까지 진행시키기도 했어.”

메건은 복원계에서 정점에 있던 사람이니 최고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복원가의 하루’라는 기획전도 주기적으로 열면 더 전문적인 교육이 가능할 듯했다.

환생관에서 복원 교육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복원가로서 바로 실무에 투입돼도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시켜야 했다.

그다음은 도약관이었다.

“가장 문제적이고 도전적인 동양화가들 중에서도 교육에 관심이 있는 화가들과 끊임없이 연락 중이다. 그때 함께 이야기 나눴듯 현대 동양화는 토론이 가장 중요한 분야니까 참여하는 선생들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아니냐?”

“맞아요. 어느 한 사람의 가치관만 전달하면 안 되죠.”

도약관 내 사무실로 들어가 여태까지 컨택이 완료된 화가들 명단을 확인했다.

그 옆엔 커리큘럼 기획안들이 쌓여 있었는데, 근처 서양화관과의 교육적 협력도 적극적으로 구상되어 있었다.

“도약관에서 직접 서양화가도 섭외하는 건 어때요? 이렇게 교육 연계로만 진행할 게 아니라요.”

“응?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의 대부분의 미술사적 활동은 서양화라는 테두리 내에서 진행되었다.

동양화단에는 없는 토론의 장이 서양화가들에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서양화가들은 도약관의 동양화가들에게 미술적 토론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해줄 것이었다.

“전통 동양화도 당연히 가르쳐야겠죠. 하지만 이곳 선생님들은 특히나 연구원으로서의 역할도 해낼 수 있어야 해요. 현대 동양화도 다양한 사조 발생의 가능성을 얻으려면 서양화가들과 함께 연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듣던 일섭이 작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화 미술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던 일섭이라면 서양회화를 하는 화가들과도 인연이 충분히 있을 것이었다.

“예준이 네 말이 맞다. 날로 발전하는구나. 오늘부터 바로 서양화가들도 물색을 해보마.”

일섭은 그곳에 있는 지도안 하단에 내 제안을 짧게 메모해두었다.

도약관에서 다시 빠져나와 조금 걷다 보니 예술고등학교가 나왔다.

예술고등학교는 벌써 학생들의 입학 원서도 받은 상태였다.

지원자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선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학기가 시작되어버렸기 때문에 당장 신입생을 받을 상황은 아니라서 아직 여유는 있었다.

“시간이 꽤 남으니까 입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모두 작품 투고를 받았다. 그랬더니 이렇게 많이 보내왔어. 이것들은 오늘 분류할 것들이야.”

금전적으로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학생들의 지원을 모두 받아줄 수는 없었다.

합불합을 나누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작품들을 둘로 분류했다.

옆에서 보던 일섭은 그것들을 받아들며 말했다.

“분류가 놀랍도록 빠르구나! 여기 둔 것들이 합격할 만한 학생들 작품인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이들과 낮은 이들의 작품을 나눠둔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일괄적인 기준을 가지고 학생을 뽑는다면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한다는 예술종합학교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가능성이 낮은 학생들을 뽑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 분류가 가장 어렵네요.”

일섭은 나의 말에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이런 일을 할 때마다 감정을 배제하려고 한단다. 옳지 않다는 걸 느끼기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선생과 호흡이 잘 맞는 학생을 선발한다고 생각하면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

그건 입시를 에둘러 두둔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겠네요.”

“그래?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전통을 깰 수 있는 사람은 그 전통에 완전히 능통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전통에 가장 능통한 사람은 내 휴대폰 연락처에도 한 명 있었다.

***

MMS미술학원 근처 풍경은 여전했다.

아직 학교가 끝났을 시간은 아니라 조금 한산한 것만 빼면 모든 게 똑같았다.

입간판에 있는 나의 <모란> 작품부터 건물 1층에 있는 카페까지 말이다.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니 2년이라는 시간이 하루 이틀 새 지나간 것만 같았다.

조용히 계단을 올라 MMS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작업실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민수가 나를 발견하곤 다급히 뛰쳐나왔다.

“어……? 예준 학생? 아니, 이젠 화가님이시지!”

민수는 와인색 정장에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그림을 조용히 그리는 편인지 앞치마에도 물감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죠. 우리 예준 화가님께서는? 아니,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지 말고 상담실로 들어갈까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상담실이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니 민수도 따라 웃었다.

상담실에서 민수는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학원의 근황을 전했다.

“소식은 많이 들었어요. 예술학교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죠. 굉장히 많은 학생들에게, 그것도 공짜로, 다양한 미술을 가르친다고 하니 굉장히 많은 인기를 끌고 있더군요. 너무 멋지던데요?”

“에이. 아직 시작도 못했는걸요.”

나의 사양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YJ예술종합학교는 분명히 잘될 거예요.”

민수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윤예준종합학교의 이름을 말하며 칭찬했다.

그만이 느끼는 윤예종만의 가능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도효정 기자는 내가 전통을 싫어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기존의 입시미술 전통을 부수는 새로운 미술학교로 거듭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예측은 정확했다.

목표라기에도 사소한, 이 프로젝트의 기본 조건이 바로 전통과의 선긋기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원생 수가 꽤 줄었어요. YJ에서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입시 시스템은 아닐 테니 MMS에 다닐 필요가 없죠. 물론 당장 문 닫을 처지에 놓인 건 아니지만.”

“다닐 필요가 없는 것까지는 아니잖아요? 이곳을 그만둔다고 어느 학원을 다녀야 할지 당장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학원비가 굉장히 비싸니까요.”

민수는 즉답했다.

“저는 미술을 배우는 아이들 집안은 다 어느 정도 벌이가 괜찮은 줄 알았어요. 그 생각은 예준 화가님 아버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작은 불확실성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덜컥 그만둬버릴 정도로 벌이가 녹록지 않은 아이들도 있는 줄은 미처 몰랐죠. 민제 놈…… 아니, 아버님이야 이쪽 일을 안 하시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가장 가까이서 아이들을 만나고 생활한 저는 예상해야 했죠.”

“......”

“그런 걸 생각해보면 제가 별로 좋은 교육자는 아니었던 것 같더라구요.”

입시미술이야 별로 좋은 전통은 아니었지만 유일한 등용문이기에 민수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터였다.

내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아버지가 MMS학원을 처음 떠올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나는 화가로 살아온 전생의 기억이 있으니까 가능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안전한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전생에 마네라는 걸 아버지가 알았으면 입시 학원에 보냈겠는가?

‘반성에 굉장히 적극적이신 분이야.’

말을 마치고 잠시 침묵에 빠진 민수에게 대뜸 물었다.

“혹시 원장선생님이 직접 나서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나서다니, 어디에 나설까요?”

민수는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물었다.

“입시미술 전통 부수기에 말이에요.”

“아, 하하…… 글쎄요. 마음은 굴뚝같지만 저는 이 테두리 밖으로 나가본 적이 별로 없어요. YJ가 훌륭히 잘해 낼 것 같기도 하구요.”

나는 현재 예술고등학교에서 봉착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학교 법인으로 내세운 이상 정해진 인원의 신입생을 받아야 하고, 정원을 웃도는 지원자들을 탈락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입시미술 바깥에 있는 화가들은 생각보다 많아요. 하지만 입시미술은 절대 바깥에서부터는 부서지지 않는 성벽 같은 거잖아요? 이 경우 적임자는 전위화가가 아니에요.”

“차라리 입시미술 1타 강사가 적합하다?”

“네. 게다가 MMS의 선생님들은 입시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꽤 실력 있는 화가이기도 하잖아요? 봉급은 얼마든지 맞춰드릴 테니 윤예종에서 그림도 그리고, 연구도 하고, 학생들도 만나보시는 건 어떠세요?”

민수는 턱을 만지며 곰곰이 생각했다.

입시미술이 입시미술인 데엔 이유가 따로 없었다.

오로지 그게 신입생 선발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시스템적인 고민을 더 해본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 또한 그 방식이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데에만큼은 공감했다.

그러나 민수 정도 되는 강사라면 그때까지만 버텼다가 윤예종의 시스템을 분석한 뒤 다시 입시미술화 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1타강사 노하우는 어디 안 갈 테니까.

머리를 싸매던 민수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어때,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나요?”

“네? 네, 그런 것 같은데…...”

“그럼 됐네요.”

민수는 벌떡 일어나 악수를 권했다.

“제안 정말 감사합니다! 한번 같이 해보죠.”

“하하하!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지는 왜 물어보신 거예요?”

“좋다고 냉큼 가버리면 지조 없어 보이잖아요? 마지막 자존심 지키기였습니다.

나는 웃으며 민수의 손을 잡았다.

“정말 기대되네요. 수락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교원 자격증은 있으시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