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관계자: J.April(제갈사월)
‘제갈사월?’
한국인의 이름인지 한국식 이름도 병기되어 있었다.
그보다 추천 관계자라면 이 일에 민제를 추천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민제는 제갈사월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크리스티 경매전에서 말이다.
제갈사월은 민제의 <사선>을 27억 원을 주고 사간 화가의 이름이었다.
‘내 그림을 정말 좋게 봐주셨나 보네. 이런 데에 추천도 다 해주시고.’
작품을 비싸게 판 감동이 조금 잦아들 무렵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보자 다시 울컥하고 오랜 꿈이 떠올라버렸다.
민제는 욕심이 생기기 전에 메일 창을 완전히 닫고 다른 메일들을 확인했다.
역시 대부분 광고 제안들이었다.
‘아…… 싱숭생숭하구나.’
애써 생각을 떨쳐내 보려 했지만, 시민 큐레이터와 제갈사월의 이름은 계속 민제의 머릿속에 들어찼다.
‘왜 나를 추천했을까? 큐레이터 출신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나?’
다른 의미 없이 단지 그뿐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큐레이터 출신이라는 것까지 알 만큼의 관심이 느껴져 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는데 너무 오래 감동하고 있으니 자신의 꼴이 도리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성도 이름도 특이하기는 했지만, 동명이인의 관계자가 업무적으로 추천한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빠, 제가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응? 갑자기 왜?”
자신의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예준이 가까이 다가와 섰다.
“아까 그 메일 다시 한번 봐요.”
보여줄 필요도 없는 메일이었지만 감출 필요도 없는 메일이었다.
다시 띄워주려 메일함을 뒤져보았지만 그새 다른 메일들이 새로 수신돼 위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검색 기능을 이용해 겨우겨우 메일을 찾아 예준에게 보여주었다.
“어? 이 작품들……”
“응, 맞아. 유명한 작품들이야. 어떻게 추진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그럼 엄청 좋은 기회잖아요. 신청서 다운로드하셨어요?”
예준은 다운로드 내역을 확인해보았다.
신청서는 내역에 없었다.
당연했다.
민제는 다운로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은 기회이기는 한데, 나는 그림을 그릴 거야. 큐레이터는 많이 해봤으니까.”
“아니죠. 아빠 그림은 특히나 평론가들한테 인기가 많잖아요? 큐레이터도 절반쯤은 평론가인데, 그 이력도 알리고 이번에 실력도 보이면 아빠 작품을 보는 시선이 훨씬 더 세심해질 거 아니에요?”
예준의 말이 맞았다.
이 행사는 지방 교육지원청에서 종종 어르신들 모셔다가 진행하는 ‘치매 방지 미술 평생교육’ 프로그램 같은 게 아니었다.
규모만 해도 굉장했고, 예준이 말한 대로 화가로서의 민제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냥 좀 귀찮기도 하고. 도슨트는 일 년 넘게 쉬어서 이젠 자신 없어.”
“그래요?”
그렇다고 괜히 수긍했다간 예준은 분명 민제를 떠밀 것이었다.
관심을 기울여준 그 마음만 고맙게 받도록 하고, 당장은 화가가 아니라 아버지 역할부터 충실하기로 했다.
“그럼 당분간 쉬실 수 있겠네요. 저도 이번에 건축사만 선정 완료하면 제안 같은 거 받을 필요 없거든요.”
“아, 그럼 건축사를 알아볼까?”
“생각해둔 곳 있어요. 연락만 하면 돼요.”
민제는 잠시 고민했다.
“그냥 아빠 하고 싶은 거 하시란 말이에요. 이 시민 큐레이터 전시회 말이에요. 귀찮다는 건 거짓말이시잖아요?”
민제는 예준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똑똑한 예준은 속이기도 녹록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신청서를 다운로드해 전송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제갈사월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