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허드슨 리버 밸리의 주인
곧 발리는 새로운 로고로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했다는 발리의 연락과 주식을 매입했다는 테레즈의 연락을 거의 동시에 받았다.
이제 발리서클의 성장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이윽고 큰 소포가 하나 숙소로 전달되었다.
발리에게서 온 것이었다.
거기 사전 디자인으로 따로 제작한 축구화 한 켤레가 들어 있었는데, 초대장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편지도 한 장 동봉되어 있었다.
‘편지라면 내게도 익숙한 방식이라 정감이 가네.’
편지엔 아직 매장도 공장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설립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적혀 있었다.
우선 소포에 포함된 축구화는 발리가 직접 착용해보고 편한 디자인을 초기 상품으로 확정한 것이라고 했다.
개발 단계가 마무리되는 즉시 내게 선물로 보냈다고 했다.
축구화 표면엔 발리만의 멋들어진 사인이 기입돼 있었다.
“축구화? 사이즈를 보니까 저 신으라고 주신 것 같아요.”
아버지는 축구화를 만지지도 못한 채 굉장히 기뻐했다.
이어지는 편지 내용에는 세계 3대 로고 디자인 어워드 중의 하나인 ‘Identity Design’이 언급되어 있었다.
-그런 어워드가 있다기에 회사를 즉시 설립하고 로고를 공개했습니다. 설마 했더니 바로 연락이 오더군요. 윤 화가님의 로고가 본상 수상 명단에 올랐답니다!
내가 오른 수상 분야는 ‘브랜딩 크리에이티브 아이덴티티(CI) 분야였다.
아버지의 조사에 의하면 CI는 주로 거대한 기업들이 수백억을 쏟아부어 만든 로고들에 상을 주었다.
첫 작품부터 프로 로고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었다.
-아직 수상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발리서클의 가치가 큰 폭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급히 초기 상품 디자인들도 공개했고, 예약구매도 하고 진행하고 있어요. 예상했던 것의 몇 배는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어요. 윤 화가님 로고 덕분입니다!
어워드 심사가 시작되기 전에 바로 회사를 설립한 발리의 선택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이 성과를 테레즈도 확인하고 있을 것이었다.
발리는 시상식에 자신이 보내준 축구화를 신고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떻게 하면 화제를 모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시상식 갈 일정이 돼?”
나는 발리의 편지에 적힌 일정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로고 디자인 수상보다 패션위크 참가가 먼저였다.
발렌티나의 패션위크는 제작과정이 모두 비공개였다.
오직 나와 협업한다는 사실만 최근에 공개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기대감은 굉장히 큰 상태였고, 내겐 발렌티나가 특별히 지정한 좌석에 대한 초청장이 전달되었다.
패션위크 당일, 나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포토라인에 서야 했다.
HISTORY BUFFET의 영상 연출 담당자로 내 이름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선공개된 패션 필름의 컨셉이나 패션위크에 대한 기대감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가능한 한 친절하게 대답한 뒤 패션위크장 안으로 들어갔다.
관람객석에 앉은 사람들 중에는 패션 잡지 기자도 많았다.
그들은 무대 장치나 분위기에 대해 열심히 메모했다.
그들이라면 이곳에 시도한 모든 것들을 캐치해 줄 것 같았다.
‘기대가 되는군.’
패션위크가 시작되면 40초짜리 영상과 3분짜리 런웨이 무대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독특한 의상들이 선보여졌다.
군복을 컨셉으로 잡은 디자이너는 나폴레옹의 군복을 재구성하거나 중세의 투구를 활용해 캐주얼복을 만들었다.
또 어떤 디자이너는 미래적인 분위기의 과감한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일상복을 만든다는 관점만 가지고는 저런 의상은 불가능해.’
게리의 크리스탈 페어에서 본 귀걸이나 구두가 떠올랐다.
이곳의 패션도 그런 식이었다.
화가들이 종이를 캔버스로 삼았듯, 패션디자이너들은 패션을 캔버스로 삼은 것이었다.
‘패션디자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기분이야.’
발렌티나의 쇼는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치돼 있었다.
기대감을 위해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의 쇼가 마지막에 배치된다고 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성공한 것 같았다.
패션위크장의 불이 모두 꺼졌을 뿐인데도 모두가 숨죽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곧 내가 제작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런웨이 무대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영상에 집중했다.
다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없었다.
‘드레스 전환 효과에도 신경을 썼어.’
모델이 왼쪽 벽에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것과는 반대로 드레스가 조금씩 현대화되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15피트짜리 드레스가 클로즈업되면서 시야가 확 밝아졌고, 그 빛을 받아 런웨이의 조명이 자연스럽게 켜졌다.
무대 한쪽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이 당당하게, 때로는 수줍어하며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후미에 붙어 뒤따라 나오는 모델의 걸음도 자연스러웠다.
내가 조언한 대로 안감 조치를 취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모델들이 대부분 런웨이 위에 올라섰을 때 천장과 무대 아래에 달린 조명이 한 번에 켜졌다. 조명을 받은 드레스들이 화사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특히 천장에 달린 거울 속에서 마치 리시안셔스꽃처럼 빛났다.
모델에 집중하던 사람들이 작게 감탄하며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곧 시작이다.’
15피트짜리 드레스를 입은 마지막 모델은 앞선 모델들보다 조금 더 오래 서 있었다.
흐려질 수도 있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 지나간 모델들과 간격이 충분히 벌어졌다.
그제야 모델이 다시 뒤돌아 걷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거울을 통해 그 늘어진 드레스 자락을 보며 여운을 곱씹었다.
모델은 런웨이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끝에 설치된 가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델이 계단의 정상에 도달하자 바닥에 붙어만 있던 드레스의 아랫단이 관람객들을 향해 폭포수처럼 수직으로 펼쳐졌다.
영상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연출이었다.
“오……”
기자 한 명이 정적을 깨고 감탄했다.
각자 보도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다시 고개를 숙이려던 찰나 모델이 고개를 돌려 관람객들을 마주 보았다. 화려한 드레스 자락에 감춰져 있어 존재를 몰랐던 보석이 조명을 받아 그 존재감을 밝히기 시작했다.
패션위크가 임박했을 때 게리에게 협찬받게 된 윈스턴의 액세서리들이었다.
발렌티나가 무대 뒤편에서 걸어 나와 모델의 드레스를 배경 삼아 등지고 섰다.
그녀가 정중히 인사하자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공적이었다.
발렌티나의 표정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만족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발렌티나가 런웨이 무대 위를 걸어 나가기 시작하자 이번 패션위크에 참여한 다른 디자이너들도 걸어 나와 무대 위에 가로로 섰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 패션위크에도 제 모든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여러분들이 자리를 빛내주시지 않았다면 전부 무용한 일이 됐을 거예요.”
발렌티나는 의례적인 말들을 늘어놓은 후 나의 이름을 직접 거론했다.
“이번에 함께한 윤예준 아티스트는 영상뿐 아니라 무대 기획부터 저의 디자인에까지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좋은 쇼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대 위에 선 발렌티나가 내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일어나 허리 굽혀 인사했다.
[발렌티나X윤예준 뉴욕패션위크, 패션계 극찬 속에서 마무리.]
[화제의 발렌티나 웨딩드레스 20벌 모두 완판!]
[몇백억의 드레스를 구현한 오리지널 드레스를 찾아라! 20벌 영상 속 드레스의 실체는?]
런웨이가 끝나자마자 셀럽들이 앞다퉈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구입해 갔다.
최소 5억이 넘는 드레스들의 상품화 가봉을 문의하는 연락이 줄을 이었다.
발렌티나가 그중에서도 내가 특별히 조언했던 1830년대 웨딩드레스가 가장 비싸게 팔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무려 91억에 팔렸다는 것이었다.
발렌티나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내가 그 드레스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를 언론에 알렸다.
그래서인지 언론에서 갑자기 크로마키 드레스의 원형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집계된 패션위크 총 수익은 300억이었다.
300억의 20%인 60억이 내 몫이었고, 거기에 영상 의뢰비 5000만 원을 더해 모두 발리서클 투자금에 합쳤다.
***
“아, 맞다. 이번에 발렌티나 씨한테 연락이 한 통 왔었어.”
나와 함께 작업실을 정리하던 아버지가 운을 뗐다.
“이번 패션위크 성과가 발렌티나 씨의 역대급 성과였다나 봐. 그만큼 큰 화제를 모으고 있으니까 예준이 너도 관련 작품을 제작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던데?”
패션위크에 대해서는 몇 주간 고민해왔던 문제였다.
그림 한두 점은 바로 뚝딱 그려낼 수 있는 상태일 정도로 나는 고무되어 있었다.
‘지금이라면 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는데?’
팔리기만 하고 쉽게 묻힐 수도 있었던 <예술가들>은 케니 광고의 화제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화합>도 마찬가지로 미들타운 총기 난사 사건의 파급력으로 인해 널리 알려진 면도 있었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작품을 공개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는 딱 지금이었다.
“그래야겠네요. 좋은 전시관 없을까요?”
“전시관? 경매장이 아니고?”
아버지가 되물었다.
“돈을 벌기에는 경매장이 좋기는 하겠지만 웬만하면 작품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경매장보다는 미술 전시관이 낫지 않나요? 또 영상 작품을 할 생각이 아닌 이상 말이에요.”
물론 돈도 급한 상태였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차이가 나 봐야 몇 푼이나 나겠는가.
“파급력으로만 보면 미디어 광고만 한 게 하나 있기는 하지……”
“뭔데요?”
아버지는 컴퓨터를 켜면서 말했다.
“NFT라는 판매 방식이 있어. 팔기는 경매처럼 팔리는데, 작품은 만천하에 공개되는 기가 막힌 방식이지.”
NFT가 아직 활성화되기 전인 큐레이터 시절부터 괴담처럼 떠돌았던 방식이 현재는 일상화되었다고 했다.
‘경매장에서처럼 경쟁적으로 사가는데 만천하에 공개된다고?’
그렇다면 그런 걸 굳이 왜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아버지는 NFT 작품들의 예시를 하나씩 보여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분명 누군가 혼신의 힘을 쏟은 작품이겠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엔 그냥 손장난처럼도 보였기 때문이다.
“정해진 형식 같은 건 없어. 그냥 네가 원하는 작품을 그려서 이곳에 올리면 돼. 그럼 사람들이 네 그림을 보면서 사는 거야.”
나는 아버지와 함께 NFT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굉장히 단순한 작품들도 많았지만, 본격적인 미디어 예술작품들도 꽤 되었다.
비싼 것들은 수십억씩에도 거래되고 있었다.
“어때? 해볼래?”
결론을 내리자면, 새로운 분야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도전을 언제나 즐길 줄 아는 사람이지.
나는 긴말 없이 타블렛을 연결해 작품을 구상했다.
대충 본 바로는 대부분 극도로 단순한 작품들뿐이었다.
단순하면서도 범용성 있는 디자인.
NFT 미술계에서는 그게 대세라는 거겠지.
‘범용성 있는 디자인이라면 역시 크로마키 드레스가 최고겠어.’
화제를 끌어야 하니 소재만큼은 패션위크와 관련된 녹색 크로마키 드레스로 하기로 했다.
나는 녹색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댄서를 간단히 스케치했다.
그리고 댄서가 입고 있는 옷에 원색의 녹색을 채워 넣었다.
본격적으로 댄서의 세부적인 표정을 그려 넣기 위해 얼굴 부분을 확대했다.
‘잠깐…… 그냥 이대로 업로드할까?’
아직은 댄서의 자세와 머리카락, 최소한의 표정, 그리고 녹색 드레스만이 표현돼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 있는 방향성만 설정했을 뿐 기술적인 어떤 것도 첨가하지는 않았다.
단순하기로는 손색이 없긴 했다.
“이대로 게시해주세요.”
아버지는 내 그림을 보더니 이미지 파일로 저장했다.
그 뒤 그림 파일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장받는 데에 필요한 블록체인을 등록하고 ‘경매 개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작품명을 등록하라는 안내창이 표시되었다.
‘작품명이라……그리고 보니 드가가 떠오르는군.’
<발레리나 크로마키>로 정하고 경매를 개시시켰다.
이번 패션위크 필름 영상에 등장한 드레스들 중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건 역시 녹색 모델드레스였다.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서 무궁무진하게 변신할 수 있지 않았던가.
플랫폼 분위기만 파악하기 위한 일이니 경매 진행은 하루로만 설정해두었다.
다음 날 다시 인터넷을 켜 경매 상황을 보았다.
플랫폼에 다시 접속해보았는데, 당황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뭐, 뭐야?”
“왜 그래?”
내가 조용히 탄식하자 아버지가 화면 가까이로 다가왔다.
내 NFT에 대한 경매는 한창 현재 진행 중이었다.
화면을 보고 놀란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었다.
“이게 대체 얼마야? 십만, 백만, 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