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승리의 콜라보 (5)
“와. 새로운 보호구에서는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미들타운 대학교 미식축구팀 단원들은 빅토리에서 보내온 보호구를 늘어놓고 한참을 구경했다.
디자인도 멋있고 잘 빠진 게 의욕이 더 불타올랐다.
효과적인 연습을 위해 딱 착용감과 무게만을 구현해둔 연습용 보호구도 있었다.
보호구 아래에 입는 체육복 바지와 니삭스, 신발도 고급스러운 잿빛 색상을 띠었다.
헬멧부터 패드까지 기존의 것과 비슷한 데가 하나도 없었다.
모든 부분에서 월등히 좋아진 것이었다.
“야! 이 정도면 절대 지면 안 되겠다! 그렇지?”
함께 지급받은 응원단 용 정장을 입고 나온 무함마드가 외쳤다.
손에는 빅토리 로고와 미식축구팀의 엠블럼이 동시에 인쇄된 헬멧이 들려 있는 상태였다.
“이기자! 이거 지면 지는 거고, 이기면 우승이야!”
선수단장도 가세해 외쳤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와의 경기를 앞둔 상태였다.
그들은 세계 1위 브랜드인 빅토리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큰 자신감을 얻었다.
빅토리와 미식축구팀이 함께 우승하면 얼마나 큰 화제일지를 생각하면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의욕이 강해진 그들은 훈련을 하루도 쉬지 않았다.
부활동을 쉬고 있던 에이스들 몇몇이 팀에 복귀하기도 했고, 미들타운 출신 실력 있는 미식축구 트레이너도 팀으로 들어와 그들의 연습을 도왔다.
결국 장비로도, 훈련량으로도, 전략 면으로도 우수해진 끝에,
결국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꺾을 수 있었다.
처음엔 계속 비슷한 점수 차로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리고 경기 종료 시점엔 미들타운 대학교가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경기 종료 휘슬이 불렸을 때 조나단을 포함한 빅토리 마케팅팀원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해 함성을 질렀다.
그 모습이 텔레비전에 찍혀 미들타운 대학교와 빅토리의 관계가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일정 상 그 직후 진행된 경기도 미들타운 대학팀이 승승장구했다.
강적을 꺾고 나니 다른 약자들은 기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카드섹션은 갈수록 다양하고 멋진 도안이 선보여졌고, 그에 따라 다른 팀들은 눈에 띄게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미들타운 대학팀이 경기력을 계속 갖춰 나가는 반면, 상대는 점점 시시해졌다.
거기 등장하는 빅토리의 상품들은 경기 즉시 매진되었다.
카드섹션 좌석표를 비싼 값에 사겠다는 사람도 등장했지만 훈련된 응원단들은 티켓을 팔지 않았다.
[세계 최고 스포츠 웨어 브랜드 ‘빅토리’, 그들이 프로팀이 아닌 대학팀을 선택한 이유]
[윤예준, 미들타운 대학교, 빅토리의 3자 시너지 화제. 경기마다 상품 매진 신화 달성!]
[윤예준의 응원법. 전광판보다도 강렬한 그들의 카드섹션 속 비밀은?]
빅토리의 홍보 공세는 실로 엄청났다.
미들타운 대학교 미식축구팀이 총기 난사의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역사를 쓰고 있다는 미담부터 시작해서 예준의 카드섹션 예술에 대한 비평까지.
경기에 동원된 카메라 수도 월드컵 못지 않았다.
프로 선수들보다 미들타운 대학교 선수들 개개인이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정도였다.
[미들타운 대학교, 20년 만에 전국 대학 미식축구 선수권전 ‘The Bear Bowl’ 우승 쟁취!]
마지막 결승전까지 이겼을 땐 경기 종료가 선언되기 전부터 기사가 업로드되었다.
어느새 미들타운 대학팀의 팬이 된 사람들은 선수들만큼이나 기뻐했고, 빅토리 측에서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 계속된 매진들로 인해 예준 분의 광고 수익만 80억 원에 달했다.
광고 성과란 이전 매출과 비교해서 계산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빅토리의 전체 매출은 자연스럽게 추측해볼 수 있었다.
-네, 사실. 처음에 이번 리그는 포기할 생각이었습니다.
방송국 기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쿼터백 선수단장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경기장 내 스크린에 그의 얼굴이 크게 비쳤고, 인터뷰 음성도 관중들에게 분명히 전달되었다.
그는 그들이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어왔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때 윤예준 화가가 저희 앞에 나타났습니다. 우리들의 경기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다고 했고, 멋진 카드섹션까지 제작해줬죠. 짧은 준비 기간에 절망할 때마다 윤예준 화가의 유엔 연설을 보면서 버텼습니다. 전적으로 그의 도움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인터뷰 덕분에 나는 미들타운과 빅토리 양자 모두의 승리를 쟁취해낸 공신이 되었다.
스포츠 경기를 계기로 주목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
모두가 광고 매출에 대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하지만 80억은 미들타운에 아트밸리를 짓기에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그래도 이번 일로 솔드아웃을 보장해주는 아트버타이저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 광고를 정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달받은 새로운 브랜드 광고 제안을 검토했다.
대부분 걸출한 브랜드들뿐이었지만, 딱 한 군데 아직 브랜드 런칭조차 되지 않은 게 있었다.
“데이비스…… 발리? 이 사람 유명한 사람인가요?”
“데이비스 발리? 그 사람 광고 제안도 있었어?”
나의 물음에 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 여기 새로운 브랜드 만들 건데 로고를 제작해달라고 쓰여 있네요.”
“그 사람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축구 스타지, 축구 스타. 대학 시절에 엄청난 팬이었는데……”
아버지는 그 이름을 듣고 문득 추억에 잠겼다.
엄청난 팬이었다는 건 사실인 듯했다.
데이비스 발리에 대한 일화들을 낱낱이 알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 사람 팀에 레프트윙을 담당한 왼발 키커가 부상으로 벤치에서 빠진 적이 있었어. 대체할 선수도 없는 상태라 엄청나게 고전했는데, 오른발잡이인 발리가 왼쪽으로 치고 나가더니 장거리 슛에 성공한 적이 있었거든? 그 공이 아주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고 골대에 딱 들어갔지. 당연히 왼발슛이었고.”
그 일로 어떻게 해낸 것이냐고 묻자 라이트윙 포워드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서 왼발을 쓸 일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피나는 노력을 해두었다고 대답했다.
흥분한 아버지에게서 쏟아져나오는 축구 용어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발생 가능성이 아주 작은 위기를 통제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멋진 일화가 많은 사람이군.’
그 일로 수비부터 공격까지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최강자의 자리에 오른 선수가 되었다.
‘발롱도르’라는 최고 권위 상도 당연히 수상했고, 그라운드 위의 전차라는 수식어로 불린다고 했다.
“40이 가까운 나이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 같더니. 이제야 은퇴하고 사업하려나 보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발리는 30대 중반이었다.
그 정도면 선수로서 롱런한 편에 속했다.
사업이라고 그렇지 않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그 정도 유명세라면 말이다.
“이 제안이 로고 제작인데, 로고 한 번 만들면 오래 쓰나요?”
“당연하지. 그 ‘빅토리’ 로고도 창사부터 여태까지 80년은 넘었을걸? 바꿔도 엄청 미묘하게만 바꾸고 원래 잘 안 바꿔. 나중엔 오히려 바꿔봤자 손해니까.”
그동안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대중예술의 최고 장점은 사람들과의 접근성이었다.
예술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사람들의 인식에 더 깊숙이 잠입할 수 있는 걸 원했다.
‘오랜 시간 바뀌지도 않고, 제품마다 그 로고가 들어간다면……’
그 로고에 나만의 예술성을 시도했을 때 굉장히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심지어 미국 전역에서 생중계되는 경기에서 미들타운 선수들은 부메랑을 닮은 ‘V’자형 빅토리 로고가 박힌 장비를 착용하고 뛰었다.
아주 단순한 문양이었고, 어느 브랜드의 로고인지도 쓰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빅토리는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의 브랜드가 홍보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었다.
‘그 단순한 문양에 브랜드 이미지를 입히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인 거야.’
그 정도면 일상생활에서 V자 모양의 얼룩만 봐도 빅토리를 떠올린다는 뜻이었다.
“이번엔 이곳으로 해야겠네요.”
“전망이 좋아 보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발리의 유명세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는 아버지가 기뻐했다.
이미 나는 그의 선택을 받았으니 좋은 선물을 해줘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로고 제작도 뭐든 단서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제안서 내용으로 보면 대충 뭘 하려는 브랜드인지는 알겠는데, 다른 의류 브랜드에 비해 차별화된 뭔가가 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것도 그렇구나.”
빅토리는 승리의 기쁨을 브랜드화해서 대중의 인식에 틀어박히는 데에 성공했다.
상품들과 홍보 이력만 보아도 그 방향성을 추구한다는 것쯤은 확인할 수 있었다.
빅토리는 예년 1위인 캘리포니아 주립대가 아닌 미들타운 대학교 미식축구팀을 지원했다.
동부에서는 1, 2위를 다퉜지만 미국 전역에서는 그리 유력한 우승 후보까지는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현재 미들타운은 우승을 향해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정말로 빅토리에 의해 승리를 쟁취해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나 기뻐했을 것이었다.
이 일로 그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화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일단 창업주인 이 데이비드 발리씨의 가치관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야겠네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선수였는지 더 자세히 설명해줄까? 날을 지새울 수도 있는데.”
아버지 정도 되는 팬이라면 충분히 잘 설명해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본인한테 직접 듣는 것만큼 생생하지는 않겠죠. 제안 검토에 필요하니 직접 만나볼 수 있겠냐고 한 번 물어봐 주세요.”
***
아버지는 즉시 발리와 연락을 끝냈고, 곧 등기우편이 하나 날아들 거라고 했다.
우편을 개봉하는 동안 내용물이 궁금했던 아버지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 안에 있던 포장을 벗겨내니 아주 고급스러운 봉투 하나가 나왔다.
“음……? 구겐하임 미술관?”
아버지가 봉투 표면에 인쇄된 글자를 읽더니 중얼거렸다.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면 노라나 무함마드에게 종종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마 미국 최대 규모의 미술관 이름일 것이었다.
즉시 박스를 열었다.
안에는 편지와 함께 초대장 두 장이 함께 들어 있었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사업가로서는 아직 초보인 제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예준님의 활동을 알게 된 이후로 팬이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최근 빅토리와의 협업이었습니다. 같은 의류 브랜드를 목표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너무 부럽고 질투도 나네요.
그래서 윤예준님의 연락을 받은 지금 저는 굉장히 흥분한 상태입니다.
초대장을 두 부 보내드리니 부디 지정된 일시에 다음 장소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동안 약속 장소와 시간이 적힌 초대장을 들어 올렸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메인 전시장에서 오후 9시에 보자는 것이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긴 한데, 왜 미술관에서 보자는 걸까요?”
“아트 애프터 다크(Art After Dark)파티……?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휴대폰을 들어 구겐하임 미술관의 아트 애프터 다크 파티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매달 한 번씩 영 컬렉터를 대상으로 열린다는 파티였다.
“아까 설명을 빼먹은 것 같은데 발리는 미술품 수집가로도 유명해. 그런데 이 파티장은 어지간한 수집가여서는 들어갈 수 없는 파티장이지. 엄청난 재력을 갖춘 사람만이 이 영 컬렉터 반열에 오를 수 있고 나이에도 제한이 있거든.”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나를 고려한 게 오직 유명세 때문만은 아닐 것이었다.
큰 팬이 되어 있다는 편지의 내용은 꾸며낸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그 정도라면 로고 디자인에 자세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냥 수집가도 아니고, ‘엄청난’ 수집가였으니 말이다.
“그거 정말 희소식이긴 한데요. 조금 이해가 안 돼요. 컬렉터들의 파티라는 건 알겠는데 구겐하임과는 무슨 상관이에요? 파티 비용을 지원해주나요?”
“그게 아니야. 메인 전시장에서 파티를 벌인다는 거지.”
미술관에서 파티라니?
상상할 수 없었다.
파티라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곳 아닌가.
정적인 미술관과 파티장의 조합이라면 가보지 않고는 못 배겼다.
“여기 가면 수집가들이랑 많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거야. 예준이 너처럼 직접 창작을 하는 사람들도 모이겠지. 너무 좋은 기회 같은데?”
그 정도 재력을 갖출 만큼 성공했으면서도 아직 젊은 예술가라면……
예술 미래 세대의 주역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환생한 뒤로 새로운 사조를 마음먹으면서부터 꿈꿔왔던 장소였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굉장히 다양한 걸 얻어갈 수 있겠어. 그럼 요즘 컬렉터들이 어떤 스타일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겠지..’
새로운 로고 디자인을 위한 발리와의 대화.
화려한 파티가 이루어지는 미술관.
그리고 젊은 미술과들과의 만남까지.
“어쩌면 이곳에서 저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