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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제일 쉬움-99화 (99/241)

99화. 승리의 콜라보 (4)

마케팅 담당자 조나단은 경기를 굉장히 인상 깊게 본 것 같았다.

깔끔한 대역전극이었기 때문이었다.

무함마드에게 전해들은 것이었지만, 지금 자신들이 워싱턴 앤 리를 이길 단 하나의 방법은 그뿐이라고 했다.

공을 들고 패스 없이 달리는 러닝 전략.

한 구역의 선수들을 일부러 지치게 만든 뒤 그 구역으로만 계속 돌파하겠다고 했다.

확실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승률을 50%까지는 끌어올리는 게 가능했다.

연습량과 전략으로 이길 수 없다면 선수 간 개인 기량 차로 승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경기였네요.”

조나단은 관중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빈 경기장만을 내려다보았다.

경기의 여운을 곱씹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역전이 시작되는 순간 나타나는 카드섹션 응원도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듯 경기로도, 응원으로도 완전히 몰아치기 시작했죠.”

멀리 카드섹션 응원 관중들 앞에 선 무함마드가 무어라고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강적 하나를 배제시킨 상태로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힘내보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조나단은 경기장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나를 마주 보았다.

“저 팀과 관련해 이미 생각하신 광고가 있는 것이지요?”

“네.”

영상을 통한 웹 광고가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건 여러 번 겪어보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화제를 모을 수 있는 건 웹에서의 화제를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꼭 직접 영상을 만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멀리 응원단 쪽에 세워진 전광판을 가리켰다.

“아까 많은 사람들이 집중했던 그 카드섹션 관객석 바로 밑의 전광판 보이죠? 이번 경기에 대한 방송 중계권료가 1억 달러가 넘어요. 그만큼 수많은 카메라가 이 경기장과 저 전광판을 비출 거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화제를 모으고 있는 팀 쪽 전광판 광고비는 얼마나 비싸겠어요?”

이미 이 예선만 해도 큰 이슈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로 미들타운 대학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최근에 사건도 겪었으니 이미지도 훨씬 좋을 게 뻔했다.

“아마 수많은 기업에서 저 전광판을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쓸 거예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화려하고 장엄한 광고판이 그 위에 있지 않아요? 저는 그걸 내어드릴 수 있다는 거예요.”

나는 선수들과 카드섹션 관중들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저 카드섹션 도안에 빅토리의 상호와 엠블럼을 넣어드릴게요. 상품 그림을 삽입할 수도 있구요.”

조나단의 눈이 잠시 빛났다.

이번 경기에 큰 의미를 가지게 된 카드섹션 응원에 빅토리의 홍보가 포함된다면 얼마나 감동이 크겠는가.

하지만 조나단은 섣불리 판단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윤예준 화가님께 광고 제안을 드리는 시점에서 기획은 다 마무리된 상태였습니다. 계약이 성사되는 즉시 촬영만 하면 되죠.”

조나단은 자신의 마케팅 팀이 기획한 광고 건이라면 무조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자신이 팀장으로 있는 한은 실패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획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는 광고였습니다. 이번에 화합의 상징으로 우뚝 서신 윤화가님의 성공 스토리를 홍보에 활용하고 싶은 거예요.”

그가 진행할 광고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웹, 텔레비전 광고였다.

종종 삼성역 스크린 같은 데에서 재생되기도 하는.

“매니저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 스토리가 있는 광고라면 더더욱 본인인 제가 직접 기획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역전 우승이 확실한 미식축구팀을 통해서 말이에요. 이런 현장 광고만으로도 세계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 자신도 있고요.”

조나단도 그게 더 나은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었다.

주로 시도되는 방법이 아니라 고민이 클 뿐이었다.

조나단은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보죠.”

“다행이네요.”

“대신 이 경기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을 자유롭게 홍보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요. 그 내용으로 저희와 계약해주시면 광고 수익의 0.1%...... 아니, 0.5%까지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자유롭게 홍보하겠다는 건 카드섹션을 디자인하는 나와의 협업 사실을 방방곡곡 떠들겠다는 뜻이었다.

빅토리가 물건만 잘 팔아도 이익인 내 입장에서는 나만의 유명세도 더 챙길 수 있어 좋을 것이었다.

전 세계에 지사를 둔 빅토리를 고른 보람을 그런 식으로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수익에 대해 이야기하던 조나단은 다시 스스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군요. 화가님과의 계약이라면 최선을 다해야겠네요. 제가 책임지고 1%까지 채워드리겠습니다.”

비율로만 따지면 이전 것들보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브랜드의 규모가 달랐다.

진출하지 않은 나라가 없고 세계 최대 브랜드이지 않은가.

매출액이 어마어마할 것이고, 광고 수익은 그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한 가지 상품만 팔고 있는 게 아니에요. 카드섹션부터 전광판까지. 어쩌면 우승까지도 치고 나갈 수 있는 팀에 대한 광고잖아요? 게다가 저는 세계적으로 화합의 상징이 된 상태예요. 조금 더 높여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나, 미들타운 사건, 그리고 오늘의 역전극까지.

미식축구 최강국인 미국에서의 대학 경기라면 세계 최강의 차세대 프로 선수들을 배출하는 경기나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도 고사할 바보는 없을 것이었다.

조나단은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3%까지 보장해드리죠.”

세 배가 오른 값이었다.

나는 조나단이 미리 건넨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조나단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가 실망할 리는 없을 것이었다.

그저 기대를 충족하기만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기대를 뛰어넘었고,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

무함마드는 경기장에 남아 카드섹션 관중들과 다음 일정을 조율해보았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들이 다음 본선 경기 날에도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일정이 계속된다면 참가하지 못하는 인원들도 다른 경기 날에는 참가할 수 있을 테니 점점 연습량은 줄고 실력은 늘게 될 것이었다.

곧 자취를 감췄던 예준이 등장했고, 무함마드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좋아서 날뛰었다.

“카드섹션 대단했어! 어떤 느낌일지는 밤마다 생각해서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대단했다고!”

계속 관중들과 응원을 연습했던 무함마드였다.

하지만 본선 때처럼 경기장을 가득 채운 채 연습해본 적은 없었다.

무함마드에게도, 응원단과 선수들에게도 완전한 카드섹션은 오늘이 처음이었던 것이었다.

경기장에 남은 모두가 예준에게 모여들었다.

무함마드는 예준이 디자인한 이번 광고를 보고 새로운 애니메이션 연출법이 떠올랐다고 법석을 떨었다.

“진짜 그 응원 보는데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지.”

“맞아. 게임처럼 무슨 버프 같은 걸 받는 기분이었어.”

“워싱턴 앤 리 놈들도 그걸 보고 기가 확 죽었는지 힘을 못 쓰던데?”

특히나 선수들은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중들의 함성 소리와 카드섹션 응원을 보고 큰 힘을 얻었다.

미식축구를 해온 모든 시간 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쏟아내 뛰었더니 어느새 이겨버린 것이었다.

모두가 예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좋은 소식 하나 있어요.”

그들은 굉장히 시끌벅적하게 떠들었지만 예준이 말을 시작하자 일제히 말소리를 죽였다.

“방금 스포츠 브랜드 빅토리 마케팅 담당자를 만나고 왔는데 제게 광고를 맡기고 싶대요.”

“오! 그거참 잘된 일이네. 광고 성공하면 네가 우리한테 후원금이라도 주는 거야?”

선수단장이 고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제가 아니라 빅토리가 여러분들을 직접 후원하도록 할 거예요. 세계 1위 브랜드인 빅토리와 여러분들의 경기가 함께할 수 있게 말이에요.”

아직 예준이 그 방법에 대해 설명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미식축구팀에 대한 광고라면 그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게 있었던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광고를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금방 떨어질 팀에게는 광고를 맡길 리 없었다.

바꿔말하면, 미들타운 대학교가 경기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줄 거라는 사실이었다.

“본선 일정 나왔어? 어느 팀이야?”

거의 실신할 정도로 흥분한 무함마드가 외쳐 물었다.

그러자 어느새 벤치에 객석 한쪽에 앉아 있던 응원단장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어차피 떨어질 줄 알고 미리 안 알아봤었는데, 아까 보니까 다른 예선조들 경기는 다 끝났더라구요.”

“그럼 결정 났겠네. 어느 팀이냐니까?”

“캘리포니아 주립대.”

순식간에 일대가 조용해졌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대해서는 무함마드와 예준만 제외하고 모두가 알았다.

“와…… 아주 그냥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왜? 뭔데 그래?”

“오늘 이긴 워싱턴 앤 리가 미국 동부의 1위 후보였다면 캘리포니아 주립대는 작년 시즌 미국 1위 한 팀이에요.”

그 정도라면 평소 기량으로라도 이기기 어려운 상대라는 뜻이었다.

결승까지 올라가 사활을 다해도 이길까 말까 한 팀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살피던 예준이 말했다.

“가능성이 낮다 뿐이지 이기지 못할 경기는 없어요. 여러분들은 이제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대한 전략만 생각해서 연습만 되지 않겠어요?”

“당연하지. 본선 경기까지 시간이 더 생겼으니까 그동안 더 연습하면 돼.”

보통 상대 팀의 단골 전략을 파악해 그에 대한 대비를 해놓는 게 연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미들타운 대학교는 시즌 내 최대의 복병이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가 언젠가는 만나야 할 강적이라면 지금 만나는 게 나았다.

예선 경기에서 그들은 막가파식의 전략만 보여줬을 뿐 어떤 특별한 전략도 노출한 게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

조나단은 사무실에 앉아서 웹 메일함을 열었다.

예준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 때문이었다.

‘무슨 용건이지? 설마 벌써 도안이 완성됐을 리는 없고.’

광고 계약이 끝난 직후 바로 이번 빅토리 신상품 전체를 예준에게 보내주었다.

다음 카드섹션 도안에 포함시켜 준다는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선 때 큰 감동을 주었던 응원은 12장 남짓의 도안이 전부였지만, 이번엔 더 연습이 된 응원 관중들과 함께할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도안과 어려운 연출 기술까지 짜내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응원의 연습 기간이 일주일도 안 된다니.

그 비결이 너무 궁금했다.

조나단은 예준의 메일을 확인하고 크게 당황했다.

신상품 배송이 한 이틀쯤 걸렸다 치면 빨라도 그저께에나 받아보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예준은 이미 도안 작업과 기획까지 모두 마치고 홍보안을 확정했다.

빅토리의 신상품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기본이었다.

이전에 보았던 특별한 연출이 더더욱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빅토리의 엠블럼을 표시할 때는 그걸 임의로 3D화해서 높낮이의 위계를 두었다.

장면도 전처럼 일제히 전환되는 게 아니라 파도타기식, 모자이크식, 페이드식으로 다양했다.

이 정도면 경기 같은 건 볼 틈도 없을 정도였다.

‘영상 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의 적극적인 뒷심이 중요해.’

조나단은 바로 마케팅 회의를 소집했다.

영상은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1년에 수만 개씩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광고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진행 중인 어떤 광고 건보다도 윤예준과 미들타운 대학교 미식축구팀과 관련된 홍보가 더 큰 기대효과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조나단은 마케팅 직원들과 함께 예준이 보내준 기획과 도안을 다시 한번 검토했다.

그리고 자료의 마지막, 예준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뭐지?’

텍스트 파일로 되어 있었다.

파일을 표시하고 확인한 내용은 이랬다.

-다음 경기는 작년 1위인 캘리포니아 주립대와 치릅니다. 사실상 결승이기 때문에 엄청난 관심이 몰리겠죠. 홍보도 하고 우승도 해야 하니 선수 용품을 지급받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에 가장 필요한 건 선수 용품이었다.

아무리 잘 나가는 팀이라고 하더라도 장비를 매년 구입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세탁하지도 못하는 미식축구 보호구를 5년, 10년은 돌려쓰는 게 대학팀의 실정 아닌가?

“이거 당장 추진합시다. 가능하겠죠?”

“물론이죠. 광고비로 쓰는 것치고 그리 비싼 금액도 아닙니다.”

빅토리에서 특별 제작한 미식축구 장비가 이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가에 해당하는 장비들을 미들타운 대학교로 보내주었다.

기타 소품까지 포함하면 선수들은 몸에 빅토리 상품만을 두르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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