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98화 (98/241)

98화. 승리의 콜라보 (3)

“자! 하나, 둘, 셋, 넷, 할 동안 펼치고 계시고, 다시 다음 하나, 둘, 셋, 넷, 할 동안엔 덮어놓으면 되는 거예요. 그동안 다음 페이지 준비하고! 네 박자에 한 면씩!”

같은 시각 미들타운 경기장에서는 미식축구 전술 연습과 카드섹션 응원 연습이 한창이었다.

예준에게 특별히 부탁받은 무함마드는 객석 가장 앞에서 목이 터져라 박자를 외치고 있었다.

선수단과 응원단은 무함마드의 도움에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주문해두었던 책자형 카드는 도착했다.

좌석마다 배치도 끝났고, 경기장에 놀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응원법을 가르쳐주며 학습법을 고안하고 있었다.

“완벽히 학습하는 데에 1시간…… 시간을 더 줄여야 하는데.”

무함마드 옆에 앉아서 진행 상황을 보던 선수단장이 중얼거렸다.

우선 카드섹션 응원이 진행될 좌석 표는 싼값에 이미 팔아둔 상태였다.

연습 환경이 갖추어진 지금도 특별한 메리트는 없는 셈이었으니 낙관적 전망만 할 수도 없었다.

“바로 다음 주로 다가왔는데 뭐 좋은 방법 없어?”

더 좋은 방법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윤예준의 아이디어로 인해 이 정도 퀄리티의 카드섹션 응원 훈련을 1시간 만에 끝내는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아직 좌석을 모두 채운 채 카드 뒤집기를 해본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전체 그림은 보지 못했지만, 여태 본 부분 그림만 해도 굉장히 뛰어났다.

정 못하겠으면 한 면만 대충 펼쳐놓고 가만히만 있어도 반은 성공할 만큼 말이다.

“오! 윤예준 연설 시작한다!”

연습하는 동안 중계용 스크린에 텔레비전 채널을 연결해두었다.

경기를 앞두고 있는 미식축구팀에게 경기장 전체를 대관해주었기 때문에 스크린까지 빌릴 수 있었다.

시범관중, 응원단, 선수단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스크린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윤예준의 연설은 그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덤덤하게 자신의 생각만 전달하는데도 말이다.

그가 얼마간 떠안고 있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전하는 덤덤한 피력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화합을 외치는 부분에서는 마치 모든 총기 사고 사망자들의 목소리를 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윤예준 화가가 몇 살이라고 했죠?”

“11살.”

선수단장이 묻자 무함마드가 조용히 답했다.

목이 완전히 갈라져 있는 상태였다.

“거리에서 집회를 할 때는 사람들 우르르 몰고 다니고 그랬었지…...”

선수단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쉽게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던 그 현장을 떠올려보았다.

먼발치에 있던 그는 윤예준이라는 화가가 그곳에 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뜻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많은 사람이 따르는 법이었다.

그들은 함께 집회에 참여했다.

물론 그들은 한쪽 편에 서서 총기 소지 반대만을 피력했지만 말이다.

그 사실에 한 번도 부끄러움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떳떳한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그 집회 좀 했기로 경기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력해져서 예준과 무함마드 앞에 칭얼댄 꼴밖엔 안 되었다.

‘이렇게나 부끄럽게 하다니.’

선수단장은 선수단과 응원단원들을 한 명씩 돌아보았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위치에 서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응원단장 본인과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목표는 딱 두 가지죠? 많은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응원을 선보일 것. 그리고 워싱턴 앤 리 대학교 팀을 이길 것.”

“그래!”

선수들이 함성을 치기 시작했다.

넓은 경기장이었지만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무함마드는 그 기세에 화들짝 놀랐다.

“선수들은 어떻게든 이길 방법만 강구하세요. 저는 카드섹션 좌석 매표자들 전원에게 연락을 돌릴 테니.”

“연락을 돌려서 뭘 어쩌게?”

무함마드가 묻자 선수단장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제 역할이 어디 쿼터백뿐인 줄 아세요? 새로운 단원 모집도 다 제 말빨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선수도 최정예니 응원도 최정예로 가야죠. 남은 기간 동안 최소 한 번씩은 나와서 연습하도록 부탁해볼게요.”

“그런 거라면 내가 해야지! 너는 경기 훈련이나 해!”

무함마드와 선수단장이 아웅다웅 다투기 시작하자 시범 관객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나한테는 연락 안 해도 되겠는데요? 저도 이쪽 좌석 매표하고 나와 있는 거거든요.”

“어, 그래요? 나돈데?”

이곳저곳에서 그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낀 응원단장이 외쳤다.

“혹시 이 중에 카드섹션 좌석 매표하신 분?”

응원을 연습하던 시범관중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 자리 매표한 사람들 다 여태 한 번씩은 나와봤을걸요! 매일 여기서 연습한다는 소문이 퍼졌거든요.”

열심히 연습한 게 이렇게 성과를 낼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럼 대부분은 이미 연습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아, 그럼 혹시!”

그 순간 예준의 말 한마디가 무함마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업그레이드시켜야겠네!”

“업그레이드?”

카드섹션 응원에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

예준은 미리 카드마다 표시를 해두었고, 무함마드는 그걸 전달하기만 하면 되었다.

***

연설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에서도 아버지는 편히 쉬지 못했다.

기자들을 물리치고 들어온 상태였기에 굉장히 피곤한 와중일 텐데도 말이다.

“아이고! 죽겠다, 야.”

이번 유엔 연설로 인해 기업들의 러브콜이 빗발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휴대폰은 계속 전화 수신 진동으로 정신이 없었다.

마치 착한 건축 건으로 전화 문자 테러를 받던 현재의 휴대폰 같았다.

“메일로 좀 보내주면 좋을 텐데. 다들 성격들이 참 급하네.”

아버지는 그새 전화를 하나 또 실수로 받아버렸고, 즉시 그 뜨거운 휴대폰을 뺨에 가져다 대었다.

통화는 얼마간 이어졌고, 통화가 끝나자 아예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방금 온 제안은 뭐였어요?”

“어. 방금 건 ‘빅토리’라는 이름의 스포츠웨어 브랜드야.”

빅토리.

내가 이번 카드섹션에 활용한 단어였다.

“어땠어요?”

“조건은 굉장히 좋게 이야기해주던데? 그리고 회사 자체도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거기는 아직 진입하지 않은 나라가 없을 만큼 유명해.”

같은 분야에서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브랜드라고 했다.

아버지의 말대로 진입하지 않은 국가가 없었고, 모든 국가에서 1위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 정도면 홍보 효과는 최고 아닌가?’

홍보 효과도 홍보 효과였지만 광고비도 제법 쳐줄 것이었다.

수익률 퍼센티지가 낮더라도 광고 수익 자체가 모스크바 CMC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일 테니 말이다.

“어? 저 거기 괜찮아 보이는데요?”

“아, 그래? 비슷한 곳 몇 군데 더 정리해둔 게 있는데.”

단순히 내 이름만 홍보할 생각은 아니었다.

미들타운 대학교 미식축구팀과 더불어 홍보하기에는 스포츠 의류 브랜드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기업명까지 승리의 ‘빅토리’라니!

미국은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하는 나라니 이 방법은 더욱 먹힐 것이었다.

나는 메모장을 찢어 미팅 장소와 날짜, 시각을 적어 아버지에게 주었다.

“다시 연락해주세요. 그리고 성사되면 미팅 장소로 이곳을 불러주시고요.”

“응?”

아버지가 내 메모를 받아들더니 물었다.

“미들타운 대학교 미식축구 스타디움? 게다가 이 날이면 예선 경기 있는 날 아니야? 미팅하기 너무 시끄러울 것 같은데.”

“제가 다 준비해둔 게 있어서 그래요.”

스포츠 의류 브랜드에서 광고 제의가 올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상황이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라는 무언의 계시가 분명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더니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다시 그들에게 회신하지 못했다.

벨 소리가 잠깐 끊긴 틈을 타서 빠르게 전화를 걸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

‘내가 미팅 장소를 제대로 전달받은 게 맞는 건가?’

빅토리 마케팅 매니저 조나단은 미팅이 예정된 당일 미들타운 대학교로 향하면서도 계속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윤예준 화가의 매니저인 윤민제와 직접 통화했고, 그에게 여러 차례 미팅에 대해 확인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민제가 전달해준 사안이니 틀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예준이 미식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알아보지 못할 것을 대비해 자신의 사진까지 전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약속시간에 굉장히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예선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았을 때는 다시 의심의 싹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실 민제와의 통화는 자신이 꾼 꿈이 아니었을지.

아니면 그곳에서 예선 경기를 보고 갈 것이라는 시시콜콜한 말을 조나단 본인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지 불확신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젠장, 모르겠군. 이제 와서 다시 전화해봤자 어차피 미팅엔 늦어. 일단 가자.’

조나단은 미들타운 대학교로 도착하자마자 경기장으로 향했다.

미들타운 대학생들과 워싱턴 앤 리 대학생들로 가득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신이 쏙 빠진 채로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약속된 구역으로 이동하니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았던 윤예준이 조나단에게 손을 흔들었다.

“조나단 매니저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행히 꿈을 꾼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윤예준과의 광고가 얼마나 중요한 건인데, 조나단이 그런 터무니없는 실수를 할 리 없었다.

조나단은 예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일단 곧 경기가 시작되니 보시죠. 티켓은 제가 사뒀어요.”

“아이고. 제가 미식축구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아시고…… 감사히 즐기겠습니다.”

왜 이곳으로 불렀냐는 질문이 혀끝까지 차올랐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윤예준과의 광고를 따낼 수 있다면 이 정도 기다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원하는 신상품 스토리텔링 마케팅에 윤예준만 한 인물이 없었다.

그는 이번 로드아일랜드 총기 관리법 제정에서 주역으로 활약하지 않았던가.

외국인으로서, 그것도 어린아이로서 말이다.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의 성공 비결에 대해 물으시는데요. 비결은 바로 이 빅토리입니다!’

윤예준과 언제나 함께하는 빅토리.

조나단은 광고 기획안들과 그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윤예준을 상상하며 경기를 기다렸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잠시 접전을 이루는가 싶더니 곧 워싱턴 앤 리 대학팀에게 점수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전술 면에서 짜임새가 허술했다.

두 팀 간의 실력 편차도 그렇고 연습량 자체도 꽤 차이가 나는 듯했다.

‘처참한 패배로 끝나겠군. 홈구장에서 꽤 큰 수모겠어.’

조나단은 그런 처참한 패배를 싫어했다.

차라리 챙겨온 광고 시안에 대해 설명하는 연습이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경기가 중반쯤 진행되었을 때 미들타운 측에서 작전타임을 제안했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었던 워싱턴 앤 리 감독은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았다.

“이제 이 작전이 끝나면 미들타운에서 다시 기량을 끌어올리기 시작할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번 경기에 대한 연습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특별한 작전을 짰거든요. 초반에는 무전략으로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 뒤 바로 이때 모두 정보를 공유하는 거죠. 그다음부터는 미들타운 대학교 선수들의 기량에 전적으로 맡기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열정으로 극복하는 거죠.”

윤예준이라는 화가의 역대 작품들과 작품 세계관, 하모니즘에 대한 시평까지 낱낱이 꿰고 온 조나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식축구에도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다.

“그리고 제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기도 하구요.”

“비장의 무기요?”

작전 시간이 끝나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경기장 맞은편 관중석에서 작은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미들타운 대학교 미식축구팀의 엠블럼이 조나단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어?! 이런 예선 경기장에서 카드섹션 응원이라고?!’

뿐만 아니었다.

엠블럼에 이어서 왕관, 별이 나타나더니 꽤 복잡한 패턴의 미식축구 선수 모습이 등장했다.

그는 공을 들고 돌진했다.

마지막엔 상대팀 지역 가장 깊숙한 곳으로 몸을 밀어 넣었는데, 장면마다 카드섹션의 높낮이가 바뀌면서 선수의 움직임을 두드러지게 살리고 있었다.

“와!”

조나단은 자신도 모르게 함성을 내질렀다.

관객석의 반응이 뜨거웠기에 그리 어색한 반응도 아니었다.

‘배경 부분은 낮게, 선수가 표시된 부분은 높게 들고 있어. 이 정도면 적어도 1년 정도는 연습한 응원팀 수준이야.’

자세한 묘사를 위해 한 카드당 여러 개의 도트가 찍혀 있었다.

선수의 모습에 해당하는 카드는 하나의 도트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카드를 들어 올린 높낮이를 통해 선수에 대한 역동성만을 차별적으로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모든 게 철저히 계산된 똑똑한 응원법이었다.

이후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카드섹션 응원은 계속되었다.

워싱턴 앤 리 대학 층 응원단은 미들타운 응원단의 카드섹션에 완전히 신경을 빼앗겨버렸다.

경기 양상도 예준의 예상대로 뒤바뀌고 있었다.

워싱턴 앤 리 선수들은 전략을 완전히 간파당하고 사전에 단골 전략 외엔 아무런 약속도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미들타운 대학교 선수들의 중후반 개인 전략에 완전히 말려 속절없이 점수를 내어주었다.

‘이대로 미들타운이 이긴다면 윤예준은 진정한 승리의 키워드가 될 거야.’

경기가 끝나기 바로 5초 전.

미들타운에서 촉망받는 쿼터백 선수가 직접 돌파에 성공해 짜릿한 역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이거 굉장히 흥분되는데요!”

스포츠의 참맛을 알고 있는 조나단이 흥분해서 외쳤다.

그 모습을 보던 예준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이 경기는 미국 동부의 두 1위 후보 간의 예선 경기였어요. 미들타운 대학교가 이겼으니 아마 그들은 아마 결승까지 달리게 되겠죠. 저 사람들의 응원법도 다 제가 기획하고 있어요.”

“예? 그게 사실입니까?”

“네. 제 성과와 전망에 대해 보여드렸으니 이제 새 광고 제안을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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