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사람을 살리는 화가 (5)
미들타운 총기 난사 사건과 시민들의 투쟁은 이미 세계에 알려졌다.
<화합>을 설치한 일을 계기로 더더욱.
또 뒤이어 전시된 콜라주 <장미의 섬>도 미들타운이 예술가들의 도시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홍보하는 데에 좋은 역할을 해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으니 그리 위험한 지역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크게 한몫했다.
‘이제 드림캐쳐에서 영상 제작까지 들어갔어. 이 기세면 해낼 수 있을 거야.’
인터넷과 영상매체의 파급력은 겪을 때마다 실감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의 성과는 <화합>에 활용된 VR 비디오를 제외하면 영상을 활용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링크를 공유할 수 있는 영상이 완성된다면 목적은 완전히 달성될 것이었다.
게리 윈스턴에게서 전화를 걸려온 건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지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낯선 나라일 텐데, 그곳에서도 굉장히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게리는 내게 미들타운의 위험성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들 중 몇몇은 나의 작품과 사회의식에 대해 극찬을 늘어놓으면서도, 그 모든 게 ‘위험을 무릅쓰고 해낸 일’이라는 점에 주목하곤 했다.
바로 그 의식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리만큼은 나의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존중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게리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저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 계속 포토 드로잉을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전에는 이만큼 저와 맞는 표현법도 없었는데, 몇 달째 계속 낯설어서 심적으로 꽤 힘들더군요.
평생을 믿고 의지했던 무기 하나를 잃은 기분일 것이었다.
“한 번 얻었던 실력은 어디 안 갈 거예요. 기대되는데요? 언제쯤 작품을 볼 수 있을까요?”
-꽤 걸릴 겁니다. 사실 뉴스 기사에 업로드된 <장미의 섬> 사진을 봤거든요.
게리는 한 며칠쯤은 <장미의 섬>에 대해서만 생각한 사람처럼 그 작품의 매력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수많은 사진 예술가들의 첨예한 시대 의식이 모여 새로운 푼크툼을 형성하고 있고, 바로 그 방식 자체가 예술이 개인적인 활동이라는 은연 중의 선입견을 부수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바티뇰 때도 꽤 늦게 활동하게 되었고, 이번엔 아예 그곳을 가지도 못하게 됐군요. 저도 그러한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아니에요. 지난번에도 큰 도움이 됐는걸요.”
게리의 후원으로 인해 바티뇰의 예술가들은 돈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저는 또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서, 미들타운에는 소정의 후원금만 조금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미들타운 예술가들에게 법인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의견 좀 묻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이번에도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엔 몇 번 사양하는 게 보통 일이겠지만, 나는 게리의 마음을 잘 알았다.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바티뇰을 들러서 괜히 눈독을 들이던 게리였다.
그가 원해서 하는 후원은 사양하지 않는 게 예의였다.
게리에게 후원용 계좌를 알려주었다.
-...... 방금 입금했습니다. 몸까지 함께할 수 없어서 못내 아쉽군요. 불의로 죽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게리와 전화하는 도중 휴대폰을 문자가 하나 전송되어 왔다.
돈이 입금되었다는 뜻이었다.
전화를 끊고 확인해보았다.
생각보다도 훨씬 큰돈이었다.
300억 원.
‘소정이 300억이라니. 역시 게리……’
이는 내가 아닌 미들타운 예술가들에게 주는 후원금이었다.
허투루 써서는 안 될 것이었다.
‘작품을 만드는 데에 쓰는 건 당연한 일이고. 모두를 위한 일이라면……’
알리는 게 핵심인 이 사안에서는 영상 형태의 작품을 만드는 게 제일 좋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라에게 3D화 작업을 요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건비를 조금 더 들여 아예 CG그래픽 작업까지 해볼 수도 있었다.
결국 기존의 <장미의 섬> 3D 영상을 공익광고로 발전시키자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을 마친 나는 즉시 노라에게 전화를 걸어 게리의 후원 사실을 알렸다.
-그거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지금 하고 있는 영상작업에 추가로 부탁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계획을 바꾸는 건가요?
“지금 프로젝트를 좀 더 발전시키려구요. 평면 유지 3D 작업이 아니라 아예 입체 공간으로 재해석해 미들타운의 거리와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이에요.”
노라는 나의 말에 크게 놀랐다.
-네? 그거라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요. 아무리 30분짜리라고는 하지만……게다가 광고로는 너무 길어요.
“광고로 쓰일 수 있도록 발전시켜서 보내드릴게요. 일주일 안으로 제작이 완료될 수 있도록 제작 인력을 더 기용해주세요.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지금까지 만든 것에 더해서 추가될 인건비까지 모두 지불하겠다고 했다.
-알겠어요. 믿고 맡겨주세요.
나는 희망찬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화합>에서 활용한 몽타주 형식과 <장미의 섬> 속 사진 작품들과 만나게 하리라.
그렇다면 광고의 성과는 톡톡히 이뤄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
드림캐쳐 팀은 예상보다 영상을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장면의 속도와 배치, 공간의 세부적인 풍경 등 자세한 내용을 예준이 콘티에 상세히 적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노라가 RISA 대학의 필름 전공 대학원생들 중 3D 영상 작업자를 뽑아 사무실을 지원한 덕도 있었다.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은 어디입니까.’라는 카피로 끝맺은 공익광고영상은 로드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화합>과 <장미의 섬>보다도 더 큰 화제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 광고보다 더 대단한데? 꿈에서 확 깨는 기분이랄까.
-윤예준이 기획하고 드림캐쳐가 지원했으니까 당연하지.
-미들타운엔 예술가가 많은 듯.
크레딧에 들어간 게리 윈스턴 이름으로 미들타운의 일은 모든 예술가가 관심을 가지는 사건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하루에 30억 원꼴로 후원금이 쏟아졌고 문화 예술을 지원하는 봉사 단체도 늘어났다.
후원금은 모두 미들타운 활성화에 사용되었다.
미술 전시관, 공연장도 건설이 확정되었다.
새로운 공익광고에 힘입어 기존 <장미의 섬>의 장미가 사진이나 영상 예술 그 자체의 엠블럼이 되었다.
예술 영화 포스터들을 모아 똑같이 배치한 오마주 작품들도 나올 정도로 말이다.
미들타운을 방문하면 높은 확률로 예준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많이도 붐볐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 황량해졌던 미들타운은 떠났던 이들이 되돌아왔고, 그에 더해 로드아일랜드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위험하다는 오명을 그제야 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휴교를 마친 인근 학교 학생들은 교사를 따라 매일 미들타운 거리로 나왔다.
거리를 되살린 예술작품들도 보고 예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예쁜 작품들로 거리를 꾸며줘서 고마워요.”
아이들은 단순히 예쁜 작품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되돌아온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그랬다.
온전히 미술을 통해 이뤄낸 일이기 때문이었다.
미술로써 사람들을 모았고, 그를 통해 거리가 한층 아름다워졌으니 말이다.
<화합> 앞에 서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예준에게 두 명의 남성이 다가왔다.
“윤예준 화가님?”
예준은 그들을 돌아보았다.
일전에 미들타운 스테이트 하우스에서 보았던 주지사 찰리와 미들타운 지역장이었다.
은연중에 랜드마크 민간조직을 연결해 준 일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로드아일랜드 역사상 수십 년간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윤화가님이 해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된 법안이 주 의회에 곧 상정될 겁니다. 아마 통과되겠죠. 그것도 윤화가님 덕분입니다.”
주지사가 로드아일랜드주의 대표자라고는 하더라도 법까지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말 그대로 예준 덕에 이뤄낸 일이었다.
당뿐만 아니라 미국, 나아가 세계적인 지지를 얻었으니 말이다.
***
주지사는 개인 총포 등록 및 관리에 관한 법안 제정을 특별히 빠르게 처리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총기 소지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열띤 논의 끝에 얻어낸 일단의 성과였다.
그 법안이 통과되면 총기 소지 등록과 탄알 유통이 엄격해지고 사용 전후 신고 절차를 더 거치게 될 거라고 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예 금지화시키고 싶지만 아직 그럴 계제가 못 됩니다. 이렇게 조금씩 총기 허용을 까다롭게 해나가면서 엄격한 총기 사용 문화 먼저 조성해두는 게 방법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지사의 말이 맞았다.
사용이 엄격해지면 안 쓸 것이고, 안 쓰게 되면 굳이 총기 소지를 주장할 이유는 없어지는 것이었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평화를 향한 어려운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나는 주지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 예준이 왔구나. 좋은 소식이 있는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기쁜 소식이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뭔데요?”
“UN이라는 국제 평화 기구가 있는데, 그곳에서 진행하는 세계 어린이의 날(Universal Children’s Day) 연설에 참여해줄 수 없느냐고 제안이 왔어.”
보통은 파급력이 있는 연예인을 친선 대사로 내세워 연설을 부탁한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는 유엔아동권리협약 30주년.
그래서 특별히 평화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 어린이인 내게 제안하게 되었다고 했다.
“유명한 건가요?”
“유명한 게 다가 아니야. 굉장히 명예로운 거라고. 그리고 UN이면 세계 평화 관련해서 영향력 있는 기구야. 그런 곳에서 평화 연설을 한다면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하는 셈이지.”
아버지는 어떤 퍼포먼스도 없이 딱 나의 말 그 자체에 모두가 귀 기울여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것만 해도 굉장히 매력 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세계 어린이의 날이나 아동권리협약과 같은 키워드들에 더욱 관심이 갔다.
‘거리를 예쁘게 꾸며줘서 고맙다고 했지……’
그것은 미숙한 채 통찰력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어쩌면 세상 일이란 그만큼이나 단순한 것일지도 몰랐다.
정치인들은 온갖 법철학과 생명윤리, 총기 사고 통계, 사회 병리, 범죄 심리 같은 것에 집중하며 결론지을 수 없는 공론으로 시간을 낭비해왔다.
그동안 누군가는 계속 단순한 하나의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었다.
말로든, 총알로든 남을 아프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로써 이곳을 예쁘게 해달라고 말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입 앞에 마이크를 가져다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럼 꼭 해야겠네요. 연설하겠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어.”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즉시 휴대폰을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아하는 걸 보니 UN이란 곳이 여간 큰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이 입금되는 날 아니었나요?”
드림캐쳐 같은 나만의 브랜드가 있었다면 이번 사건에서 발언권을 쉽게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중예술에 기민하게 조직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이 정도 유명세라면 가능할 것이다. 또 지속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국에서의 예술학교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능했다.
애초에 유명세만 모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맞아. 돈이 들어왔지.”
UN 관계자와 통화를 마친 아버지가 입금 내역을 확인했다.
“320억 들어왔네! 120억은 폐장쇼 기획 관련이고, 나머지 200억은 팝업북 관련 수익이래.”
예술가들이 모였다면, 그 이후 과제는 그들을 계속 머물게 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그들 스스로 공동체를 지속시켜 나가도록 만드는 것도 물론 좋았다.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 기관과 연계된 예술 밸리가 형성된다면 더 장기적으로 이 화제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320억이면 아직 부족해.’
게리는 그에 버금가는 금액을 금방 쾌척할 만큼 큰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윈스턴이라는 브랜드를 일류 브랜드로 만들 수 있었겠지.
미디어 아트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노라 스미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상의 유명세와 돈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그럼 그들처럼, 아니, 그들 이상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