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사람을 살리는 화가 (3)
한참 작품을 그리던 도중이었다.
“역시 소문대로 대단한 실력이네요.”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한 청년이 그렇게 말하며 걸어 나왔다.
내용은 칭찬이었지만 말투에서는 비아냥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 두어 명이 달려들어 그 청년을 막아섰지만, 청년은 금세 그들을 내쳤다.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적의를 느낀 설치 예술가가 대신 나서서 물었다.
“자꾸 평화, 평화 하시는데 사건을 그냥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평화예요? 그럼 뭐, 어떤 부조리한 사건이 터지더라도 맞불로 격화될 수 있는 시위는 하지 말라는 소리인가요? 윤예준 화가님 때문에 시위대는 보다시피 저렇게 규모가 줄어들었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께서 하고 계신 건 고상한 예술 활동일 뿐이네요. 우리는 그 평화라는 걸 위해 평생을 피 흘려 싸워왔는데 말이에요.”
청년의 말대로 시위대는 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서 거리는 전보다 조금 더 황량해 보였는데, 어차피 나의 목표는 시위 세력을 확대시키는 게 아니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떠나간 사람들을 되돌아오게 만들 거예요.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새로운 주민이 되도록.”
“고작 예술작품 하나로 그게 가능하면 왜 진작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겠느냐구요.”
“여태까지는 제가 없었으니까요.”
나의 확언에 그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그거 얼마나 걸리는데요? 하루면 끝나요?”
청년이 말하자 그의 친구들이 나섰다.
“하루 만에 끝나겠냐? 저 큰 면적에 그림을 어떻게 하루 만에 그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봤잖아.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뭐 안 된다고 하시겠지.”
청년의 비아냥은 갈수록 심해지려는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 다퉈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일단 그의 기대를 뒤집어줄 필요는 있어 보였다.
“반나절. 반나절 안에 끝내보죠. 시민연대 여러분, 일단 VR 비디오부터 설치해주세요.”
“네? 한 시간이 가능하겠습니까? 말리고 덧그리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리는 작업이잖아요?”
“가능하게 해야죠.”
어차피 청년이 등장한 순간부터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미술품 복원까지 해본 나로서는 그리 특별히 섬세한 작업도 아닐 것이었다.
청년은 조금 기가 죽은 듯 내 눈치를 살폈지만 그도 나도 무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생각이야 어떻든 설치예술가들은 VR비디오를 지정된 위치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활용할 페인트는 어차피 흰색과 검은색뿐이야.’
우선 조형물 전체에 롤러로 흰 페인트를 칠한 뒤 그 위에 검은색으로 자세한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말리는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완성해야 했다.
나는 롤러를 내려놓고 대신 붓을 들었다.
“응? 도안대로면 배경색은 하얀색 아닌가요?”
맞았다.
동양에서는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를 의미했지만, 서양에서는 신성한 색으로 받아들여지는 색.
나아가 순수함과 정화, 일관성, 화합과 조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구상할 때 나는 미래의 희생에 대항하기 위한 평화와 화합의 상징물을 설치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얀색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색이었다.
“하지만 배경색을 미리 칠해두면 페인트가 마를 때까지 한나절은 소모돼요. 저 시위대 형이 허락한 시간은 한 시간이었는데, 빨리 마르라고 입바람을 불 순 없잖아요?”
도안은 온통 하얀색에 작고 검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팔과 다리, 머리가 절묘하게 맞물려 마치 퍼즐처럼 끼워 맞춰져 있는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하얀색이 바탕색인 만큼 전체적으로는 백색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했다.
‘마르지 않으면 덧칠할 수 없어. 그럼…..’
바탕색도 그냥 그리면 되었다.
나는 두꺼운 붓을 들어 하얀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대신 검은 물감으로 그릴 그림 부분만 제외하고 말이다.
조형물이 커서 아이의 몸으로는 조금 힘들긴 했지만 섬세함으로만 따지자면 오히려 이점이었다.
소란스러웠던 이 일대가 조용해졌다.
모두 나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섬세하게 작업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섬세하게, 빨리 작업을 끝내야만 했다.
‘붓의 넓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어.’
한 번의 붓질만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은 굳이 두 번 붓질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붓이 한 번 닿았으면 다시 닿을 필요가 없도록 말이다.
하얀 칠을 하다 페인트가 모자라지면 새로 묻혀야 했다.
하지만 묻히고 나면 페인트가 붓에서 새지 않을 때까지 대략 10초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그 시간에 검은 칠을 하고, 검은 페인트가 다 사용됐을 때 다시 흰 페인트를 드는 방식으로 시간을 절약했다.
“끝났습니다. 얼마나 걸렸어요?”
나는 붓을 내려놓고 설치 예술가들에게 물었다.
구조물 전체에 빠르게 색이 입혀지는 모습을 보던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미 VR 비디오 화면은 설치가 완료된 상태였다.
“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몇 시간도 안 걸렸네요.”
그 말에 사람들과 청년이 동시에 놀랐다.
“그럼 딱 맞췄네요.”
“아직 여유가 있는 거잖아요?”
나는 반문하는 설치 예술가들을 뒤로하고 청년을 불렀다.
“형. 이리 와서 서시고, 여러분들도 이리 오세요. 안 말랐으니까 만지는 것만 조심하시고요.”
“어……? 응, 응.”
청년과 사람들이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모여들었다.
그 뒤 나는 설치된 발전기의 전원을 올렸다.
그러자 거대한 VR 비디오가 켜졌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나는 그들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빠르게 물러섰다.
“합 5분짜리 영상이에요. 그 시간까지 포함해서 시간 안에 끝냈죠. 제가 약속을 지켰으니 당신은 감상이라도 제대로 해주세요.”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모두 작품 감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디오 화면에서는 우선 동화적인 분위기의 성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물음표는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드림캐쳐에서 갈고 닦은 모든 영상 기술을 쏟아낸 것이었다.
영상 내용은 함께한 설치 예술가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영상 속 성은 계속 지어 올려졌다.
그러자 점점 성들이 물음표를 둘러싸는 모양새로 발전되었다.
“와……!”
일단의 시각적 효과에 매료된 사람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하지만 성의 동화적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성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이사이 총기 난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짧게 삽입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동화에서는 죽음도 역전하는 게 가능하지.’
어머니가 동화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뜻을 떠올려보았다.
영상에서의 몽타주 기법을 활용해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영상 속 유가족들은 울었고, 아이의 유품이 잠시 노출되었다.
40명의 가족들 모두를 인터뷰했다.
성은 계속 지어졌고, 장면의 전환은 조금씩 빨라졌다.
음악은 점점 격정적으로 변했다.
“오…… 이럴 수가……”
성은 마치 희생자들의 죽음으로 지어 올려지는 듯했다.
부유한 성의 모습은 더욱 속절없어 보였다.
희생자들의 죽음은 막아야 했지만, 성이 너무 빠르게 지어 올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관없는 두 장면의 반복 노출을 통해 동화의 현실화, 현실의 동화화를 동시에 얻어낼 수 있었다.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굳이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이 아니더라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미 일어난 죽음은 받아들여야만 하고, 앞으로 일어난 죽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죠. 누군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일은 벌이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요?”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말했지만 딱히 내게 맞서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도 예술에 대한 열린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작품이 어떤 역할을 해내는지 한 번 다 함께 지켜보죠.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작품으로 밑지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들 중 한 명도 없었다.
***
<화합>이라는 이름의 팻말이 세워진 작품 앞.
제목을 확인한 청년은 무언가를 크게 뉘우친 표정으로 거리를 빠져나갔다.
그러다 문득 다시 나의 작품을 돌아보았고,
물음표 측면이 깨우친 자의 느낌표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들려오는 말로는 여전히 거리로 나서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위를 조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충돌을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미들타운에 있는 나의 작품 근처를 떠돌며 아무도 훼손할 수 없도록 감시하기도 했다.
일부 과격분자들이 작품을 훼손하려 들 거라는 것이었다.
그의 변화가 기쁘기는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찬성 측이든 반대 측이든 평화로운 미들타운을 만드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작품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청년과 시위대를 통한 입소문이 먼저였고, 그 뒤부터는 사회부 기자와 외지인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미들타운의 옛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지금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터였다.
작품의 인기는 대단했다.
총기 이슈에 대해 다룰 때는 거의 필수적으로 작품 보도자료가 활용되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이 끝난 건 아니었다.
훨씬 적어졌을 뿐 소수의 시위대는 여전히 거리로 나섰고, 해소된 거라곤 시민들 간의 과격한 다툼뿐이었다.
아직 미약하게나마 폭력의 씨앗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이젠 뭘 할 수 있을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생들은 집회 장소에서 나를 보고는 큰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잠정 연기되었던 일일 강연을 위해 다시 수업 일정을 잡게 되었다.
잘된 일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텅 빈 RISA대학으로 향했다.
온통 비어있었지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강의실만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공식적으로는 초면이었지만 가두시위의 선두에 선 학생들도 여럿 보였다.
토론회에 참여한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방도 없이 등교한 학생들은 집회 전략에 대해 떠들다 내가 들어오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학생분들이신데. 학교에 있는 모습은 처음 뵙네요.”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있는 모습보다는 거리에 있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걸 보면 그들도 행동할 줄 아는 예술가들이었다.
“선생님 작품 저희도 다 봤어요. ‘?!’를 그린 <화합> 작품 정면에 그려진 사람들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고, 측면에 그려진 사람들은 깨달은 사람들이죠?”
기호에 가까울 만큼 간단히 그려 넣은 사람 그림이었는데 용케도 알아보았다.
모든 것은 입체적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사건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어 돌아섰을 땐 깨달음의 느낌표로부터 걸어 나오는 것을 연상시킨 것이었다.
나는 내친김에 인터넷에 보도된 내 작품을 검색해 수업의 운을 떼기로 했다.
“예술은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소통행위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하지만 예술을 통한 대부분의 소통행위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요. 창작자로부터 감상자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만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무언가를 창작할 땐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만 해요. 좋든 싫든 그 작품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까요.”
영향력이 있다는 건 설레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일이었다.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럴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회적 책임감이 화가에게도 부여되기도 했다.
“저는 이 <화합>이라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 간의 다툼을 잠재우고 황량해진 미들타운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실제로 다툼은 줄었고 방문자들은 많아졌죠. 하지만 아직 부족해요. 뭐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세요?”
아직까지 <화합>은 르콩슐라의 <카페 게르부아의 일상>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작품 구경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줄어들 일시적인 관심이었다.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상 미들타운으로 관광은 오더라도 이사는 오지 않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라면, 어떤?”
“다툼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는 점에서요.”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시위대의 폭력이라는 필요악뿐이라고 생각해왔던 이들이었다.
시위 자체를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들 또한 폭력을 동원한 시위 현장에 몸을 내던져본 이들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나는 <화합>을 통해 참여 예술의 가능성을 그들에게 확인시켜주었다.
학생의 지적은 그것이 다툼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다는 점까지 동의하게 되었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었다.
“맞아요. 그런 차원에서 과제를 하나씩 내드릴게요.”
“뭔데요?”
“이번 총기 사고에 관해 자신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하신 후 장르 불문 작품 하나를 제출해주세요.”
큰 효과를 본 바 있는 길거리 전시회였다.
미국의 바티뇰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었다.
눈빛들을 보아하니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럼 이것으로 수업은 마치겠습니다. 저는 일일 강사라 학점을 줄 수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과제를 평가해드릴 수도 없어요. 그러니 과제물은 미들타운으로 제출해주세요. 거기서 뵙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