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아메리칸 드림 (2)
“안녕하세요. ‘스펙터 클라크(Spector Clock)’의 제프라고 합니다.”
그가 내게 악수를 권했다.
“스펙터 클라크라구요?”
아버지가 놀라서 물었다.
유명한 곳인 모양이었지만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옆에서 듣던 카산드라가 귓속말로 그에 대해 알려주었다.
“영국 거대 기업 사람이네요. 이름은 클라크지만 명품 손목시계를 파는 회사입니다. 굉장히 비싸죠.”
설마 했더니 바로 협업 제의가 들어올지는 몰랐다.
제프라는 사람은 영국 곳곳의 백화점 스크린에 게시할 광고를 촬영하고 싶다고 했다.
베스트 오브 쇼를 수상하게 했던 <예술가의 눈>으로 얻은 수입이 얼마였든, 무조건 그 세 배의 가격을 보장해주겠다고 했다.
“백화점 스크린이라면, 많은 사람이 보게 되는 광고인가요?”
“불특정 다수가 보게 되겠지만, 저희는 고급 브랜드입니다. 주로 부유층 고객들이 저희 광고를 접하겠죠.”
이미 광고는 세 번이나 해봤다.
게다가 비행기에서 얻은 영감을 쏟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광고였다.
애초에 브랜드나 제품 노출에 신분 제약이 있는 광고는 영감 표출에 자유롭지 않을 것이었다.
스펙터 클라크를 거절하자 다른 회사에서도 접근해 광고를 제의하고 들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들어보았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다.
한 여자는 런던의 타워브릿지와 빅벤, 테이트 모던에서 같이 아트버타이징을 해보자고 제안해왔다.
아버지는 테이트 모던이 특히 권위 있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하는 곳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전시회라는 건 잘 알겠지만, 이미 윈스턴 아트페어에서 현대미술을 한 번 해보았다.
당장 하고 싶은 건 영상이었다.
그 밖에 환경 오염과 관련된 공익광고, 중국 쪽 커피 광고 등 뒤이은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환경 오염 공익광고 건은 기업의 책임을 개인 소비자에게 뒤집어씌우는 뉘앙스가 강했고, 중국 커피 광고는 카산드라가 별로 좋지 않은 기업 평을 알려줬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리고 광고를 한다더라도 이곳, 북미권 회사 광고가 좋았다.
그곳에 이름을 알릴 기회로는 현지의 오퍼가 제격이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쯤 되면 노라가 찾아올 때가 됐는데……’
정작 기다리는 사람은 빨리 등장하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니 결국 줄을 길게 서게 되는군요. 이번엔 제 차례인가요?”
마침내 ‘노라 스미스’가 내게 다가왔다.
홈페이지에 대표 심사위원으로 큰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카산드라가 노라를 매우 반기며 안부를 물었다.
“소개해 드릴게요. 이쪽은 ‘드림캐쳐 스튜디오’의 필름 디렉터이자 저의 스승님이신 노라 스미스 교수님, 이쪽은 이번 뉴욕 어워드에서 한번에 3관왕에 오른 천재 예술가 윤예준 화가님이십니다.”
노라는 오랫동안 뉴욕 어워드의 대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깐깐한 성정이 남다르기 때문에, 뉴욕 어워드의 권위를 여태까지 지켜 오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일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 보았을 때의 인상은 매우 선하고 부드러웠다.
“안녕하세요, 스미스 교수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거 영광이네요. 작품은 잘 봤습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중복 수상을 앞둔 사람에게는 기준이 더 깐깐해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기준을 높여도 흠잡을 곳이 없었어요. 오히려 다른 작품들이 수상권에서 멀어졌죠. 1, 2, 3등 순서를 정하는 것도 너무 어려웠고요.”
이번 뉴욕 어워드에 대표 심사위원으로 참가했고, 이렇게 먼저 와서 인사까지 해주었다.
협업을 제안하려는 것이었다.
전에 나를 거절한 이력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내가 체면을 살려줄 차례였다.
“교수님께서도 영상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계시지 않나요? 혹시라도 제가 도와드릴 게 있다면 굉장히 기쁠 것 같은데요.”
“오……!”
노라가 기뻐했다.
“사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나 맡게 되었어요. 우리 드림캐쳐 스튜디오에서 말이에요. 매년 해오던 일이기는 한데,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노라가 뉴욕 어워드의 심사위원으로 있었던 덕분에 미국으로 직접 진출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어디든 활동하지 못할 곳이 없어야 했다.
오히려 목적이었던 노라의 드림캐쳐 스튜디오를 수단으로 삼아 미국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그래픽은 어떻게 작업하는 걸까.’
드림캐쳐 스튜디오의 의뢰를 수행하는 동안 그 궁금증은 쉽게 풀 수 있을 것이었다.
“제가 어떤 면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일단 그걸 먼저 알아야겠는데요.”
“기꺼이 알려드려야죠.”
노라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윤예준 화가님은 천재적이죠. 영상도 굉장히 뛰어나요. 특히나 베스트 오브 쇼를 차지한 <예술가의 눈>에서 느꼈어요. 편집의 힘은 프레임 전환에서 나타나는데, 그 전환을 하나의 프레임처럼 활용해낸 데에 많은 심사위원들이 미학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호평 감사해요.”
“그리고 회화 화가로서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림캐쳐 스튜디오와도 굉장히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실사화를 하지 않는 이상 그림 표현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게 되거든요.”
노라는 밤을 새우라고 해도 그렇게 할 것처럼 호평에 열을 냈다.
“두 분이 함께 일하신다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카산드라는 나와 노라보다도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좋은 마음으로 나와 노라를 연결해주려고 했던 인물이니 그럴 법도 했다.
더 고민할 건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뉴욕에 더 머물겠다고 말했다.
“그래. 비행기를 편도로 하기를 잘했네. 나도 예준이가 하는 일은 언제나 응원해. 그래도 조금 쉬었다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맞아요. 얼마 전에는 러시아도 다녀왔잖아요? 노라 교수님도 그 정도는 기다려주실 겁니다.”
노라는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는지, 특유의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급할 거 없어요. 언제 시작하든 영상은 질리도록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나는 급할수록 좋았다.
영상은 흥미로운 정류장일 뿐이지, 절대로 나의 도착지가 아니었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일단 숙소로 돌아갈게요. 그리고 내일 바로 찾아뵙죠.”
“네? 고작 하루 쉬시겠다구요? 입국도 오늘 하셨는데.”
“하루빨리 더 큰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경험을 쌓고 싶어요. 오늘 수상은 몇 번 나가서 트로피 받아온 게 전분데요, 뭐.”
현대 매체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단연 영상매체였다.
영상 예술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상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앞으로의 작품활동에 한계로 작용할 거였다.
다 접해본 뒤 작품활동을 해내려면 서둘러야 했다.
“경험이라면, 어떤 경험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노라가 물었다.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주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영감을 얻으려면 기술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하겠죠. 영상을 알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영상을 모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분명 다를 테니까요.”
사진이 나오기 전과 후의 그림은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판이하게 달라졌다.
거기엔 사진과 관련된 것이 단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영상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현재의 미술이 붓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다양한 사조가 나타나도록 했다.
그들의 기술을 전수받아 나의 예술을 현대적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낯선 게 무엇인지는 낯선 내가 잘 알아.’
낯선 게 보일 때마다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면 나의 예술은 점점 완성되어 갈 것이다.
***
‘놀이공원 ‘폐장쇼’ 공연이라……’
드림캐쳐 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는 ‘드림랜드’라는 놀이공원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했다.
드림캐쳐가 제작해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퍼레이드쇼가 한창 진행 중인데, 그 끝을 장식할 아트쇼를 제작하는 게 이번 의뢰 내용이었다.
“아마 저희 스튜디오 직원들과 호흡을 맞춰야 할 거예요. 그러니 일단 작업실은 사무실에 조성해두도록 지시했죠.”
직원들과의 호흡이라면, 그 또한 영상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었다.
처음 드림캐쳐 스튜디오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카산드라는 자신의 스튜디오가 드림캐쳐 스튜디오에 비해 눈에 띄게 부족한 부분이 바로 최고의 팀워크라고 했다.
팀워크를 중시한다더니.
말 그대로가 아닌가.
노라의 스튜디오는 로드아일랜드주의 해안가에 있었다.
나와 아버지는 노라와 함께 로드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기가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야. 주립공원이나 해양생태계도 잘 관리되고 있고, 휴양으로 좋아서 큰 맨션도 많이 들어와 있지.”
비행기에서 내릴 때 아버지가 이야기했다.
그 말 그대로 공항에서 빠져나와 얼마쯤 차를 타고 이동한 뒤엔 뉴욕과의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굉장히 한가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가장 작은 주라고는 하나 땅덩이가 커서 전부 살펴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것은 평화로운 기운이 풍경이 아니라 이곳 공기에 묻어 있기 때문이겠지.
“오. 슬슬 도착하겠군요.”
조수석에 앉은 노라가 말했다.
차로 다섯 시간이 넘도록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이었다.
완전히 외진 곳은 아니었지만 고층 빌딩은 별로 내다보이는 게 없었다.
“저기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이 바로 RISA대학교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노라의 설명을 따라 대학교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여러 건물들이 서로 다른 높낮이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바다에 인접한 대학이었지만 그리 바람이 강하게 부는 지역도 아니었다.
한국과는 기후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대학 재단 소유의 RISA 미술관이 있고, 또 바로 그 옆 건물이 바로 저희 드림캐쳐 스튜디오죠.”
노라의 소개가 끝나자 아버지가 설명했다.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RISA 미술관과 노라의 드림캐쳐 스튜디오 각각 순수미술, 영상예술 분야에서 알아주는 곳들이었다.
RISA 대학교 예술과 학생들이 선망하는 두 가지 진로가 바로 대학교 옆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미술을 연구하는 대학과 미술관이 인접한 영상 스튜디오라면 예술을 상업적으로만 다루지는 않는 곳일 확률이 높았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라 드리는 말씀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산업에 관련해서는 지상 최고라고 할 수 있어요. 드림캐쳐 스튜디오는 그곳 학생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종종 협업도 하는 관계에 있죠. 그만큼 수업 수준도 굉장히 높구요.”
때맞춰 노라가 덧붙였다.
이미 여러 애니메이션들을 통해 예술에 대한 시각이 어떤지 확인해보았지만, 한가로운 해변 풍경과 드림캐쳐 스튜디오를 함께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나름대로 괜찮은 첫인상이었다.
노라와 함께 스튜디오 내부로 들어갔다.
곳곳에 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캐릭터나 일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가장 대중적인 영상을 만드는 곳다운 작품들이었다.
안경이 없이도 자리를 옮길 때마다 모양이 변하는 그림들이 보였다.
너무 신기해 자세히 다가가 보았더니, 유리 재질의 판넬 위에 각도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판넬 안쪽에 그려진 그림들이 반복해서 비쳐 보이는 것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이던 직원들은 노라가 등장하자 모두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주목해주세요. 여기, 다들 아시겠지만 어제자 뉴욕 어워드에서 3관왕을 차지한 윤예준 작가님도 오셨습니다. 다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노라의 소개에 맞춰 인사하자 직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얼떨떨해하면서도 나를 환영해주었다.
소문이 아무리 많이 나더라도 실제로 어린아이인 나를 보면 믿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심지어 영상 쪽으로는 세계적인 천재인 RISA 학생들과 수많은 교류를 하고 있는 그들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윤예준 작가님이 제 제안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자, 자리를 알려드릴 테니 이쪽으로.”
노라가 나를 안내했다.
디렉터실과 가장 가까운 사무실이었다.
노라 말대로 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는데, 그 옆에 앉아 있던 한 중년 남성이 노라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독님 오셨군요.”
“네. 우리와 임시로 함께하게 된 윤예준 화가님입니다. 인사 나누세요.”
노라가 소개해준 사람은 드림캐쳐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바비 오스카’라는 사람이었다.
RISA대학에서는 그래픽디자인 전공의 주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반갑습니다. 함께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바비 오스카입니다.”
“윤예준입니다.”
그는 내게 악수를 권했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별로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노라의 언질에 의하면 작업 간 자주 상대하게 될 위인이라고 했는데, 여간 깐깐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함께 일하게 되었으니 서로에 대해 조금 알아볼 시간을 가져야겠네요.”
바비가 차가운 말투로 말하자 노라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뭐든 환영이지만 너무 학생 대하듯이 하지는 말길 바라요. 우리와 윤화가님은 어디까지나 고용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에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전설적인 커리어도 쌓고 오신 분이에요.”
시니컬한 말투와 인상의 바비가 바로 반박했다.
“제가 학생 대할 때 어떻다는 말씀이십니까?”
짐작해볼 수는 있었다.
인상대로 굉장히 깐깐한 교수겠지.
“이런 식의 협력은 처음이지만, 직장으로서의 드림캐쳐 스튜디오에서 동료들을 많이 겪어봤습니다. 다들 자기 PR에 능하죠.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제 것이 아닌 평가는 일단 신뢰하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소문이든 PR이든 결국은 남의 판단을 전해 듣는 셈 아닙니까?”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바비는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을 유심히 보았는데, 표정이 차가웠지만 적대감은 없었다.
천재를 대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보통의 동경이 그에게선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차가워 보일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드가처럼 괴팍해 보이기도 했다.
“머지않아 사람들과 같은 판단을 하게 되실 거예요. 바비 감독님도 영상 보는 눈은 비슷할 테니까요.”
내가 내 자리에 있는 컴퓨터 전원을 켜며 물었다.
친구가 생각난 김에 조금 도발해보았지만 바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부팅이 시작된 내 컴퓨터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모션 그래픽 작업물을 보는 게 가장 기초적인 평가 방법이겠지만…… 지금 당장 뭐든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윤작가님 작품은 충분히 봤으니까요. 좋은 작품들이더군요. 하지만 저는 작가님의 작품이 아니라 윤예준이라는 사람이 궁금한 겁니다. 윤작가님은 뭘 만들 수 있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뭘 만들고 싶은 거예요? 당신의 비전에 대해 좀 들어보고 싶군요.”
교수라고 하더니, 초면부터 학생 대하듯이 하는군.
말재주로 나를 평가하겠다면 훌륭히 지껄여줄 수 있었다.
단순 말재주가 아니라 예술적 철학에 대해 묻는 거라면
더욱 자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