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73화 (73/241)

73화. 감각의 부활을 위하여

리모델링이 시작되고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현재에게 연락이 왔다.

일섭의 집 공사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일섭의 집으로 향했다.

이번 실내 디자인도 어머니가 맡았다고 했다.

일섭의 집에 도착하니 일섭과 현재뿐만 아니라 공사에 참여한 어머니도 있었다.

일섭도 이번에 처음으로 리모델링 결과를 확인하는 것인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공간에 대한 요청사항은 모두 반영되어 있었다.

개수대도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전에 일섭의 작업실에 있었던 좌식 단상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와. 원래 이런 용도로 지어진 집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잘됐네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공간 활용이 굉장히 잘되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휴식 공간부터 시작해 작은 구역만을 차지하는 나선형 계단까지.

특히 계단엔 상시 조명이 들어가 있어 밤에도 걸음이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았다.

원목 자재가 많이 시도되어 있었는데, 편안한 느낌을 주는 조명도 인테리어에 큰 몫을 했다.

“이 디자인은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우리 집을 꾸밀 때보다도 더 큰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인사이트 투어를 떠났지.”

어머니는 전국 각지를 떠돌며 여러 화실을 보았고, 그중 학교 공간에 적용하고 싶은 부분을 따로 정리해 발전시켰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뛰어난 실력만큼 확실한 건 어머니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이전의 그 연립주택에 살 때보다 훨씬 낯빛이 좋고 젊어 보였다.

“그래도 일반 화실과 학교는 다르잖아? 그래서 그런 면에 치중했지. 어린아이들은 장난도 칠 테고, 선생님이 설명을 하기 위한 공간도 은근하게 분리되어 있어야 하고 말이야.”

학교 관리는 이야기했던 대로 일섭이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학장이 된 것이었다.

일섭은 목표 중 하나였던 후학 양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을 어떻게 운영하는 게 좋을꼬?”

제일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동양화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꼭 이곳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일단 할아버지의 작품들을 이곳 곳곳에 전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학교이자 전시장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요.”

“이 집이 학교이자 전시장이 된다니. 굉장히 큰 영광이구나.”

나는 이일섭의 특별 전시회장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한 폭의 그림을 떠올렸다.

<도약>.

당시 <도약>을 처음 봤을 땐 그 운동성에 대한 원초적인 들끓음을 느꼈다.

꿈을 실현시키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이었다.

“의견이 하나 있는데, 이 동양화관 입구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방문객을 처음으로 맞는 작품은 <도약>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정면으로 당당히요.”

“그거 좋구나.”

“그리고 현판엔 ‘도약’이라고 적어주세요. 도약은 작품명이자 건물명이 될 거예요. 그럼 모든 사람들이 이 건물을 ‘도약관’이라고 부르겠죠.”

***

나머지 일은 일섭에게 맡기고 우리는 현재의 건축사무소로 돌아왔다.

아직 지어야 할 건물이 훨씬 많았다.

“부지 매입은 지난번에 이야기 나눴던 대로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생각보다 이 지역 부동산 거래량이 많아서 부담 없이 팔아주더군요. 일대 정리만 끝나면 바로 건축에 들어갈 수 있어요.”

지금부터 바로 다음 건물 디자인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 이번에 저희가 번 돈이 얼마나 있죠?”

“케니 공모전에 이번 광고랑 원본 그림 가격까지 하면…… 70억 6천만 원 있네.”

그 정도면 고층 건물이라도 하나쯤은 더 지어 올릴 수 있었다.

“‘환생관’이라는 건물을 지어야겠어요.”

“‘환생관’이요?”

이번엔 나의 가장 첫 작품, <환생>.

일섭에게 영향을 받고 그린 이번 생 최초의 작품이자, 나를 알리는 계기가 된 감사한 작품이기도 했다.

“네. ‘환생관’에서는 미술품 복원에 관한 교육이 진행될 거예요. 복원기관이자 교육기관이기도 하죠.”

나는 <예술가의 눈> 공개를 기다리며 미리 디자인해놓은 ‘환생관’ 도면을 보여주었다.

“와. 이거 직접 만드신 겁니까? 포토샵으로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이번에 광고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어서요.”

현재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감탄하며 나의 도면을 돌려보았다.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신경을 쓰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감탄을 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해서 예술종합학교의 모습을 차근차근 갖춰나갈 거예요. 그럼 이 근처도 꽤 시끌벅적해지겠네요.”

“그렇겠네. 이일섭 화백님은 괜찮으실까? 완전히 대학가처럼 붐빌지도 모르는데.”

민제가 맞장구치며 물었다.

<이방인의 집> 공터에 집을 지은 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애초에 일섭도 예술종합학교 계획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쓰임’을 지속하는 게 바로 제가 원하는 건축이죠. 이 프로젝트는 그런 면에서 정말 즐겁습니다. 연희 씨도 마찬가지죠?”

“물론이죠! 바로 디자인 들어가야겠어요.”

어머니와 현재는 지칠 줄 몰라 했다.

“건축에 70억이면 충분한 거 맞죠?”

“물론이죠. 그 정도면 호화롭게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럼 거기에 남은 6천만 원까지 드릴게요. 그 6천만 원은 감각건축 몫으로 해주세요.”

나의 말을 들은 현재는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예? 아닙니다. 그 6천만 원이 의뢰비라면 너무 지나쳐요. 설계비의 10%만 주는 게 통상적인 의뢰비입니다.”

“잘 해낼 걸 믿고 선입금해드리는 거예요. 잘 부탁한다는 뇌물이기도 하구요.”

“아……”

현재는 결국 사양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일은 끊이지 않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현재는 공손히 감사 표시를 했다.

“70억 6천이면 이번 수익은 다 쓰는 건데, 괜찮겠어?”

아버지가 물었다.

“그 돈 다 김치 바꿔먹을 수도 없잖아요? 이런 데에 쓰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쓰임이죠.”

“정말…… 감동적이네요. 그런데 복원 교육이면 그 교육을 담당할 사람을 슬슬 구해야겠네요. 그건 제 능력 밖의 일인데. 디자인에 자문도 구해야 하고.”

갑자기 현재가 고민에 빠졌다.

한국의 복원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제야 문득 메건 베일리가 떠올랐다.

CEEA의 베테랑 복원가이자 복원만 가능하다면 어린아이에게라도 부탁을 주저하지 않는 사명감 뛰어난 위인이었다.

‘곧 은퇴라고 했었지.’

나는 전화할 곳이 있다고 말한 뒤 사무소를 빠져나왔다.

CEEA 명예 협회원증 수여식에서 받은 메건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동양화부터 서양화까지.

창작부터 복원까지.

메건까지 수락해준다면 예술종합학교 건설의 든든한 조력자를 대부분 얻는 셈이었다.

***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샐리는 긴 통로를 지나 미술관 한가운데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가장 넓은 중앙홀이었다.

평소엔 정적인 곳이었지만, 밤이 되면 종종 이렇게 파티가 벌어지곤 했다.

천장에는 여러 조명 장치들이 달려 있었고, 준엄한 표정의 DJ가 레코드박스를 바쁘게 만지며 사람들의 흥을 돋웠다.

하지만 음향이 크기 크지는 않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미술품 컬렉터들이기 때문이었다.

“아, 시끄러 진짜.”

하지만 샐리는 그마저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건축 관련 미술품을 모으는 걸 취미로 삼고 있기는 했지만, 이곳과 같은 파티 분위기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샐리는 미국 최대의 스털링 건축사무소 대표이사였다.

공항부터 미국 서부 신도시 계획까지.

이미 건축 분야에서는 세계 정점을 찍은 스털링이었지만, 샐리는 여전히 회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아무리 훌륭한 건물이라도 오래되면 무너지는 법이야.’

세계의 건축 이슈들이라면 모조리 꿰고 있었다.

투자 상황부터 사고까지 말이다.

취향도 아닌 이런 파티장에 그녀가 방문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다 그녀의 애사심 때문이었다.

컬렉터들과 작품 관련 정보만 주고받을 수도 있었지만, 한 가닥 하는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사업적인 연을 쌓는 것도 가능한 곳이었다.

‘중국 쪽으로 진출하고 싶은데, 어디 중국 공산당 관계자는 없나?’

스털링과 중국의 연은 굉장히 짧았다.

잠시 ‘상하이타워’ 건축을 위해 그곳을 간 적은 있지만, 건축이 끝나는 즉시 중국에서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샐리는 열심히 파티장 내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정,제,연예계 유명 인사들뿐이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라면 이 비밀 파티장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걸출한 미술품 수집가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돈이 굉장히 많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극동의 중국인을 찾으러 샐리가 이곳까지 온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뭐야. 쟤는 또 여기 있네.’

어둡고 정신없는 조명들 틈으로 샐리는 ‘샤를로트 로렌스’를 발견했다.

샐리와는 대조적으로 활발히 춤추던 샬롯은 샐리를 발견하고는 환히 웃었다.

“샐리!”

샐리와 샬롯이 백설공주로 한참 유명하던 아역배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다.

샐리가 바빠진 뒤부터는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제법 친한 편에 들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나도 미술품 좋아해.”

샬롯이 샐리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지금 미국에 스털링 건축 건만 해도 수백 건이잖아? 요즘 많이 바쁜 것 같던데.”

“다 내가 직접 진행하는 건축도 아니고. 그냥 다음 사업 준비해야 하는데 의뢰만 가만히 기다려서는 별로 재미가 없잖아.”

바쁘기로만 치면 샬롯도 샐리에게 격려해줄 수 있는 입장이 못되었다.

<시간을 거스르는 자>로 크게 성공하기 전에도 물론 영화 일로 바빴지만, 이번에 큰 성공을 거두면서 TV 출연으로 바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림 한 장 사러 먼 한국까지 다녀왔다는 기사는 더 이상 볼 일 없을 터였다.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진행시키며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샬롯은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윤예준이라고. 요즘 굉장히 핫한 한국 화가 작품이었어. 우리 영화에도 참여했었고. 내가 그 화가의 엄청난 팬인데, 갈수록 유명해지고 있어서 그림값이 장난 아니야.”

윤예준.

꽤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샐리는 비교적 최근에야 알았다.

뜬금없게도 건축 이슈를 조사하면서 말이다.

“아. 혹시 이번에 한국에서 착한건축물 건물주 비판했다는 그?”

샐리는 평소에 착한 건축에 대해 관심이 컸다.

사업의 확장을 위해서는 상업성을 따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그녀의 가슴 한편에 남은 욕심이 바로 그런 ‘착한 건축’이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알아보니 해당 건축을 진행한 ‘감각건축’이라는 건축사무소도 거대한 건축 건들을 여러 번 성공시켜본 대형 업체였다.

그런데도 큰돈도 안 되는 착한 건축에 시간을 쏟은 것도 모자라 건물주와도 꾸준히 다투고 있었다.

“알고 있네? 그 건물주가 한국 유명 연예인이라는데 잘못해도 한참을 잘못했지. 그래서 그쪽 다른 연예인들도 해당 연예인의 그 사기극을 비판하고 나섰대. SNS에 글 하나 올릴까 하다가, 외국 배우까지 나서는 건 너무 오바인가 싶어서 그만뒀어.”

“이제 와서 그럴 필요 있나? ‘감각건축’이라는 곳은 그 일로 평가가 꽤 올랐다는데. 그 정도면 사건 일단락된 거잖아.”

샬롯은 샐리의 말에 ‘감각건축’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이번 사건 관련해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윤예준에 대한 것만 관심 있게 봤으니 담당 건축사 같은 건 잘 기억하고 있지 못한 것이었다.

“아. 생각났다. 감각건축. 이번에 그 일로 연이 됐는지, 윤예준이랑 같이 학교 관련 프로젝트 들어갔다더라. 너도 혹시 관심 있어?”

“안 그래도 그쪽 조사를 좀 해봤…”

“하하. 아니다. 네가 관심을 가질 리는 없나? 하긴. 스털링이 어떤 회사인데.”

스털링이 협업하기에는 감각건축이 너무 작다는 말뜻이었다.

하지만 그들 사업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하이타워……’

사실 샐리는 착한 건축까지는 아니어도 감각건축의 현재와 같은 일을 한 번 겪은 적이 있었다.

바로 상하이타워 때였다.

중국 강남의 중심지이자 자유로운 해양도시인 상하이라면 평화의 상징물을 만드는 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타워 가장 높은 곳에 ‘Peace & Justice’라고 적힌 간판을 디자인해 걸어뒀다.

샐리 임의대로 말이다.

하지만 이후 건축을 중재한 정부 관계자가 ‘더러운 미제놈들’이라고 중얼거리며 그 간판을 떼라고 지시했다.

결국 그 간판이 걸려 있던 자리에 오성홍기가 들어가 박히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 간판만 해도 꽤 비쌌는데.’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까지는 아니더라도, 감각건축은 비슷한 문제를 이번에 한 번 돌파해본 것이었다.

샐리는 샬롯의 말대로 감각건축에 연락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돈이 안 되기는 해도, 건축가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해봐야 하는 게 바로 장애인을 위한 건축 아니겠는가?

그들이 어떤 자세로 사업에 임하는지 정도는 배워두고 싶었다.

‘한국 땅이 좁기는 해도 아직 진출하지 않았기로서는 중국이랑 마찬가지니까, 뭐, 어떻게든 이사진들을 구워삶을 수 있겠지.’

일단 중국 건은 좀 미뤄두기로 결정하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진 구워삶기.

사실 직접 뭘 어떻게 굽고 삶고 할 필요는 없었다.

스털링 건축사무소의 대표이사 샐리 스털링은 CEO 제임스 스털링의 외동딸이자,

차기 CEO로 이미 결정된 후계자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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