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착시인가 생시인가 (4)
일찍이 본사로 복귀해 마케팅에 힘쓰겠다는 숀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장대한 파장>으로 사진예술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윤예준, ‘케니’와 또 한 번 손잡아……]
[화제의 광고 제작사 ‘카산드라 스튜디오’ 윤예준의 첫 미디어 아트 선보일 예정…… 윤예준 관련주로 급부상]
[(속보) 윤예준과 케니의 미디어 아트, 삼성역 스퀘어 홀과 광고 계약 체결해…]
기사 덕분에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한 구청에서는 교통 정리 인력을 새벽부터 파견했다.
그럼에도 차량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하마터면 첫 송출 시간에 늦을 뻔했다.
카산드라와 직원들, 그리고 숀과 아버지까지.
아버지가 미리 예약해둔 카페에 모여 앉아 멀리 스크린을 내다보았다.
“여기도 충분히 먼 지점인데, 스크린은 굉장히 잘 보이네요.”
“먼 곳에서도 잘 보라고 만든 초대형 스크린이니까요.”
인도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기자들은 위태롭게 카메라를 들고 스크린을 촬영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미리 제공한 영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카산드라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지금부터 집중해야겠어요. 곧 시작이에요.”
한 명품 브랜드 광고가 끝난 뒤 화면 전체에 셔터가 깜빡였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곧바로 숨을 죽였다.
별의 명멸은 제대로 표현되었다.
중요한 건 별과 밤하늘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었다.
‘사물 간의 상호작용 중 가장 역동적인 건…… 역시 원근 배치지.’
사물 각각이 감상자와 얼마나 멀고 가깝게 떨어져 있느냐.
그들 중 가장 먼 것은 어디에 있고 가장 가까운 건 어디에 있느냐.
그게 정적인 사물에 역동감을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별은 언제나 착시를 불러일으키지.’
별은 각각의 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걸 실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모든 별이 기본적으로 멀리 있기 때문에 마치 평면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걸 다시 되돌려 놓는 거야. 착시지만, 엄밀히 말하면 포착이지.’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깔아둔 뒤 밝은 별을 그 위에 배치해 명멸시켰다.
그리고 특수 이펙트를 적용해 별에 양감을 부여했다.
그럼 별들은 마치 모빌에 걸려 있는 듯 서로 원근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밤하늘도 단지 검은 종이가 아니라 3차원의 실물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잘 보이는군.’
사람들을 압도할만한 큰 스크린 때문인지 기대했던 것보다 영상은 훨씬 좋았다.
곧이어 영상이 후반부로 치닫기 시작했을 때, 별들은 원근을 잃고 다시 평면에 맺힌 상으로 되돌아왔다.
동시에 눈매가 드러나며, 반전.
사람들은 내가 원했던 대로 영상에 완전히 몰입했다.
“우와!”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리는 순간에 화면엔 ‘YJ x 카산드라 스튜디오’라는 글자가 들어오며 마지막 연출이 등장했다.
바로 화면 전체에 행인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전광판 상단에 설치한 카메라에서 실시간으로 거리의 모습을 담아 영상에 덧씌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즐겁게 웃었다.
“이제 첫 공개가 끝났으니 케니 측에 영상을 전송하겠습니다.”
“네.”
카산드라가 영상을 전송하면 숀은 그 자리에서 바로 케니 사이트와 영상 플랫폼 계정에 업로드했다.
“이야, 마지막 그 CCTV 같은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 중 영상을 처음 본 유일한 사람인 숀이 감탄하며 물었다.
“고민이 많았죠. 하늘과 별에 입체감을 줌으로써 사람들이 예술가의 눈 안에 들어가 있는 체험을 하길 원했는데, 과연 마지막에 그 효과까지 넣어도 될지를 말이에요. 평소 같았으면 작품에 대한 불확신으로 여기고 그런 기교를 넣지 않았겠지만…… 이번 작품은 미디어 아트인 걸요. 활용 가능한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서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충격을 주고 싶었어요.”
과거 같았으면 어떤 도전이든 혹평 속에 놓였을 것이었다.
‘과거부터 잃지 않아 온 나의 패기가 현대에 이르러 잘 받아들여지게 되었구나.’
꾸준히 도전적인 시도를 추구하면서도 예술적 완성도는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화제성까지도 얻게 되었다.
이번 작품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다.
사람들은 영상이 끝난 뒤로도 떠들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라면 영상 예술가들에게 나의 이름을 충분히 알려지고도 남았다.
‘이 정도면 노라도 곧 연락해오겠지.’
***
‘굉장해!’
숀은 광고 영상을 업로드한 즉시 회사로 복귀해야 했다.
영상을 사내 인트라넷으로 공유한 뒤 소스를 잡아내 최대한 홍보에 활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회 수 모니터링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여러 플랫폼에 이번 영상이 게시되었다.
그 중 케니 계정에 업로드한 영상 조회 수는 하루 만에 304만을 돌파했다.
입소문이라는 게 있으니 이 추세는 며칠간 더 계속될 것이었다.
-삼성역 광고 새벽에도 하나요? 직접 보고 싶은데 시간이 안 나네…
-현장에서 보면 정말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아요.
-맞음. 마지막에 눈인 거 밝혀질 땐 뭔가 먹먹하면서도 뭉클함.
조회 수가 높았던 만큼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히 폭발적이었다.
전문 영상인들도 대단히 잘 만들어진 영상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영상예술 학회엔 관련 학술 논문이 무수히 게재되었다.
⌜공간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에 관한 영상 서사의 기법 연구 -윤예준의 <예술가의 눈>(2023) 속 성좌 배치를 중심으로-⌟
⌜윤예준의 옥외 광고에 드러난 평면성과 영원성의 알레고리 -영상 예술가가 상징을 얻어내는 방식에 대한 방법론적 고찰-⌟
“물이 들어오면 배는 자동으로 갈 텐데 왜 노를 젓나 했죠. 이래서 노를 젓는구나.”
일주일 뒤, 한 직원이 영상 업로드 전후 매출 동향을 분석한 그래프를 전달하며 말했다.
매출은 첫 발매 이후로 하락세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부터 바로 매출이 줄어들기는 한다는 뜻이었다.
케니의 신제품은 기록적이게도 출시 후 나흘간은 매진 행렬이었다.
예준의 작품이 공개되기 직전의 일간 매출이 첫 출시의 56%였는데, 영상이 공개되자 다시 100%에 가깝도록 매출이 치솟았다.
‘이 정도면 뭐…… 니치나 퍼미션 마케팅 없이 광고로만 물건을 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인데……’
사내 사업팀에 쌓인 데이터를 중심으로 제품 매출 전망을 계산한 뒤, 작품 공개 이후의 매출과의 차익을 비교하면 광고 수익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계산해낼 수 있었다.
‘차익만 200억……!’
매출이 아니라 순수 광고 수익만 200억이었다.
예준의 이번 작품이 케니에 200억을 벌어다 줬다는 뜻이었다.
“참고로 그 계산에 영상 조회 수에 따른 수익은 빠져 있습니다. 광고 영상들도 이대로라면 1억 뷰가 머지않았죠.”
여태까지 제품에 대해 특별한 하자 노이즈에 휘말린 적은 없는 케니였다.
매출 동향을 분석한 직원의 전망이 그대로 이행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다음 날 예준은 케니 본사를 찾았다.
계약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케니 입장에서는 숀이 물어온 계약 건이었기 때문에 최종 체결까지 숀에게 권한을 일임했다.
‘예준과 ‘카산드라 스튜디오’에 지원한 금액의 10배가 넘는 매출이 돌아왔어.’
그것도 낮게 잡은 계산이었다.
첫 광고가 가져다준 광고 수익까지 합하면 예준의 몫은 그보다 더 커졌다.
그러니 웬만한 요구사항은 모두 들어줄 수 있을 터였다.
예준에게 광고 매출을 솔직하게 공개한 뒤 수익 배분을 시작했다.
“우선 스퀘어 홀 쪽에서 계약금을 반값에 해줄 테니 한 달만 광고 게시를 더 연장해달라고 했다던데, 그건 어떻게 됐습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스퀘어 홀 같은 스크린이 국내엔 몇 없으니 이 기회에 최대한 오래 전시해야죠.”
이름은 이미 국내에 충분히 알렸지만, 작품은 지속적으로 노출시킬수록 좋다는 뜻이었다.
“자. 아무튼 수익이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전에 약속드렸던 5%도 맞춰드릴 수 있죠.”
숀의 말을 들은 예준이 곰곰이 생각했다.
“제 몫을 10%로 올리고 싶은데요.”
먼저 수익을 제안하고 든 건 예준이었다.
5%만 쳐줘도 많이 주는 것이었지만, 현재 이 계약의 갑은 미래의 사업 파트너가 될지도 모르는 윤예준이었다.
“흐..음. 그렇게 하시죠.”
“쉽게 동의하시는 걸 보니 유리하게 제안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정확했다.
“하하. 대단하시군요. 맞습니다.”
“뭔가요?”
“<예술가의 눈> 그림 원본 말입니다. 어디 공개하신 적 있습니까?”
예준은 ‘카산드라 스튜디오’ 직원들과 참고용으로 돌려본 게 다라고 했다.
“그럼 그 작품을 저희 회사에서 구매하고 싶습니다. 자사 브랜드에 꼭 맞는 그림이라 반드시 구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사장님께서 윤 화가님의 큰 팬이 되어버리셨거든요.”
사실은 윤예준 원작을 회사 로비에 걸어둘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테니.
그렇다면 ‘카산드라 스튜디오’와 함께 어엿한 윤예준의 관련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윤예준의 상승세에 안정적으로 업히는 것이었다.
“판매 생각은 아직 없었는데, 케니에 있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좋아요. 얼마에 사실 건가요?”
이번엔 예준이 먼저 값을 물어왔다.
“얼마 정도면 파시겠습니까?”
숀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광고 수익률을 5%에서 10%로 이미 올려줬다.
액수로 치면 10억 원 정도를 올려준 셈이었다.
<예술가의 눈> 원본 작품에 대한 회의도 이미 마쳐둔 상태였다.
회사에서는 가능한 한 30억 선에서는 구매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여의치 않을 경우 60억까지는 쓸 수 있지만, 60억이 넘어가면 협상은 끝내라고.
‘하지만 그건 너무 아쉬운 일 아닌가……?’
오랫동안 마케팅 일을 해온 숀으로서는 60억도 싸다고 생각했다.
광고 수익을 나누는 일 자체도 새로운 마케팅에 포함될 수 있었다.
<예술가의 눈>이 앞으로 또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원본’이라는 수식을 붙여서 이목을 끌려면 영상 작품도 충분히 알려져 있는 상태여야겠죠. 그래야 이 작품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 <예술가의 눈>의 영상 작품인 광고가 크게 성공했잖아요?”
“맞습니다.”
“상업적으로 적어도 50억 값은 할 것 같은데요?”
공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 때문에 간파당한 듯했다.
자신의 그림 효용을 눈치챈 예준은 꽤 높은 금액을 불렀다.
‘50억? 50억이라……’
회사에서 한정해둔 최대 가격 60억에서 수익률 5%를 올려 받아갈 10억을 제외하면 50억이었다.
하지만 예준으로서 회사에서 얼마를 보고 있는지를 알 턱도 없었다.
우연이겠지만, 그냥 우연 치고도 굉장히 신기한 우연이었다.
“50억 좋습니다.”
“오. 그런가요?”
숀이 대답하자 예준은 기뻐했다.
“그럼 50억으로 하죠.”
그렇게 50억에 계약을 마쳤다.
예준은 케니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을 챙겨갔다.
30억에 샀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차피 대여가 아니라 소장을 조건으로 하고 있으니 50억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다.
또 혹시 몰랐다.
무리해서 값을 낮췄다간 나중에 예준과 다시 함께할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었다.
이 협상에서 갑은 어디까지나 예준이었다.
***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에서 주식을 살피던 테레즈는 ‘카산드라 스튜디오’의 주가를 보고 크게 놀랐다.
마음을 가다듬고 뉴스를 찾아보니 예준과의 작품 협업이 성공했다는 기사들이 검색되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카산드라 스튜디오’. 대표 카산드라의 이름값 실현하나]
테레즈는 빠르게 ‘카산드라 스튜디오’와 바로크의 이율을 정리해 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산드라 스튜디오’ 주가가 많이 올랐군요?
예준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물어왔다.
“네. 지금 바로크에서 80%, 카산드라에서 40%. 그리고 제가 굴리고 있는 나머지 비율에서도 수익이 꽤 나서 총 수익률이 156%나 됩니다.”
투자로 유용하고 있는 자금이 총 511억에서 797억으로 훌쩍 뛴 것이었다.
처음에 바로크에 집중 투자를 했다면 이보다 더 뛰었을 터였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로 상한가인 것 같습니다. ‘카산드라 스튜디오’는 내실이 확실하지만 ‘바로크’는 빼야 할 때가 아닐까요?”
-’바로크’의 사업 확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믿어주시기로 했잖아요?
아차.
그러고 보면 그랬다.
현재 ‘카산드라 스튜디오’는 예준과 관련해서 주가가 치솟았다.
전문 투자자들은 곧 예준과 바로크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아낼 것이었다.
그럼 주가가 오를 일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이었다.
-지켜보세요. ‘바로크’가 앞으로 더 얼마나 뛰는지.
테레즈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건 그뿐이 아니라는 걸 방금 깨달았다.
‘바로크’의 첫 주가 폭등 때엔 예준의 물감 광고 노출이 있었다.
‘카산드라 스튜디오’의 이번 성장에는 마찬가지, 예준의 광고와 <예술가의 눈> 협업이 있었다.
그 모든 성장을 예준이 직접 이끌어냈다는 것이었다.
“설마…… 다음번에도 직접 움직이실 생각인 겁니까?”
예준이 조용한 말투로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