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착시인가 생시인가 (3)
웬만한 미술작품보다 예술적이고 웬만한 광고보다도 파급력이 큰 프로젝트.
직원들도 굉장히 의욕이 넘쳤지만, 기대가 큰 건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광고라는 게 얼마나 효과적이던가.’
오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 시스템이었다.
한 번의 광고를 통해 몇 기업 주가쯤은 쥐락펴락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예술가의 눈>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팀은 출근 즉시 회의실로 모여 스토리보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구상은 끝났어요. 그런데 삼성역 스크린에 맞춰 조금의 수정이 필요하겠죠. 제약이 뭔가요?”
내가 묻자 카산드라가 자세히 설명했다.
“사이즈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전용 카메라를 지원받아야 해요. 같은 화면을 편집하는 데에도 프레임을 여럿으로 나눠서 심혈을 기울여야 하죠. 굉장히 크고 화질이 좋기 때문에 영상도 조잡하면 바로 티가 나요. 하지만 그건 제작 감독들이 노력할 부분이고……”
카산드라가 설명하는 동안 팀원들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끄덕였다.
“윤 화가님이 신경 쓰셔야 할 부분은, 영상 길이가 20초여야 한다는 점이에요. 옥외 광고이기 때문에 소리가 들어갈 수 없구요.”
음향 감독이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역할은 옥외 광고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케니에 제공할 평면 영상에는 확실히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메인 작품에 소리가 들어가지 못한다면, 미안하지만 소리에 방점을 두어선 안 되겠군. 그리고 20초라……”
평생을 그려온 그림에도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시각에만 의존해 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림을 그리는 데에 능숙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초에 녹여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영상 구상을 구두로 설명했다.
처음엔 카메라가 등장해 렌즈 안으로 밤하늘이 비쳐 보이고, 밤하늘은 이후 렌즈 바깥 부분까지 환상적으로 확장된다.
그러다 갑자기 눈꺼풀이 내려앉으며 화면 전체가 가려지고 나면, 다시 눈을 떴을 땐 무수한 유성우가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좋은데요? 카메라가 눈으로 반전되는 느낌이 분명히 담겨 있어요. 머릿속에 벌써 그려지네요.”
카산드라와 직원들은 내 말에 호응해줬지만, 사실 내 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제가 생각한 건 밤하늘에 대한 입체적 표현이었어요. 별이 뜬 밤하늘을,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때의 유성우를 최대한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20초는 너무 짧죠. 눈을 감는 부분에 할애할 시간 같은 건 없어야 해요.”
직원들은 내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금방 대안을 내놓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이번 작품은 상품 같은 걸 팔기 위한 것도 아니고, <헤엄치는 고래>처럼 연속해서 틀어놓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네요.”
사실 반전의 순간을 눈 깜빡임으로 분절시키는 것에 조금 불만이 있었다.
카메라에서 눈동자로 반전되는 순간은 임팩트를 주되 은근해야 했다.
“눈꺼풀보다 움직임이 빠르면서도 눈꺼풀을 연상시킬 수 있는 게 뭐가 있죠?”
잠시 닫혔다 열리는 것.
빠르면 4000분의 1초까지도 단축되는 것.
바로 셔터였다.
“처음 영상이 시작되는 순간 셔터가 아주 잠시 영상을 가리고, 그 뒤에 렌즈를 보여주는 거예요. 렌즈는 스크린 속 가상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가, 조금씩 밤하늘에 섞이기 시작하면서 유성우가 나타나면 좋겠네요.”
이후 영상이 끝날 때까지 동공 모양이 조금씩 나타나다가 15초쯤엔 눈매까지 드러나는 것이다.
반전을 영상 전체에 폭넓게 녹여낼 방법은 그뿐이었다.
나는 카산드라가 제공한 스토리보드 서식지에 영상을 초 단위로 그려냈다.
아이디어를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도는 성공하고 있는 모양인지 카산드라는 내가 간단한 스케치로 스토리를 채워나갈 때마다 작게 감탄했다.
“시선을 너무 잡아끌어 버리면 교통사고 위험도 있으니 살살해야겠네요.”
카산드라의 농담에 직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
카산드라는 스토리보드가 완성될 때까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완성된 즉시 바로 영상 제작 기획에 들어갔다.
촬영감독은 로케이션 후보를 정해놓고 곳곳을 돌며 밤새 밤하늘을 찍을 예정이었다.
‘직접 촬영에 나서고 싶은데……’
<예술가의 눈> 제작이 확정된 직후 나는 밤하늘을 영상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먼저 고민했다.
여러 촬영 기술자들과 함께하는 작업이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제작의 중심에 있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편집은 <장대한 파장>을 촬영한 뒤 그림으로 옮겨 그릴 때 질리도록 활용해봤지. 더는 연습할 필요 없어.’
더군다나 이번 <예술가의 눈> 미디어 아트의 가장 결정적인 무기는 그래픽 연출에 있었다.
나는 떠나려는 촬영 감독에게 기본적인 요구사항 몇 가지를 전달했다.
“별을 잘 담아내면서도 별자리에 시선이 가면 안 돼요. 부탁드릴게요.”
“네. 촬영할 때마다 바로바로 공유드릴 테니 확인해주세요.”
촬영 감독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장비를 챙겨 회사를 떠났다.
그들이 첫 번째 사진을 보내올 때까지 나와 카산드라는 영상 제작 프로그램을 다뤄보았다.
“편집자들이 활용하는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것만 해도 ‘프리미어 프로’와 ‘에프터 이펙트’, ‘시네마 4D’, 그리고 ‘다빈치 리졸브’까지 다양해요. 각각 툴 사용법과 기능도 다르고 장단점도 있어서 모두 사용할 줄 알아야 하죠.”
카산드라는 프로그램별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활용하면서 동기화 작업을 병행하니 제작 속도가 느리고 효율적이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저희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하면서 필요할 때만 다른 프로그램을 동원하고 있어요.”
카산드라는 ‘Cassandra Unleashed(카산드라 언리시드)’라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설명한 마스크 효과나 트렌지션, 애니메이션, 크로마키, 3D 등 대부분의 기능이 있었고 성능도 제법 우월했다.
카산드라에 의하면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 투자한 금액의 대부분이 프로그램 개발에 쓰였다고 하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 프로그램 덕분에 다양한 영상 프로그램 기능들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 정도 확신과 추진력이라면 성장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
카산드라에 미리 투자해 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장점이 많네요.”
“그렇죠.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요.”
카산드라가 덧붙였다.
“이 프로그램을 다뤄본 직원이 없어서 신입사원 교육 기간이 상당히 길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영상 프로그램을 많이 다뤄본 사람들이라 대단한 어려움까지는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런 그들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화가님은 습득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시군요.”
“그런가요? 툴이 다양하더라도 장면을 구성하는 도구라는 점에선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카메라 기능 습득도 생각보다 빨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화가로서의 눈썰미 때문인 듯했다.
“아, 첫 촬영이 끝났나 봐요. 사진 하나 찍혔네요.”
카산드라는 촬영 감독의 공유 파일을 활성화했다.
강원도로 간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산까지 오른 듯했다.
“어떠세요? 굉장히 아름다운 밤하늘인 것만은 확실해 보이는데요.”
카산드라가 나의 심중을 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굉장히 잘 찍힌 사진이었다.
하지만 내가 참가하려는 건 사진전이 아니었다.
“촬영 감독님께 전화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카산드라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그녀는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감독님, 저 예준이에요.”
-네, 화가님. 사진 확인하셨나요?
“네. 굉장히 잘 찍혔더라구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이제 다른 스팟으로 이동하시나요?”
감독은 장비를 정리하고 이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다른 곳은 가보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대신 같은 위치, 같은 각도에서 한 컷만 더 찍어주시겠어요?”
-네? 사진에 뭔가 문제가 있군요?
감독은 문제점 이야기해주면 찍을 때에 참고하겠다고 했다.
“아뇨. 그래픽도 동원하는 만큼 별은 밝게, 하늘은 깊게 표현하고 싶어서 그래요. 감독님 지금 사진에는 별이 굉장히 아름답게 표현돼 있지만…… 그래서 밤하늘이 너무 밝아져 버렸어요. 노출 시간을 조금만 줄여서 밤하늘 사진을 확보해주세요.”
-아, 이해했습니다. 다시 세팅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카산드라가 놀라서 물었다.
“습득이 빠른 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응용 능력은 별개의 문제예요. 그래서 영상제작자는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불리는 거구요. 화가님은 이미 다 갖추고 계시네요.”
“별말씀을요.”
나는 카산드라 언리시드를 만지며 감독의 첫 사진을 곰곰이 보았다.
“같은 사진을 다시 찍는다면 빛이 명멸(明滅)하는 효과도 쉽게 넣을 수 있을 거예요. 합성으로 가능하죠?
“두 사진을 똑같이 배치한 다음 중간 프레임을 생성하면 중간 밝기의 사진이 여러 장 자동으로 생성돼요. 그것들을 일일이 신중하게 보정하면 충분히 실제 같은 가상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죠.”
말하는 순간 감독으로부터 두 번째 사진이 공유되어 왔다.
“바로 작업 시작해보죠. 그런데 어두운 밤하늘 사진은 어떻게 활용하실 생각인 거죠?”
“하면서 말씀드릴게요. 이번 기획의 비장의 무기가 될 테니까요.”
내가 미디어 아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최초 모티프가 바로 밤하늘과 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될 것이었다.
***
영상 제작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남은 건 기술자들의 밑작업뿐이었다.
나와 아버지, 카산드라는 여유를 가지고 삼성역으로 향했다.
이번 케니의 협조 덕분에 광고 주체가 3자로 바뀌었으니 계약 내용을 재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주차장을 찾아 차를 주차하고 함께 스퀘어 홀을 향해 걸었다.
지도를 확인하며 걷다가 스퀘어 홀에 다 도착했다는 알림 이후 고개를 들었더니, 숀이 영상으로 보여줬던 옥외 스크린이 눈에 띄었다.
“와!”
영상으로 보았을 땐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카산드라 스튜디오’의 스크린보다 적어도 열 배 이상은 큰 듯했다.
“저기에 제 작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네요.”
“그러게. 정말 어마어마하겠다.”
아버지는 주변 차량들과 상가를 돌아보며 웃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밀집 지역이었다.
“바로 스퀘어 홀로 가보죠.”
카산드라가 앞장섰다.
나는 그동안 스크린을 넘겨다보며 내용을 확인했다.
입체 스크린을 적절히 활용한 광고도, 그렇지 않은 광고도 있었다.
하지만 그 규모와 생생한 화질 덕분에 생동감은 거저 얻어졌다.
거기에 혼신의 힘을 쏟은 이번 작품이 게시된다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스퀘어 홀로 들어서자 양복 차림의 남성이 즉시 우리를 반겼다.
“아,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윤예준 화가님의 열렬한 팬인데,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내게 악수를 권했다.
다른 계약 건을 미루고 광고를 내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담당자이자 스퀘어 홀 건물주인 그는 앞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는 달리 계약에 대한 이야기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시켰다.
“영상은 다 제작이 된 상태입니까?”
“마무리 단계예요. 저 전광판 사이즈를 기준으로 작업했으니 퀄리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오!”
담당자는 감탄했다.
“그거 잘됐습니다. 이번 윤예준 화가님…… 아니 작가님 작품 계약을 준비하면서 저희도 기대가 많았거든요. 바로 지난주에 화질 성능도 업그레이드하고 마모된 스크린도 교체했으니 시너지가 대단하겠습니다.”
광고 퀄리티를 위해 스크린 보완 작업을 하겠다고 하니 기존 광고주들이 흔쾌히 공사 시간을 배려해주었다고 했다.
“20초짜리 영상을 하루 100회 노출하고 한 달 단위로 계약합니다. 월 광고비는 6000만 원인데, 이는 이미 케니 측에서 계산을 끝냈습니다.”
적정가격이었다.
카산드라는 계약 내용에 모두 사인한 뒤 내게 펜을 건넸다.
“정말 설레는군요. 광고 영상 퀄리티가 한 번 화제에 오르면 저로서도 얼마나 큰 이익을 얻게 되는지 여러분들은 모르실 겁니다. 광고주들이 반년 전부터 줄을 서기도 하죠.”
“최고로 많이 모이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카산드라가 물었다.
“스크린을 처음 설치했을 때였죠. 계약서만 쓰느라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기록도 조만간 깨지겠네요.”
“네?”
“다들 한 손에 돈다발 들고 윤예준 화가님 티켓팅을 준비하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