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64화 (64/241)

65화. 광고(光告) (4)

‘카산드라 스튜디오’에서 결과물을 전해 받고 광고를 공개하기까지 숀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시간이 죽도록 안 가는구나.’

빨리 신제품 출시 일정이 잡혀야 광고도 노출시킬 텐데.

이 정도 수준의 광고라면 홍보 대상인 신제품보다 광고 자체가 더 큰 인기를 끌지도 몰랐다.

카산드라도 예준의 작업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어느 때보다도 영상에 큰 힘을 쏟은 티가 났다.

‘내가 바랐던 모든 게 잘 담겼어.’

물감을 섞어 종이에 칠하는 예준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샘플을 제작할 때 바랐던 이상적인 결과물이 있었다.

숀은 예준의 작업의 현장성이 광고에 과감하게 담기기를 바랐다.

카산드라의 결과물은 완벽히 그러했다.

그렇게 광고 공개가 시작되었을 때, 인터넷 배너부터 시작해 모든 버전의 영상, 거기다 메이킹필름까지 일제히 사이트마다 게시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 광고는 250만 조회 수를 돌파했다.

합산한 게 아니었다. 개별적인 영상마다, 사이트마다 다르게 계산된 조회 수 각각이 모두 그랬다.

-케니 저번에 윤예준한테 호되게 당하더니 정신 차렸나 보네.

-와, 그림 개쩐다. 내 방에서 물감 냄새 나는 것 같애.

-촬영기사는 진심으로 놀란 것 같은데ㅋㅋㅋㅋㅋ?

-에이. 다 연기겠지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는 진심 놀람.

다른 영상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것들이 아니라면, 직접 게시한 광고들은 조회 수만으로 그대로 매출이 되었다.

조회 수는 광고비를 모두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큰 이슈를 불러오고 있었다.

광고 매출로만 따지자면 이전 광고의 600%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거, 해외 진출 염원은 이번 기회에 다 이루는 거 아니야?’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이미 지사를 설립하고 카메라를 팔고 있는 케니였지만, 아직 진출하지 못한 국가들도 많았다.

미국과 유럽이 그중 하나였는데, 영상 조회 국가를 보면 그들 국가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신상품은 발매된 즉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숀과의 회의에서 예준이 그렸던 그림의 반전모드가 카메라의 자매품으로 제공됐다.

그 사진의 원래 색을 맞추는 프로모션을 통해 몇몇 고객에게 상품도 제공했다.

광고 영상 속 윤예준의 카메라와 똑같은 물감 얼룩이 들어간 ‘윤예준 에디션’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었다.

영업부는 연일 파티 분위기였다.

여러 유럽 회사에서 헤드헌터들을 보내오는 바람에 사장은 사장 나름대로 두 번째 골머리를 앓아야 했지만 말이다.

-어때요? 이 반전은.

사무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이번 광고가 재생되고 있었다.

-카메라에 심오한 예술성도 담아낼 수 있을까? 당신만의 반전을 만들어보세요.

광고가 끝날 때마다 신난 직원들은 힘이 빠질 때까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여느 배우 못지않게 화면발을 잘 받은 예준의 개인적인 인기도 크게 치솟았다.

예준은 배우 데뷔를 안 하냐는 둥, 윤예준 에디션 모형이라도 팔아달라는 둥 문의 전화가 빗발치는 바람에 CS팀에서는 연일 죽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문의 전화 중 가장 인상 깊은 건 따로 있었다.

-메이킹필름에 나오는 바로크 물감은 광고 속 광고인가요?

-케니랑 바로크랑 자매 기업인가요?

내가 그림에 몰두하는 동안 ‘카산드라 스튜디오’ 직원들이 물감들을 더 사와 일일이 바구니에 짜주었다.

바로크 물감은 없느냐고 묻는 나의 모습과 더불어 구석에 쌓인 바로크 물감 튜브들이 화면에 조금 잡힌 모양이었다.

그렇게 바로크의 주가는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

“아, 예예…… 저희도 보고 있죠. 그런가요? 네,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케니에서 온 전화였죠? 뭐래요?”

“실시간으로 매출 계산하느라고 사람이 부족할 지경이래. 엄청 성공하고 있다나 봐.”

광고 결과물은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많이 봤다.

현장에서 본 그림, 카메라에 담아낸 그림, 그리고 광고 영상에서 본 그림이 모두 느낌이 달랐다.

특히 영상은 스튜디오의 모든 것이 영상을 위한 소품이었던 만큼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미디어 아트 작품들은 영상을 활용한 게 거의 대부분이었지.’

카산드라는 노라 스미스라는 영상 예술 상업화의 개척자에게 나를 추천하겠다고 했다.

그럼 사진부터 영상까지 많은 것들을 배워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사람이 미국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아빠. 이번 광고 미국에서도 한대요?”

“당연하지. 케니도 전 세계로 사업 규모를 확장할 욕심이 있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미국에서도 보고 있겠지.”

전 세계적으로 내 얼굴이 나오는 광고가 재생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숀의 말엔 과장이 없었다.

이 정도면 분명 기회가 찾아올 것이었다.

그때 나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테레즈였다.

전화를 받자 테레즈는 냉랭한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대뜸 물었다.

-한국에서 광고 찍으셨습니까? 저도 봤는데, 지금 인터넷에서 난리도 아니에요!

“아, 보셨어요? 광고 괜찮던가요?”

-괜찮다 뿐이겠어요? 광고에 있는 그림도 실물을 너무 보고 싶은데 한국 세트장에 있겠죠?

작품으로 치자면 광고 영상에 나오는 게 원본이라고 할 수 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지금 바로크 주가가 큰 상승 폭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망이 영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이익을 어떻게 내실 생각이었는지는 미지수였는데…… 이렇게 직접 나서서 주가를 올리는 데에 기여하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었다.

나는 그저 바로크 물감의 질이 정말로 좋기 때문에 그걸 썼을 뿐이었다.

대신 광고 촬영이 끝난 뒤 <헤엄치는 고래>를 보며 테레즈에게 ‘카산드라 스튜디오’의 주식도 매입해달라고 전했다.

그건 호재를 예상하고 한 부탁이었다.

“저번에 부탁했던 ‘카산드라 스튜디오’는 어떻게 됐나요? 거기도 꽤 올랐죠?”

-이번 광고 제작사로 알려지면서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바로크만큼은 아니지만, 수익률이 최상위예요.

잘된 일이었다.

<헤엄치는 고래>를 만든 카산드라가 경영하는 스튜디오라면 미디어 아트 쪽으로 전도가 유망한 기업이었다.

예술에 대한 발전적인 욕망을 끝내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로크와 상통하는 데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주식 매도 시점을 상의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그 광고는 다 공개된 겁니까? 아니면 숨겨진 영상이 더 있나요?

테레즈가 설명했던 투자 요령 중 고점 매도 원칙을 떠올렸다.

해당 주식이 가장 비싸다고 생각되는 때에 파는 게 기본이라는 뜻이었다.

테레즈는 그게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지금 파실 생각이라면, 조금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네? 숨겨진 영상이 더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었다.

“주가가 뛰고 있다는 건 아마 다른 투자자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건데, 바로크의 진가는 지금부터일 거예요.”

-아……

테레즈는 고민하는가 싶더니 금방 인정했다.

-하시는 말씀이 맞습니다. 바로크에 대해서는 윤 화가님의 선택이 맞았던 게 증명됐으니, 저도 바로크를 믿어보겠습니다. ‘카산드라 스튜디오’도 마찬가지구요.

***

아버지는 오랫동안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예준아. 너한테 걸려온 전화다.”

나한테 걸려왔다는 전화 덕분에 그제야 휴대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누구인데요?”

“바로크에서 온 전화야. 테레즈 회계사님이 내 번호를 전달해주셨대.”

아무래도 이번 주가 문제로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뜨거운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네, 윤예준입니다.”

-바로크의 막스 밀리엄입니다. YJ 윤예준 대표님 맞으십니까?

막스는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막스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격앙되었다.

-이번에 찍으신 광고 정말 잘 봤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메이킹 영상에서 써주신 저희 제품 덕분에 굉장히 큰 관심을 받게 됐는데, 감사 인사라도 직접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아니에요. 질 좋은 물감이 있어서 광고가 성공한 건데, 제가 감사드려야죠.”

-아…… 그렇게 말해주시니 정말 기쁩니다. 사실 지난번 투자 때에도 만나 뵙지를 못해서, 이번엔 한국으로 찾아뵐까 했는데, 작품활동으로 많이 바쁘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실례 무릅쓰고 전화라도 직접 드린 겁니다.

광고 하나의 성공으로 제품 제작사와 광고 제작사, 그리고 바로크까지 엄청난 호재를 경험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막스의 감사 인사까지 직접 들으니 체감이 되었다.

“이번에 주가가 많이 올랐던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기회가 된다면 그 점에 대해서도 직접 설명해드리려고 했습니다. 앞서 대표님 투자를 받은 뒤엔 파이프라인을 착공하기 위한 자본금을 모을 생각입니다. 우선 다른 화학 산업에 뛰어들겠지만, 그건 모두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재료비를 낮추는 게 목적이에요. 사업을 잘 번창시켜 목표를 한번 이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막스의 계획은 구체적이고 분명했다.

그의 목표는 지금보다도 더 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은 낮은 물감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물감만 팔아서는 물감을 개발할 비용이 쉽게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을 응용하여 여러 화학 산업에 뛰어들어 자본금을 불릴 생각이었다.

-화가는 물감이 없어도 그림을 그리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감값이 지금보다도 더 싸진다면 집집마다 물감이 구비되어 있을 것이고, 그럼 많은 사람들이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가지게 될 겁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창작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저희 바로크의 꿈입니다.

화가는 물감이 없어도 그림을 그린다.

물감이 없어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화가들을 나는 몇 번 봤다.

지금이야 물감이 많이 싸진 편이라 그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옛날엔 흔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한 가지 이상의 색을 구해내 그림을 그리고야 말았다.

가난을 감수하고 창작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네, 좋네요. 앞으로 더 좋은 물감이 나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물감을 만드는 데에 대한 막스의 철학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테레즈의 말대로 여러 산업으로 손을 뻗는 기업은 실패하기 십상이었다.

그건 산업 분야를 다양화하면서 그 기업이 목적성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스의 바로크는 달랐다.

어떤 산업으로 진출해서 얼마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든, 그의 목적은 바뀌지 않았다.

질 좋은 물감을 값싸게 제공한다는 그 목적 하나라면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막스와의 통화가 끝난 뒤 다시 테레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바로크로부터 연락받으셨습니까?

“네. 투자 비용을 좀 수정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테레즈는 예상했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아직 비중이 20% 상태죠?”

-네. 꽤 비싸진 상태인데, 더 매입합니까?

“네. 50%로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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