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반전 (3)
심사장에서 뛰쳐나간 심사위원들은 결국 시게루가 1등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스오가 술수를 부리고 있다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한참을 빗겨나갔다.
심사위원 평가는 그들이 원했던 대로 발표되었고, 결정권의 50%를 가지고 있는 온라인 투표 결과도 윤예준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3일간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선 윤예준의 <장대한 파장(Grand Spectrum)>이 무려 438000표를 받았다.
전체 표의 95%에 해당하는 득표수였다.
니시다 시게루의 <냉정>은 순위권 바깥을 머물렀다.
그리고 윤예준의 <장대한 파장>이 압도적 1위였다.
결과가 발표된 즉시 야스오는 니시다 의원의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 아들놈이 순위권에도 들지 못하다니. 한국 측 기업이라고 뭔가 부정한 청탁이라도 있었던 거 아닙니까?!
95%라는 전설적인 기록에 야스오도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부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부정한 청탁은 니시다 의원에게서 들어오지 않았던가.
“온라인 투표결과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부디 그 결과를 참고해주시지요.”
-그건 비전문가들의 의견이잖습니까!
니시다 의원은 버럭 소리쳤다.
고작 아들이 상 하나 타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열을 낸단 말인가.
‘제 권력 센 줄 알고 있으니 괜히 힘자랑하는 거지….’
학장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니시다 의원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었다.
사진 예술가이자 포토그래퍼로도 활동했던 야스오는 알았다.
윤예준의 그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를.
학장 지위를 볼모로 그런 작품을 부정하게 떨어뜨려야만 한다면……
야스오는 더 이상 그걸 원하지 않았다.
“심사위원들 의견도 똑같았어요. 단 한 사람도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아드님의 작품은 윤예준 작품에 미달돼도 한참을 미달됐습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심사위원장에서는 왜 그리 애썼단 말인가.
야스오는 스스로를 비웃다가 이내 깨달았다.
‘그래. 그땐 윤예준의 작품을 제대로 볼 생각조차 안 했지.’
***
‘케니’의 최고마케팅책임자인 윌리엄 숀은 공모전 사이트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압도적인 표를 받아 1등 차지한 작가의 이름 때문이었다.
‘윤예준이라면 유럽에서 가장 핫한 한국인 화가 아닌가?’
프랑스의 바티뇰 거리에서 예술 혁신을 일으켰고 필립의 신작 영화를 흥행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위작 감정에 <3월의 탄생> 판매까지…. 광고 모델로는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진작가가 아닌데……’
놀라운 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포토그래퍼보다도 포착에 능했고, 어떤 표현주의 화가보다도 감정 표현에 능했다.
‘설마하니 사진에서까지 뛰어날 리는 없지. 그냥 동명이인인가 보군……’
숀은 예정대로 광고 모델 제안을 위해 윤예준의 출품 신청서를 확인했다.
메일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상 사실과 시상식 일정, 장소는 유선으로 통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네, 여보세요?
그때 전화가 연결되었다.
의심의 여지 없는 성인의 목소리였다.
역시나였다.
“케니 공모전의 윌리엄 숀이라고 합니다. 혹시 윤예준 님 맞으십니까?”
동명이인이었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조금 실망한 상태로 묻자 전화를 받은 수상자가 말했다.
-아, 저는 매니저입니다. 본인을 바꿔드릴까요?
“네? 매니저라면……”
-예준이 아빠입니다. 예준이가 아직 어려서, 진짜 휴대폰 번호는 잘 공개하고 있지 않거든요. 뭔가 전달할 소식이 있으신 모양인데, 바꿔드리겠습니다.
수화기 먼 곳에서 ‘예준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 한 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 유명한 윤예준은 11살이라고 했는데, 전화를 받은 이도 11살짜리 아이의 목소리였다.
차분히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다시금 떨리기 시작했다.
“혹시…… 이번에 퓌트니에서 복원 성공하셨다는 그 윤예준 씨입니까?”
저쪽에서 돌아온 답은, ‘그렇다’였다.
이건 숀에게 엄청난 기회였다.
모든 예술 브랜드에서 못 데려가 안달인 리틀마네 윤예준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번 일로 예준은 숀이 찍을 광고모델로 발탁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전화로라도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케니 공모전’에서 1등을 수상하게 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시상식 일정과 장소는……”
숀은 침착하게 안내 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머릿속은 한 가지 질문으로만 가득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인지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공모전 1등 수상자에게는 케니 브랜드 광고 모델 특전이 주어집니다. 촬영 일정은 윤 화가님 등교에 맞춰드릴 수도 있고요.”
-그림을 그려야 해서 학교는 다니고 있지 않아요. 기존 일정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으니 공유해주세요.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으로 알고 있는데, 그의 부모가 어떻게든 수를 쓴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든 촬영을 생각보다 빨리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숀은 마음속으로 깊은 쾌재를 불렀다.
***
숀이라는 담당자에게 전달받은 시상식장은 서울의 케니 본사 안에 있었다.
어머니는 이곳이 유명한 브랜드라고 했는데, 본사 건물에 와 보니 그 말이 실감되었다.
입구 앞에 서서 옥상을 올려다보면 고개가 아플 정도로 높은 건물이었다.
온통 유리만 드러나 있는 건물은 전면이 타원형으로 조금 굽어 있었다.
그 표면에 하늘의 구름이 비쳐 보이니 보고 있자면 탁 트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자, 들어가 보자.”
“네.”
케니는 로비에서부터 복잡했다.
방문자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 1층 로비이기 때문인지 케니 카메라 역사관 같은 시설이 조성되어 있었다.
옛날식 고전 카메라부터 필름 카메라, 디지털, DSLR, 미러리스, 신형, 응용 카메라까지.
아버지와 함께 역사관을 구경하고 있으니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친절하게 물었다.
“시상식 일로 와주셨군요.”
“네. 그런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요. 여기 좀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역사관 내부는 마치 박물관 같았다.
“최초의 사진은 1826년의 것이지만,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839년의 은판사진술 이후부터입니다.”
직원은 카메라가 발달해온 역사를 개괄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소개의 끝은 현대의 카메라 업계에 1위 기업인 ‘케니’가 가지고 있는 사명감에 대한 역설로 장식되었다.
사진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어 왔지만, 그게 대단히 상용화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프로 화가가 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화가들이 걱정해왔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제법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카메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카메라가 상용화되면 화가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고 겁을 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반만 맞는 소리였다.
상용화에는 성공했지만, 화가들이 길바닥에 나앉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저희가 개발한 카메라는 보시다시피 많은 사진작가들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매년 공모전을 개최하고 자체적인 지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죠.”
직원이 가리킨 곳에는 상금 피켓을 들고 환히 웃고 있는 사진작가나 촬영 교육을 받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여러 장 게시되어 있었다.
사진 예술.
카메라로 완전히 실제 같은 표현이 가능해진 시점에서, 나는 거기 담기지 않는 인상 표현에 초점을 두었다.
나의 화풍이 받아들여진 데엔 카메라에 대한 반발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었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아직도 이런 일상적 풍경을 담아내는 데에도 몇 시간을 투자해야 했겠지. 화가에게 비싼 돈을 내면서.’
게리가 했다던 포토 페인팅을 포함한 다양한 사진 예술도 등장했다.
현실의 것을 그대로 찍으면서도 예술적인 표현이 가능한 사조들이 카메라로 인해 나타나기도 했다.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카메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더 배운다면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
시상식장은 마치 결혼식장처럼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듣기로 수상자는 3등까지 총 세 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거대한 원형 테이블이 열 개 이상은 되었다.
“자리에 이름이 쓰여 있네.”
아버지가 테이블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굉장히 많은 양의 다과가 놓여 있는 와중에 ‘윤예준 외’라고 적혀 있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저긴가 봐요, 아빠.”
나와 아버지는 그곳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인을 열 명은 데려와도 되었을 법했다.
시상식장 가장자리에 모여 선 기자들은 요란하게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고, 심사위원으로 보이는 이들은 이쪽을 쳐다보며 속삭였다.
“어? 윤예준이다!”
기자들 중 한 명이 외치자 모든 관심이 완전히 내게로 집중됐다.
“어? 그러고 보니까…… 수상자 윤예준이 바로 그 윤예준?!”
수상자 명단을 볼 땐 동명이인이라도 되는 줄 알았던 것인지, 기자들은 내 얼굴을 직접 확인한 뒤에야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번 작품은 어떤 계기로 출품하게 되신 거예요?”
“사진 작품은 처음인 것 같은데, 원래 촬영도 하셨습니까?!”
기자들의 질문 세례엔 이제 익숙했다.
“곧 시상식이 시작됩니다. 수상자 및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지정된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발음이 정확한 한 여성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기자들은 조금씩 흩어졌다.
곧 ‘케니’의 회장이 나와 개회사를 진행한 뒤 바로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고지마 야스오라는 일본인 심사위원장이 마이크를 전달받아 수상자를 호명했다.
호명은 3등부터 역순이었다.
심사위원장은 상을 줄 때마다 작품의 장점에 대해 언급하며 찬사를 늘어놓았고, 수상이 끝나면 수상자에겐 소감을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와. 예준아. 너 저런 거 준비해왔어?”
“아니요. 그래도 수상 소감은 수상을 해본 뒤에나 느껴지는 거 아니겠어요?”
내가 대답하자 아버지는 소리를 낮추며 큭큭 웃었다.
“자, 마지막으로. 1등. <장대한 파장>의 윤예준 작가님 모시겠습니다.”
3등과 2등 수상자가 그랬듯 나도 조용히 일어나 단상 위로 일어나려는데 심사위원과 사진작가, 기자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힘찬 박수를 보내왔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지체하지 않고 걸어나갔다.
“작품 대단했어요!”
“축하드려요!”
미리 알지 못해 못 데려온 지인들이 도처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단상 위로 올라가 심사위원장 앞에 섰다.
그가 상을 들고 있는 동안 안내를 맡은 여성이 상의 내용을 대독했고, 그가 내게 상을 완전히 건네면 작품 품평이 시작되었다.
“에또……”
심사위원장은 일본어로 감평을 늘어놓았다.
그동안 안내원이 일본어를 동시통역했다.
“요즘 들어 고평가받는 작품들은 대개 과히 예술성에만 치중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사진작가들도 충분히 대중성 있는 활동을 해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기쁘게도 이번엔 그러한 작품에 영광의 1등상을 수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윤예준 작가가 출품한 사진이 사진 예술계에 창작 다양성과 문화적 파급력을 불러일으키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의 찬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짧은 것은 둘째로 치고, 찬사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평가였다.
‘예술적이지 않았다 이건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발언 기회는 당장 내게도 주어졌다.
나는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기 위해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 섰다.
내가 서자마자 기자들 여럿이 손을 번쩍 들었다.
심사위원 중에도 손을 든 이가 있었다.
‘정말로 내 작품에 예술성이 없다면 왜 진작 심사위원들은 대중적인 작품에 표를 주지 않았지?’
심사위원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나는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궁금해 먼저 발언권을 줬다.
“네. 방금 심사위원장께서 하신 감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직감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느낀 심사위원장이 안내원을 불렀다.
“뭐…… 말씀하신 대로 사진 예술계에 창작 다양성을 불러일으키고 싶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대중성 있는 작품에 상을 줬다는 발언은요? 당연히 차이야 있겠지만, 작가님을 조금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으셨습니까?”
거기까지 들었을 때에야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 격론이 있었고, 그중 심사위원장만이 유일하게 내게 낮은 점수를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심사위원이 내 작품을 지지하니 설득하지 못하고 이렇게 시상식장에서 생떼를 쓰는 것이었다.
“심사위원장님께서 해주시는 평가인데요, 뭐. 받아들여야죠.”
질문을 해온 심사위원은 나의 답변에 심사위원장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심사위원장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렇게 금세 부끄러워할 거면 왜 배짱을 부린 거지?’
궁금하면 캐내야 할 것이었다.
“그래도 하나 정정하고 싶은 건 있네요.”
“아, 네. 뭡니까?”
“심사위원장님께서 아까 ‘윤예준 작가가 출품한 사진’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말이에요.”
심사위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종 플래시를 터뜨리던 기자들도 조용해졌다.
“제가 제출한 작품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었습니다.”
“뭐라구요?!”
심사위원들은 경악했다.
안내원의 통역을 들은 심사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왜들 그러세요? 모르셨던 것처럼.”
전생의 나는 정통 화가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주의적으로 그리는 데에도 능통했다.
조금만 혼신의 힘을 쏟으면 ‘극도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가능했다.
나의 사진 표현에 새로운 시도를 가미하기 위해 그날의 사진을 왜곡해서 다시 그린 것이었다.
“빛의 파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그림이라는 걸 모르셨을 리는 없죠.”
마지막으로 심사위원장을 돌아보았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사진 같아 보여도…… 예술가 눈에는 아닐 테니까요. 그렇죠?”
심사위원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 반박하지 않는 걸 보니 그 또한 알 만했다.
심사위원장은 오히려 기자들을 의식하고 그런 발언을 한 것이었다.
‘방금의 발언이라면 여론의 뭇매가 강할 텐데.’
여론보다 더 무서운 것.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