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56화 (56/241)

57화. 불후의 명작 (3)

익일 수많은 복원가들이 퓌트니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모여들었다.

복원가들은 그림을 면밀히 살피며 복원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미국에서 다급히 찾아온 관장에게 상황 설명을 마친 큐레이터가 죄인처럼 보관고로 들어왔다.

기존 위작 소유자는 더 이상 전시회장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작임이 들통났으니 슬슬 몸을 사려야 할 것이었다.

큐레이터는 복원가들과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내게 속삭였다.

“위작이라고 알려주셨습니까?”

“아직이요. 저분들이 어련히 알아낼 수도 있으니.”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들은 복원 작업에 필요한 국내의 설비를 대여하기 위해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던 큐레이터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왜 그러세요?”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직도 유황 냄새가 나다니…… 그야말로 불후(不朽)의 명작 아닙니까?”

이미 그 냄새 자체만으로도 위작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큐레이터는 내내 착잡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결국 복원가들은 복원을 시작하려 작품의 정확한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복원하기 전에 가지고 오신 장비로 검토 먼저 해주시죠.”

내가 영어로 그들을 말리자 복원가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윤예준 화가님. 그런데 장비로 검토를 먼저 하라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어제 큐레이터와 아버지에게 했던 설명을 그대로 전하자 그들은 저마다 작품의 냄새를 맡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지었다.

“그림을 보면 너무나도 완벽한 위작인데, 이 냄새가 너무 뻔해서 오히려 안 믿기는군요.”

모두가 작품의 위작 여부에 동의했다.

덕분에 그다음 날부터 매우 바빠지기 시작했다.

전시회 연기 관련해서 계속 상황을 공유하고 있던 한국 전시회 측에서는 이 일을 모두 언론에 공개했다.

그렇게 윤예준의 이름이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필립의 아트 전시회에서 복원쇼 선보인 천재 화가 윤예준, 또 일내다. 이번엔 위작 여부 감정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

-‘리틀 마네’로 유명했던 한국의 신인 화가 윤예준(11)이 진정한 시대 복원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얼마 전 파리의 ‘윈스턴 크리스탈 아트 페어’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화가’ 게리 윈스턴을 제치고 작품을 최고가로 판매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었다. 특히 파리 17구 지역의 거리 예술가들에게는 그의 명성이 진작에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위작 여부를 감정한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전설적인 역량을 보이고 있는 윤예준의 다음 행적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후략)…

내가 알기로 베르메르는 위작이 유독 많은 화가였다.

위작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운 경매장을 방문해 자신의 그림을 재감정받기 위해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자신의 것이 원작이라면 수백억 원의 부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과 관련한 대부분의 전화는 아버지가 처리했다.

유럽 미술계에 아버지의 연락처가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전화를 붙잡고 있던 아버지가 진이 다 빠진 듯 숨을 돌리는 사이 물었다.

“왜 아빠가 그렇게 바쁘세요? CEEA 같은 감정 기관에 보내면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예준이 너처럼 유사도를 높일 수 있는 위작 작가일 경우도 배제할 수 없어서 그 일을 계기로 더 세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등록된 의 원작 정보가 퓌트니 비엔날레에서 소장 중인 바로 그 위작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들여오기 직전에 바로 그 작품을 원본으로 삼아 최신화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유사도의 기준이 되는 원본부터가 위작이었다는 뜻이었다.

유황 냄새 같은 확실한 증거가 아니었다면 위작 의혹조차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덕분에 장피에르 경매장에서도, CEEA의 메건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미술관과 경매장에서 한국으로 작품들을 보내왔다.

위작 검토를 하다가 도저히 난해한 것들을 추려서 말이다.

마침내 큐레이터의 연락을 받고 다시 퓌트니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향했다.

작품을 기다리는 동안 전시장엔 감정실과 복원실이 조성되어 있었다.

큐레이터는 나를 감정실로 불렀다.

“총 열 작품입니다…… 이번에도 부탁드립니다.”

큐레이터는 며칠 새 많이 야위어 있었다.

자신이 원본을 훼손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난 동시에

일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었다.

나는 큐레이터와 해외 감정사 다수가 모여 있는 감정실 중앙에 섰다.

모두 똑같은 크기의 똑같은 작품들이 길게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즉시 다섯 작품을 걸러냈다.

색깔을 정확히 똑같이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청금석을 직접 빻아 사용했을 때의 미묘한 질감까지 아는 화가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없을 것이었다.

내가 제외한 다섯 개의 작품들은 현대에 가공된 낯선 청금석을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이윽고 세 작품을 추가적으로 제외시켰다.

청금석이 조금 섞여 있기는 했지만, 비율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베르메르가 그렇게 울트라마린 색을 허투루 쓸 리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단 두 작품.

내가 제외한 위작들은 조용히 복원실로 옮겨져 다른 감정사들의 검토를 받았다.

결과가 달라질 리는 없었다.

그들의 검토 내용이 나의 감정과 다르다면, 그 감정사들의 역량을 재고해야 할 것이었다.

모두가 숨죽였다.

나는 이제 네덜란드에 방문했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어차피 위작이란 속이기 위한 것이다. 원본과 의도가 달랐던 이상 흔적이 남지 않았을 리는 없어.’

나는 모작을 고려하며 이 작품을 자세히 살폈다.

벽에 있는 작은 흠집마저 모두 같은 자리에 똑같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감정 끝났습니다.”

“정말입니까? 고생하셨습니다! 둘 중 무엇이 원작입니까?”

내가 말하자 여러 복원가들과 큐레이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두 작품 모두를 마지막으로 한 번씩 확인한 뒤 말했다.

“두 작품 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중엔 진품이 없어요.”

전생에 암스테르담에서 보았던 속 테이블의 작은 흠집이 이 작품들에는 없었다.

***

원본이 아예 안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위작으로 밝혀진 작품이었다.

어찌 보면 여전히 위작일 확률이 높은 작품이었는데도 말이다.

‘원본 작품으로 등록된 게 위작이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지.’

어쩌면 를 포함한 페르메이르의 공백기 작품 전체를 재검토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인터넷에서는 연일 페르메이르와 나에 대해 떠들어댔다.

-요즘 문화계 뉴스 왜 이렇게 재미있냐.

-현실판 바람의 화원인데? 그림으로 추리까지 하잖아.

-그냥 윤예준이 그려주면 안 됨? 어차피 똑같이 그린다잖아.

-님 댓글은 자삭하면 안 됨? 어차피 실속이 없잖아.

나는 계속 검토할 만한 작품이 전달될 때까지 퓌트니 비엔날레의 감정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도 차라리 집보다는 전시회장이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경찰보다도 인근을 열심히 살폈다.

“이참에 다른 작품들까지 위작 검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큐레이터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이 사건이 일단락된 이후에 진행하지 않겠습니까?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전 세계 미술관이 이 일로 난리이니까요.”

“그럼 그 중 공식 감정협회에 등록된 원본 이미지를 좀 볼 수 있을까요? 미리 좀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큐레이터는 작품용 스크린을 태블릿에 연결한 뒤 화면을 켰다.

“최고 화질과 해상도의 장비이긴 합니다만, 당연히 진짜를 보는 것과는 느낌이 영 다를 겁니다.”

그는 우선 를 표시했다.

“아, 이건 위작 사진일 거라고 하셨죠. 죄송합니다. 최근 본 자료라서……”

다음 작품으로 넘기려는 그를 다급히 막았다.

“잠시만요!”

나는 시간을 가지고 자세히 작품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은 빛이 비치지 않도록 무광이었지만 너무 거칠진 않아 최대한 원본을 짐작해보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냄새를 맡아볼 수는 없었다.

“이거…… 아무래도 원본인 것 같은데요?”

“네? 이건 훼손된 위작과 같은 작품인데요? 원본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큐레이터는 해당 원본 사진은 ‘퓌트니 비엔날레’에 전시된 시점에 새로 찍은 것이라고 했다.

그 사이에 작품이 바뀌었을 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실물을 보기 전에는 원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장은 훼손된 저 위작과 다른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해요!”

어떻게 된 일일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원본은 퓌트니 비엔날레가 작품을 전시하게 된 이후 바꿔치기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물샐 틈 없는 경비 때문에 절대로 그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퓌트니 비엔날레가 겪은 가장 큰 사건이 뭐지?’

교대 근무 중 방치되는 순간을 노렸거나 다른 작품으로 시선이 분산되었을 때 바꿔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이 테러 자체였다.

‘다른 작품들은 전부 원본이었어. 하필 위작 작품만 훼손시켰다고? 이게 가능한 우연인가?’

우연이라고밖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큐레이터의 말에 의하면 한 행려병자가 공구를 들고 전시장을 탈주하는 장면이 찍혔다고 했으니.

일부러 바꿔치기 위해 모작을 훼손시키는 퍼포먼스를 한 것이라면, 모작을 들고 들어오는 장면 정도는 CCTV에 찍혔어야 했다.

미리 바꿔치기를 한 뒤 바꿔친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증거를 인멸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가 무슨 수로 그림을 미리 바꿔친다는 말인가?

‘아니…… 전시회 관계자 중 공범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가능한 결론은 그뿐이었다.

“원본 작품은 이 건물 안 어딘가에 있겠네요.”

“네? 그걸 어떻게 아나요?”

“믿기지 않더라도 증거가 있으니까요. 이러나저러나 는 ‘퓌트니 비엔날레’에서 바꿔치기를 당한 거예요. 그리고 바꿔치기가 일어난 장소는 테러가 일어난 한국 전시회장이라고 보는 게 가장 타당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범인은 알 만했다.

“위작 작품의 소유자를 예의주시해주세요.”

“네? 왜요?”

퓌트니에 있던 는 원래 진품이 맞았다.

원작과 위작을 가지고 있던 그 미국인 소유자는 비엔날레에 걸려 있던 원작을 위작으로 바꿔치기한 후 일부러 훼손시켜 위작 증거마저도 완전히 인멸할 생각이었겠지.

그 뒤 대리출품자를 통해 숨겨둔 진품을 나중에 세간에 공개하면 완벽한 사기극이 될 것이었다.

아마 구매할 당시에도 가짜 신분을 이용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때 가서 이번에 훼손된 작품이 위작이었음이 알려지더라도 미국인 소유자에게 도망칠 시간은 충분했을 터.

그 시간을 이용해 원작 보험금을 몽땅 타서 미국으로 도망칠 생각이었을 것이었다.

그 사기극에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내부 협력자였다.

‘자작극이 확실해. 범인은 원 소유자. 퓌트니 내부에 공범자가 있겠지.’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작품이 아예 전시회장 바깥으로 반출되었다면 제아무리 부실한 경비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걸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기회를 노려 위작을 들여온 후 원본은 전시장 어딘가에 숨긴 것이었다.

나의 제안에 밤낮없이 CCTV 검토에만 매달리던 사건 담당 경찰들 모두가 전시회장으로 투입되었다.

전시회 관계자 중 하나인 경비 인력들은 모두 배제되었고, 경찰들은 건물 외벽부터 지하실에 이르기까지 숨겨진 장소를 찾아 헤맸다.

“찾았답니다!”

무전을 들은 경찰 하나가 외쳤다.

나와 큐레이터는 경찰들을 따라 전시회장 뒤편 공터로 뛰쳐나갔다.

그곳엔 땅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 지하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근처를 살피던 경찰 두 명이 천으로 마구 감겨 있는 작품 한 점을 들고 나왔다.

크기는 우선 가 맞았다.

“저 시설은 대체 뭡니까?”

아버지가 묻자 큐레이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시회장을 지을 때 당시에 철거된 건물의 지하실인 것 같습니다. 저런 장소를 알 만한 사람은 별로 없는데……”

경찰들은 복원가들에게 그림을 즉시 넘겼고, 그들은 조심히 복원실로 향했다.

복원가들은 작품을 복원대 위에 얹고 천을 걷어냈다.

천이 더러웠던 것에 비해 작품과 액자는 깔끔한 게 최근 것으로 보였다.

“가 맞습니다. 손상된 곳도 없구요.”

그들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원본인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나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면밀히 살폈다.

마지막으로 테이블보에 흠집이 있는지 확인했다.

“원본이 맞네요.”

내가 선언하자 모두가 안도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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