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불후의 명작 (2)
민제와 예준은 급히 퓌트니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큰 범죄가 일어난 장소에 아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지금 민제가 떨리는 만큼, 큐레이터의 목소리도 크게 떨리고 있었다.
‘아주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겠지.’
피트니 비엔날레의 그림이라면 그림 가격이 상당히 비쌀 터였다.
그곳의 작품을 훼손했다면, 테러리스트는 잡혔을 때 적어도 수백억의 보상을 해야 할 것이었다.
민제는 절로 숨이 떨렸다.
작품이 훼손되었다면 전시회는 진행 못 하고 있겠지.
그리고 아무래도……
그런 사안에 대해서는 범인의 유무와 상관없이 담당 큐레이터의 책임이 가장 컸다.
큐레이터는 경찰들이 전시회장 내에 찍힌 CCTV를 단서로 근처 상가 CCTV와 블랙박스를 모두 조회하고 있다고 했다.
수사의 적극성에 비해 그는 거의 체념한 듯했다.
초고가의 작품이 훼손되었고 전시회는 정지상태.
그 큐레이터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영화 관련 복원 체험관 영상을 봤습니다. 작업하시는 모습도요. 한국 쪽에 공식 의뢰를 하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사람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시고……’
퓌트니 비엔날레 전시회에 큐레이터로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엘리트가 아니었다.
그 정도 가격대의 작품을 관리한다는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 민제로서는 모를 일이었지만, 적어도 짐작은 가능했다.
매분 매초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일 터였다.
그래도 그는 예준이 다치지 않으리라는 말 만큼은 분명한 어조로 확신시켜주었다.
‘예준이가 복원에 나서준다면 해결된다고 보는 게 맞겠지.’
예준이라면 분명 복원이 가능했다.
아트 전시회에서 <화가의 작업실> 복원에 있어서도 큰 활약을 했고, 최근엔 <막시밀리언의 처형>까지……
오히려 예준의 복원이 추가되었다는 입소문이 나면 가격이 더 뛸지도 몰랐다.
‘최근엔 작품을 300억 원에 팔았으니……’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예준이 앞으로 벌어들일 돈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가치 체감을 시도하지 않게 될 정도로 말이다.
차를 타고 한참 이동하던 도중 민제에게 메시지 하나가 전달되어 왔다.
“어? 예준아. 아빠 휴대폰 좀 확인해줄래?”
“네. 잠시만요.”
예준이 운전 중인 민제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무슨 문자야?”
“퓌트니 비엔날레에서 보내준 훼손 작품 사진인데…”
예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하네스 페이메이르 작품이네요. 라는 작품이에요.”
요하네스 페이메이르라면 일반 관람객들에게도 굉장히 유명한 화가였다.
특히나 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였다.
사실주의의 아름다움이 극한까지 표현된 작품.
그러한 작품의 훼손이라면 단순히 재산 피해만 고려할 게 아니었다.
미술사적 유산이 파괴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민제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휴대폰 속 화면을 확인했다.
칼로 갈가리 찢겨 있는 상태였다.
망치로 치고 유리 조각이 부서져 내리면서 표면이 전체적으로 갈려 있었다.
칼질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였다.
“실제 그림을 봐야겠네요.”
예준은 굳게 다짐한 듯했다.
예준의 뜻이 그러하다면 민제는 지지하고 최대한 보호해줄 수밖엔 없었다.
***
나와 아버지는 그렇게 ‘퓌트니 비엔날레’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사람들은 붐볐다.
전시회 관계자들인 것 같았다.
크게 프린트된 플래카드 하단엔 개관일이 적혀 있었다.
무색하게도 이미 개관일은 오늘 날짜를 알리고 있었다.
‘초상집이나 다름이 없군.’
경비 업체를 보완했다고 들었는데, 정장을 입은 남성들은 모두 피에르의 경매장 창고에서 봤던 경호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퓌트니 비엔날레’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는 사내 경비원들인 모양이었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지?”
입구는 닫혀 있었다.
건물도 이번 전시회만을 위해 지어졌다기엔 너무 복잡해서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 오셨군요! 죄송합니다.”
외국인 가드들보다 체구가 왜소한 한 한국인 청년이 입구 문을 열고 달려나왔다.
“윤예준 화가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본사에 전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직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죠.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바로 우리를 전시회장 안으로 안내했다.
전시회장은 불도 모두 꺼져 있었고, 작품이 걸려 있을 만한 곳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테러를 당하고 급히 보관 장소로 옮긴 모양이었다.
그러나 큐레이터는 담담하게 우리를 보관 장소로 안내했다.
모든 작품을 한 공간에 두는 건 아니었겠지만, 그중 하나라도 공개한다는 건 나를 그만큼 믿는다는 뜻이었다.
적대시하기는커녕, 나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초면인 나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배상할 거야!”
보관고에 도착하는 즉시 누군가의 우렁찬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담담하게 일을 진행하려 노력하던 큐레이터의 낯빛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한 미국인이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죠?”
“의 소유자분 되십니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화나실 만도 하죠.”
그림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큐레이터는 영혼이 빠져나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말씀드린 윤예준 화가님 오셨습니다. 바로 작품 보여드리죠.”
“네.”
한국인 경비들이 즉시 보관고 문을 열었다.
이중 잠금장치로 되어 있는 보관고는 열리는 데에만 시간이 한참 걸렸다.
보관고 내에는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천으로 가려져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기야 다른 작품을 구경할 상황은 아니었다.
훼손된 작품은 그 유명한 베르메르, 바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이었으니까.
경비원들은 따로 보관된 작품을 가져와 내게 보였다.
사진에서 본 대로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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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으로는 확인되지 않았는데. 표면 마모 상태가 너무 심각하긴 하네요.”
“하아…… 그렇죠.”
죽은 베르메르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느냐만
적어도 큐레이터만큼 속이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결국 복원해내면 되잖아요.”
아버지는 내 복원이라면 가치가 더욱 뛸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베르메르의 명성을 과소평가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당시에도 많은 화가들의 선망을 받던 이였다.
이미 많은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나도 그의 모작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말이다.
“뭐? 저 꼬마가 복원을 한다고?”
소유자라는 그 미국인 중년 남성이 눈을 무섭게 뜨며 소리쳤다.
“유럽에서 복원가들이 오고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저 꼬맹이한테 복원을 맡긴다니. 지금 장난쳐!”
“전시 일정을 최대한 맞추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꼬맹이라뇨. 복원으로 엄청 유명한 분이십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큐레이터 대신 경찰들이 나서서 소유자를 말려주었다.
“알 게 뭐야? 전시 일정이야 당신네들 사정이고. 난 자격이 있는 복원가가 오기 전까지 그림 절대 못 내줘!”
똥고집이 지독한 졸부였다.
대화가 거기까지 진행되었을 때 아버지가 가방에서 CEEA 명예 협회원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유럽 최고 권위의 미술품 감정 및 복원 협회 CEEA의 명예 협회원증입니다. 이 정도면 유럽에서 누가 오든 저희 예준이 실력이 덜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소유자는 나의 협회원증을 받아들고는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훼손된 작품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음……?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퀴퀴한 냄새였다.
내가 묻자 큐레이터도 냄새를 조금 맡아보더니 대답했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작품에서 나는 냄새 같습니다.”
작품에서 나는 냄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냄새의 정체도 말이다.
“어떻게, 복원이 가능하겠습니까? 대부분 칼자국이라서 지지대 작업이 핵심이 될 것 같은데, 표면 마모도 무시할 수는 없어서요.”
“글쎄요.”
나는 고민 끝에 말했다.
“어렵든 쉽든, 이 작품은 복원하지 않을래요.”
“네? 도대체 왜……”
“위작은 별로 복원해주고 싶지 않거든요.”
나의 말에 큐레이터와 아버지가 동시에 놀랐다.
나의 협회원증을 들고 있던 소유자도 마찬가지였다.
“뭐! 위작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위작이라뇨?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죄송하지만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큐레이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이 작품에서 나는 냄새는 유황 냄새입니다.”
베르메르는 당시 울트라마린 물감을 잘 쓰는 화가로 유명했다.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바로 그 울트라마린이었다.
에서도 유모의 치마에 울트라마린 색상이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 울트라마린은 아주 비싼 광물인 청금석을 빻아서 발색해야 하는 색상이었다.
청금석 원석을 빻을 때 나는 냄새가 바로 유황 냄새였던 것이었다.
듣던 큐레이터가 놀라서 물었다.
“......그 말씀은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맞다는 증거 아닙니까? 위작이라는 증거는 그럼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러니까 말이야! 내 이럴 줄 알았지. 저 어린놈이 무슨 복원가라는 거야? 한심하기 짝이 없군……”
소유자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아마 이 정도 퀄리티의 위작이라면 어디 가서든 백만 달러는 넘게 주고 샀을 것이었다.
큰돈을 잃었다는 생각에 화가 난 것이거나, 아니면 위작임을 들켜서 일부러 화난 척 연기하고 있는 것이거나.
“아저씨. 이 그림 어디서 샀어요? 얼마에 사셨죠?”
“그걸 알아서 뭐하게?”
“그림을 재테크하는 거야 개인 자유니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페이메이르 정도 되는 화가의 작품이라면 거래가 활발할 수가 없죠. 값이 매우 비쌀 테니까요. 일부러 원본으로 속여 팔 생각으로 위작을 싸게 사들이신 거죠? 언제든 팔리겠지, 하는 심산으로.”
소유자는 팔을 위협적으로 휘저었다.
“유황 냄새도 나고 있다고, 네가 말했잖아?! 건방진 꼬맹이. 나만큼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페이메이르의 작품을 보관해온 사람이 또 어딨다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
계속 소리쳤으면서도 목이 아프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설명을 마저 해야만 사실을 받아들일 모양이었다.
“바로 그 유황 냄새가 위작의 증거라는 말이었어요. 유황 냄새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에요.”
실제로 청금석을 빻아서 고증을 한 것인지, 작품 어딘가에 유황을 숨겨놓은 것인지는 나야 모를 일이었다.
만약 일부러 유황을 숨겨놓았다면 위작 작가는 위작 실력만큼 똑똑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자는 아니었다.
“4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유황 냄새가 남아 있다는 뜻인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소유자는 세상을 다 잃은 얼굴로 주저앉았다.
“뭐…… 뭐? 그럴 리가.”
“괜찮습니다. 판매자만 알고 있다면 민사 소송을 진행하시면 되잖아요?”
마음씨 좋은 큐레이터가 위로해주었지만, 그는 별로 안심하지 않았다.
그 모습만 봐도 뻔했다.
애초에 위작인 줄 알고 산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