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54화 (54/241)

55화. 불후의 명작

일섭의 특별전이 곧 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차피 한국으로는 돌아가야 했다.

게리가 ‘퓌트니 비엔날레’라는 전시회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굉장히 비싸게 거래되는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는 곳이라고 했었지.

‘비쌀수록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뭔가 이유는 있으니 비싸게 팔리는 거겠지.’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에 그림을 내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새로 지어진 집으로 오자마자 작업실 먼저 찾았다.

어머니가 영상통화로 보여줬던 대로였지만, 실제로 보니 더 훌륭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깔끔하고 넓었다.

처음 살던 빌라에 비하면 궁전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나와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환히 웃으며 집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현재의 설계도에서 변경된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저나. 오자마자 그림 먼저 그리는 거야?”

“네. 곧 열리는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할 생각이거든요.”

어머니는 프랑스에서 충분히 그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했다.

영화부터 시작해 바티뇰 거리에서의 일, 그리고 최근의 복원 일까지.

어머니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모두 전해 듣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은 평생을 바쳐도 모두 그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감각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퓌트니 비엔날레라는 전시회예요. 프랑스에서 알게 된 게리 윈스턴이라는 분이 소개해주셨어요.”

게리가 특히 주목했듯이, 세간의 반응들 중 ‘윤예준이 리틀마네 타이틀을 벗어던졌다’라는 평가는 내게도 뜻깊었다.

그래도 내가 50년을 넘게 살아온 생이 바로 마네의 삶이었다.

완전히 그 과거를 지울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과거처럼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오던 참이었다.

이미 마네는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거장 반열에 오른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감격스러워. 하지만 마네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리틀마네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는 했지만, 마네에 대한 찬사는 지금의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다.

좋든 싫든 나는 지금 윤예준이었다.

윤예준으로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했다.

‘<3월의 탄생>을 그리면서 감은 잡았어.’

가장 쉬운 건 그냥 아예 다른 장르를 해버리는 것일 터였다.

전통적으로 유화 물감을 통해 풍경이나 인물을 그리면 마네스럽겠지만,

이번처럼 보석을 활용한다면 마네스러워질 여지조차 없을 테니까.

물론 그렇게 왕도를 찾을 생각은 없었다.

‘우선 그려야겠어. 과거의 나 말고.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나는 붓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

르콩슐라의 로돌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네가 인상주의를 낳았다면 모네는 인상주의를 길렀다고 했다.

긴 사조 하나를 끝까지 품어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위대한 화가라고 해도 죽음은 운명적인 일이었으니.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지금 겨우 11살밖에 되지 않았다.

일찍이 성공한다면 모네 같은 이들의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학교.’

그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학교였다.

미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나의 장르뿐만 아니었다.

예술종합학교를 만든다면 미술 사조를 두루 살피는 것도 가능하고, 새롭게 태동할 사조도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내 이름을 따서 ‘윤예준 예술종합학교’라는 학교를 만드는 게 좋겠어.’

그곳은 한국의 바티뇰이 될 것이었다.

자유롭게 교류하며 화가들의 활동까지 지원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나는 즉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케치 같은 건 필요 없어. 붓이 갈 길이 너무 명확해.’

사조란 시대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사조가 등장하는 공간은 시대초월적이었다.

배경은 시대를 특정할 수 없게끔 그린다.

게르부아나 르콩슐라처럼 지속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시기 불문하고 언제나 예술가들로 붐빌 것이었다.

그렇게 윤예준 예술종합학교의 풍경을 상상해서 표현했다.

그곳에 있는 학생들의 옷은 같은 예술가임을 상징할 수 있도록 엇비슷하게 그렸다.

대신 그들의 표정과 몸짓 등에서 개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조금 지루하게 비어 있는 부분들엔 아르누보의 장식성을 빌려 화려하게 채웠다.

그러자 그림은 귀족적이면서도 자유로워졌다.

마네가 그렸다고 한다면 모두가 놀랄 만한 그림이었다.

‘물론 ‘리틀마네’가 그렸다고 해도 다들 놀라겠지.’

아트 전시회에 출품한 <식물원에서> 발전작 같은 경우도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해낸 것이지만, 그 원본이 <식물원에서>라는 점에서 마네스러웠다.

하지만 이번 그림은 달랐다.

보이는 모든 벽을 넘어선 최후의, 동시에 최초의 작품이었다.

보석 같은 게 없어도 비싸게 팔릴 만한 그림이었다.

‘학교를 지으려면 돈이 꽤 필요할 텐데. 얼마에 팔리는지 기대를 좀 해야겠어.’

나는 <예술가들(Artists)>이라는 제목을 지어놓고 그림을 건조장으로 이동시켰다.

***

그림 건조를 기다리는 동안 ‘퓌트니 비엔날레’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게리의 설명대로 100억이 넘는 금액에 그림을 팔아본 이들만 출품할 수 있는 전시회였다.

굉장히 권위 있는 전시회였기 때문에 출품을 희망하는 화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100억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이기 때문에 부합하는 화가를 찾기가 조금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하긴. 나도 이번에야 100억을 처음 넘겼으니.’

300억으로 한참 넘기긴 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조건엔 미달이었다.

출품자를 섭외하기가 어려워 100억이 넘는 금액에 그림이 팔렸다는 소식이 들리면 무조건 그 화가가 누구인지 알아본다고 했다.

‘사람이 굉장히 적긴 한가 보군.’

역사적으로 이름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 거래하기도 했다.

르네나 뒤샹 같은 화가들 작품 말이다.

물론 생존 화가의 작품들 수가 더 많았지만 그만큼 이름난 사람들뿐이었다.

“네, 여보세요.”

작업실에 함께 있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아, 그런가요? 그럼 바로 바꿔주겠습니다.”

아버지가 기쁜 표정으로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프랑스에 있을 때부터 내게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아버지가 처리했다.

“퓌트니 비엔날레에서 온 전화야. 네 그림을 걸고 싶은가 봐.”

그림이 다 마르면 직접 들고 찾아갈 생각이었다.

<3월의 탄생>은 백 마담이 급히 챙겨갔기 때문에 세간에 충분히 공개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로서도 충분히 알아보기 힘들었을 테니 이번 작품은 면밀히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소식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미리 연락을 드리고 싶었는데, 작품을 확인하는 데에 오래 걸려서 늦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을 퓌트니 비엔날레 코리아의 부 큐레이터라고 소개했다.

“아, 그림을 보여주던가요?”

-네. 간곡히 부탁한 끝에 볼 수 있었죠. 정말 감명 깊었습니다. 300억도 낮은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요. 그래서 꼭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공개할 작품이 또 있으신가요?

앞으로 하루이틀이면 준비한 그림은 완성이었다.

“네. 그런데 알아보니까 전시회 개관 일정이 곧이던데. 전시회 기획에 차질이 생기진 않으시겠어요?”

-시간은 충분합니다. 제가 당장 작품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요. 기획이 제 일인 걸요.

보안상 전시회 구성은 알려줄 수가 없다고 했다.

대신 집으로 직접 방문해 내 그림을 확인한 뒤 전시회의 어느 파트에 어울릴지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오자마자 그려두길 잘했어.’

때마침 한국에서 진행하는 전시회라니.

잘된 일이었다.

큐레이터는 다음 날 바로 집을 찾아왔다.

생각보다 젊었고, 인상도 훤했다.

“작품을 모시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큐레이터를 건조장으로 안내했다.

아직 건조 중인 작품은 내 그림뿐이었다.

큐레이터는 내 그림 앞에 멈춰 서서는 한참을 살폈다.

“<예술가들>이라……”

큐레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리 씨가 리틀마네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하시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어떠세요?”

“이 그림에 대해서는 몇 시간을 떠들어도 부족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밖에 없겠군요. 빨리 계약을 진행해야 하니까요.”

그는 지금 빨리 계약을 진행해도 첫날 바로 전시를 진행하기는 무리라고 했다.

그도 내 그림에 대한 전시 기획을 컨펌받는 입장이었다.

그 컨펌이 거부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말이다.

“대신에 자리는 남겨둡니다. 첫날 방문자들은 윤예준 화가님의 그림은 못 보더라도 빈 공간에 미리 전시된 윤예준 화가님의 이름과 작품명, 공개 날짜는 확인할 수 있게 되겠지요.”

그래도 그림을 바로 보여주는 것만큼 매력적인 모양새는 아니었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끔찍한 사건’은 퓌트니 비엔날레 코리아의 개관 날 벌어졌다.

***

개관 날.

나는 개관식에 참여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 퓌트니에서 전화 왔다.”

아버지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네. 윤민제입니다.”

지난번에 우리집을 방문했던 큐레이터는 바로 어제 나와 아버지, 어머니에게 초대권을 보내주었다.

그 일로 전화가 온 것이라고 생각해 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던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 그게 사실입니까?”

아버지는 제자리에 멈춰서서 큐레이터와의 전화를 오래 끌었다.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 언론의 질타, 큐레이터 본인의 크나큰 실책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오가는 듯했다.

“이, 일단 알겠습니다. 당장 가보죠.”

아버지가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 있대요?”

“응…… 이것 참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무슨 일인데요?”

전시회장에서 무시무시한 일이라니?

아버지는 조심히 말을 꺼냈다.

“개관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테러가 벌어졌다는구나.”

“테러요?!”

“그래. 관람객들에게 공개된 작품들 중 하나를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발겨 버렸대. 아직 범인은 못 잡았고.”

아버지는 아무래도 표적 없는 테러 행위인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날 그림을 걸었다면 찢어발겨졌다는 그림이 내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직 예술종합학교 건설의 첫발조차 안 뗀 시점인데. 부정부터 탈 뻔했군.’

내 그림은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는 보관고에 잘 모셔져 있었다.

부 큐레이터는 나의 복원 소문을 듣고 급히 도움을 요청하려고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해외의 유명 복원가들에게 급하게 복원을 의뢰했대. 하지만 바로 입국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했다더라고. 국내 복원 업체는 일정대로 움직여야 해서 더 오래 걸린다고 하고.”

“그럼 누구 그림이래요? 지금 당장 가봐야겠는데요.”

“예준아 잠깐만. 위험한 일일지도 몰라.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잖아. 건물에 아예 불을 지를 수도 있고, 가능성은 낮지만 변장을 한 채로 아직 전시회장 안을 활보하고 있을 수도 있어.”

겁을 주는 건 별로 아버지의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교육 철학에 몰두할 만큼 가벼운 사안도 아닐 것이었다.

큰 범죄 조직과 연결된 일일 수도 있으니.

그리고 퓌트니에 전시된 그림이라면 굉장히 비쌀 터였다.

이미 비싼 그림을 훼손시킬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사람의 생명까지도 해칠 수도 있었다.

“괜찮아요. 경찰들이 잘 보호해주지 않겠어요? ”

“혹시나라는 게 있잖니. 원래 위험이라는 건 낮은 확률을 뚫고 벌어졌을 때 더 큰 피해를 입히는 법이야.”

아버지가 하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복원의 기쁨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곤경에 처한 화가와 큐레이터를 못 본 체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저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이미 그 그림은 위험에 처해있죠. 망설일 이유는 없어요.”

그리고 혹시 아는가.

훼손된 그림을 보는 과정에서 내가 범인을 잡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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