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49화 (49/241)

50화. 예술의 지략가 (2)

“확인이 안 되는데 어떻게 복원합니까? 그게 가능해요?”

메건은 지지대층 작업에 활용한 천을 조금의 여유를 두고 알맞게 잘랐다.

그동안 부하 복원가 한 명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물어왔다.

“당신도 봤잖아요? 윤예준 화가가 그린 <식물원에서> 모작. 그리고 방금 그 복원까지.”

“네, 봤죠. 하지만 그동안 원본이 없는 경우는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윤예준 화가가 아니더라도 여태 전례도 없구요.”

그의 말이 맞았다.

본 적도 없는 걸 어떻게 그릴 수 있겠는가.

“그래도 어차피 원본 그림 위에 진행하는 작업도 아니에요. 우선 이 천 위에 복원하고 붙일지 안 붙일지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윤예준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근거는, 베테랑 복원가로서의 직감뿐이었지만 말이다.

윤예준은 완벽히 남은 한 조각을 찾아낼 테고, 그 복원을 원작에 붙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온전한 원작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메건은 복원이 이루어질 천을 복원실로 조심히 옮겼다.

예준은 복원에 사용될 물감들을 만지고 있었다.

직원의 말이 맞았다.

이런 식의 영화 같은 복원은 해본 적도 없었다.

복원이 맞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아무리 원본과 같더라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저희가 의뢰한 복원은 완벽하게 해내셨습니다. 지금으로서 가장 타당한 비교 대상인 산소원자분해감식 결과와 일치하고 있으니까요. 말씀드린 보상은 복원 성공 처리가 되면 바로 지급될 거예요. 화가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소실된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복원 대상이 아니라서 사례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뭘 걱정하고 계시는지 잘 알고 있어요.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예준은 메건이 가져다준 천 조각을 복원대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복원대 옆 간이 테이블에서 즉시 작업을 시작했다.

앞선 작업과 비교해봤을 때 예준의 지금 복원은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허공에 가상의 전체 캔버스를 놓고 붓이 천 조각 위를 지날 때마다 물감이 닿게 하는 식이었다.

‘단순히 빈 공간을 유추하는 게 아니야. 마치 원본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아.’

이번 필립의 영화 주인공인 복원가의 복원도 그와 같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시간을 거스르는 초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작업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초능력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막시밀리안의 처형>을 본 적이 있을 리도 없지 않은가.

‘천재들은 언제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군.’

그렇다고 이미 본 그림을 기억대로 그리고 있을 뿐만도 아니었다.

메건이 말했던 ‘시간을 고려한 복원’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복원으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끝났습니다.”

예준은 붓을 내려놓았다.

아직 마르지 않은 그 그림을 원본 작품 옆에 살짝 대어보았다.

비뚤어진 데 없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새로운 복원엔 그림의 다른 부분에서 유추할 수 없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산소원자분해감식을 하기 전에는 그림에 등장하는 줄도 몰랐던 막시밀리안 좌측의 측근이었다.

그는 막시밀리안에게 총을 쏘고 있는 이들의 군복과도, 막시밀리안의 우측에서 그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메자 장군’의 복장과도 다른 디자인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궁금한 게 산더미였다.

하지만 예준의 능력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도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메건은 이미 이해한 상태였다.

“이제 어쩌죠?”

직원들은 예준의 복원 결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오랫동안 궁금해해 온 원본이었지만, 아무도 복원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점치지 않았던 건이었다.

감히 궁금해하지도 못했던 해답이 지금 그들의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전에 말했듯이 원본 작품에 결합 작업을 진행하기는 무리가 있어요. 방금의 복원은 별개로 복원 작업 완료 처리하고 이 작품은 개별 작품으로 등록해서 세간에 알려야죠.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메건의 말에 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복원을 공개하는 것만 해도 메건과 복원가들에게는 큰 용기였다.

공식적으로는 복원이 아니라고는 하나, 사람들에게 <막시밀리안의 처형>과 연상시키는 과정에서 실제 복원이라고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죄책감은 쉽게 가지지 못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 복원은, 그러니까, 틀릴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

복원이 완료되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와 ‘바티뇰 거리 부활 프로젝트’로 큰 유명세를 끌고 있는 예준이 복원에 참여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아트 전시회 복원 체험관에서 보여주었던 활약 영상도 한 건 했다.

예준이 사후에 그린 나머지 조각은 직원들의 예상대로 <막시밀리안의 처형> 복원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림 완전 그럴싸한데? CEEA는 뭐 하냐. 윤예준한테 연금을 줘도 모자랄 판에.

-근데 마지막 조각 그건 그냥 아무렇게나 추측해서 그린 거 아님? 윤예준이 그림 잘 그리는 건 알겠는데 걔한테 무슨 권위가 있다고 빈 공간 복원까지 맡김? 마네 손자라도 됨?

-권위야 뭐 그걸 의뢰한 CEEA 복원가들한테 있으니까 상관없잖아.

-그리고 복원으로 치겠다고 말한 사람도 없음. 독립된 작품으로 보겠다잖아.

그 모든 게 직원들이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일도 결국은 벌어지게 되었다.

인터넷상에서 <막시밀리안의 처형>의 나머지 조각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던 어느 날.

한 여성이 CEEA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 여성은 자신이 소실된 원본 조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건과 직원들은 그 여성을 서둘러 복원팀 사무실로 안내했다.

손에는 보자기에 몇 겸을 둘러싸인 상자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백몇 년 전부터 가보처럼 내려오던 물건인데, 대체 뭘 그린 건지, 왜 조각난 형태의 그림인지도 모른 상태로 지냈어요. 그런데 이번에 윤예준 화가의 복원 파트를 보니까 낯이 익더라구요? 그래서 십여 년 만에 이 그림을 펼쳐서 뉴스 기사에 난 그림이랑 비교해봤는데…….”

직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여성은 그 자리에서 보자기를 풀려고 했고, 직원들은 다급히 그녀를 말려 감정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림이 유사하던가요? 유의미하게?”

“유의미하게 유사하다기보다는……. 정확히 똑같은 그림이었어요.”

이미 그들의 직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다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녀가 심각한 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도 특징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으니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겠지.’

메건은 직원들과 함께 원본을 꺼내면서 생각했다.

그렇게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조각은 예준이 그려낸 것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이럴 수가…….”

“일단…… 일단 그 복원된 조각 작품 등록할 때 이미지 등록해 둔 것 있죠? 그걸 조회해봐야겠어요. 얼마나 일치하는지 대조를…….”

직원이 감정실 내부의 분석용 모니터를 켰다.

그리고 최근에 등록된 예준의 <막시밀리안의 처형 -복원>을 조회해보았다.

“똑같네요.”

잔디를 표현한 얼룩들과 신발의 무늬.

그리고 바지 재봉선을 따라 내려오는 노란 띠까지 똑같이 묘사되어 있었다.

“이 작품이 원본이 맞나요?”

여성이 물었다.

예준이 그 그림을 그렸을 때 이미 직원들은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 원본은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하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니 놀라움을 넘어 공포감까지도 느껴졌다.

“원본 작품과 성분 구성이 일치하는지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는 진배없는 원본이 맞아 보입니다.”

여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에게 있어서도 일생에 걸친 대사건이었을 것이었다.

바지만 그려진 수상한 가보의 정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감식한 결과, 여자가 가져온 조각은 원본으로 결론 지어졌다.

물감의 성분과 그려졌으리라고 생각되는 시기가 정확히 일치했다.

직원들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제아무리 객관적인 감식 장비라고는 하나 그 한계도 이번 기회에 명확해졌기 때문이었다.

기계만 믿었다면 원본 조각은 아직도 누군가의 옷장에 깊이 묻혀 세간에 알려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와…… 진짜 이게 재능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마네는 원근 표현이 독특해서 유추도 쉽지 않다면서?

-지난번에 신빙성 없다는 식으로 말하던 사람들 다 어디 감?

-그래서 윤예준 얼마 받냐?

그림으로는 프랑스에서 정평이 나 있는 예준이었다.

하지만 복원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뜬금없는 행보처럼 보였다.

게다가 미술품 복원은 분명히 재능이 아니라 학습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예준의 성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행히도 불에 타 있던 원본 작품에 비해 여성이 가져온 유실된 조각은 상태가 양호했다.

덕분에 조각을 붙이는 나머지 복원 작업은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예준에게는 한화로 200억 원 상당의 복원 사례금이 즉시 지급되었다.

CEEA 협회장은 사례금 지급을 공개적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과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례뿐만 아니라 명예 협회원증까지 수여하게 되었다.

수여식을 앞두고 메건은 예준이 있는 대기실을 찾았다.

“말씀하신 대로 됐네요.”

“네? 뭐가요?”

예준은 역시 많은 사람들 앞에 서보았기 때문인지, 수여식을 앞두고도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긴장은 고사하고, 오히려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막시밀리안의 처형>의 나머지 조각을 공개하겠다고 한 말씀이요. 정말로 그렇게 됐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메건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누군가 재능에 대해 ‘어떻게 한 거냐’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곤란한 질문이겠지.

예준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림의 나머지 부분들이 유실된 부분의 생김새를 알려주고 있었어요. 예컨대 그 측근의 바지 줄무늬가 빨간색이었다면…… 작품의 다른 부분들도 지금과는 달랐을 거예요. 왜 그렇게 느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

‘미술품을 복원하려면 우선 화가가 되어야 한다.’

메건이 지망생 시절부터 질리도록 들어 온 말이었다.

방금 예준의 말로부터 메건은 그 문장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복원에도 재능이 필요하다니. 제 복원가 생활에 회의감이 느껴지네요. 차라리 영화에서처럼 과거로 돌아가 보고 왔다고 하시면 저로서는 그게 안심이겠습니다.”

메건이 농담 삼아 말하며 웃자 예준도 따라 웃었다.

“네, 맞아요. 과거에 다녀왔죠. 아니, 사실 제가 전생에 마네였어요.”

메건과 예준은 더 크게 웃었다.

예준은 조금 눈치를 보는 것도 같았다.

마치 그 말이 참말이라는 듯이.

“아무튼. 저 개인적으로서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역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이라 꼭 복원하고 싶었던 그림인데. 정말 감사하고, 또 축하드립니다.”

“저도 원해서 한 일인데요, 뭐. 그런데 명예 협회원증은 어떤 점에서 좋은 건가요?”

명예 협회원.

CEEA의 협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었다.

관련 대학이나 교육 기관에서 복원가 과정을 수료하고 CEEA 인증 평가를 받아 채용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선발된 일반 협회원들 중 좋은 결과를 낸 사람들이 명예 협회원이 되었다.

명예 협회원이 된 사람은 여태까지 몇 명 없었다.

예준은 그 모든 ‘일반적인’ 과정을 깨고 협회원증을 수여 받는 것이었다.

“복원가 자격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죠. 명예 협회원이 된다고 해서 이곳에서 근무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복원할 일이 생기면 거리낌 없이 참여하고 사례금도 받을 수 있으실 거예요.”

메건은 휴대폰을 꺼내면서 덧붙였다.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좋은 의뢰 건이 있으면 도움도 받고, 소개도 시켜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이죠. 미술품 복원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설게요.”

그렇게 예준과 메건은 번호를 교환했다.

메건은 생각했다.

CEEA에서 활동하는 동안 자신이 이뤄낸 최고 업적은 어쩌면 윤예준을 CEEA에 소개시킨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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