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48화 (48/241)

예술의 지략가

예준의 의견 덕분에 복원은 바로 진행할 수 있었다.

복원 전문가 체면에 기계 감정이 끝날 때까지 관람객들 앞에서 멍청히 손놓고 있을 뻔했는데, 참 다행이었다.

“잠시만요, 윤예준 화가님!”

메건은 폐관 시간이 되자마자 복원실을 뛰쳐나가 예준을 불렀다.

예준은 로즈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필립 영화사 라인 매니저로서, 이번 아트 전시회에서 거의 기획자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복원실 조성을 위해 이곳으로 올 때마다 만났을 정도이니 말이다.

“네? 무슨 일이세요?”

“아까 그 사항 때문에 진땀 빼고 있었는데, 화가님 도움으로 잘 넘어간 것 같아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예준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나저나 정말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자세히 알고 계신 겁니까?”

“음······ 글쎄요.”

뭔가 자신만의 비밀이 있는 것인지, 예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제가 쿠르베의 작품을 좀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조사도 많이 했고 관심도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아하, 그렇군요!”

<식물원에서> 모작으로 한참 시끄러웠을 때 당시만 해도 모두가 예준을 ‘리틀마네’라고 불렀다.

그러니 마네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완전히 모작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쿠르베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그냥 다 아는 거 아니야?’

메건은 복원가 생활을 몇십 년간 해오면서도 예준처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복원 전에 조사 과정부터 철저히 밟았으니 복원가로서는 시간만 준다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문제였다.

하지만 예준은 자료 하나 없이 보자마자 바로 해답을 알아냈다.

이건 전적으로 자신의 배경 지식에 기댄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옆에 서 있던 로즈가 물었다.

멀리서 지켜본 바로 로즈는 시간 준수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아마 이후 일정이 있기 때문에 당장 메건의 용건을 묻고 싶은 것일 터였다.

“사실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전부터 이 일로 꼭 뵙고 싶었는데······ 혹시 시간 좀 써주실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예준이 흔쾌히 허락했다.

로즈는 예준에게 전시장 바깥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앞서 복원가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네. 화가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손재주도 뛰어나야 한다고 했죠.”

“맞습니다. 그밖에도 필수 소양이 더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 중 무엇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복원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복원은 조금이라도 원 상태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야말로 ‘실패’였다.

좋은 취지로 진행한 복원이 그 자체로 ‘훼손’이 되어버리는 셈이었다.

“이번에 진행하고 있는 복원 작업이 하나 있는데, 지금 저희 복원팀은 ‘손재주’ 면에서 역량 부족을 실감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애초에 최고 역량이란 것도 있을 수 없겠지만, 협회에서 기대하고 있는 역량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는 상태거든요. 그런데 윤예준 화가님의 도움이 있다면 완벽한 복원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혹시 도움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음······”

“사례는 작품 소장자인 내셔널갤러리에서 등록한 보험금 비율을 고려해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여태 해왔던 복원작업들은 대체로 우수했다.

부족할 만한 복원은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메건의 눈에 뛰어난 복원은 없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마 이번에도 그 동안 해왔던 대로 진행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복원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메건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윤예준의 도움을 받는다면 분명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예감이었다.

다만, 이미 특급 화가로 인정 받고 있는 그가 그저 돈으로만 제안에 수락할지는 걱정이었다.

무릇 화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작품의 가치니, 신념이니 하면서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

나는 바로 다음날 CEEA로 향했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메건의 출근 시간에 맞춰 방문하겠다고 했더니, 메건은 1층 로비에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이동하시죠. 복원실로 가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메건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복원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강한 직업 정신을 가지고 복원에 임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복원팀도 마찬가지였다.

‘별 생각 없는 사람들이 보기엔 우스꽝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을 거야.’

현대의 기계로 감식한 결과가 ‘나폴레옹 3세의 얼굴’이었다면 그냥 그대로 했어도 됐을 것이었다.

복원을 보여주겠답시고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명쾌한 해답을 내지 못한 채 고민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그들로서도 꺼려졌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신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체면보다도 ‘작품의 완벽한 복원’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그 애정과 열정에 응하기로 했다.

나를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언제든 최고 역량을 보일 준비가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저들의 애정이라면 나의 역량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그런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나에게 의뢰할 작품을 듣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복원하고 있는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막시밀리언의 처형>입니다.”

*에두아르 마네, <막시밀리언의 처형> 그림, 각주

“네?!”

내가 크게 당황해서 묻자 메건은 놀라서 돌아보았다.

“리틀마네라고 불리셨던 분이니······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리 비관적이지 않으니까요.”

“훼손 정도가 얼마나 심한데요?”

1867년.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에 등장해 문제가 되었던 나폴레옹 3세의 배신으로 인해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언이 총살 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2제정의 황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폴레옹 3세에게 분노해 그린 그림이었다.

분노로 그린 그림이기는 했지만, 혼신까지 쏟아 그렸다.

그런데 그 작품이 훼손되었다니.

“에두아르 마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레옹 렌호프가 <막시밀리언의 처형>을 4등분했습니다. 쉽게 팔아넘기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림 사이즈가 꽤 컸거든요. 나중에 에드가 드가가 4등분된 <막시밀리언의 처형> 중 세 조각을 찾아 복원시켰습니다. 하지만 남은 한 조각은 또 잘려서 훼손 정도가 더 심해진 채 발견됐는데, 지금 복원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그 남은 한 조각입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정보가 끼어들었기 때문에 혼미할 지경이었다.

레옹렌호프가 내 그림을 잘랐다니.

또 남은 한 조각은 더 잘렸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도 드가, 자네한테는 고마워해야겠군······’

메건에 의하면 드가는 내 작품을 열심히 모아 죽을 때까지 보관해주었다고 했다.

덕분에 그가 복원하고 보관한 부분들은 여전히 상태가 양호하다고.

“지난번 <식물원에서>를 보고 느꼈습니다. 리틀마네의 별명을 가지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100%짜리 모작도 해낼 수 있는 윤예준 화가님이라면 이번 복원에 완벽히 적합하다고 말입니다.”

“그런거였군요. 감사합니다.”

거기까지 대화가 진행되었을 때 나와 메건은 복원실에 도착했다.

복원가 몇몇이 복원대 앞에 모여 서 있었고, 그 위에 놓인 <막시밀리언의 처형> 한 조각은 그 일부마저도 불탄 상태였다.

“이럴 수가······ 불타기까지 했나요?”

“네. 앞서 말씀드렸듯, 이 작품은 전체 작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의 절반쯤 됩니다. 나머지 절반은 아직 찾지 못했죠. 모종의 이유로 그 조각을 또 둘로 나눴고, 이 조각은 그 이후 불탄 것으로 보입니다.”

왜 선뜻 복원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는지 알 만했다.

복원대 위에 놓인 조각엔 ‘막시밀리언’의 얼굴이 포함돼 있었다.

복원실 벽면엔 막시밀리언의 초상화로 보이는 모든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내가 그렸던 그의 모습과 제법 흡사한 그림도 포함돼 있었다.

“저건 뭐죠?”

내가 그걸 가리키며 묻자 메건이 놀랐다.

“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저건 지지대층 작업을 해두기 전에 화재로 손상된 부분을 가상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현재 보유중인 복원 기술 중 가장 차세대인 ‘산소원자분해감식기’를 적용시켰죠. 하지만 신뢰도가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지금으로서 최선일 뿐이죠.”

그런 것들은 있을 필요도 없었다.

비어있는 부분에 무엇을 그려넣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산소원자분해감식기라는 장치로 얻어낸 저 가복원본도 별로 훌륭하지는 못했다.

불타 사라진 부분에 어떤 사물이 그려져 있었는지 정도나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지난번에는 유사도가 너무 높으면 안 될까봐 일부러 표식을 해두셨죠? 이번에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맘껏 실력을 발휘해주세요.”

“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메건은 복원을 준비하는 동안 복원에 필요한 기본사항을 일러주었다.

“다른 것들은 어련히 잘 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그 점을 짚고 넘어가야만 하겠군요.”

“뭔가요?”

나는 복원할 부분과 아예 유실된 부분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바로 시간을 고려한 복원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시간을 고려한 복원이라뇨?”

메건의 말은 간단했다.

막시밀리언의 처형이 그려진 지 160년이 지났으니 아무리 원본이 잘 보관되어 있더라도 상태가 똑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어떤 물감들은 낡을 것이고, 어떤 색들은 바랠 것이었다.

그것을 고려하라는 뜻이었다.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시작할게요.”

“네.”

내가 붓을 들자 복원가들이 자리에서 멀찍이 물러났다.

우선 그들이 새로 덧붙여준 지지대층과 원본의 마모도를 비교해보았다.

‘내가 내 그림을 복원하게 되다니. 참 별 일이 다 있군.’

그 마모도와 표면 질감을 고려해 붓질의 강도를 철저히 조절해야 할 것이었다.

정확히 똑같은 세기로 붓질한다고 하더라도 캔버스의 상태에 따라 물감이 묻는 모양새가 판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구역이 그리 넓지 않았다.

모든 부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여러 캔버스에 그림을 수백 번도 넘게 그려본 나로서는 복원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지대층과 원본 캔버스 사이가 미세하게 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완전히 붙여 그리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그 작업에 끝났을 때, 나는 우선 유리로 된 보관 케이스를 덮었다.

그러자마자 복원가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와! 진짜. 끝난 것 같습니다. <식물원에서> 모작을 그린 사람 다워요!”

메건도 다가와 나의 복원을 보았다.

어느 부분이 지지대층 부분이고 원본 부분인지 아무리 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세히 그렸다.

“이 정도면······ 산소원자분해감식 결과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고······ 복원은 성공이군요.”

메건이 박수를 쳤다.

그 선언에 복원가들이 박수를 치려던 순간 내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아뇨. 아직 안 끝났습니다.”

“네? 아, 그렇습니까? 뭐가 더 남았기에?”

나는 다시 <막시밀리언의 처형>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복원한 부분 말고.

되찾지 못해 복원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 빈 공간을 말이다.

‘복원은 원본의 단서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야.’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빈 캔버스에 기억력만으로 그림을 다시 그려내는 <시간을 거스르는 자>의 그 복원은 일견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것이었다.

애초에 시간을 거스른다니, 말도 안 되는 게 바로 판타지였지만 말이다.

“남은 조각이 하나 더 남아있다는 뜻 아니었어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훼손된 이후로 140년 가까이 흘렀어요. 그 140년 동안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구요.”

하지만 내가 복원한다면 그 영화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었다.

원본 없는 복원은 오직 내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공개할 테니 같은 크기의 캔버스 천을 가져와주세요.”

*<막시밀리언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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