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44화 (44/241)

가장 비싼 화가(2)

‘Le monde’지 예술 분야 기자들은 한 숨 조차 돌릴 틈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보통 같아서는 취재 받기를 원하는 영화사나 미술관에서 일정을 미리 공유해주기 때문에  편하게 그 기사만 작성하면 되었다.

갑작스럽게 비싼 작품이 팔리게 되더라도, 경매장마다 상주 기자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 일이 없었다.

-상업 미술의 대가 ‘게리 윈스턴’씨가 몽마르뜨의 르 콩슐라 카페에 작품을 기증해 큰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장에 나와 있는데요.

하지만 윤예준이라는 화가가 프랑스에 등장한 이후부터는 전례없이 바빠져버렸다.

아마 ‘Le monde’지의 기자들뿐만 아니라 웬만한 언론사에서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었다.

윤예준과 몽마르뜨의 화가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정기 회의를 열었다.

그 때문에 예술계에서는 매주 취재할 일이 새롭게 나타났다.

취재를 효과적으로 하기가 어려워 지난주부터는 르콩슐라의 회의에 참여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게리 윈스턴이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회의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급히 바티뇰을 찾아가봤지만, 르콩슐라 사장은 작품을 아직 공개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사내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방송국 ‘텔레비지옹(France Télévisions)’의 생방송이 송출되고 있었다.

화면을 확인한 담당 기자들이 가방을 챙기며 벌떡 일어섰다.

“뭐야! 기증은 받았어도 다음 길거리 전시회까지는 공개를 안 하겠다며!”

이유라도 좀 알고 가자는 듯 그들은 텔레비전을 노려보았다.

카페 르콩슐라의 사장 ‘로돌프 배냉’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게리 윈스턴 화가께서는 자신의 그림을 윤예준 화가의 그림보다 더 낮은 위치에 걸기를 희망하셨습니다. 윤예준 화가가 계속 사양하는 바람에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공개를 미뤘죠. 하지만 아직 기약이 없는 전시회까지 공개를 미뤘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다시 실내에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저렇게 즉흥적으로 결정을 바꾸다니.

정식 미술관이 아니라 개인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전시였기 때문에 변덕이 심했다.

거리 미술 취재는 격동기 선배들이나 겪어봤을 옛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신문사를 몽마르뜨 근처로 옮겨야 할 판이었다.

‘텔레비지옹’에서는 대충 후속 인터뷰나 따볼 생각으로 천천히 르콩슐라를 방문했을 것이었다.

기가 막히는 우연으로 게리의 작품을 송출할 수 있게 되었으니 봉을 잡은 것이었다.

좋은 건을 잡아도 승진이 고작이면서.

핵심은 윤예준과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그것들은 어느정도 취재가 완료되어 계속 동태만 살피고 있는 그들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죽어 있던 도시 몽마르뜨가 다시 예술인의 도시로 부활하게 되어 기쁘다는 시민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Le monde’에서도 몽마르뜨 부흥에 관한 기사를 한 10건은 게시했다.

도시 부흥의 1등 공신 윤예준은 여태 질리도록 언급되어왔다.

이젠 기자들의 가까운 조카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파리 17구와 18구에 걸쳐 일으킨 선한 파장이 굉장히 크신데, 마이크를 빌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십니까?

앵커가 물으며 윤예준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네.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것만으로도 예술가들은 기뻐합니다. 곧 SNS 계정을 통해 다음 길거리 전시회 일정을 안내하겠습니다. 저희 전시회는 입장료가 없으니까요,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예준의 인터뷰가 끝나자 누군가 불길하게 중얼거렸다.

“저거 설마 다음 일정 결정됐다는 뜻은 아니겠죠?”

“에이, 설마. 그랬으면 저기서 바로 공개했겠죠. 그래도 공영 방송사인데.”

말과는 달리 그들은 안심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즉시 카메라를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나는 르 콩슐라의 화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라······’

로돌프는 처음 받은 기증작도 추상화라고 했다.

그것이 현대의 유행이라는 건 로돌프의 설명과 게리의 말을 통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표현주의도 회화적 전통을 거부하고 사물을 감각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는 사조였다.

하지만 이들의 추상화는 실제 묘사하는 대상이 따로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추상주의였다.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인 감정과 캔버스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거지?’

그 매개체가 되는 것이 바로 풍경이면 풍경, 인물이면 인물이었다.

그런 표현물을 전혀 거치지 않고도 표현하는 게 요즘 최고의 유행이라면 꼭 배워봐야 할 것이었다.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추상주의 미술에 대해 골몰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로즈였다.

“네, 매니저님.”

-잠깐 통화 가능하신가요?

로즈는 바티뇰 거리와 관련된 기사를 모두 접하고 있다며 격려의 말을 전해왔다.

제작 단계에 있기 때문인지 ‘필립 영화사’ 측은 아직 홍보에 저돌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촬영이 끝난 후 배급사를 알아보며 홍보를 시작해도 좋지만, 일찍 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었다.

-제작이 늦어진 만큼 트레일러 영상에 사용될 장면들을 우선적으로 찍었습니다. 그게 완성돼서 이번에 내부 상영회를 가질 예정이에요.

“트레일러 영상이 뭐죠?”

-미래의 관객들에게 우리 영화를 홍보할 목적으로 만든 짤막한 영상입니다.

영상 예술에 관한 영상 홍보라.

그림을 그림으로 홍보하는 게 아닌가?

트레일러든 뭐든 영상이 제작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들떴다.

촬영장에 가보기는 했지만 <식물원에서> 모작을 끝낸 이후론 촬영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직접 확인한 적이 없었다.

이제야 그 실감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포스터에는 그때 세트장에서 그린 그림이 들어간다고 했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트레일러 영상은 화가님의 <식물원에서>가 중심입니다. 그러니 직접 오셔서 영상을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래야죠. 내일 바로 가면 될까요?”

로즈는 내일 오전 중에 제작자들끼리 상영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방문 의사를 밝히고 전화를 끊었다.

*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었기 때문인지 모든 직원들이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을 먹은 즉시 영화사 건물에 방문했다.

로즈는 건물 거의 꼭대기에 있는 상영관으로 나를 안내했다.

아래에서 내려다볼 때에는 몰랐지만,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유리창을 내다보니 영화사의 높이가 체감되었다.

파리시 고도 제한에 딱 맞춰 쌓아올린듯 거대한 규모였다.

상영실로 들어가자 필립과 다른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입니다, 윤예준 화가님.”

“오랜만이네요, 감독님. 촬영하느라 고생이 많으시죠?”

“하하하. 고생은요. 화가님이 더 고생하시는 것 같던데요.”

그도 기사들은 전부 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설명은 들으셨으리라고 생각하고 바로 영상 보도록 하겠습니다.”

필립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의자의 감촉에 익숙해지려는 때에 갑자기 상영관의 불이 모두 꺼졌다.

‘뭐지. 시작되는 건가?’

화면인 줄도 몰랐던 전방의 거대한 벽면이 갑자기 빛났다.

피부가 거칠어 보이도록 분장한 샬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오!’

휴대폰 속 작은 화면으로만 봤기 때문에 이렇게 큰 화면이 가능한 줄은 몰랐다.

샬롯의 얼굴은 벽 하나를 모두 채울 만큼 거대하게 나타났지만 화질도 굉장히 뛰어났다.

장면들과 텍스트가 번갈아가며 등장했고, 웅장한 사운드가 심장을 직접 두드렸다.

시간을 거스르는 능력을 가진 복원가 여자의 희노애락이 전부 담겨 있었다.

여러 어려움을 딛고 여자가 캔버스 앞에 앉은 뒤부터 지난번에 방문했던 세트장이 보였다.

남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나의 그림 <식물원에서>의 일부분이 관객을 애태우듯 노출되었고, 그림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기 직전에 화면이 암전되었다.

“개봉일이 확정되면 저 검은 화면에 제목과 개봉일이 표시될 겁니다.”

상영관에 불이 다시 들어오자마자 트레일러 제작자인 듯한 직원이 부연했다.

필립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샬롯과 작게 소곤거렸다.

큰 화면으로 영상을 확인했더니 빨리 완성된 작품을 보고 싶어졌다.

나의 그림이 거기 들어가 있으니 최근에 <식물원에서>를 모작한 일이 정말 19세기의 일처럼 느껴졌다.

‘이 영상 매체라는 건 전달력이 압도적이구나.’

필립은 제작자들에게 간단한 의견을 전달한 뒤 내게 물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감명깊게 보았다.

하지만 상영관에서의 시각이 이러할 줄 알았다면 더 욕심을 내보았을 것이었다.

“너무 아쉬워요.”

“어느 부분이 말입니까?”

“모작밖에는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나는 스케치용 종이와 펜을 꺼내 <식물원에서>의 구도를 다시 잡았다.

식물에 역동감을 주었던 이일섭.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공업용 락카로 시도하던 거리 예술.

그리고 게리의 추상주의까지.

관객들에게 옛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식물원에서>를 다시 표현해보았다.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스케치는 최대한 자세해야 했다.

작품 속 인물들은 평면적으로 재구성하고 추상적인 효과들을 살려 배경 식물에 새로운 질감을 부여했다.

“와······!”

뒤에서 나의 스케치를 보고 있던 트레일러 제작자가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세트장 그림과 <식물원에서> 모작 때 내 그림을 충분히 봤으면서도, 필립은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 나의 그림을 유심히 구경했다.

“섭외가 모작 화가였기 때문에 모작을 부탁드렸던 건데. 스케치만 봐도 알겠군요. 이만큼이나 그릴 수 있는 윤예준 화가님을 기껏 섭외해놓고······ 좋은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복원해야 하는 건 <식물원에서> 그 자체였다.

지금 나의 스케치는 영화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이 그림을 조만간 완성할 테니 영화 홍보에 어떻게 써볼 수는 없을까요?”

나의 제안에 필립은 기뻐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저야 정말 감사하지만 지금 당장은 <식물원에서> 모작과 표식 일화만으로 홍보는 충분합니다. 트레일러가 어느정도 짜여졌으니 곧 그 일화를 공개할 거예요. 조만간 기사가 나갈 테니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그렇군요.”

“그리고 영화가 흥행한 이후 아트 전시회를 열게 되면 거기서 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트 전시회를 하는 게 좋을지 아닐지 고민해놓으시는 게 좋겠죠.”

아트 전시회.

전시회라면 그림을 걸 수 있는 게 아닌가?

미술 영화이다보니 아무래도 미술관 컨셉으로 진행하는 행사인 모양이었다.

“그럼 거기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영화와 관련된 모든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전시회이기는 하지만, 거기 화가님의 그림을 비치한다면 거의 윤예준 개인전이 되겠죠.”

그렇다면 영화의 흥행 성적을 빌려 <식물원에서> 모작과 이번 발전작까지 선보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해야죠. 고민할 게 있나요?”

예술영화 흥행이라면 따놓은 당상이었다.

마네의 그림을 마네인 내가 그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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