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40화 (40/241)

부활

*

이젠 해가 완전히 떨어져 거리가 온통 어두컴컴했다.

로돌프와의 대화가 굉장히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나는 영화사 직원에게 조금 더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마네와 모네처럼 실제 있는 풍경만의 인상을 잘 담아내는 것도 있지만, 후기로 갈수록 그 인상에 화가의 감정이 포함되게 된다. 반 고흐나 폴 고갱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인 후기 인상주의 화가지.”

로돌프는 인상주의 이후의 사조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그 설명을 따라 해당 화가들의 그림을 한 점씩 확인할 수 있었다.

클로드 모네 같은 경우 아직 내게 익숙한 인상적 표현 기법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반 고흐라는 화가에 이르러서는 사실적 표현의 틀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특히 화폭에 거칠게 남은 붓자국들이 기여하는 바가 컸다.

동양화를 처음 접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다.

“벨에포크 시대와 겹치는 후기 인상주의부터는 그렇게 감정의 표현이 나타나게 되는 거다. 표현주의도, 추상주의도 그 점은 크게 벗어나지 않아. 인상주의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나타난 가장 특징적인 변화지.”

“아름다운 시대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벨에포크라고 불러. 그때가 참 좋았던 때지. 여러모로말이다.”

내가 죽은 뒤부터가 ‘좋았던 때’라니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새 굉장히 많은 시도들이 있었군.’

생각보다 변화의 흐름이 빨랐다.

후기 인상주의부터 아르누보, 야수파와 큐비즘까지.

특히나 인상 깊은 화가들도 있었다.

아르누보와 같은 그림들은 사실적으로 그려지더라도 어느정도 장식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는데

이후 표현주의와 야수파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폴 고갱의 그림에서는 특유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로돌프는 노년의 그가 가난한 삶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예술혼만큼은 전혀 빈곤하지 않았다.

“미술사를 견인해온 이 화가들의 초상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단다. 화가들은 스스로를 불태울 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지.”

고갱의 그림은 최근의 추상주의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프랑스 경매장에서 봤던 그림들과 비슷한 풍의 작품들이었다.

구체적인 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매몰되지 않는 감정 중심의 추상주의였다.

감정 표현에 극한으로 집중한다면 추상주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철 지난 노인과의 대화가 굉장히 지루했겠구나. 미안하다.”

“아니에요. 가슴이 끓어오른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거기 참여하고 싶을 만큼이요.”

나의 목적은 여전했다.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나만의 표현을 인정받는 일.

그 뒤 세간의 찬사를 누리는 일.

만약 신이 있다면 일찍이 죽어버린 내게 이 미래를 한 번 경험시켜줄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바로 마네가 칭송받는 지금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 만족할 수 없었다.

이번 생만의 성공을 직접 이뤄내 누릴 것이었다.

“그러려면 내로라하는 기성 화가들을 키워낸 아카데미로 가야겠지. 나도 너의 기사를 많이 접해봤다. 본 그림은 기사 사진으로 한 장뿐이었지만, 100%에 못 미치는 2%가 어느 부분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한 마네의 그림으로 보였어. 어쩌면 너는 유럽 화단에서도 전무후무한 천재일지도 모른다.”

로돌프는 몽마르뜨와 ‘르 콩슐라’ 카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듯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모르고 있었다.

미술사의 현장은 아카데미가 아니라 이곳 같은 길거리라는걸 말이다.

“전무후무한 천재라면 앞으로도 없어야죠.”

아무리 신선한 시도였다고 해도 그것이 전통이 되었을 땐 얼마나 역겨운 냄새를 풍기던가.

“이곳은 여전히 화가들이 많이 찾죠?”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다.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이지. 아까 목로 앞에 앉아 수다를 떨던 어른들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 점만은 여전한 듯했다.

“저도 여기서 그림을 좀 그리고 싶어요. 이 곳 근처에 써도 되는 작업실이 있나요?”

“차라리 네가 너무 바빠서 이곳에 못 오게 되지는 않을지를 걱정하는 게 합리적인 고민 같구나. 이곳은 무명 예술가들의 살롱전이야. 그림을 그리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허락으로 들렸다.

이젠 한두 사람 정도밖엔 안 남은 카페 내부를 한 번 더 살펴보았다.

클래식한 분위기.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은 듯 보이는 턴테이블.

길목과 연결된 듯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발코니.

내게 누군가 프랑스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면 필연코 이곳을 찾아야 할 것이었다.

*

“어제는 어디를 다녀온 거야?”

햇볕에 잠을 깬 아버지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몽마르뜨에 다녀왔어요. 거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 있더라구요. 카페 ‘르 콩슐라’라는 곳인데, 그곳 사장님이랑 친해졌어요.”

“그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인데 카페라고? 신기하구나.”

문득 어제 출발 전 아버지가 크게 걱정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 분들이 신문을 보고 저를 알아보더라구요. 제가 공부하고 싶던 미술사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고 계시고, 굉장히 친절하셔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영화사 직원분도 계속 같이 있어주셨고요.”

“음······”

미성년 신분은 제약이 많은 법이었다.

일섭의 작업실을 들락거릴 때, 지난 복원 작업에 다급하게 투입된 때, 그리고 어제의 산책까지.

내가 스스로 나섰던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젠 아버지도 나의 열정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리로 갈 거고?”

“네.”

아버지는 난처하다는 듯 웃었지만 별 수는 없었다.

“가자. 도구 챙기고.”

“감사합니다.”

집에서 챙겨온 미술 도구들을 잔뜩 챙겼다.

가능한 한 모조리.

그렇게 나는 일찍부터 르콩슐라를 찾았다.

로돌프는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한밤의 짧은 열정일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안 그래도 화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손걸레와 붓 세척액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잠시 걸레를 빨러 카운터로 돌아온 사이 내가 들어온 거였다.

로돌프를 따라 화방으로 들어갔다.

밝고 아늑한 곳이었다. 바닥엔 물감들이 이곳저곳 묻어 있었는데, 지우다 지우다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얼룩들만 남은 듯했다.

구석엔 미완성된 그림들이 수도 없이 쌓여 있었다.

“이 그림들은 뭐예요?”

“화가들이 토론을 나누며 함께 그린 그림들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막힌 화가가 이곳을 찾아와 간이로 그려주면, 다른 화가들이 거기에 붓질을 추가하고 보완하면서 의견을 나누는 거야. 쉽게 말하면 연습장이지.”

로돌프가 이젤과 새 캔버스를 챙기며 설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 그림을 먼저 보여주고 싶지만 상대가 리틀마네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따라와. 바로 한 번 그려보자.”

“아무데서나 그려도 돼요?”

“이런 골방에서만 그려야 한다면 굳이 여길 고르지 않았겠지. 그렇지?”

르 콩슐라에 있는 작업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카페 내부가 생각보다 너무 깔끔하기에 그 곳이 그림을 그리는 현장은 아닐 거라고 짐작한 것도 있었다.

개방된 장소에서 여러 화가들과 그림을 함께 그리던 때를 떠올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한 지점으로 향했다.

바로 발코니 바깥이었다.

*

로돌프는 발코니 바깥에서 가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이젤과 의자를 세팅해줬다.

그리고 마실 것을 준비하겠다며 카운터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챙겨온 미술 도구들을 꺼내 르콩슐라와 캔버스를 번갈아보았다.

인상을 화폭에 옮기기 위한 준비운동 같은 것이었다.

‘실재하는 대상이 없어도 인상을 옮겨 그릴 수 있다고?’

후기 인상주의에 대한 설명을 떠올렸다.

고갱과 고흐 정도면 충분히 참고가 되었다.

바로 스케치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바로 르콩슐라를 그렸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시도를 할 것이었다.

내가 후기 인상주의 화가였다면.

나의 이 감정과 가장 밀접한 풍경을 상상해 그렸겠지.

‘르콩슐라가 내게 상기시킨 감정과 풍경은······”

캔버스 위의 스케치는 점점 카페 게르부아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차를 끓여서 나온 로돌프가 조용히 멈춰서서 나의 스케치를 따라 눈을 돌렸다.

“오우, 로돌프 배냉. 대낮부터 웬 이젤이야?”

“쉿, 조용히 해. 리틀마네가 그림을 그리고 있잖아.”

갑자기 다가선 손님은 로돌프의 손짓에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즉시 감탄했다.

“리틀인 건 알겠는데······ 마네라니? 아니 그보다. 이 아이 붓놀림이 굉장히 현란한데? 도대체 누구야?”

“요즘 유명한 리틀마네를 몰라? 이 아이가 바로 그 리틀마네라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행인들이 ‘리틀마네’라는 소리에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을 때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안 사람들은 내가 그리는 모습에서부터 감탄했다.

‘그냥 버릇일 뿐인데.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신기해보이나보군.’

화가라면 누구나 손버릇이 있기 마련이었다.

나는 특히 마음이 조급할 때면 움직임이 빨라졌지만, 손버릇이 화폭에 남는 걸 용납할 수 없어 화가 중에서도 자제하는 편에 속했다.

‘어쨌든 감탄해주고 있다. 한 사람이 감탄하는 것보다는 백 사람, 천 사람이 감탄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겠지.”

금세 스케치를 끝냈다.

내가 그리고자하는 인물들의 구도와 자세까지 완성되어 있었다.

스케치 속 게르부아는 당대의 화가들로 붐볐다.

바로 붓을 들고 그림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살롱전에서 입상했을 때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게르부아에 향했다.

낙선했을 때는 살롱전에 대한 불만을 나누러 갔다.

그림을 비싸게 판 동료 화가에게는 축하를 전하러,

최근에 안 좋은 일을 겪은 동료에게는 위로를 전하러.

그야말로 사람이든 감정이든 붐비는 곳이 바로 게르부아였다.

이제 세월은 무색하게도 많이 흘렀다.

그 모든 감정들은 이제 ‘그리움’으로 귀결되어버렸지.

하지만 인상만큼은 달랐다.

‘화려한 인상’으로 ‘그리운 감정’을 전달할 것이었다.

축제의 현장처럼 보이도록 눈부신 조명을 달았다.

나머지 광선은 인물들의 옷에 묻게 해야 하므로 바로 인물 묘사에 돌입했다.

첫째로 폴 세잔.

부유하면 예술 같은 건 못한다고 생각하는 치였다.

폴 세잔 본인의 존재 자체가 그 생각을 모순으로 만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스스로도 부유한 집안의 자제이면서 나의 경제력을 항상 꼬집으며 비아냥거렸다.

한번은 비천한 자신의 손이 더럽다며, 고귀한 내 손을 더럽힐 수 없다며 악수를 거절한 것도 있었다.

‘자네 아직도 손 안 씻었나? 그럼 내가 장갑을 씌워주지. 앞으론 악수 거절하지 말라고.’

턱수염을 만지고 선 세잔의 손에 하얀 장갑을 그려넣었다.

두 번째는 모네였다.

‘나보다 더 훌륭하신 클로드 모네 선생. 그 명성에 걸맞게 가장 눈부시게 빛나셔야지.’

솔직히 선이 날카로운 미남인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 머리카락을 조금 더 벗겨지게 그려주었다.

요모조모 겪은 일들은 많지만 하나같이 훌륭한 예술가들이었다.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세잔이고, 모네고, 드가고 할 것 없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를 발전시켜왔다.

괜히 모네가 마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당신들의 얼굴은 개인적이지만 그림은 역사적이다.’

게르부아의 화가들을 하나씩 그리며 그들의 개성과 일화들을 떠올렸다.

그러고 있자니 작업이 즐거운 회상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와······ 저 아이가 그 유명한 리틀마네라고?

어느새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나의 그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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