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리는자(5)
카페로 들어서자마자 나를 처음 반긴 건 떠들석한 대화소리였다.
생각보다 내부 공간이 넓었고, 조금 나이대가 있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광택이 없는 테이블마다 달려있는 전등빛이 대낮부터 빛나고 있었다.
[수많은 색채들이 어울려서 하나의 명작을 만들어낸다.]
카운터 너머에 적힌 글귀로 시선을 옮겼다.
나무 판넬을 깎아 만든 음각의 글귀였다.
명작도 결국은 다양한 색깔들이 활용되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당연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한 폭의 그림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터였다.
‘화가들은 저마다 한 가지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와는 상당히 부합하는 문장이었다.
내가 빨갛든 파랗든
다양한 화가들과 교류할 수 없다면 차가운 흑색이나 다를 바 없었다.
자유롭게 사조를 이끌던 게르부아의 예술가들이 떠올랐다.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의 문구란다.”
카운터 너머의 노인이 컵의 물기를 제거하며 그렇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목로 앞에 모여 앉은 손님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이였다.
“여기 어울리는 문장이네요.”
“그렇지. 술 손님은 아닌 것 같고. 차를 한 잔 내줄 테니 마시거라.”
노인이 컵을 닦기를 멈추고 찻잎을 집어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비어 있는 테이블 하나를 잡고 앉아 마저 카페를 둘러보았다.
조금 어두운 분위기에 그림 몇 점이 걸려 있었다.
낯익은 인물들의 초상화였다.
“이번에 마네의 작품 중 대단한 모작이 탄생했다는데, 다들 봤나? <식물원에서>라는 작품?”
카페 한 귀퉁이에 놓인 턴테이블 위에선 아무 음악도 흘러 나오고 있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의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손님들이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맞아요. 거장 필립에게 채택되어서 그 모작을 그린 화가가 고작 11살이라던데요.”
“이 사람아. 나도 뉴스에서 봤는데 그걸 모르겠나? 또 뭐라더라. 어느나라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들은 각자 그 아이가 미국인이라더라, 중국계 프랑스인이라더라, 하는 추측을 나눴다.
그들의 잔 옆에 놓인 스마트폰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한국인이요.”
내가 대뜸 끼어들자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던 손님이 손뼉을 쳤다.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기 위해 근처로 다가가 앉았다.
그러자 로돌프가 내 앞에 차를 한 잔 올려주었다.
“귀가 밝은 아이로구나. 신문을 읽는구나?”
사진까지 꽤 찍혔던 것으로 기억했다.
나는 우선 너무 유명한 사안이라 알고 있다고 둘러댔다.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해서는 리틀마네라고 불리고 있지. 아주 재미있어. 우리가 또 마네에는 일가견이 있잖아?”
“그림 봤어요? 유사율이 98%래요. 원작과 거의 같다는 건데, 기사에 난 그림을 보니까 아주 대단하더군요.”
세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데에 욕심이 있는 노인들이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가 나오기에 더 자세히 귀를 기울였다.
“그랬지. 마네가 그렇게 그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적확했어. 무슨 과학자니 무슨 학자니 하는 사람들이 연구를한 장치로 열심히 봤다는데, 꼭 연구씩이나 해봐야 아나? 그냥 척 보면 그건 무조건이지.”
그가 열변을 토하자 모두 칭찬하듯 박수를 쏟아냈다.
“마네의 그림에 대해서 자세히 아시나보네요.”
이번엔 내가 나서서 묻자, 모든 손님들이 같은 대답을 가지고 있다는 듯 빙긋 웃었다.
“물론이지. 괜히 인상주의겠니? 사람의 감각이라는 건 뭘 어떻게 분석을 하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야. 나는 그림 속 인물의 눈 부분만 딱 잘라놔도 마네 그림만큼은 찾아낼 수가 있단 말이야.”
“하하하. 그게 뭐예요. 전체를 봐야지 눈만 보고 어떻게 알아요?”
“이 사람들이? 마네 그림은 다르다니까 그러네. 눈빛이 다르다고 눈빛이. 깊은듯 공허한 눈빛을 자네들은 못봤나?”
보통 서양인들은 사람을 볼 때 처음 보는 부분이 입이었다.
입매에 그의 감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생에 서양인이었던 나는 주로 사람의 눈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물론 그림의 모든 부분에 혼신을 다했지만, 아무래도 눈 부분을 그릴 때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 점들을 그들은 기가막히게 읽고 있었다.
“이번 그림만 해도 그래. 그 작게 그려져서 선명하지도 않은 얼굴인데 인상만큼은 자세히 남아 있잖아. 자세히 보는 건 의미가 없어. 나는 나이 먹고 눈이 침침해질수록 마네 그림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니까?”
“거, 죽은 마네가 영감 얘기 들으면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겠소.”
무덤에 있지 않기 때문인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럼 그 11살 한국인 꼬마가 마네에 일가견이 있다, 이 말이에요?”
“나의 이 안목은 절대 그냥 생긴 게 아니야. 마네의 그림을 오래 봐왔으니까 얻게 된 거지. 그 꼬맹이는 단지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뭔가 특별한 거라고.”
쭉 목에 핏대를 세우던 노인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얘야. 그러고 보니까 너도 동양인처럼 보이는데, 한국인? 그 애랑 혹시 아는 사이냐?”
“이 사람아. 한국인들끼리는 뭐 뇌가 연결이라도 돼 있는 줄 아나? 파리보다 큰 도시가 한국의 서울이라고.”
“맞아요. 그리고 저 애 말하는 거 못 들으셨어요? 오히려 프랑스에서 50년은 산 사람의 발음인데······ ”
모두가 나서서 노인의 딴지를 거는 동시에 내가 대답할 수 있도록 입을 다물었다.
속으론 혹시나 싶은 것이었다.
“아는 사이 정도가 아니고. 그게 바로 전데요.”
노인들의 눈이 빠질듯 휘둥그레해졌다.
“뭐? 거짓말 하지 마라.”
“못 믿으시겠으면 거기 휴대폰으로 검색해보세요. 리틀마네라고요.”
그들은 모두 돋보기 안경을 꺼내 쓰고 휴대폰을 천천히 두드렸다.
무언가 검색되는 사진을 찾은 것인지 미간에 주름을 팍 주며 휴대폰 화면 속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 맞네 맞네! 와!”
카운터의 로돌프가 의외라는 듯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겨우 열 한 살인 네가 이걸 어떻게 그린 거냐?”
앞서 목소리가 가장 컸던 노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차피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믿었다.
이미 실력을 보여준 뒤에 꺼내는 이야기였으니까.
“마네 그림 어디가 특별한지가 그냥 보였어요. 마네 그림 속 사람은 눈으로 이야기를 하던데요. 아마 그래서 할아버지가 마네 그림 속 눈빛을 다르게 보는 것일 거예요.”
11살 한국인 꼬마로서 가능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나의 작품들과 복원 작업도 그리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또 3살 때부터 봐왔다고 하면 7, 8년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었다.
노인의 말에 동의해주는 내용을 섞자 그는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수십억에 판매한 작품들도 있지 않느냐?”
“모작을 일주일도 안되서 해냈다는데, 그게 진정 가능한거야?”
이미 신문으로 충분히 알려졌을 법한 일들도 노인들은 일일이 캐물었다.
기자회견 때와 같은 피곤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대부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오르세에 방문한 사건부터 필립의 눈에 들게 된 계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노인들은 때로 박장대소를 하거나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박복한 명을 타고 난 탓에 지긋한 노인의 삶은 살아보지 못했지만, 자신의 삶을 나누는 그들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종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손님들은 작별인사를 나누며 카페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국 로돌프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벌써 어둑어둑해졌는데. 너는 안 가봐도 되니?”
“네. 가려면 어두워지기 전에 갔어야죠. 좀만 더 있다가 갈게요.”
로돌프는 다 식은 나의 차를 데워주겠다며 받아갔다.
“이 근처는 사실 카페 게르부아를 와보려고 방문했는데, 지금은 없나보네요.”
아무래도 없어진 것 같았다.
여전히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게르부아가 있던 곳엔 지금 아무 것도 없으니.
로돌프는 차를 작은 주전자에 다시 담았다.
어쩌면 그런 카페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지도 몰랐다.
“옛날에야 마네와 같은 거장들의 단골 가게였지. 인상주의가 태동한 현장이기도 하고. 1800년대 중반쯤엔 매주 목요일마다 정기 회합을 하곤 했다고 하는데······”
140년도 더 된 일이니 로돌프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일일 것이었다.
아마 이곳에서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직접 겪은 듯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일 터였다.
카페 게르부아.
바티뇰파 화가들과의 회합은 매번 즐거웠지만 전시회를 함께 구상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어쩌면 미련해보였을지도 몰랐다.
조금 과장하자면 당시의 살롱전은······ 입시미술 같은 느낌이었으니.
안 될 그림은 끝내 낙선하고야 마는 관문이었다.
하지만 예술은 관문을 넘는 일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있던 노인들처럼 실없는 이야기도 나누고, 그림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도 나누며 자신만의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는 장소가 바로 게르부아였다.
예술이란 관문 너머가 아니라 외길의 변두리에서 이루는 것이었다.
정통에 반기를 든 게르부아의 화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로돌프가 한쪽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가리켰다.
카페로 들어오자마자 보았던 화가들의 초상화였다.
“많은 화가들이 이 거리를 찾았다. 저 화가들도 마찬가지지.”
모네와 드가, 폴 세잔의 초상화였다.
게르부아가 바티뇰파 화가들의 단골가게였다고는 하나 그 이외의 예술가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예술은 수많은 색채들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하나의 명작이었으니까.
로돌프는 가장 왼쪽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저기 그려진 남자는 클로드 모네라는 화가다. 그 옆엔 그의 그림 <풀밭위의 점심식사>가 걸려 있지.”
*클로드 모네, <풀밭위의 점심식사> 그림, 각주
나의 그림과 이름도 소재도 같았다.
벗은 여자는 없었지만 울창한 나무 틈으로 조각빛을 받는 인물들은 분명 나의 아이디어와 흡사해보였다.
“그래. 아마 마네의 그림을 떠올렸겠지. 당연한 일이다. 마네의 영향을 받아 그 작품을 수도 없이 모작했을 테니까. 저게 그 결과물이고 말이다.”
이름도 비슷한데 모작까지 하다니.
역시 거침이 없는 사내였다.
“마네에게서 착안한 모네의 그림은 훨씬 현실적인 풍경으로 더 잘 그려냈지. 저기 나무껍질 표현 좀 봐라.”
모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더 잘 그렸다’는 말은 좌시하기 어려웠다.
“제 눈엔 역시 마네 그림이 더 나은데요. 모네도 마네의 그림에 감동해서 저런 훌륭한 모작도 하지 않았을까요?”
“둘 다 역사적인 화가지. 마네가 인상주의의 단초를 마련했다면 모네는 그것을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우열을 가릴 수는 없어.”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인상주의를 끊임없이 발전시켰다고?
‘오래 살았다면 내가 이뤘을 수도 있을 터였다.’
“모네는 몇 살까지 살았나요?”
“뭐? 자세히는 모른다. 그래도 80은 넘긴 걸로 아는데.”
“부럽네요.”
나보다 30년 이상은 더 산 셈이었다.
그도 말년이 건강하지는 않았겠지만 30년이면 내가 마네로서 그려온 세월을 두 번은 반복할 만큼의 시간이었다.
로돌프가 크게 웃었다.
“모네는 네가 더 부러울 거다. 아직 어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으니까.”
11살 꼬마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똑같이 50살까지만 살아도 내겐 앞으로 40년이 더 남아 있었다.
노인은 다음 초상화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그림은 에드가 드가의 초상화다. 네가 좋아하는 마네가 드가의 그림을 찢은 적이 있지.”
데생에 능한 화가였다.
누가 쫓아오는 게 아니기에 급하게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표현력은 데생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을 만했다.
내가 순간적인 인상을 담는 데에 집중했다면 그는 움직임 자체를 화폭에 빠르게 옮겨 담는 데에 능했다.
“드가도 그렇지만 마네도 참 드센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더구나. 절친한 사이였다고 했는데, 드가에게 선물로 받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찢어버렸지.”
그 일을 떠올리자 가라앉은 지 십수 년도 더 된 화가 다시 치밀었다.
“그렇긴 하지만 단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드가는 여성 혐오증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을 못나게 그리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마네에게 선물한 그림 속 마네의 부인이 매우 못나게 그려져 있었죠. 그래서 마네가 불만을 이야기했더니 보이는 대로 그렸을 뿐인데 왜 딴지를 거느냐는 식으로 일관하니 그 점잖은 마네도 화가 났을 법하죠.”
순간적인 동작을 잘 표현하기 때문에 못난 순간도 왕왕 잡아냈다.
아마 그는 그것이 동작 속에 숨겨진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래도 벗의 부인을 그릴 땐 자제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의견이었다.
나의 자세한 설명에 로돌프는 놀란 표정이었다.
“도대체 그런 자세한 것까지 어떻게 아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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