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10)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도대체 언제? 무슨 일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건축가 ‘진현재’는 장피에르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자마자 즉시 전화를 걸었다.
-온 지 한······ 사나흘 됐지.
“정말 너무하네. 올 예정이었으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 약속도 잡지.”
-비난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나도 너무 갑작스럽게 들어왔고, 여기 있는 동안 말 그대로 휴대폰 잡을 시간조차 아예 없었으니까.
장피에르는 유럽에서 굉장히 잘나가는 경매사였다.
그가 그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면······ 실제로는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무슨 일로 연락을 다 주셨어? 설마 하니 집을 지어달라는 건 아닐 테고.”
-한국에서 사업하겠다더니 점쟁이 다 됐군. 이마에 써 있나? 아니, 전화로 이마가 보일 리는 없지.
“집을 지어달라고? 갑자기 네가 무슨?”
장피에르와 진현재는 프랑스 명문 건축대학교 동기 사이였다.
장피에르는 일찍이 순수미술 쪽으로 진로를 바꿔 미술품 거래사가 되었지만
현재는 꾸준히 건축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현재에 의해 지어진 공공미술관만 해도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살 집은 아니야. 유명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집을 짓겠다고 해서 네 명함을 줬어. 곧 연락이 갈 수도 있으니 그렇게 알아두라고.
유명 화가의 집이라.
예술가의 집을 짓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유명하다면 좀 깐깐할 수도 있지만 건축에 있어서는 현재도 매우 깐깐한 편이었다.
“뭐, 알겠어. 예습을 좀 해둬야겠네. 그 사람 이름이 뭐야? 검색하면 나오나?”
-유명하다고 했잖아. 윤예준이라는 화가야. 아, 아니지. 지금 미술관에서 개인 특별전시회를 하고 있어. 주소를 찍어줄 테니 시간 나면 직접 가서 보는 게 좋겠네.
근래 몇 달간은 매우 바빴던 현재였다.
윤예준이라.
국내 미술계에서 한참 떠들석했던 이름인 건 기억했는데 소식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자세히 기억하는 건 그 이름 석자뿐이었다.
*
아직 그 윤예준이라는 화가에게 전화가 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선 장피에르가 일러준 미술관을 방문했다.
현재가 항상 바쁜 건 그렇게 일을 꼼꼼하게 살핀 뒤 처리하기 때문이었다.
‘유행 타는 건물은 싫어하는 편이기는 한데······ 그래도 유행이 괜히 생기는 건 아니지.’
화담이라는 갤러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회색 콘크리트 자재를 그대로 드러낸 건물은 빗물에 잔뜩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었다.
처음부터 외벽 청소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구상된 친환경 디자인이었으니.
얼룩마저도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지금은 너무 흔해져버려 별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주차장에 차가 가득했다.
간신히 빈 공간을 찾아 차를 주차한 뒤 차키를 뽑았다.
주차장에서 갤러리 건물을 내다보면 우선 ‘I’라는 알파벳과 한 아이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현재는 갤러리의 특별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연. 유명할 만한 그림들이었다.
앞선 관람객들이 이야기하던 <환생>이 주는 오묘한 기분은 물론이고
다른 작품들도 기품이 있었다.
작품들을 모두 둘러보고, 마지막 작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조명 하나가 짙게 드리워진 철거 공간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굉장히 투박하고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몽환적인 장소.
‘대단한 작품이다. 근데 저 조명은 뭐지?’
현재로서는 건축 초기 야간 기반작업 때 임시로 밝혀두는 서치라이트로 보였지만, 각도는 로우 앵글이었다.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있었다.
그림을 한 번 보면 눈을 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림에 완전히 빠져 있는 현재를 깨운 건 주머니 속 휴대폰이었다.
전화를 받기 위해 암실을 빠져나가자 갤러리의 변두리였다.
비상구를 열고 실외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예, 감각건축소 소장 진현재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건축 상담 일정 좀 잡고 싶은데요.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현재는 당황하지 않고 연락을 이어나갔다.
“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사무실이 아니었기에 받아 적을 수는 없었다.
이름을 외우기로 하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전달되었다.
“윤예준입니다.”
수화기에서 동시에, 아이의 이름은 현재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놀라서 돌아보자 한 초등학생 아이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걸어나오고 있었다.
‘어? 건물 앞 포스터에 있는 그······?’
휴대폰이 큰 판넬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아이였다.
걸어나오던 아이는 현재를 발견하고 멈춰섰다.
손에는 현재의 명함이 들려 있었다.
현재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혹시 장피에르 추천으로 연락하신······ 윤예준 화가님?”
수화기 너머에서 대화하던 이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예준은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었다.
둘은 건물 뒤편으로 장소를 옮겨 벤치에 앉았다.
솔직히 현재는 아직 믿기 힘들었다.
이 아이가 그 그림을 그린 장본인이라는 것도 그렇고
건물을 짓겠다고 나서는 것까지 전부 말이다.
“명함에 써 있는 이 감각 건축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궁금할 만했다.
건축에 대한 현재만의 철학이 담겨 있는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미심쩍은 마음을 뒤로하고 설명했다.
“지금 같은 겨울의 감각은 차갑고, 여름은 뜨겁죠? 겨울에도 따뜻한 감각을, 여름에도 시원한 감각을 선사하는 것이 바로 건축인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이 정도는 모든 건축가가 당연하게 동의할 만한 얘기였어요.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감각들을 시도하느냐는 거죠. 공간에 감각이라는 게 없을 수는 없으니, 도리어 활용할 수도 있잖아요.”
공간에 감각이라는 게 없을 수는 없다라.
현재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달랐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느낄 수 있는지, 공감의 폭이 넓은 만큼 발견되는 것이었다.
“그런 것 같아요. 화가도 표현할 수 있는 만큼만 볼 수 있거든요. 그릴 만한 게 따로 정해진 건 아니에요. 어디든 감각은 있지만 그걸 발견할 만큼 화가의 눈썰미와 상상력이 충분해야 그림이 그려지는 거죠.”
“오. 옳은 비유 같습니다.”
현재의 목소리가 고양되었다.
“건축만큼 사람의 감각과 가까운 창조 활동도 없죠. 단순히 겨울에 따뜻하게 해주는 정도를 넘어서, 저는 건축이 거주자로 하여금 즐거움, 그리움, 후련함, 안락함, 평화로움, 후련함 등등 많은 감각을 불러일으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천장의 높낮이, 자재나 인테리어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 채광의 방향에 따른 무드와 인근의 소음들까지.
인간의 오감 중 건축이 관여하지 않는 바는 미각뿐이었다.
열정적으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던 현재는 문득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던 시절, 현재는 직접 발품을 팔아 의뢰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자신의 건축 철학까지 장황하게 늘어놓곤 했던 것이었다.
‘그때의 부담감을 지금도 느끼고 있는 것인가?’
곧 현재는 그게 부담감이 아니라 간절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예준의 취지에 맞는 건축이라면 현재 자신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수 있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예준은 고심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이었다.
어쩌면 이 윤예준이라는 아이는 자신의 건축 철학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현재를 유도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거 원. 영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보기 좋게 휘둘린 건 확실하군.’
과연 붓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다룰 줄 아는 아이였다.
“그럼 확실히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우러져야 하겠네요.”
“그야 물론이죠. 디자인은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법이니까요.”
감각의 작용이 유기적이듯, 건축 공간과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예준은 감명을 받았는지 현재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럼 실제로 건물이 지어질 장소를 보셔야만 건축이 가능할지 결정할 수 있으시겠네요.”
장소를 가려가며 건축을 결정해야 할 만큼 발상의 폭이 좁았다면, 현재는 지금만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우선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번 건축의 고객인 예준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도는 미리 알아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현재와 예준은 함께 차를 타고 예준이 점찍었다는 장소로 향했다.
현재는 운전하는 내내 골똘히 생각했다.
‘설마······ 투기가 목적인가?’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목적지는 서울 근교의 낙후된 동네였다.
언뜻 투기용으로 건물을 대충 지어 올릴 생각으로도 보였지만 분명하지는 않았다.
종종 개발 후보 지역으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도 알 수 없는 여러 이해관계의 한계로 인해 계속 탈락되던 지역이었다.
전망이 좋지 않은 편이라는 뜻이었다.
‘그래. 이렇게 어린 아이가 투기 같은 걸 알 리가 없지. 그냥 막연히 자기 집 하나 갖고 싶은 것일 거야.’
현재는 미술관에서 본 예준의 그림들을 떠올렸다.
실로 뛰어난 예술가였다.
하지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의 철학까지 위대해지는 건 아니었다.
차에서 내린 뒤 함께 골목을 걸었다.
무분별하게 지어진 낡은 집들이 언덕 능선을 따라 비뚤게 늘어서 있었다.
‘나도 건축가지만 대규모 재개발 같은 건 좀 가슴이 시리다.’
도시 계획 개발이 이루어지던 때도 아니었을 것이고
이곳의 조감은 닭장처럼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 열악한 마을을 살기좋게 만든 건 주민들이었을 것이었다.
그들이 계속해온 생의 노력으로 이 삭막한 공간에 화목함을 채워넣고 살았을 것이었다.
대규모 재개발이란, 그러한 면에서는 화목함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다.
예준은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듯한 벽화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중 한 벽화 앞에 섰다.
큰 날개 그림이었다.
“이 마을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꼭 되살리고 싶더라구요. 옛날 언젠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살고 행복한 곳이었을 텐데, 지금은 너무 조용해요.”
그리고 예준은 주머니에 접어온 종이 하나를 펼쳤다.
볼펜으로 그린 건물 도면이었다.
“그런데 화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벽화가 최선이었어요. 저 벽화를 통해 사람과 공간을 연결하고 싶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살게 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저 그림을 지어올려주세요.”
그림을 지어올려달라.
예준은 현재를 또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걸어서 2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말없이 걷는 동안 현재는 예준의 말을 곱씹었다.
환경과 어울리는 건축.
그를 통한 공간 되살리기에 예준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둘은 한 공간 앞에 멈춰섰다.
건물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난 공터였다.
아직 이곳저곳에 자재들이 남아 나뒹굴고 있었다.
철거 업체에서 제대로 치우지 않은 것이었다.
“바로 여기예요. 이곳에 이 도면대로.”
현재는 종이를 받아들고 공터를 살폈다.
건축에 들어간다면 제대로 측량해봐야 하겠지만 현장을 계속 돌아다니며 얻은 눈썰미가 있었다.
‘일단 짓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군.’
그렇게 공터를 빤히 보다보니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낯선듯, 익숙한 풍경이었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현재를 본 예준이 말했다.
“제 작품 <이방인의 집>은 이곳을 그린 거예요.”
“아······!”
공터만 봐서는 기억하기 어려웠다.
주변 구조물들이 익숙한 건 그 그림을 봐둔 것 때문이었다.
“그 그림 반응이 굉장히 좋던데. 건축을 해버리면 그 그림의 실제 장소가 없어져버리는 것 아니에요?”
“괜찮아요. 사람들의 그리움은 이 공간에 닿는 순간 방향을 잃어버려요. 보다시피 옛 건물은 허물어져 없고 지금은 폐허나 다를 바 없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곳은 그리움의 무덤이에요. 저는 이 무덤이 온전한 정착지가 되기를 바라요.”
현재는 공터에서 눈을 떼고 예준을 보았다.
이 소년은 예술가였다.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이든 건축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뭐든 시도할 사람이었다.
현재는 건축도 예술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활동해왔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았다.
현재의 건축은 때때로 미학적이었고, 공익적이었고, 인간적이었다.
도면을 보았다.
가족들의 방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작업실도 기입되어 있었다.
현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직 구체적인 설계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벌써 두 군데에는 완벽히 지어져 있는 것 같네요.”
“어디요?”
“고객님 마음 속에, 그리고 제 머릿속에.”
"...?"
한 군데 더 있었다.
윤예준의 날개 벽화.
그 벽화는 이 도면보다도 훨씬 훌륭한 요약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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