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4)
어머니는 근처 화방을 찾아 캔버스를 하나 사왔다.
캔버스에 페인트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페인트는 어디에는 잘 묻을 것 같았다.
가까운 공터엔 녹이 슨 철근이나 먼지가 잔뜩 묻은 비닐 쪼가리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떤 건물이 허물어지고 난 자취인가.’
사물마다 난 자리는 제각각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었다.
누구의 빈 자리인가?
버찌를 든 알렉상드르를 떠올렸다.
얼굴도 모르는 예성이라는 아이와 절망에 빠진 어머니의 눈빛을 떠올렸다.
죽어가는 도시의 분위기와 생명력이 없는 공기의 분위기를 살려 그 모든 느낌을 한 폭의 그림 속에 담아냈다.
허름한 공터는 차츰 어두워졌다.
해가 저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시간이 너무 늦었나봐.”
내가 그릴 때마다 함께 시선을 옮기며 공터를 살피던 어머니가 말했다.
공터의 생김새는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세부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어머니는 휴대폰 라이트로 공터를 몇 번 비춰보았다.
“기별도 없네. 조금만 기다리고 있을래?”
그리곤 언덕 바로 아래에 있는 차를 끌고 올라왔다.
“어때? 잘 보이지?”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라이트를 켰다.
빛도 그늘도 너무 강해 당연히 햇볕만 못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공터 한 구석엔 제 기능을 하지 않는 가로등이 기울어져 있었다.
난데없이 비스듬이 쏘아진 불빛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반대편 구석엔 뼈대만 남은 담장 위로 앙상한 나무 하나가 드리워 있었다.
‘분위기가 조금 뜨지만 생략할 순 없지.’
오일 파스텔을 활용해서 공터의 공기 속에 녹아들게 했다.
그렇게 나무까지 그려 넣은 이후에야 그림이 완성되었다.
공터에 어떤 형태의 집이 세워져 있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 누가 살았는지도.
하지만 그는 죽었든 살았든 더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공터는 이제 이방인의 공간이 되었다.
“다 그렸어?”
“네.”
어머니가 차에서 내려 다가와 그림을 보았다.
마지막에 명암을 짙게 처리했다.
단선적인 시선이 그림에 묻어 공허한 분위기를 내었다.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헤드라이트 역광이 심해 잘 보이지 않을 줄 아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나를 껴안고는 오래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강한 상실감은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오랜 쓸쓸함으로 남았다.
쓸쓸함은 공간에 묻어 시선을 거슬렀다.
그 공간을 화폭에 담았다.
감상자의 슬픔이 눈물로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렸다.
“다 같이 살았으면 더 재미있었겠다, 그렇지?”
메는 목을 가다듬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랬을 거라는 대답은 쉬웠지만 하지 않았다.
뒤늦게 소통할 순 있지만
쓸쓸함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
목욕을 끝낸 뒤 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부모님도 즉시 잠에 들 줄 알았지만 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조금 열린 문 틈으로 거실을 내다보았다.
그림 둘을 놔두고 부모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나는 내 그림이었다.
아버지의 평가를 듣지 못했던 것 같아 귀를 기울였다.
“흠 잡을 데가 없네.”
“그렇지? 냄새만 좀 빼면 페인트로 그린 줄도 모르게 될 걸?”
“이 정도면 벽화 작업도 완벽하게 되는 거 아니야?”
“오늘 벽화도 엄청났다니까? 벽화 먼저 그리고 이걸 그린 거야.”
그리고 어머니는 휴대폰을 꺼내 벽화 사진을 보여줬다.
아버지는 내 그림을 보며 환히 웃었다가 홀가분한 한숨을 내쉬었다.
“예준이 돈으로 처리한 거라서 마음이 안 좋기는 하지만, 빚이 없으니까 한결 숨통이 트인다.”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보는 별로 안 그래?”
“홀가분하지. 그 동안 힘들었으니까.”
그리곤 내 것과 나란히 놓인 그림을 보았다.
평면적으로 표현된 아이 그림이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그린 것 같았다.
현대미술답게 난해한 표현이었지만 아이의 건강한 양감은 분명히 확인되었다.
“요즘은 인큐베이터도 많이 싸졌다더라.”
“얼마나?”
“보험 따라 다른데, 싸면 일주일 내리 들어가 있어도 10만원이나 나올까 말까래.”
또 부모님 사이의 알 수 없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인큐베이터는 수술 도구를 뜻하는 것 같은데,
그 장치를 예성에게 2달간 적용했고,
이후로는 온갖 병치레로 여러 수술을 받았다.
그러다 총 여덟 달을 넘게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당시 빌렸던 예성의 수술비로 많은 돈을 빚졌던 것이었다.
“난 솔직히 시원섭섭해.”
“왜?”
“빚이 없어지고 나니까 예성이가 내 인생에 완전히 없었던 것 같잖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인큐베이터라는 건 조산아나 미숙아에게 남은 영양을 마저 공급하는 장치였다.
옛날 같으면 완전히 죽었겠지만, 지금은 비싼 돈을 내고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예성은 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안에도 온갖 병이 발병해 온갖 종류의 수술을 거쳤을 것이었다.
오염에 가장 취약한 시기가 조산아, 미숙아 시기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예성이도 빚으로는 남고 싶지 않았을 거야.”
가난해본 적이 없는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인지는 몰라도, 소중한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경제적으로 힘든 것이 낫다는 어머니의 마음에 공감이 되었다.
돈에 쫓기는 동안 오히려 상실감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도 맞았다.
죽은 사람은 언젠간 떠나보내야 하는 법이었다.
미숙아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아버지의 그림 속 아이를 보았다.
차마 병약하게 그릴 수 없었던 예성일 것이었다.
‘그야말로 이방인이구나.’
나는 조용히 방 문을 닫았다.
가장 중요한 건 돈이었다.
대학생 봉사자에게 어머니는 예성과 관련된 일로 꿈을 접었다고 말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일 터였다.
돈이 충분했다면 수술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꿈을 포기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다.’
전생의 나는 많은 돈을 쓰고도 온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더 큰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전생에 가졌던 돈 이상은 기본으로 필요했다.
‘저들의 꿈을 돕든 나의 꿈을 이루든 결국 필요한 건 돈이다.’
이번에 그림을 비싸게 팔았다.
유명해진다면 3억8천뿐만 아니라 38억도 가능할 것이었다.
다음 경매를 빨리 진행하고 싶어졌다.
*
다음날, 화담 갤러리 관장은 민제를 관장실로 불렀다.
도슨트로 바빠진 민제는 한참 뒤에나 관장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부르셨어요?”
“요즘 돈 좀 벌었잖아. 쉬엄쉬엄 하지 그래요?”
갤러리 관련해 이슈가 터진 이후로 민제는 눈에 띄게 바빠졌다.
민제가 빚은 내고 사는 처지라는 건 관장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왜 쉬엄쉬엄할 수 없는지도 잘 알 것이었다.
“이일섭 특별전이 곧 끝나니까, 다음 전시회를 기획해야 해요.”
“네? 전시 연장 안 하신대요?”
한참 유명해진 차였기 때문에 1년쯤은 더 할 줄 알았다.
“요즘 한참 시끄럽잖아요. 그분께서 배려를 해주시는 거죠. 처음엔 저도 설득했어요.”
“뭐······ 그분만의 사정이 있으신 거겠죠.”
이일섭전으로 이익을 보는 건 당연히 화담 갤러리였다.
새로운 기획이라.
아마 이번 일로 화담 갤러리가 유명해졌으니 작품 섭외도 쉬울 것이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구상 좀 해보겠습니다.”
“잠깐, 잠깐. 저도 제안이 있어서 부른 거예요. 너무 급하시네.”
관장은 헛기침을 하며 머뭇거렸다.
“윤선생님 아들 그, 윤예준이요. 그 친구 전시를 좀 더 해볼까?”
예준 도슨트 일도, 환생 전시 일도 민제가 독단으로 처리한 일이었다.
그림 전시야 크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니지만 관장과 상의 정도는 거쳤어야 했다.
하지만 관장은 그 일로 민제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다.
주변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흘러서 그럴 틈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네? 그래도 될까요?”
솔직히 예준의 전시회를 하면 사람은 지금보다 더 붐빌 것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화가가 바로 예준이었기 때문이다.
“기획이 빠를수록 좋고······ 관람객 수요도 있잖아요? 어때. 걸 만한 작품이 좀 있을까?”
최근에 작업실을 얻어줬으니 없을 리는 없었다.
어제 본 <이방인의 집>만 해도 수준급의 작품이었다.
“없으려나? 하긴. 이번 경매도 최초 공개였는데, 그만한 것들을 쟁여놨을 리는 없겠죠?”
생각해보면 대단한 건이었다.
<블랑쉬 네즈>는 사람들의 수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하고도 남았다.
이번에 특별전을 계획한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갤러리 화담은 밤에도 문을 닫을 수 없을 만큼 연일 초만원이겠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을 놓치면 안된다.’
실력있는 화가들도 이러한 기회를 잡지 못해 무명 생활을 더해나가곤 했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소개할 작품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준이는 달랐다.
고가에 팔린 <블랑쉬 네즈>도 불과 며칠만에 그려냈다.
<모란>도, <에밀졸라의 초상> 모작도, 빈 공터에서 그린 <이방인의 집>도.
모두 단 며칠만에 그려낸 역작이지 않았던가.
‘그걸 전시할 수 있다면 예준은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관심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작품만 있으면 됐다.
사람들은 알아서 화담을 찾아와줄 것이었다.
홍보는 <미,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지난번에 경험해보지 않았나.
“한번 확인해봐야겠습니다.”
“뭘요? 아드님 작품들이요?”
“아뇨. 예준이 작업실 말이에요.”
작업실이 있다는 말에 관장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민제는 즉시 예준의 작업실로 향했다.
역시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곳곳엔 작업이 끝난 캔버스가 켜켜이 겹쳐져 있었다.
‘벌써부터 충분하다······!’
갑자기 들어온 민제를 보고 예준이 벌떡 일어섰다.
“어? 무슨 일이세요?”
“아······ 저기, 뭐. 우리 예준이 그림 잘 그리고 있나 궁금해서 와봤지.”
예준이 웃었다.
“아빠가 작업실 구해다준 덕분에 편하게 그리고 있죠.”
“너무 열심히 하는데? 이 정도 작업량이면 개인 전시도 열겠어.”
은근슬쩍 떠보자 예준은 자신의 작업물들을 휙 한번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걸 보니까 자극이 돼서. 그런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아직 서울 옥션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다른 미술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두 번째 작품을 최초 공개한 후 미국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전시회를 할 만한 그림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림이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건 민제뿐이었다.
“화담에서 한 번 해볼래?”
민제가 제안하자 예준이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개인 전시요?”
“물론이지.”
전시를 해서 그림들을 세간에 한 번에 공개한다면, 화담보다 더 큰 미술관에서도 연락이 올 것이었다.
화담의 규모가 일급이 아니라는 건 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몇날 며칠을 미술관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저야 너무 좋죠! 거기서 그림도 팔 수 있죠?”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추진할 수는 있지.”
화담엔 달리 조성된 경매장이 없었다.
하지만 구매 희망자가 나온다면 관장실을 비워서라도 바로 진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관장도 기쁘게 방을 내줄 것이었다.
“전시, 판매 둘 다 할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네요.”
예준이 최종적으로 수락했다.
지금부터는 다시 바빠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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