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5화 (15/241)

작은 거인(7)

전통 동양화였다.

산맥을 그린 풍경화.

거친 붓자국과 현실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쯧. 이렇게 조명이 안 비치는 유리 액자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다고 유리를 뺄 수도 없고.”

이일섭이 애물단지를 보듯 하더니 그렇게 말했다.

이일섭 특별전을 보면서 그의 전통 동양화가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대충 어떤 느낌일지도 상상해봤다.

하지만 실제로 보고 나니 영 딴 사람의 그림이었다.

아직 동양화를 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 정도면 그냥 신인이 아니라 거장급의 작품이었다.

‘화풍을 바꾼 건가?’

바꾼다면 왜? 알 수 없었다.

신인이기는 하더라도 이렇게 갑자기 화풍이 바뀐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었다.

살롱전에서 십 년이 넘도록 낙선만 반복하다 스페인에 방문했을 때,

나는 벨라스케스의 작품과 일본 회화의 평면성에 심취했다.

그렇게 한 번의 자기 부정을 겪고 새로운 화풍을 얻어낼 수 있었다.

체력적으로는 그저 그랬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여행이었으니.

나,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은 그 화풍을 발전시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이건 할아버지 그림 같지가 않은데요?”

“그래? 왜?”

나는 그 거대한 그림과 다른 것들을 한 번씩 다시 둘러보았다.

특별전의 그림들은 예술성에 집중한 느낌이었다면 작업실의 작품들은 완전히 중립적인 장인정신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예 미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 같았다.

그림 한 편으로 하얀 쪽지가 작게 끼워져 있었다.

작품의 설명일까 싶어 다가갔다.

“느낌이 달라서요.”

“내 그림이 맞다. 철없던 시절 잔재주 하나만 믿고 자신감 있게 완성한 작품이지.”

쪽지에는 ‘<노령산맥>, 수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엔 ‘수경’이라는 사람이 그렸다고 써 있는데요?”

“그래. 수경. 수경 화백의 본명이 바로 이일섭이다.”

이일섭은 별 것 아닌 사실을 진술하듯 그렇게 대답했다.

“수경이요?”

이일섭은 일찍이 동양화의 거장으로 우뚝 선 故 박노규 화백의 눈에 들어 그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박노규 화백의 안목이 뛰어났던 것인지, 이일섭은 화단의 주목을 물씬 받았다.

그렇게 ‘수경’이라는 호를 받고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이들도 ‘이수경’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정도였다.

오히려 박노규보다도 더 유명했다.

이수경이 활동할 때엔 텔레비전이 슬슬 보급되기 시작했던 때였으니까.

이일섭이 신문 몇 개를 보여주었다.

꽤 오래된 일보였다.

[거장 박노규 화백 별세··· 유일한 제자 이수경 한국화 명맥 잇나]

[이수경 <금강전도>, 천문학적 금액 낙찰··· 박노규 사후 정통파 거장 위치 지켜]

일섭의 성공 가도를 전달하고 있는 헤드라인이 여럿 보였다.

“생각보다 더 엄청난 분이셨네요.”

“찬사는 많이 들어 익숙하다. 뭘 그려서 냈다 하면 정통 운운하니······ 그냥 나의 화풍을 정통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야.”

신문을 더 들여다보았다. 미술 잡지가 아니라 유명 종합신문사였는데도 그의 기사가 상당히 많았다.

그들 사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고인이 된 스승 박노규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통은 좀 그만 하고 내 그림을 좀 그리고 싶은데, 그러기엔 너무 많은 성공을 거뒀다.”

너무 특별한 건 ‘이수경’에게 요구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무리하게 시도하더라도 이전의 유명세 때문에 괜한 소리를 듣게 될 게 뻔하다는 거였다.

“그럼 지금 사용하고 계신 이름이 오히려 진명이겠네요.”

“그래, 맞다.”

이일섭은 한숨을 내쉬었다.

“좀 다른 걸 해보려 해도 내겐 한국화의 명맥을 잇는다는 미술사적 사명감 같은 게 강요되고 있어. 몇십 년간 그려온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만 그려져도 되는 그림이 어디 있겠느냐만 말이다.”

서양화와 미래주의의 유행으로 동양화가 암흑기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나의 사조가 명맥이 끊어지면 위험한 일이긴 했다.

“뭐, 아무튼. 그래서 이름을 나눠서 활동하고 있는 거란다.”

“그럼 영영 감추시게요?”

“그럴 수는 없겠지. 그래도 이일섭으로서 충분히 인정을 받은 뒤에나 알려지고 싶어. 그 전에 알려져버리면 이수경의 유명세가 이일섭의 그림을 잡아먹게 된다. 하하, 내가 너한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일섭은 나와 같은 듯 다른 면이 있었다.

나는 계속 내것을 고집하며 박해를 받아왔지만,

이일섭은 자신의 것이 아닌 그림을 그리며 헛된 찬사를 받아왔다.

역사적으로는 위대할지 몰라도 예술가로서는 썩 매력적인 상황이 아닌 것이었다.

“전 그것만 해도 부럽긴 하지만, 할아버지 상황을 잘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죠.”

“아니다. 나도 감사한 줄은 안다.”

이일섭이 웃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작업실의 그림들을 돌아보았다.

이일섭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이수경의 이름을 달고 그린 그림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양화에서 느꼈던 정취와 멋의 극한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극한이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화가가 궁금하지 않을 정도였다.

화폭의 모든 게 이미 그 자체로 완전했기에.

하지만 특별전의 그림들은 인간적이었다.

위대한 자연을 마주했을 때의 말초적인 감동뿐만 아니라, 인간의 희노애락을 흠씬 꿰어내는 온전한 예술작품 같았다.

“자주 놀러오거라.”

“정말로 그럴게요. 그런데 뭐하고 계세요?”

이일섭은 나와 대화하면서 웬 돌 위에 검은 숫돌을 긁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볼까 싶어서. 먹을 갈고 있었다.”

먹?

서도연이라는 아이와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동양화에서 사용한다는 물감이었다.

“와, 저 구경 좀 시켜주면 안 돼요? 저 먹 한 번도 써본 적 없어요.”

그 뒤로 수채화에 매진하느라 도전해볼 틈이 도저히 없었다.

“먹을 한 번도 안 써봤다고? <환생>도 그려봤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채화로 흉내나 낸 수준이지 동양화는 붓의 느낌도 아예 몰랐다.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던 이일섭이 말했다.

“구경은 내가 해야겠는데? 붓질 처음 해보는 그림 천재를 또 언제 볼 수 있겠어?”

이일섭이 빠르게 바닥에 종이를 깔고 붓을 건넸다.

털이 풍성한 붓. 바닥에 깔린 캔버스.

드디어 배워보는구나.

*

완전히 배우지는 못했다.

그냥 재미만 붙인 정도로 끝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새 종이를 받아서 시도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큰 민폐인 것 같아 주는 대로만 했다.

특히 먹의 냄새가 유독 좋았다. 좋은 향을 내는 허브 같았다.

하지만 너무 묽어서 세워서 그리기는 어려웠다.

그리는 데에 큰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집에선 불가능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미술학원과 갤러리를 전전했다. 일주일에 하루씩은 이일섭의 저택에 방문했다.

갤러리 가는 일도 즐겼던 내가 하루를 줄이니 부모님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아마 이일섭의 정체를 알리지 않는 이상 낯선 할아버지네 집에 간다는 걸 알면 곤란해질 것이었다.

적당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묻지 말아달라고만 요청했다.

학원에서는 수채화. 갤러리에서는 동선과 화풍. 이일섭의 저택에서는 먹과 동양화 붓의 사용법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날, 학원의 한 아이가 잡지를 들고 교실로 뛰쳐들어왔다.

“야! 여기 윤예준 그림 있어!”

아이가 들고 있었던 건 <미,감>의 단행본이었다.

계간잡지라고 해서 연말에나 출간될 줄 알았는데, 정기적으로 출판하는 것 말고도 특집을 모아 비정기적으로 내는 간행물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와, 씨. 뭐야? 파란 꽃? 이거 수채화잖아?”

“그니까. 수채화 그려본 적 없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거 진짜 엊그제 아니냐?”

아이들이 내 그림을 보며 감상을 나눴다. 이일섭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그림이었다.

“야, 근데 이건 뭐야?”

아이들이 잡지를 들고 와 내 앞에 보였다.

[미술 천재 윤예준의 화려한 데뷔]

환히 웃고 있는 내 사진 위에 떡하니 걸린 부제였다.

미술 잡지에 홍보 기사가 실리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아버지에게 들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큐레이팅에 대한 내용은 삭제가 된 모양이었다.

대신 미술관 큐레이터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많은 그림을 보고 자랐다는 문장이 들어가 있었다.

사진은 무슨 정신으로 찍었던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와, 이 그림 뭐야?”

“사진으로 보니까 뭔가 2D 그래픽 같은데? 실제로 보면 엄청나겠다. 이거 뭘로 어떻게 그린 거야?”

또 질문 공세였다.

아이들은 별로 긴 글을 읽고 싶지는 않은지 초반 부분만 언뜻 보고 다시 그림이 표시된 페이지로 넘겨버렸다.

“암튼, 어쩐지. 아빠가 미술관에서 일하니까 재능을 물려받은 거네. 재능 금수저네, 재능 금수저.”

설마 <미,감>이라는 잡지사가 학원에서 구독중인 곳일 줄은 몰랐다.

그럼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이 기사를 읽고 있을 것이었다.

‘이러다 그림 의뢰도 들어오고 그러는 거 아냐?’

기사가 실렸을 뿐 호응이 어느정도인지 아직 확인할 수가 없어서 조금 답답했다.

하지만 우선 알렸다. 아마 호평도 따를 것이니 기사가 나왔을 테지.

이 일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자, 조용! 수업 시작한다.”

정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붓으로 책상을 두드리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자, 오늘 내용은······ 아, 맞다. 그 전에. 예준아. 잡지 봤어. 축하해!”

아이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비치해 놓는 잡지였으니 당연히 봤을 것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정물 소묘 연습을 할 거야. 지겨울지도 모르겠지만 꾸준히 연습해야 해. 그림의 기본이니까.”

선생님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물마다 어울리는 질감이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축구공을 매끈매끈하게 그리고 싶은 마음 같은 게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우선 일반적인 상상부터 해야 해. 적절한 질감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하니까, 아무렇게나 그리지 말라는 거야.”

좋게 말하면 사물에 대한 본질 파악이지만

필요에 따른 고정관념이기도 했다.

확실히, 질감 표현을 뒤죽박죽으로 하지 않으려면 사물마다 어떤 질감이 어울리는지 일반적인 시각에 먼저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게 여러 도형에 익숙해진 뒤 표현하고자 하는 정물에 적용하면 되는 거야. 저 정물은 거친 구인가, 부드러운 원통인가, 매끈한 상자인가. 도형과 질감 표현에 익숙할수록 정물 표현도 정확해지지.”

정물 소묘는 연필로 자세히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작품은 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종종 연습만 할 뿐 표현을 사실적으로 하는 데에 힘을 많이 쏟은 편은 아니었다.

‘이 기회에 연습이나 해볼까.’

*<피리 부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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