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1화 (11/241)

작은 거인(3)

며칠 뒤 아버지가 일하는 갤러리에서 관람객을 안내하는 역할을 맞게 되었다.

그림을 사고 파는 경매상이나, 전시회 관련 사람들이 오면 아버지가 자리를 비웠고 그 때에 들어온 관람객들에게 하나 둘 안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외양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관람객들은 내가 열심히 안내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나 같아도 신기했을 것 같긴 했다.

전생에도 전시관 사업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작품 배치에 골몰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이 갤러리의 동선에 익숙해지는 이 일이 그림에 대해 좀 더 다각적으로 접근해볼 기회가 되기는 하겠지.

그 동선의 의미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기껏 얻은 건강이었다. 이런 수동적인 교육만 받기에는 젊음이 너무 헛되었다.

‘오랜 허드렛일도 감수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해묵은 아틀리에 전통이 사라진 걸 보니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군.’

조금씩 마음이 급해졌다.

수채화 물감으로 난을 그리려던 실수는 다 조급함 때문이었다.

창피한 기분이었다.

“하하하. 안내도 참 잘하고 똘똘하시네. 그림 설명은 안 해주나?”

한 중년 사내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작품 설명은 큐레이터인 아버지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특별 전시관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림 설명도 되기는 하는데. 들으실래요?”

“미술관까지 왔는데 설명도 들으면 좋지! 여기 선생님도 계신데.”

그는 나를 가리켜 선생님이라고 했다.

나는 고용된 큐레이터가 아니었다. 겉으로만 봐도 그랬다.

하지만 설명할 수 있었다.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작품 설명하는 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는 미래의 관람객을 만나는 일일 수도 있었으니.

그리고 별로 문제 삼지도 않을 것이었다.

다들 어린 애 재롱이나 들어보자는 마음가짐인 것으로 보였다.

나는 <몽유도원도>와 <금강산도> 앞으로 가서 섰다.

나의 의견과 아버지의 첨언까지 머릿속에 생생했다.

이미 깔린 판. 사양하지 않고 재롱 한 번 제대로 부려보겠다.

“어르신들. 이 두 그림의 차이점이 뭔지 혹시 아시겠어요?”

질문으로 설명을 시작하자 모두가 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시작했다.

역시 작품 설명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고민을 따르면 되었다.

거기에 보충되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부분들을 모두 포함해 살을 붙였다.

대부분 서양화가인 내가 캐치할 수 있는 낯선 부분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예컨대 내겐 동양화의 심플한 원근 표현이 인상 깊었는데, <몽유도원도>의 그러한 표현법이 오히려 감상자를 압도하고 있다든가.

그 차이점을 요소화시켜 상세히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와! 완전 전문가구나! 이렇게 어린데.”

“하하하! 설명의 깊이가 보통이 아닌데?”

칭찬 일색이었다.

역시나 인정 받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도슨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처음엔 멀찍이서 나의 해설을 엿들었다.

엿들을 뿐 지적하는 일은 없었다.

관람객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기 때문이었다.

또, 아버지의 눈에 내가 즐거워 보였으리라.

내 마음이 실제로 즐거웠으니까.

나는 작품에 주관적 해석을 자유롭게 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했을 때에 해석을 재미있게 풀어낼 여지가 많아졌다.

일반 관람객이 아닌 중요한 손님이나 작가가 방문했을 땐 그렇게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아버지는 나의 안내를 은근히 부추겼다.

또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변경된 전시 일정이 없어 계속 같은 그림들뿐이었다.

지겨울 법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작품을 소개하는 일이 질려 갈 때쯤 항상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전시장 초입에 차가운 색채의 그림이 걸려 있다면, 그 이후의 그림들은 외려 포근한 인상을 주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 마주하는 그림이 전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설정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누런 한지의 색감 덕분에 상설 전시장은 전체적으로 따뜻했다.

눈을 맞은 호랑이 그림 같이 계절감을 활용하는 것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종종 자신만의 색다른 감상을 이야기하는 관람객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서로를 설득시키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의견을 나눌 뿐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나의 해석을 제공했듯 그들도 내게 마찬가지였다.

즐거웠다.

모두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묻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준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사고 할 수 있는거야?"

"새로운 방식의 사고는 어린 아이의 시선이라 그런가?"

10살 아이의 몸에 담을 수 없는 견해와 시각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로 관심이 돌려지기도 했다.

"신선해. 윤민제 큐레이터님의 아들이라고? 미술을 언제 부터 배웠어요?"

아직까지는 작가, 미술계 종사자 등은 아버지와 직접 대면하기에 나에게 이렇다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접촉면을 늘리면 충분히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이 갤러리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나의 길을 터주는 것에는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를 천재라고는 인정하나, 아버지는 관장이나 주인이 아닌 그저 관리인이니까.

나도 아버지에 기대거나, 혹여나 아버지의 위치를 위태롭게 할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 기회를 찾을 뿐이다.

내 그림을 원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내 견해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 할 사람들.

그와 동시에 더 갈고 닦아나간다.

‘예준이의 모란은 과연 뭘까?’

아버지의 질문이었다.

마침 좋은 답이 떠올랐다.

언어가 충분히 훌륭해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었다면 화가는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나의 모란이 무엇인지, 오해의 여지 없이 답할 방법.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면 될테다.

*

“자. 예준이가 좋아하는 김치전.”

똑같이 재료가 들어가면서 부추전, 호박전, 양파전이 아닌 이유가 있었다.

뜨거움을 감수할 만큼 김치가 주는 새콤한 맛이 중독성 있었다.

들어보니 김치도 하나의 요리라고 하던데.

김치전이란 생각보다 심오한 메뉴였다.

요리에 요리를 넣다니. 요리를 두 번이나 잘 해야만 맛있는 요리 아닌가.

“김치전은 부친 거고, 그럼 김치는 어떻게 만든 거예요?”

그냥 생으로 먹을 때에는 맨밥에 나트륨을 더해주는 독특한 샐러드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하지만 가열하면 맛이 좀 더 어엿한 요리처럼 변했다.

더욱이 소스는 반죽에 섞여 김치전의 다른 부분의 풍미를 올려주었다.

“그야. 배추에 특별한 양념장을 골고루 발라서 오랫동안 숙성을 시킨 거지.”

“숙성이요?”

“응.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했다는 거야. 그럼 배추엔 양념장이 스며들어서 짭짤한 맛을 주고, 반대로 양념장엔 배추의 당분이 스며들어서 감칠맛이 생기거든. 그럼 갈수록 맛있어져.”

맞았다. 아무리 최고의 와인을 담갔다고 해도 부적절한 온도에 보관하면 맛이 변하게 되니까.

‘그럼 제대로 보관된 김치는 얼마나 맛이 더 좋다는 거야?’

김치냉장고가 있어야겠다. 김치냉장고만 있으면 언제든 양질의 김치를 꺼내 김치전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천천히 많이 먹어! 여보. 혹시 더 있어?”

“응. 처음이라 양 조절을 실패해서. 엄청 많아.”

어머니가 다시 전을 부치러 일어나자 아버지도 따라서 주방으로 향했다.

“요즘 미술관 분위기가 즐거워. 예준이가 전문 큐레이터처럼 설명하고 있거든. 관람객들도 신기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와······ 김치전에 소고기라도 넣어줘야 하나?”

그들이 즐겁게 웃었다. 이제 도슨트 일은 쉬웠다. 오히려 관람객들과 수다를 떠는 것 같았다.

“소고기가 뭐야? 말고기든 용고기든 다 넣어줘도 부족하지! 덕분에 쉬는 시간도 많고 일이 너무 편해졌어.”

“그 정도면 당신 수익금 절반은 예준이 줘야겠다.”

“응?”

아버지의 말문이 막혔다.

“그건 그렇고 예준이. 요즘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학원에서도 항상 늦게 들어오고.”

어머니가 물었다.

‘열심히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싫어하는 일은 죽어도 못하는 성격이었다.

법관은 능력 여하를 떠나서 싫었다.

항해사에는 어느 정도 흥미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고는 해도 거기엔 어떤 어려움도 없었다.

오래 그리고 싶어서 오래 그린 것뿐이었으니까 말이다.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선물 하나 해줘야겠는데? 예준!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아빠 월급만 말고 아무거나!”

“저, 그럼······ 김치냉장고요.”

“그건 아빠 월급보다도 비싼 건데······”

당연히 농담이었다. 와인 애호가에게 와인 저장고가 필수이듯 김치도 마찬가지였다.

필수품인 김치 냉장고가 없다는 건 그게 상당히 고가의 제품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

“저 그럼 미술도구 가지고 싶어요.”

아버지는 요즘들어 기분이 좋아보였다.

내가 환생한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중 가장 큰 사건은 화가 데뷔였다.

하지만 자신이 그림을 팔았을 때보다도 내가 미술학원에 등록한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한 것은 미술도구였다.

김치냉장고로는 미술도구를 살 수 없지만

미술도구가 있으면 김치냉장고를 수백 대는 살 수 있을 테니.

아버지는 미술 도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화방으로 나를 데려가주었다.

굉장히 많은 물감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자. 원하는 거 골라.”

원하는 건 많았다. 하지만 가격이 비쌀 것이 뻔했다.

설마하니 김치냉장고까지는 아니겠지만 고작 애한테 사줄 수 있는 선물로는 과한 느낌이었다.

‘꼭 필요한 색으로만 고르자.’

팔레트나 물통은 무엇으로든 대체가 가능했다. 붓은 많을수록 좋지만 적다고 못 그리진 않으니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하나면 됐다.

중요한 건 색이었다. 구상한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색으로는 당연히 검정과 흰색. 그리고 작품에 생동감을 얹어줄 특별한 색 몇 가지.

물감마다 색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그것만 봐서는 확실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대신 물감 껍데기에 확인하기 좋게 그 색이 실제로 표시되어 있었다.

‘어디보자······ 역청색은 없나.’

내가 애용한 만큼 대중적인 색이기도 했는데.

내 색각이 이상한 것인가 싶어 눈을 부릅뜨고 색을 확인해봤지만, 생각했던 것들 중 딱 역청만 없었다.

“예준아. 뭐 찾는데?”

역청을 한국어로 뭐라고 부르는지.

구경중이라고 대답하고 계속 물감들을 살폈다. 파랑 계열의 물감들을 여러번 보았다.

코발트 블루뿐만 아니라 페르시안, 세룰리안 블루까지 있었다.

“울트라마린?”

나도 모르게 외치자 아버지가 관심을 가지고 와서 함께 보았다.

비싼 청금석을 빻아 만드는 물감이었다. 가난하면 구하기도 어려운 색.

따라서 사용할 땐 어느때보다도 신중해야 했지만 울트라마린만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쉽게 생략하기도 어려운 색이었다.

“음. 이건 진한 파랑색이야. 마린이 바다라는 뜻이거든.”

내 그림에는 울트라마린처럼 한계까지 깊어진 파란색이 꼭 필요했다.

“이건 얼마예요?”

내가 묻자 화방 주인이 울트라마린과 매대를 번갈아보았다.

“어, 그거. 4만 8천원.”

4만 8천?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 값을 들어도 그게 얼마나 비싼 것인지 어림할 줄 몰랐다.

‘그래도 저번 경매장에서 나오는 작품들이 평균적으로 2만 정도였으니······’

아니었다. 그날 경매는 유로 화폐로 진행되었다. 유로와 원 단위는 분명히 다를 것이었다.

심지어 그 경매장은 유럽의 부자들이 그림을 거래하는 곳이라고 했다.

아무리 울트라마린이라고 해도 이 적은 용량의 물감 값도 안 나오는 그림들을 그렇게나 정신없이 주고받았을 리는 없었다.

예준의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어도 가격 정도는 대충 알았을 텐데.

“이게 마음에 들어?”

내가 기타 주변적인 단서들을 찾아 울트라마린의 값을 따져보고 있을 때 아버지가 물었다.

“네, 아뇨. 그렇긴 한데 조금만 더 둘러보다가······”

“그래도 이게 제일 색깔이 다양한 것 같은데?”

“네?”

아버지는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 많은 물감들을 통째로 들어냈다.

매대를 뜯어내듯이 말이다.

“아빠, 위험······!”

어림잡아 안엔 스무 개가 넘는 물감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안엔 비싼 물감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을 테니 개당 5천원씩만 쳐도 10만 원이 넘었다.

아버지는 그걸 한 손에 들고 계산대로 가다가 붓통, 물통, 연필, 캔버스를 하나씩 챙겼다.

“사장님. 이렇게랑, 저기 이젤까지 주세요. 저 접이식.”

여차하면 하나 정도는 떨어뜨릴 뻔했다. 원화와 유로화가 열 배가 차이난다고 하더라도 무리하는 것이었다.

“아빠. 그 색들 다 쓸 필요는 없어요. 몇 개만 있으면 돼요.”

“아니야, 예준아. 빚을 져서라도 이건 다 해야지.”

*

집안에선 별안간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저 그냥 방에서 그리면 된다니깐요?”

“안 돼. 물감 냄새 몸에 안 좋기도 하고, 이리저리 튀다가 이불에라도 묻으면 어떡해?”

공구통, 녹슨 빨래 건조대, 부탄가스 등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한가득 들어 있는 창고용 방이 하나 있었다.

작긴 했지만 천장에 바짝 붙은 쪽창문 하나가 물건들 틈으로 하나 보였다.

아버지가 물건들을 다 들어내고 버릴 것과 옮길 것을 분류하는 사이 잠깐 들어가보았다.

한쪽에 스위치가 있었다.

누르자 불이 들어왔다. 상태가 좋은 백열등이었다.

물건이 가득할 땐 매우 비좁아보였는데, 막상 물건을 다 빼내고 나니 제법 넓었다.

어른의 몸으로는 매우 비좁았겠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창문에 달려 있는 환풍기를 포함해 창고 이곳저곳을 걸레로 박박 닦았다.

그러는 틈틈이 이젤과 캔버스를 이곳저곳 가져다대보며 그것이 들어갈 만큼 공간이 넉넉한지 확인했다.

“자. 다 됐다. 괜히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있지 말고 여기서 그리면 돼, 이제부턴. 캔버스도 제때제때 가져다놓을 테니까.”

아버지는 자신이 사용할 공간이라도 된다는 듯이 창고 살피기를 멈추지 않고 말했다.

나는 의자를 가져다가 이젤 앞에 앉아보았다. 등이 조금 어둡게 느껴지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바로 그리게?”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웃었다. 아버지 웃음이야 여태 수십 번도 넘게 보았지만, 이번엔 조금 미묘한 웃음이었다.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 사고 싶은 것도. 화방에서처럼 돈 걱정은 하지 말라구. 돈 걱정은 내가 할 일이니까. 알았지?”

“알겠어요.”

아버지는 내 대답을 듣고는 물을 받아주겠다고 말하며 문을 닫아주었다.

사온 30색 물감을 꺼냈다. 그 자체로 부족함이 없었지만 섞는다면 더 많은 색을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동양화와 수채화를 동시에 연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붓도 물감도 다른 것을 쓴다는 것은 둘이 전혀 다른 분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양화는 그려보지 못했다. 대충 검은 물감으로 흉내만 내본 게 다였다.

그래도 덕분에 수채화 물감을 다루는 방법은 익힐 수 있었다.

‘골방 창작은 취미가 아닌데······”

나는 볼거리가 많은 작업실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릴 것은 명확했다.

오히려 이런 비좁은 골방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을 들었다.

이번 캔버스에는 ‘나’를 훔쳐다 그리겠다.

예준도 마네도 아니다. 둘 모두인 나를 그릴 것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화풍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감사를 담아.

스케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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