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아버지는 좁은 골목을 몇 번 돌아 북향의 허름한 빌라로 들어갔다. 프랑스에 비해서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다.
주차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 집의 풍경은 주어진 기억 그대로였다. 녹슨 현관문과 깨진 외시경.
안으로 들어가면 좁은 현관 끝에 바로 노란 장판. 마네로서는 첫 방문이었지만 내 집 같은 편안한 기분이었다.
실제로 내 집이었으니까.
“와. 오늘 명절이야? 전도 부치고.”
아버지가 냄새 맡는 시늉을 하다 말하니 어머니가 말했다.
“명절은 무슨. 그 동안 재료가 좀 쌓여서 그래······”
아버지는 오오, 하며 음식 냄새를 몇 번 맡아보더니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달려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내가 배꼽인사를 하자 어머니는 비닐장갑을 벗으며 꿇어 앉아 나를 껴안았다.
“그래, 우리 예준이! 아빠랑 잘 놀고 왔어?”
“네. 오르세 미술관 다녀왔어요.”
어머니가 손뼉을 쳤다.
“와, 부럽다! 사람 엄청 많았겠는데? 다음엔 셋이 같이 가면 좋겠다.”
애초에 프랑스 방문은 아버지의 일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같이 가지 못한 건 그녀의 일을 처리해야 해서였는데, 예준으로서는 그녀의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나보다.
셋이 먼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나의 오랜 고국이었지만 프랑스에 대해서는 비싼 관광지로서의 인상이 예준에게 있었다. 그래서 조금 불가능한 꿈처럼 느껴졌다. 유럽 여행은 그들이 계획하기에 너무 값비싼 행사였다.
바로 그 조숙한 예준의 현실 감각이 상상을 방해했다.
집은 더럽지도, 깔끔하지도 않았다. 벽지엔 간간이 예준이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 크레파스 낙서가 있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방 문엔 알파벳 학습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붙인 지 꽤 된 듯 모퉁이의 스카치테이프가 누렇게 변색된 상태였다.
집 넓이 치고 너무 큰 텔레비전이 벽 한 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피에르의 집에 비하면 반에 반도 안 되는 크기였다.
곧 아버지가 나왔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어디 어디 다녀왔어? 예준이랑.”
반찬을 집어올리던 아버지가 멈췄다.
“아쉽지만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어.”
“그래도 간 김에 에펠탑이든 축구 리그든 보고 오지 그랬어? 모처럼의 여행인데.”
프랑스에 함께 가지도 못했던 어머니가 자신의 일처럼 아쉬워하며 궁시렁거렸다.
“그럴까도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 피에르 그 친구, 부탁하면 정말로 들어줄까봐.”
어머니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 중개도 해주고 프랑스 내 이동에 숙식까지 제공해준 피에르에게 아이 관광까지 부탁하기는 아무래도 힘들었겠지.
“어휴. 아쉬워서 어째? 얼마나 기대를 했겠어, 그렇지 예준아?”
어머니가 웃으며 내게 의견을 물었다. 에펠탑이라느니 축구 리그라느니 어차피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다.
“근데 이건 뭐예요?”
내가 빨간 음식 하나를 가리키며 묻자 어머니가 아, 하며 그것을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전이야, 김치전. 먹기 좋게 잘라줄 테니까 먹고 부족하면 말해.”
김치전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대충 알 만했다.
겉보기에는 펼쳐놓은 크레페 같이 생겨선 여러 재료들이 반죽 안에 섞여 있었다.
고기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기름기가 있었고 촉감이 말랑말랑해서 크레페라기엔 차라리 피자와 비슷했다.
맛은, 시큼한데 고소했다. 식감은 반죽과 재료들이 절묘하게 섞여서 먹는 데에 지루하지 않았다. 반죽은 쫀득해서 좋았지만 자칫 계속 씹으면 질릴 뻔했다. 하지만 섞여 있는 김치와 부추 같은 밑재료들 덕분에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맛이 상당히 좋았다.
한국으로 처음 돌아왔을 땐 벨라스케스 같은, 스승으로 삼기 좋은 위대한 화가들을 떠올리며 즐거웠다.
그리고 한국 특유의 무국적인 도심 분위기가 그림에만 집중하게 좋은 곳이라고 느꼈다.
당장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지금은 김치전 생각밖엔 없었다.
아무래도 김치전은 삼키는 족족 머리에 채워지는 것 같았다.
내가 김치전을 마구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말했다.
“여보. 이 김치전 여보가 반죽한 거야?”
엄마가 대답했다.
“아니, 받아온 건데. 큰일이네······”
*
밥을 다 먹은 예준은 목욕을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민제와 연희는 다 먹은 식기들을 함께 치우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은 팔렸어?”
“어······ 뭐······ 응.”
“정말?!”
연희가 설거지를 멈추며 외쳤다.
“얼마에?”
“피에르가 도와준 덕분에 가격 뻥튀기가 좀 있어.”
“그러니까 얼마?”
민제는 이때까지 머릿속에 계속 꼽고 있었으면서도 괜히 환율을 계산하는 척했다.
“한······ 한국 돈으로 2500만원 정도 될 것 같아.”
민제의 말을 듣자마자 연희는 양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짧게 비명을 질렀다.
“화가 데뷔도 모자라서 첫 작품 2500······ 당신, 드디어 십수 년짜리 꿈을 이뤘네.”
“······”
“나는 당신이 분명히 해낼 줄 알았어. 축하해, 정말로.”
연희의 목소리가 조금씩 뭉개졌다. 덩달아 울컥해진 민제가 달려들어 연희를 달랬다.
“에이! 왜 여보가 울어? 별 것도 아니야. 다음 작품도 피에르 없으면 팔지도 못 할 건데. 지금부터가 시작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민제는 그 동안 연희와 함께 고생해왔던 게 생각나 함께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만큼 연희에게 미안해졌다. 철없이 화가 꿈을 버리지 못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구는 민제를 가장 가까운 데에서 지지해준 건, 일찍이 꿈을 포기한 연희였다.
대학 시절 연희와 민제는 함께 순수미술가를 꿈꿨다. 단지 연희는 민제보다 더 현실적일 뿐이었다.
연희가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어 눈물을 다 닦아냈다. 그리고 조금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2000은 대출금 상환하고 나머지 500은 통째로 저축. 불만 없지?”
“뭐?!”
덜컥 돈 얘기로 울음을 그치는 연희의 모습에 민제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 연희의 생활력이 아니었다면 민제는 이미 굶어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용돈이 없다는 건 농담이겠지.
“아무튼, 그보다 프랑스에서 예준이가 그림을 그렸는데 말이야······”
연희가 팔짱을 꼈다.
“여보 에두아르 마네 알지?”
민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휴대폰으로 <에밀 졸라의 초상>을 검색해 연희에게 보여줬다.
“이걸 예준이가 그렸는데, 단순히 따라그린 게 아니라······”
민제는 다급히 예준의 그림을 풀어냈다.
“이것 좀 봐봐!”
연희는 민제가 보여준 예준의 그림을 뚫어져라 보았다.
순수 서양화는 대학시절 그려본 게 다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림 그리는 게 업인 프리랜서 삽화가였다. 그림에 대해선 여전히 잘 알았다.
민제가 보여준 건 절대로 10살짜리 아이가 그릴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건 그냥 마네 그림이잖아. 예준이가 이걸 그렸다고?”
“아니야, 달라. 내가 원본을 보여줬잖아? 이건 예준이가 마네 그림을 보고 재구성한 거야.”
연희는 휴대폰 속 마네의 그림과 예준의 그림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정말이었다. 둘은 구도와 모델 인물만 빼고 다 달랐다.
단순히 열화된 재구성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마네의 미공개 유작이라고 해도 믿기는 그림이었다.
“정말······? 이게 예준이 그림이라고?”
“그렇다니까? 당신이 보기에도 그렇지? 그래서 민수한테 상담 좀 받아보려고! 이게 재능인데 썩히면 안 되잖아?”
연희는 다시 한 번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 10만 원 보내줄 테니까 다녀오는 기름값 해.”
민제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
MMS 미술학원.
멀티 메시지의 약자가 아닌, 모민수의 초성을 영어로 따와 지은 이름이었다.
상당히 유명한 미술학원이었기 때문에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는 곳이었다.
‘듣던 대로 학원이 번듯하네.’
학원은 웬만한 미술관보다 더 깔끔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적용된 모습이었다. 규모도 상당히 컸다.
민제는 동창회에 나올 때마다 정장을 차려 입고 와 ‘어린이 은행’이라고 인쇄된 지폐 다발을 뿌리며 거드름을 피우던 민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냥 자만심 없이 유머러스한 호인인 줄만 알았는데.’
학원 규모를 보니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어엿한 사업가라는 실감을 하게 되었다.
“자, 그럼 예준군?”
“네.”
조금 색깔이 들어간, 졸부 느낌의 정장을 입은 민수가 예준 앞에 손가락을 요란하게 튕겼다.
“정물, 인물, 풍경 중 아무거나 그리면 돼요. 대충 드로잉 실력만 보는 거니까 부담 가질 것 없고. 저기 있는 연필들 중 원하는 걸로.”
“네.”
예준은 의젓하게 대답했다.
민제는 각 교실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 기가 죽었는데, 예준은 아랑곳 않고 진지하게 연필을 골랐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민제와 민수는 함께 상담실을 나왔다. 그림을 다 그리면 원장실로 오라고 말한 뒤였다.
상담실 문을 닫고 둘은 말 없이 눈빛만 교환하고 있었다.
“애가 너무 멀끔하게 잘 생겼고 품성이 올곧은데? 제수씨 유전자 일하실 동안 대체 넌 뭘 한 거야?”
“제수씨라니. 형수님이라고 해야지.”
평소 하던 대로 민수의 말장난을 받아쳤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나름 원장이라고, 학원에 있을 땐 진지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보통 열 살쯤 되는 친구들 실력은 어때?”
민수는 제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뭐, 그냥······ 네가 생각하는 딱 그 정도 되지. 상상력은 있지만 붓질이 안 되는 그런······”
붓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집중력도 사실상 떨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민제도 자신이 있었다. 길거리 화점에서 보여준 그림 실력은 물론이고, 비행기에서는 눈만 뜨면 수첩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니까.
비행 시간의 대부분을 그리는 데에 썼을 것이었다.
민제는 미리 챙겨온 자신의 수첩을 꺼내 보여줬다. 받아 들고 그림들을 대충 살펴보더니 민수가 말했다.
“넌 드로잉 연습을 모나미로 해? 그나저나 역시 화가는 화가네.”
역시 그런 반응일 줄 알았다. 민제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 그림이 예준의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 없이 말했다간 팔불출처럼 보일 것이었으니까.
이렇다 할 방법이 없어 얼마간 망설이고 있는 도중이었다. 상담실의 문이 벌컥 열려 민제와 민수의 등이 부딪혔다.
“아이고, 깜짝이야. 예준이 왜? 화장실?”
“아니요, 다 그려서요.”
예준이 민제와 민수를 번갈아 보다가 민수에게 그림을 건넸다. 우선 속도에 당황한 민수는 언뜻 보더니 말했다.
“...예준학생. 잠깐 다시 상담실에 들어가 있을래요?”
민수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당황했는지, 예준은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예준이 들어가자마자 민수가 민제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장난하냐? 고작 아들 자랑 하나 하려고 바쁜 내 시간을 빼앗아?”
“그런 거 아니야, 임마. 아무튼 이게 단순 재주는 아니잖아?”
민수는 한숨을 푹 쉬곤 다시 예준의 그림을 봤다.
“화가인 너도 눈이 있을 텐데 어떻게 이게 단순 재주냐? 드로잉만 봤을 때 이 정도면 바로 입시 준비해야지. 아니, 입시 말고. 특수 교육을 해야할 판이야.”
“다들 제 새끼 그림 보면 천재 났다고들 착각한다잖아. 나도 그런가 해서.”
“재수 없는 놈. 너 어디 이상한 학원에서 지옥훈련이라도 시킨 거 아니야?”
“그랬으면 여기 안왔겠지. 됐고, 이 수준이면, 어떻게 가르쳐야돼?”
민제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계속 예준의 그림을 보던 민수는 민제의 수첩과 비교해보며 감탄했다.
“하······ 이거 설마 예준이 수첩이야?”
“수첩은 내 건데, 예준이가 그렸지.”
“안 되겠다. 너 일단 집이든 갤러리든 가 있어.”
민수가 떠밀었다.
“왜?”
민제가 물었지만 민수는 떠밀기를 멈추지 않았다.
“네 아들 실력 좀 자세히 봐야겠으니까 일단 가 있으라고.”
“아, 그럴래? 우리 집 주소 알지?”
민수의 선언에 민제는 수고하라는 손짓을 하며 학원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전화할 거야 임마. 네가 직접 와서 다시 데려가.”
민제는 손을 흔들며 학원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민수는 마지막으로 민제의 수첩과 예준의 드로잉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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