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붓(3)
파리는 며칠 사이 몰라보게 바뀌었다.
며칠 사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아버지와 피에르의 말을 들어보면 현재는 2021년이라고 했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있던 그 숫자가 설마 현재 연도를 의미할 줄은 몰랐다. 내가 죽고 130년이 지난 상태였다.
건강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는 걸 매분 매초 체감하고 있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숨은 쉬었고 심장은 뛰었다.
하지만 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버린 130년이었다.
나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피에르는 차가 막힌다며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나와 아버지를 미술관 쪽으로 안내했다.
파리는 여전히 단정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그 외의 모든 게 달랐다. 사람들은 모두가 변형된 자켓과 퀼롯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했고 강을 따라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요란한 배가 종종 오갔다.
시간이란 것이 조금 덧없게 느껴졌다. 지금쯤이면 친구들도 모두 죽고 없겠군······
“자. 일단 도착했다. 인파가 어마어마하지? 지체 없이 바로 마네전으로 가보자!”
피에르가 외쳤다. 그런 그가 나와 아버지를 안내한 곳은 중앙에 시계가 크게 걸려 있는 건물이었다.
“지금 이 건물이요?”
피에르가 나의 시선을 따라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사진으로도 본 적 없지? 아주 유명한 곳이야. 센느 강변의 오르세 미술관 말이다.”
파리가 변했다는 건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니 그 사이 유명한 미술관이 생겼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인파(人波)라는 단어에 동의하게 될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미술관 내부를 가득 채웠다.
마네 전시관까지 가는 데만 수십 분은 걸린 듯했다.
“다 왔다, 마네전!”
저 멀리 <발코니>의 한 귀퉁이와 함께 나의 이름이 보였다.
피에르와 아버지는 좁은 걸음으로 움직였다. 이 정도 인파는 살롱전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마침내 입구를 지나치자 전시장 중앙에 나의 그림이 ‘풀밭 위의 점심식사’라는 소개와 함께 전시된 것이 넘겨다 보였다.
이곳이 여전히 파리이기는 했지만······
먼 여행지에서 친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 뒤로 불안한 감정이 도둑 잡듯 따라붙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의 처음 제목은 <목욕>이었다. 하지만 발표 후 온갖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린 끝에 이름을 수정하게 된 것이었다.
호기롭게 도전했던 나체화였다. 하지만 그 호기에 비해 <올랭피아> 때에도, <목욕> 때에도 비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낼 호인은 못되었다.
지금 마네전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살롱전에서와 같을까? 관람객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온갖 언어로 무어라고들 떠들어댔다. 눈앞이 깜깜했다. 그들도 나를 혹평하는가?
‘그럴 리 없어.’
오로지 조롱하기 위해서라면 이 비싼 땅 위에 전시장을 할애해줄 리 없었다. 이렇게 많은 관람객들이 지나는 곳에 성물처럼 모셔져 있다시피 말이다.
‘아니 그럼, 내가 파리 7구의 강변 미술관에 나만의 단독전이라도 열어줬다는 말인가?’
처음 들어보는 미술관이라도 어딘가. 살면서 천 번도, 만 번도 넘게 상상해봤던 일이었다.
나만의 이름을 딴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치는 것.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 일 리 없었다. 믿어선 안 됐다. 작품을 전달한 후 온갖 칭찬을 기대했다가 된통 비판받을 때마다 통감하지 않았던가?
너무 큰 희망은 쉽게 가지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바로 그때, 사람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다들 어디로 가는 거야?”
“저기 도슨트(작품안내인) 있나봐. 우리도 들으러 가자고.”
사람들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빠르게 스쳐지나가 도슨트가 멈춰선 <올랭피아> 앞으로 모였다.
“당시 누드화는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해서만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다 외설이었죠.”
도슨트의 설명이 귀에 들어왔다.
“이런. 준비할 틈도 없이······. 듣고 정리해줄게 예준아.”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설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된 책자를 번갈아보며 그림을 감상했다.
“지금으로선 잘 이해되지 않고, 지금 마네의 이 작품이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훔쳐보지 못하도록 감상자를 빤히 지켜보고 있는 이 여성의 묘사로부터 전통 누드화에 대한 날카로운 마네만의 시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긴장감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서서히 풀렸다.
“마네의 그림은 당시 기준으로 봐서는 미완성이고, 맥락이 없는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비춰졌어요. 매춘을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나체 여인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하지만 그는 귀족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전통의 상징을 입을 수 없는, 그러니까 비너스가 아닌 매춘부 개인을 말이에요. 이러한 점에서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 즉 전위 미술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쿠르베보다도 더욱 더 급진적인 화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명이 끝난 뒤 도슨트가 자리를 이동하면 남겨진 관람객들은 얼마간 <올랭피아> 앞을 떠나지 않았다. 머릿속을 들여다보지는 못해도 도슨트의 설명을 유념한 채 작품을 다시 음미하고 있을 것이었다.
‘모두가 나의 작품전에서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도슨트의 말에 반발해 욕을 하거나 지팡이를 휘젓는 사람은 없었다. <올랭피아>와 <목욕>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해받지 못한 나만의 작품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도슨트는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표현했다. 내겐 그 언급이 가장 위안이 되었다.
위대함으로 칭송받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공감받는 화가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빠······ 마네는 어떤 화가였어요?”
전생의 아버지는 내가 화가가 되기를 강력하게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얼마나 잘 그리든, 얼마나 즐거워하든 그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내가 법조인이 되기만을 원했다. 그리는 나의 모든 행위를 바보 취급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두고 어떤 조롱들을 해왔는지 알았다면, 지옥에서도 그는 크게 웃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아무렇게나 태어난단다. 하늘에 별을 마구 뿌려 놓듯이 말이야.”
아버지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별들 사이에 선을 그어 별자리를 만드는 건 예술가들의 몫이야. 오리온이나 카시오페이아 같은 별자리 말이야. 사람들은 그렇게 그려진 별자리를 찾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된 거지. 전통적인 상징 체계를 다 떠나서······ 그럼 별들은 여신이고 가난한 여자고 할 것 없이 다 함께 별자리의 요소가 되는 거란다. 19세기에 그 일을 처음 한 사람이 바로 에두아르 마네라고, 안내인이 설명하더구나.”
마네는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예술가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직이 덧붙였다.
그랬다. 나는 배타적인 예술이 싫었다. 그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리고 싶었다. 외면받는 모든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다.
오리온이나 카시오페이아 같은 신화의 별자리에 포함될 수 없었던 별들을 위한 새로운 성좌(星座).
전통에 없는 별이라고 하여 안 보이는 척하는 맹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겐 모든 게 똑같은 별이고 뮤즈였다.
기다릴 수 없어. 더욱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싶다.
빠르게 도슨트의 뒤를 쫓아 다음 구역으로 들어섰다. 인파가 조금 잦아든 상태였다. 도슨트의 작품 설명이 끝난 것이었다.
그래서 작품들을 쉽게 올려다볼 수 있었다.
하나씩 다 살필 순 없어도 거의 모든 작품이 이곳에 다 있는 듯 보관량이 상당했다. 하긴. 루브르에 들어갈 만큼 내 작품이 대단치는 못했을 것이었다.
도슨트가 있었다면 또 어떤 설명을 해줬을까? 아직 가슴께가 근질거렸다.
시선을 옮기다보니 졸라의 초상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뜯어보았다. 내게도 그린 지 오래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것 치고도 그림은 많이 낡아 있었다. 마치 졸라가 너무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걸 증명하듯.
“에밀 졸라······ 지금도 누구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문필가인데. 일찍이 마네의 진가를 알아봐줬던 사람이래.”
아버지가 작품설명을 읽고 말했다. 맞았다. 졸라는 나의 오랜 친구로, 사람들의 혹평에 힘들어하던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던 인물이었다.
지금쯤이면 그는 물론 그의 자손의 자손까지 죽고 없을 것이었다.
‘자네도 내가 죽었을 때 이렇게 외롭던가?’
그도 나처럼 새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금 안심이 되겠지만, 그게 현재의 인물일지 금수일지는 알 수 없었다.
말년의 나를 격려하던 졸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두가 내게 붓을 놓으라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쥐어주었고, 부추겼다.
‘자네가 지금 어디든 있긴 한지, 나를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터무니 없는 상황에 처해 있네. 하지만 이건 내게 기회일지도 몰라. 계속 그려서 더더욱 인정받을 기회.’
몸을 새롭게 얻었다. 아직 어리다.
잠시 그림에 대해 생각한다. 얼떨떨함 속에 숨겨놓았던 들끓음이 그제야 고개를 든다.
‘다시 그린다.’
내가 정신을 차렸다면 누군가 그러길 허락한 것이었다.
‘이 건강한 몸으로.’
1700만 유로라는 금액이 우스워 보일만큼 더 비싼 붓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상파들을 과소평가했던 과거의 실수로부터 나는 배웠다.
새로운 사조를 다시 만들어서라도.
이 시대 최고의 화가로 우뚝 설 것이다.
*
아버지와 피에르와 함께 센느 강변을 걸었다. 이제 바뀐 풍경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손을 보았다. 손은 작아져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붓을 놀리는 팔목의 감각은 아직 남아 있었다.
“예준이. 아까부터 무슨 생각해?”
“그냥. 아까 본 그림 생각이요.”
누군가는 그림을 통해 인정 받겠다는 생각이 불순하다고 말했다. 살롱전을 고집하는 내게 게르부아 카페의 화가들이 종종 완곡하게 했던 비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사실 알 것이었다. 남에게 보여주지도 않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독백인가를 말이다.
미술은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강렬한 원시의 감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거기 인정이 없다면 아깝게 물감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때 노상 화점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저건 뭐예요?”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한 피에르가 말했다.
“센느 강변엔 저런 곳이 많아. 길거리 화점인데, 가면 무명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그린 걸 팔기도 하지.”
알고 있었다. 노상 화점은 내가 살던 당시에도 있었으니까.
“저기 가보고 싶어요.”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파는 곳일 뿐만 아니라 그림을 공유하고, 품평하고, 재료를 나누는 화가들만의 공동체였다.
오르세를 다녀오는 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생긴 참이었다. 그들이라면 붓과 물감을 흔쾌히 빌려주겠지.
처음으로 방문한 화점은 명작들을 모작하여 판매하는 가게였다. 대부분 내가 알고 있는 19세기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인상주의 그림들도 많지?”
“네?”
나와 함께 그림들을 들여다보던 피에르가 말했다.
“오르세 미술관이 원래 인상주의 회화들로 유명한 곳이야. 인상주의 하면 오르세지. 아까 봤던 마네부터 모네, 고흐까지.”
인상주의. 그래. 함께 전시회를 구상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방법론에 기대감을 품던 화가들이 말년엔 더러 있었다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센느 강변을 걸으며 느꼈던 그림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하게 샘솟기 시작했다.
진하게 풍겨오는 유화 물감 냄새. 조금 퀴퀴하면서도 고소한 그 냄새가 후각으로부터 시작해 내 온몸의 감각을 깨웠기 때문이었다.
조금 냄새가 밋밋해진 감도 있었지만, 아마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 나의 아틀리에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곳곳엔 나의 작품으로 보이는 그림들도 작은 사이즈로 몇몇 걸려 있었다.
“예준이가 이렇게 그림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네? 미술관 다녀와서 그런가?”
“저 그림 좀 그려볼게요.”
손이 떨렸다. 병마에 고장난 신경이 척추부터 뒤흔들고 드는 그 불쾌한 떨림과는 완전히 달랐다.
잠깐 사이에 내 몸 안에 강하게 축적된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이 요동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뭐? 갑자기 왜?”
“여기 화방이니까 그림 그릴 수 있죠? 저 좀 그려보고 싶은데.”
“이곳은 가게니까 조금 곤란해, 예준아. 대신 한국 돌아가면 마음껏 그려보게 해줄게. 일단 그림만 고르자.”
이제 와서 프랑스어를 쓸 수는 없었다. 그림이야 재능이었다고 어떻게 둘러대면 됐지만 프랑스어는 도저히 둘러댈 도리가 없었으니까.
내가 방법을 찾는 동안 피에르가 화점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됐다. 하다 못해 지망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기도 하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화가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자꾸 말을 돌렸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먼 옛날의 문화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물감이 어디 한두 푼짜리인가? 화점 수도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아 요즘은 그냥 평범한 가게가 된 듯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방법을 떠올리려는 찰나.
“아이 고집을 꺾기가 너무 힘드네요. 그림값대로 쳐서 드릴 테니 부디 부탁드립니다.”
피에르가 한 발 더 나서서 요청했다.
화가는 못내 조심해달라고 말하며 자신의 화구를 건넸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 <에밀 졸라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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