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화 (1/241)

기적의 붓

“그래. 네 녀석 멋대로 해라. 네가 그림이 아니면 뭘 제대로 할 줄 알겠냐.”

화가가 되겠다는 나의 꿈을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아버지였다.

수동적인 허락이었지만 드디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었다. 고작 열일곱 살이었고, 나 ‘에두아르 마네’의 천재성을 막연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쩌자고 너같이 멍청한 놈이 태어난 거야! 평생을 공부만 시켰는데 법대는 고사하고 고작 해군사관학교도 낙방이라니!”

낙방. 그때까지 나를 끈질기게도 괴롭혀왔던 단어였다.

법관이었던 아버지는 나 또한 당신처럼 법조인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법대에는 감히 지원해보지도 못했고, 그나마 나와 아버지의 타협접이었던 사관학교에서도 낙방해버렸으니.

거친 10대 시절을 보내왔다.

해군 생도마저 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견습 항해사로 근무한 이들에게 해군사관학교 특별 시험 자격을 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체하지 않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증기선에 올랐다.

명목상으로만 조타수였다.

대부분 배의 가장 깊은 곳, 연료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인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법조인이 될 수도 없었다.

하물며 해군으로도 살아가지 못한다면 내가 정말로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이미 무능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무능함을 피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다니.

고된 노동이었지만 몸이라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텼다.

조금만 버티면 사관학교에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멀고 깊은 바닷속을 헤맸던가.

종일 연기를 들이마셨다. 기관지 통증으로 매일 밤잠을 설쳤다.

그럴 때면 갑판 위로 도둑처럼 기어올라와 맑은 공기를 한참은 마셨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가 팔방으로 펼쳐져 파도소리만으로 존재를 알려왔다.

누군가 검게 칠해놓은 듯한 그 밤바다를 나는 매일같이 눈으로 탐닉했다.

...특별 시험에도 낙방했다.

나는 나의 삶이 일찍이 끝나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나를 포기한 건 다행히도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활동이 시작되었다.

미술 교육을 받았다. 또 유명 그림들을 베껴 열심히 연습한 끝에

화단의 주목을 받던 토마스 쿠튀르의 문하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화가로서의 길이 열렸으니 성공할 줄 알았다.

더 이상의 낙방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속적인 그림을 그리다니. 자네 지금 규범에 도전하는 건가?”

“평범하게 귀족이나 그릴 것이지. 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에 매달리느냔 말이야.”

낙방의 저주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스승이었던 쿠튀르마저 나의 그림을 혹평했다.

나의 그림에는 미술사의 전통이나 숭고한 철학이 없다고들 했다.

그리하여 줄줄이 낙선, 낙선.

어떤 주목도 받지 못했다.

“낙방의 삶을 살아온 네가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버지는 나를 응원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라는 그의 허락은 포기였을 뿐 지지 선언이 아니었으니.

아버지의 예상대로 되었다. 아니, 바람대로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그림 앞에 위협적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에두아르 마네라는 이름을 도마 위에 올리며 온갖 험한 말을 일삼았다.

살롱전에서 낙선한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는 낙선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의 그림 <목욕>에 대해 천하고 상스럽다고 했다.

여전히 어두운 밤바다를 외롭게 항해하는 듯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묵묵히 연료만 떼었다.

30년이 넘도록 그림만 그렸다.

그 모든 순간 비난을 친구 삼았다. 많은 비난을 듣고도 버텨지기에, 나는 내가 결국은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나의 그림에 자부심도 생겼다.

어차피 그림이 아니라면 살 이유도 없었다.

온갖 혹평 속에서도 내 손엔 물감과 붓이 들려 있었다.

세상엔 아직 그려지지 않은 게 너무 많았다.

아무런 근거는 없었다. 정체 모를 것이 나를 계속 그리게 했다.

그려야 했고, 그릴 수 있었기에 그렸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내 걸음을 묶어도 계속했다.

나의 열정을 막을 수 있는 건 없는 듯했다.

비난도 질병도 버텨냈으니 남은 건 성공뿐이었다.

그렇게 50대가 되었다.

“자네 그림은 여전히 불쾌하군······ 하지만 흥미로워.”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내 혼신을 다한 작품이었다.

나의 작품에 불만을 쏟아냈던 살롱전의 관람객들은 이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몇 마디 칭찬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통속적이고 색감이 어설프다는 혹평은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관심을 얻게 된 건 기쁜 일이었다.

나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인상파 화가들도 이제는 많았다.

“진정한 천재는 시대와 투쟁한다고 하던데. 선생께서 딱 그렇습니다. 그리고 선생이 이기셨지요.”

나를 비난했던 미술 조류는 옛것이 되고 말았다.

“자네 같은 화가는 여태 없었네. 가장 밝았고, 그래서 가장 외로웠지. 자네 덕분에 프랑스 화단에도 동이 트는군.”

나로 인해 이후 전망도 밝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의 그림을 기대해보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나는 도전적인 화가가 되었다.

어디에나 있는 전통주의자들과 달랐다.

나를 긍정하는 사조가 나타났다.

역량껏, 욕심껏,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30여 년의 고통 끝에 드디어,

낙방의 저주를 벗고 모든 게 갖춰진 것이었다.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악화되어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수술이 잘못된 것인지 몇 년간 후유증에 시달렸다.

다리가 없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지나치게 병들어, 멀쩡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은 그곳에 도저히 가보지도 못하고 기억을 더듬어 그린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았던 나였다. 어렵지 않았다.

방에서 나갈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그리면 되었다.

이제야 너그러운 시선을 받게 되었으니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더 그려야 했다.

하지만 방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려야 한다. 지금 바로, 한 작품이라도······’

나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이젤이 바로 저기 있다. 붓도 물감도 갖춰져 있다.

하지만 무거운 사슬로 단단히 묶인 듯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팔만 들어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붓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닿을 리 만무했다. 침대와 화구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비난 받을 적에는 그리도 지장 없이 그려지던 것이 왜······

이제야 이뤄냈다. 모두의 응원 속에서 작품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인정 받을 그림은 왜 아직도 여전히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단 말인가······!’

인정 받은 뒤에도 인정을 누릴 수 없다니.

그런 건 너무 부조리한 일이었다.

‘웃기는 소리!’

계속 붓을 노려보며 손을 뻗었다. 두꺼운 벽을 사이에 둔 듯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반평생을 쥐어왔던 붓.

저걸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려왔던가.

아직 십 년은 더 살 수 있다.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온몸이 뜨거워졌다.

통증은 없었다.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감각과 함께 눈 앞이 컴컴하게 내려앉았다.

낙방의 저주가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눈을 감았다.

다시 눈 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렇게 쫓겨나듯 죽어버릴 순 없다······’

단 며칠만이라도 말미를 얻고 싶었다.

이렇게 죽는 건 너무 억울했으니까.

그러나 내 의지와 달리 몸은 매분 매초 정지해 갔다.

수십 년치 피로가 한꺼번에 찾아온 듯 무겁고 나른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긴 잠에 들었다.

*

어두운 공간, 붓이 내다보였다.

계속 팔을 뻗었다. 고통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뭐지?’

붓은 생각보다 멀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몸이 움직인다······!’

온몸의 근육이 멀쩡했다. 어딘가 빈약한 느낌이었지만 힘을 받는 느낌은 확실했다.

이 몸은 건강한 몸이었다.

다시 손을 뻗었다.

붓 바로 앞에서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매끈매끈한 게 유리인 듯했다.

몇 번 시도해보다가 주먹을 쥐어 유리를 두드렸다.

-웨에에에에에엥~!

그러자 날카로운 경보음이 내 귀를 마구 쑤시고 들었다.

정황상 내가 두드렸기 때문인 듯했지만 주먹질을 멈출 순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었다.

“어이, 꼬맹이! 여기서 뭐해?”

누군가 외쳤다. 돌아보니 정장 차림의 거구의 남성이 빛을 등지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내 붓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낡아 있었지만 내 붓이었다.

두루 살펴보니 밀폐된 유리관 안에 보관된 상태였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내 몸은 인정 욕구의 연료가 되기에 너무 쇠약한 모양이었다.

최후의 그 정체 모를 열감에 안겼을 때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죽지 않은 것인가? 나는 뜨거운 생의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거구의 남성은 내게 거의 다 다가들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남성이 더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나를 집어올렸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 아들 놈인데 길을 잃었던 모양이에요. 건물이 참 복잡해서 저도 길을 찾기가 어렵더군요.”

나를 들어올린 남성은 그렇게 말하고 그 어두운 공간을 빠져나갔다.

“예준아. 너 거길 들어가면 어떡해? 이곳 가드 아저씨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데.”

그가 말했다. 한국어였다.

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남성은 한국인 청년이었고 그 언어도 한국어였다.

또 이 청년의 이름은 윤민제, 가난한 미술가이자 실력 있는 큐레이터였다.

내가 어찌 알고 있는가?

모른다. 그러나 알았다. 나, 마네는 지금 10살 윤예준이며, 민제의 어린 아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민제의 체구도 상당히 컸다.

“뭐 훔친 건 아니지?”

민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나의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 번 살핀 곳을 두 번, 세 번 꼼꼼히 더듬었다.

나는 아직 혼란스러웠다.

나는 파리 8구의 내 집에서, 아마 확실히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그 집에서여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이라는 나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았다.

내가 모르는 삶을 내것처럼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다니.

더군다나 낯설어야 할 한국어가 주는 위화감에 다른 건 생각하기도 어려울 만큼 머릿속이 복잡했다.

동양의 언어는 구사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어를 완벽하게 할 줄 알았다.

예준이 10년간 살았던 고국의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프랑스가 아닌가?’

지금 민제는 한국어를 쓰고 있었지만 앞서 거구의 남성과 대화할 때에는 어눌하게나마 프랑스어를 구사했었다.

나는 마네인가? 마네인 줄 착각하는 한국인 꼬마인가?

아니면 죽기 전에 체험하는 놀랍도록 생생한 한 잠의 꿈인가?

붓에 대한 건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짜 뭐라도 집어왔으면 큰일이란 말이야. 그랬으면 지금이라도 아빠한테 빨리 말해줘야 해.”

나는 우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자기 깨닫게 된 예준의 기억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민제, 그러니까 아버지는 계속 내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미심쩍어 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뒤질 만큼 뒤져봤고 실제로 뭘 가지고 나오지도 못했는데.

물건은커녕 정신도 두고 나온 기분이었으니까.

“정말 깜짝 놀랐잖아.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또 없어지면 내일은 안 데려온다?”

아버지가 질책했다. 별로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니면 화낼 줄 모를 만큼 성품이 온화하거나.

대답해야 했다. 미안하다는 한국어 표현과 프랑스어 표현이 혀끝에서 복잡하게 뒤섞였다.

“씁. 대답! 프랑스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계속 그럴 거면 데려오고 싶어도 못 데려와요?!”

하지만 지금 한국어를 말하기는 무언가 어색했다. 여러번 내뱉어본 언어였지만, 한 번도 내뱉어본 적 없는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크게 혼란을 느끼지는 않았다.

와중에도 낯선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잔소리와 뒤 이은 나의 침묵.

이것들이 내게는 바로 어제까지 계속되어 왔던 익숙한 일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와 나는 계속 걸었다. 복도의 창밖엔 어둠뿐이었다.

무엇이든 덧칠할 수 있는 백지의 밤하늘.

그곳에서 나는 복도를 길게 비추는 혼란스러운 빛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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