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46화
111. 통합
뮤 행성의 창조주는 가이아.
하지만 지구의 창조주는 가이아가 아니다.
지구를 창조한 신은 매우 매정한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세상을 방치하고 관심을 끊었다.
신의 무관심으로 인해 세상에서 기적이 사라지고, 지구는 정기적인 관리를 받지 못해 흐름대로 수명이 줄어갔다.
그런데 그런 무관심이 지구에 의외의 황금기를 선물하는데, 인류가 과학 기술이란 예상외의 힘을 손에 넣고 문명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
하지만 문명의 황금기로 세상이 발전하고 인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구는 오염되었다.
창조주가 조금만 관심만 기울이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화의 매개체라 할 수 있는 마나를 회수하여 너무 많은 기운이 소비되는 것을 막았다.
지구의 과학기술은 진보될수록 자연을 좀먹어갔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썩을 대로 썩은 상황.
황금으로 쌓은 마천루의 지반은 언제 붕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이아는 그런 지구가 너무도 가여웠다.
그래서 지구를 조금씩 보살펴 주었지만, 아무리 방치했다고 해도 다른 창조주의 세계에 관여하는 것은 약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로 인해 가이아는 큰 대가를 치뤘다.
비록 지구가 속한 우주를 자신의 영역에 넣는 데 성공하지만, 이대로 가면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질 판이다.
가이아는 물론, 그녀가 창조한 뮤 행성과 뒤늦게 거둔 지구까지 말이다.
가이아는 열심히 방도를 생각했다.
우선 지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환경을 뮤대륙과 동일 규격으로 통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구에 마나를 투입해 정화를 실시하고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제거하기로 했다.
비록 그 과정은 과격하고 많은 희생이 따르겠지만, 세상의 존속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계획을 실행함에 앞서 한 가지 대비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세상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아닌가?’
그건 바로 고장 난 관리자의 교체였다.
현재 가이아는 정상이 아니었고, 이 상태로는 어떤 일을 진행하든 길게 유지하긴 힘들었다.
이 모든 일은 그녀로 인해 발생한 문제.
때문에 그 책임을 확실히 짊어지기로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문제가 있었으니…….
창조주는 죽고 싶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가이아가 탄생시킨 피조물도 그녀에게 직접 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시선이 닿은 것이 가이아의 피조물이 아님에도 그녀의 세력에 소속된 지구인이었다.
‘여러분께 힘을 드리겠습니다.’
* * *
“세상을 구한다는 것은 가이아를 죽인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되었죠.”
내 설명을 들은 동료들은 말을 잃었다.
가이아의 희생정신에 감탄해서도,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이상 현상의 진실을 알게 돼서 놀란 게 아니라, 그저 당황한 것이다.
수행자의 존재 이유가 가이아의 자살 도구였다니.
“현재 지구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정화의 과정임과 동시에 우리의 성장을 부추기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앞을 가로막았던 감당하기 힘든 적들은 우리에게 제공된 경험치 덩어리였던 것이다.
“그, 그런데 결국 가이아가 죽어도 세상은 끝이잖아요?”
히로시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가 모두 대비해놓았습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기운의 양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가이아로 인해 많은 기운이 빠져나간 상태여서 현행 유지가 어려운 상황.
그 와중에 가이아까지 사라진다면 세상은 내부에서부터 붕괴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이아를 대신할 새로운 관리자를 앉히고 세상의 근원이 되는 기운을 확충하기만 하면 됩니다.”
당연하단 말이 나올 정도의 해결방법이 아닌가.
“말로는 간단하지만,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 같군요.”
“그건 그렇죠.”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배제하기로 했다.
가이아의 계획을 알면 발광할 존재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대체 무슨 짓이지?”
지금 내 눈앞에 등장한 사냥의 여신 디아나처럼 말이다.
나는 동료들에게 물러나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신성한 빛과 함께 등장한 디아나가 완전 무장을 갖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하고 싶지 않은가.”
시엘라가 죽은 것을 알아채고 나타난 것이다.
“설마 이렇게 쉽게 가이아에게 넘어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군.”
그녀는 가이아의 뜻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시엘라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들은 굳이 반기를 들 필요가 없다.
어차피 가이아는 죽을 생각이었으니.
“꼭 시엘라를 죽여야 했나.”
“모든 것은 가이아님의 뜻입니다.”
“정신이 나갔군.”
타의던, 자의던 가이아가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싶지만, 둘엔 크나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가이아님만 죽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시엘라와 디아나 역시 세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가이아가 그린 시나리오에선 그들의 죽음이 반드시 필요했다.
“무슨 뜻이지?”
신족 또한 가이아의 권능을 물려받은 존재.
애초에 그들을 가이아와 분리시켜 생각하면 안 된다.
가이아만 정리되면 끝이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신족 또한 가이아의 일부였다.
“우리가 죽어야 한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천계의 신족도 가이아와 함께 제거되어야 한다는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진정 세상을 위한다면 얌전히 제 검을 받으세요. 고통 없이 보내 드리겠습니다.”
“넌 가이아에게 속고 있는 것이야!”
속고 있다라.
그 말대로라면 나는 세계를 파멸로 이끈 앞잡이가 된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다.
속고 속이는 것을 넘어 교감을 통해 가이아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리고 태생은 다르지만 나도 신족이다.
그녀의 말에 ‘그런가?’라며 의심할 단계는 지났다.
“가이아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여러분입니다.”
이 이상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나는 검을 들어 올렸고, 가죽 갑옷 차림의 디아나는 활을 겨눴다.
그녀와 무기를 앞세워 대치한 순간 느껴졌다.
‘한방 싸움이군.’
이번 전투는 내가 되었든, 그녀가 되었든 일격에 결판이 날 것이다.
그렇게 우린 한참 동안 눈싸움을 벌였다.
이어서 발코니로 들어온 바람이 커튼을 흔드는 순간.
-퉁!
-촤악!
시야를 가득 채운 빛과 검이 충돌했다.
“이, 이 무슨…….”
결과는 나의 승리.
오리하르콘 검이 디아나가 발사한 빛 덩어리를 두 줄기로 갈라버렸다.
-쩍.
그리고 디아나는 빛과 함께 세로로 길게 쪼개졌다.
심호흡과 함께 검을 수습한 나는 잿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디아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가이아의 기운이 짙게 느껴지는 천계 엠플하임.
“조지훈!”
격이 신족으로 향상된 지훈은 라그나베일과 함께 엠플하임에 진입해 친가이아 파로 활동하며 창조주를 배신한 신족을 척결했다.
지훈의 전투 능력은 어떤 신보다 막강했고, 라그나베일 역시 신족에 필적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비등하던 두 세력의 전력이 친 가이아파로 기우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반가이아 파가 완전히 숙청되면서 남은 신족은 겨우 5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그러나 천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투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수고했다며 악수를 건네오던 전신의 목을 지훈이 날리면서 2차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부러진 검을 아무렇지 않게 내던진 지훈이 한쪽에 쓰러진 라그나베일을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아직 죽을 정돈 아니야. 그나저나 진풍경이군.”
그런 두 사람의 근처로 중간계에서 신으로 떠받들어지던 신족의 사체가 아무렇지 않게 뒹굴고 있었다.
결국, 지훈은 라그나베일의 도움을 받아 고작 이틀 만에 모든 신족들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과정은 비겁하고 더러웠지만, 지훈은 원래 그런 것을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너는 정말 악마보다 더한 악당이다.”
라그나베일은 지훈을 향해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어서 신족들의 사체가 일시에 잿가루가 되어 흩어졌는데, 지상에서와 달리 연기처럼 한데 뭉쳐진 가루가 한 장소를 향해 날아갔다.
“저쪽입니다.”
엠플하임은 천계라는 명칭과 달리 한적한 유럽의 시골 마을처럼 생겼다.
다만 곳곳에 금빛의 과육을 매단 나무가 있고 무지개 빛이 깃든 꽃, 달콤한 내음의 분홍색 물가를 보면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다.
지훈과 라그나베일은 연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곧이어 단출하게 생긴 2층 집 앞에 멈춰 섰다.
기억 속에 있는 장소.
지훈은 자신의 집마냥 거침없이 문을 열었고, 왜소했던 겉모습과 달리 드넓은 순백의 공간이 나타났다.
“가이아는?”
라그나베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묻자 지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공간이 가이아님입니다.”
“엥?”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그나베일의 의문에 답을 해주겠다는 듯, 예전에 지훈이 꿈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뇌와 눈, 신경과 뼈, 내장 등이 생겨나며 사람의 형상을 갖춰갔다.
너무 노골적인 풍경이지만, 그것을 보고 비위가 상한다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드디어 다시 뵙게 되었군요.”
아름다운 가이아가 천사와 같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오자 지훈은 씁쓸한 표정으로 예를 올렸다.
“뿔이.”
가이아의 모습에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용인족처럼 머리 위로 길게 솟은 뿔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본래 모습입니다. 지금의 지훈 님이라면 알고 계시죠?”
지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틀란티스 제국의 마지막 황제 오스카.
그것이 가이아가 창조주가 되기 전 지상에서 살던 때의 이름이다.
그녀는 선천적 창조주가 아닌, 주인을 잃고 멸망을 향해 나아가던 세상에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창조주였다.
* * *
“세상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어가 빠진 물음.
하지만 나는 가이아의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자신이 죽고 난 후 대체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 창조주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당연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격을 갖춘 존재는 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창조주가 될 생각이 없고, 세계가 안정을 찾기 위해선 가이아에 이어 이 세상을 관리할 존재가 필요했다.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나를 지켜봐 왔기 때문인지, 그녀는 내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곧바로 칼부림이 날 거라 생각했을까?
가이아와 내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자 라그나베일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민해 봤는데, 창조주의 권한이라는 것을 개인이 아닌 기관으로 운영하면 안 되는 겁니까?”
내 물음에 가이아는 눈을 크게 떴고, 라그나베일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제정신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네가 해. 왜 그 좋은 걸 양보하려고 하는 거야?”
라그나베일의 말에 나는 실소를 흘렸다.
“그럼 베일 님이 할래요?”
“어?”
역시나 그 또한 쉽게 답하지 못했다.
나만큼이나 지상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 그였으니 말이다.
그때서야 라그나베일도 토를 못 달고 방관했다.
“재밌는 계획이군요.”
“공화제처럼 복수의 의원을 선출해 세계를 운영하는 거죠.”
뮤대륙 전 지역에서 10명, 지구에서 10명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지구처럼 비리로 물든다면 세상엔 재앙이 닥칠 겁니다.”
“임기를 정하고 강력한 법령과 시스템에 의한 감사로 엉뚱한 짓을 못하게 하면 충분히 써먹어 볼 만합니다.”
적절히 시스템을 섞으면 비리를 저지르고 싶어도 저지르지 못할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들은 가이아는 턱을 괴고 고민했다.
방법 여부를 떠나 가능하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
“개인이 아닌 기관에 창조주 권한을 부여한다라…….”
그렇게 한참 동안 고민하던 가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홀로그램 같은 메시지 창이 새하얀 공간 전체를 뒤덮었다.
이것이 세상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제 끝을 고할 때가 왔음을 느낀 나는 검을 뽑아 들며 물었다.
“아틀란티스의 용인족은 어떻게 할까요?”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아틀란티스는 뮤대륙을 잇는 터널이다.
즉, 오랜 지구의 원주민처럼 보이던 용인족과 지하도시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었단 뜻이다.
일종의 미련이라 할까?
지구의 아틀란티스는 오래전 멸망한 용인족 도시의 복제품이다.
오리지널 아틀란티스는 내가 뮤대륙 이블랜드에서 보았던 지하도시 카테라 쪽이다.
오리하르콘을 최초로 손에 넣고 용인족의 뼈를 대거 수습했던 그 지하도시 말이다.
“새로운 구성원으로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둥그런 오브를 소환해 손에 쥐며 말했다.
용인족은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증거였다.
“알겠습니다.”
“오십시오.”
“부디 힘 빼고 싸워 주십시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최소한의 방어를 해야 해서요.”
그렇게 가이아의 전투 준비가 끝이 나자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