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44화
109. 파업(2)
“대체 왜 지시에 따르지 않는 거지?”
그 말만 들어선 사냥의 신 디아나가 시엘라가 말한 반 가이아 세력인지, 친 가이아 세력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여신의 거친 반응에도 놀라지 않고 태연히 행동했다.
“뭐가요?”
심플한 물음에 디아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이미 서쪽의 탑도 발견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지체하는 거냐!”
대충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데, 이쪽의 생각까진 파악 못 한 것을 보면 그녀라고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
역시 신족이라 해서 만능은 아니었다.
“지체하고 말고 할 게 어딨겠습니까? 영문 모를 상황에 몸을 들이밀 만큼 간절한 이유가 없는 것뿐이죠.”
내 대답에 그녀는 기가막히다는 듯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가, 간절하지 않다니. 세상이 멸망하게 생겼는데, 어찌 그런 말을.”
세상의 멸망을 거론하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가 시엘라와 같은 측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생각보다 인간다운 여신의 모습.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뭘 해야 하는데요?”
“당연히 서쪽의 탑에서 관리자 콘솔을 손에 넣어야지.”
“그게 왜 당연한 겁니까? 누구 하나 알려준 사람이 없는데. 그리고 제가 언제부터 디아나님의 지시를 따르던 사람이 되었죠?”
그때서야 내가 왜 이러는지를 눈치챈 디아나는 작게 신음 소리를 냈다.
“굳이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나?”
이 상황이 되서도 직접 이유를 말 못하는 것을 보면, 어떤 제약이 걸려 있던가 아니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쩔 수 없군요’라며 따를 이유는 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은 나를 납득 시키려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다.
“당연히 해주셔야죠. 저는 아직 여러분의 편이라고 나선 적 없습니다.”
내 대답에 디아나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이전까지 분노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지금은 적대하는 듯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애석하지만 나는 눈빛만으로 제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이 설령 사냥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라 해도 말이다.
내가 빤히 바라만 보자 결국 디아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눈치가 빠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눈치는 어느 정도 있습니다. 대충 상황도 예상이 되고요.”
분명 지금의 신계는 엉망진창일 것이다.
가이아 측의 신족과 가이아에 반하는 신족의 다툼이 크게 번졌을 터.
다만 가이아에겐 자신의 피조물을 직접 해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어서 개입 못 하고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이아는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것은 디아나 측도 마찬가지여서 나를 원하는 거고.
“그런데 저는 매우 신중한 성격이어서요. 리스크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다곤 하지만, 멸망이 다가온 상황에 이익을 따지다니 질리는군.”
“손해를 감수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두 세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제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인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죠.”
상황을 대충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벌어진 정황만으로 가이아에 맞서기엔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가이아에 맞선다는 것은 더 이상 뒤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은가.
확신을 가져야 할 상황에 확신이 없으니 뜨겁게 불타오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
말을 잃은 디아나는 짜증을 넘어 황당함을 표하다가 이내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추측대로 신족과 천사들에겐 제약이 걸려 있다. 지금의 네 상황과 관련된 정보는 대부분 금기로 설정된 상태지. 어떻게 보면 가이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제재인데, 이 부분으로 인해 너와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한 게 너무 안일한 대처였던 모양이야.”
이제야 조금 이야기를 나눌 자세가 된 것 같다.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답이 가능한 부분이라도 알려 주시죠.”
“아마 답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말은 즉, 답할 수 있는 부분은 답을 해주겠단 뜻.
나는 우선 가볍게 물었다.
“음과 양의 신전 콘솔을 모두 손에 넣고 나면 저는 어떻게 됩니까?”
“…….”
첫 질문부터 막혔다.
나는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신경 안 쓰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스터 에그의 용도는요?”
가이아의 적을 처치할 수도 있고 가이아 본인까지 위협하는 장치.
나는 이스터 에그를 전투 외의 다른 용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음과 양의 힘을 기초로 하고 있는 권능이 있지.”
동문서답 같지만.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의 답이란 것을 인지한 나는 권능이란 것을 되새기며 물었다.
“여러분의 계획에 저의 희생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나와 디아나의 대화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방해될까 입을 꼭 닫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
“그럼 저는 지금의 저로서 살 수 있는 것이고요?”
“답을 할 수 없군.”
기세를 몰아 안위를 묻던 내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가이아와 여러분을 따르는 것, 둘 중 무엇이 제게 득이 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우리다. 가이아를 따라봤자 파멸로 이어질 뿐이다.”
그 이후로도 많은 질문을 이어갔다.
원하는 대답을 받은 건 정말 한 줌도 되지 않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확실한 것은 디아나가 소속된 가이아 반대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부문이었다.
여전히 중요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이전보다 이들의 계획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진작 이렇게 하시지 그랬어요?”
“시엘라도 그렇지만 나도 무리를 하고 있는 거다.”
“어차피 저를 빼곤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거잖아요.”
그녀는 슬쩍 얼굴을 붉혔다.
아름다운 외모와 여신이란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건방지고 다혈질인 디아나였으나 의외로 그런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신족은 고풍스런 말투를 늘여 놓으며 신비로운 기운을 마구 뿌리는 존재라 생각했기에 신선했다.
“너도 돕도록.”
그리고 디아나의 시선이 남일 구경하듯 케익을 먹고 있는 라그나베일에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라그나베일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고, 디아나는 이마에 힘줄을 만들며 버럭 소리쳤다.
“마왕 짓도 세상이 유지 되어야 할 것 아니냐!”
“그년 참 다혈질일세.”
세상 태평한 라그나베일의 반응에 디아나는 발광했다.
“어차피 빚진 게 있어서 저 녀석을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지훈이 너흴 따른다면 결과적으로 나는 너희와 같은 배에 타게 되겠지.”
라그나베일의 나를 가리키자 디아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온 그녀는 내 손을 감싸 쥐며 말했다.
“가이아가 아무리 불쌍한 척을 해도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이 여신은 나를 애로 아는 걸까?
“하는 거 봐서요.”
내 반응에 그녀는 다시금 말을 잃더니, 이내 어깨를 두들겼다.
그녀도 눈치가 있다면 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인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또 찾아오지.”
그리고 디아나는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급히 게이트를 만들어 모습을 감췄다.
“마치 폭풍이 휘몰아친 것 같네요.”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히로시가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이어서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하며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묻자 간단히 답했다.
“일단 서쪽의 탑까지 클리어해 보죠.”
* * *
“아까 디아나가 말한 음과 양의 힘을 기초로 한 권능이라는 거.”
내 곁으로 다가와 작게 이야기를 건네오는 라그나베일.
그에 나는 뭐 아는 거 있냐는 표정을 지었고, 라그나베일은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창조의 권능을 뜻하는 걸지도 몰라.”
“창조라니.”
아주 거창한 이름의 권능이 아닌가.
“가이아가 세상을 구축했던 것처럼 네게도 같은 권한을 부여하려는 것일 수도 있어.”
“그 말은 제가 창조주가 된다는 뜻입니까?”
“흠….”
자기가 말해 놓고도 허무맹랑하다 생각했는지, 라그나베일은 뺨을 긁적이며 말을 고쳤다.
“창조주라기보단, 이 세상에 대해 자신과 동등한 권한을 준다고 생각하는 게 맞으려나? 대신 가이아처럼 이런저런 제약이 안 걸린 존재가 되는 것 아닐까?”
귀가 솔깃해지는 추론이긴 하지만 그다지 믿음이 가는 내용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가이아가 자신을 대신할 집행자를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이아의 계획은 실패겠네요. 저는 지금 그녀를 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니.”
귀찮게 나를 집행자로 만드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많아 보이는 만큼 지금의 상황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런데 한낱 인간에게 그만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이 지나친 도박으로 여겨진다.
“내 생각이 맞다면, 너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자신이 있는 거지. 지금의 네 마음은 가족의 목숨이 달린 강제 퀘스트 하나만 띄워도 흔들릴 거 아냐.”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다른 누군가를 시키면 시켰지 가이아가 직접 피조물을 죽이진 못하니까.
물론 라그나베일의 추론이 무조건 틀렸다고 단정을 지을 순 없었는데, 그가 말한 방식이 아니어도 어떤 식으로든 제약을 걸어놨을 게 분명했다.
얌전히 방관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입장에서 고민해주는 라그나베일.
그의 태도가 여러모로 고맙게 느껴졌다.
라그나베일 역시 내색은 하지 않아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절대 죽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나를 위하는 그 태도 중 9할은 먹을 것 때문인 모양이다.
* * *
얼마 전 당돌했던 신입 수행자가 환영 파티에서 내게 물었다.
싸우는 이유가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냐고.
그에 대해 나는 고민없이 즉답했다.
‘내가 싸우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건 많은 의미가 담긴 대답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기주의적 발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가족을 지키고 인류를 지키는 것도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심리적 안정과 자기만족.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태양의 탑 소유주가 되었습니다.]
[태양의 탑 관리자 콘솔을 획득했습니다.]
옛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에리두가 위치 해있던 이라크 남부.
서양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탑에서 등장한 수호자는 지난번과 세트를 이루는 동양의 사신수(현무, 주작, 백호, 청룡)와 기린이었다.
어처구니없으나 그래도 음의 신전에서 벌인 전투와 패턴이 비슷한 덕에 비교적 수월하게 태양의 탑을 손에 넣었고 비로소 내 손등엔 완벽한 태극무늬가 자리를 잡았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선택형 신화급 보상카드 1장을 획득했습니다.]
[신화급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100 상승합니다.]
더불어 신화급 퀘스트인 이스터에그 찾기가 완료되면서 선택형 신화급 보상카드를 보상으로 받았다.
“갑자기 정신줄 놓고 가이아의 꼭두각시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내 말에 함께 싸운 동료들은 무서운 소리 말라며 헛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