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42화
108. 고대문명(2)
중국이 우리의 수족이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쥐고 놀았으니, 그 죗값을 치르는 것뿐이다.
“과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적 같은 게 남아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틀란티스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 지금의 세상을 상식으로만 다가선 안 되죠.”
“어쩌면 아틀란티스도 정체 모를 유적도 과거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대격변 이후 가이아에 의해 만들어진 걸지도 몰라요.”
역시 부부라 그런지 쿵짝이 잘 맞는다.
내 말을 적절하게 이어받는 김선아와 클로이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뉴베르트 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발코니로 향했다.
“시엘라 님이 가져온 물건이니, 이스터에그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이어진 물음에는 두 사람이 입을 꾹 닫아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녀들은 내가 이스터 에그란 것에 다가는 것을 매우 불안하게 여겼다.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괜히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지.
나도 누구 하나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부터는 계속 선택을 강요받게 될 텐데, 실수를 저지르거나 길을 잘못 들어도 돌아갈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약간의 위안이라면 수행자에겐 두 개의 목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지만, 이것 또한 절대적이라 볼 순 없었다.
이제부터는 발을 들이는 곳은 신의 영역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전부 내팽개치고 나와 내 가족만 바라보며 살까?’
세상이 어찌 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만 행복하면 장땡이지.
시엘라의 말이 사실이고 모든 기운을 흡수한 가이아에 의해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다 해도 소중한 사람들과 한날한시에 간다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당연히 그런 불합리함에 굴할 생각은 없지만, 부인이 생기고 자식이 생기니 약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또 그런다. 또.”
“미안해요. 가장 걱정이 많은 건 오빠일 텐데.”
나는 그녀들에게 걱정하지 말란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았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가이아의 개로 삶을 이어갈지, 시엘라의 말대로 혁명을 꿈꿀지 선택하지 못했으나.
흐름에 먹히지 않고 신들의 틈에 묻히지 않게 끝까지 발버둥을 칠 것이다.
어떻게 이룩한 권력이고 행복인데, 잘 알지도 못하는 존재들에 의해 농락당해서야 되겠는가.
* * *
전쟁이 종결되고, 중국은 난리가 났다.
물론 난리는 대격변으로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하면서부터 끊이질 않고 있지만, 타국에 의해 나라가 박살이 나서 7개로 쪼개진 것은 중국인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가 되었다.
그런데 국민들의 충격과 별개로 나라의 분리와 지역별 국민의 배치는 의외로 신속하게 이뤄졌는데, 중국 주석이 너무도 충실하게 베르트 공화국의 종전 조건을 이행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베르트 공화국 측에서 나눠질 7개 중국 중 가장 큰 상해지구를 현 주석에게 관리를 맞긴다는 부분이 걸렸다.
“혹시 이 모든 게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몰라, 모종의 거래에 주석이 넘어간 것일 수도 있어.”
“베르트 공화국이 신생 국가라곤 하나 수소폭탄을 맨몸으로 막아내는 괴물들이 있잖아. 그걸 보는 순간 주석이 전의를 상실했던 거지.”
중국 국민들 사이에 이런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상당수의 중국 국민들은 주석을 몰아내고 나라가 쪼개지는 걸 막아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며 주석을 지탄했지만…….
“어려운 상황에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테러리스트들이다. 모두 잡아들여서 탄광에 보내버려.”
아무리 중국이 망했어도 주석이 권력을 유지하는 동안은 시민들의 시위가 통하지 않았다.
중국은 정부에 반하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은 반란분자로 낙인찍었으며, 검열을 통해 철저하게 사상검증을 했다.
사실 국가가 곧 쪼개질 것을 생각하면 이제 와서 사상검증을 하는 건 쓸모없는 짓이지만, 이것은 강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 국민들의 입을 닫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쉬이 정부에 반하는 의견을 내비치지 못했다.
군부에서 나서서 잘못을 바로잡아 주면 좋을 텐데, 베르트 공화국과의 일전으로 당한 게 많은 중국의 군부는 완전히 겁에 질린 오합지졸이 되어 버렸다.
나라를 위하는 지휘관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제 자리 챙기기 급급한 간신배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황허 강 아래 고대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베르트 공화국의 의뢰인 모양이더군.”
“그런 유적이 있으면 벌써 알려졌겠지. 베르트 공화국도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군.”
“쉿, 말조심해.”
지훈의 지시는 주석에 의해 충실히 이행되었다.
낙양의 황허강 지류를 철저하게 조사했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강물 속으로 수만 명의 다이버를 밀어 넣었다.
“혹시라도 강물 속에서 몬스터를 발견하면 보고하도록, 베르트 공화국의 수행자 분들이 처리해 주실 거다.”
수중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다니.
당연히 모두 강물 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이젠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반란분자로 탄광에 끌려간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물속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수행자님! 강 밑바닥에 거대한 뱀이!”
“서펜트인가?”
그나마 베르트 공화국의 수행자들이 몬스터 등장 시 빠르게 처리를 해주었기에 큰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수행자 속엔 지훈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전투 마리오네트 5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열심히 탐색하고 있긴 하지만 쉽지 않군요. 이 주변은 최대 수심이 70m에 달하는데, 거기까지 잠수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음…….”
하지만 장비와 지리적 제한 때문에 아무리 많은 인원을 동원해도 완벽한 탐색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현장 책임자들은 고심해야 했고,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종교인들을 배치 시켰다.
신성력으로 다이버들을 강화시켜 보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의외로 이 생각이 잘 통했다.
일반적인 스쿠버 장비로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탐색이 가능해 진 것이다.
“탐색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습니다.”
“좋군요.”
보통 40미터 넘게 잠수를 할 땐 이상 현상을 이겨내기 위한 추가 장비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신성력의 백업이 더해지니 장비의 문제점을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덕분에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3일째가 되던 날.
“대장님! 의심스런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한 다이버에 의해 특별한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 * *
중국의 낙양을 찾은 나는 간단히 현장 책임자들의 인사를 받고 마왕 레이드를 함께 했던 동료들과 황허강 속으로 몸을 날렸다.
쉴드에 의해 형성된 공기의 막이 충실하게 잠수함 역할을 했고, 탁한 강물로 인해 빛도 들지 않는 어두운 강바닥에서 인위적으로 보이는 기둥을 발견했다.
이어서 여기저기 쌓인 돌담이 눈에 띄었고, 곧 재단처럼 보이는 장소에 다다랐다.
“뭔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특별한 힘은 느껴지지 않는데요?”
이곳이 시엘라가 건네준 상자에 적혀있던 그 장소인지 확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혹시 싶어서 태극문양을 이루던 두 개의 옥을 꺼내 들었다.
-팟!
큰 고민 없이 한 행동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두 개의 옥구슬 중 파란색이 증발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딛고 있던 재단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시야를 뿌옇게 가리고 있던 강물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하’왕국 검은 제단이 음의 신전을 소환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창.
이어서 동양적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고대 국가의 건축물이라 보기 힘든 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공의 성이 비가시 모드를 해제할 때처럼 허공에 색이 입혀지며 등장한 음의 신전은 반듯한 기와가 쌓인 거대성이었다.
“가이아의 작품이군.”
고대 국가에 대한 많은 환상이 존재하지만, 이건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들어가 볼까요?”
내 물음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성의 두터운 나무 문을 열자 횃불 하나 없이 어두침침한 내부가 드러났다.
-콰앙!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는데, 대충 예상을 해서인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공간이동이 불가능한 장소입니다. 좌표가 뒤죽박죽이에요.”
그동안 수행자로 생활한 짬밥이 있다 보니, 어차피 곧 우리를 가둔 목적을 알려 줄 것이라 생각했다.
[음의 신전을 수호하는 가디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기이하게 생긴 짐승이 등장했다.
전체적인 형태는 말과 비슷했는데, 덩치가 족히 5배는 컸고 온몸엔 파충류처럼 비늘이 뒤덮여 있었다.
얼굴은 말이 아닌 동양의 용을 연상시켰는데, 머리 위로 솟은 뿔이 놈의 덩치만큼이나 크고 거대했다.
[흑기린]
동아시아 전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화 속 동물인 기린이 가디언으로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저게 뭐죠?”
뮤대륙 출신 수행자들은 아무래도 기린에 대해 모르다 보니, 기이한 생김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기린은 동양의 용과 봉황, 즉 드래곤과 피닉스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전설 속의 동물이죠.”
그런데 이어진 내 설명에 모두들 크게 긴장하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드래곤과 피닉스 모두 인간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으니 말이다.
-키에에에엑!
녀석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낮게 포효를 내지르자 음의 신전이 요란하게 뒤흔들렸다.
포효 한 번에 디버프 메시지가 마치 마왕을 상대할 때처럼 요란하게 떠올랐다.
물론 디버프는 얼마 안 가 모두 해제가 되었지만, 단번에 흑기린의 존재감이 일반적인 몬스터와 급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무래도 싸우란 뜻이겠죠?”
“그래 보이는군요.”
“귀찮게 되었네요.”
저런 몬스터와 싸우게 하려면 최소한 돌발 퀘스트라도 주던가.
음의 신전이 등장했을 때도 그렇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다.
나는 9기의 마리오네트와 장비를 일시에 소환하며 전투 준비를 마쳤다.
“레이드 보상이라도 줬으면 좋겠네요.”
녀석이 강하다는 게 충분히 느껴졌다.
하지만 왜일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마왕들을 상대하면서 담이 커진 걸까?
* * *
[흑기린의 심장]
[흑기린의 뿔]
[흑기린의 가죽]
브레스에 광역 스킬을 남발하고 민첩하게 허공을 달리는 흑기린의 존재는 여러모로 귀찮았지만, 끝내 흑기린을 처치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도축 스킬로 분해된 흑기린의 사체를 수습하며 말했다.
“심장의 아이템 설명이 드래곤 하트와 거의 같네요. 누구 드실 분?”
내 물음에 모두들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드래곤 하트라면 환장하는 이들이 기겁한 이유는 흑기린이 속성이 ‘마’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막강한 힘을 품고 있더라도 마 속성의 기운을 흡수하다 잘못되면 그냥 골로 가고 만다.
덕분에 일행 중에 가장 강한 나도 쉬이 흡수할 생각을 못 했다.
“일단 제가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심장은 아공간에 보관해 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앞으로 이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나올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낙양에서 음의 신전이 나왔으니, 서쪽의 탑이란 곳에선 양의 신전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직 문은 안 열리네요.”
기린을 쓰러뜨렸음에도 신전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가이아가 나를 영원히 이곳에 가둬둘 생각이 아니라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았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