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41화
108. 고대문명(1)
특히 주석이 내뱉은 마지막 말은 비수가 되어 장신수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수소폭탄의 개발 용도는 분명 국제 사회 주도권 강화를 위한 것이 맞다. 더불어 적국인 베르트 공화국을 쓰러뜨리기 위한 비장의 수이기도 하지만, 관계없는 제3국 시민들을 향해 겨눌 무기는 결코 아니다.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은 어디까지나 약자의 편이다.]
분명 주석에게 직접 지시를 받은 건 아니다.
때문에, 이 일이 주석의 말대로 관련 인사의 독단인지 주석 본인의 지시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모든 게 나라를 위한다는 일념 아래 윤리의식을 저버리고 스스로의 희생조차 각오했던 건데, 이 상황은 너무 바보 같지 않은가.
애초에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란 것쯤은 장인수 본인도 알고 있다.
그래서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실없는 웃음을 흘려야 했다.
“대체 어쩌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국가를 위한다는 일념 아래 무구한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여러분은 분명 애국자입니다.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되어선 더더욱 안 됩니다. 그만 본국으로 복귀하세요.]
마치 장인수의 의문에 답을 해주는 듯한 TV 영상.
광장에 잔뜩 모여 TV를 시청하던 시민들은 주석의 입장 발표에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럼 서울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글쎄, 모든 건 현장 책임자의 선택에 달렸겠지.”
“하지만 주석이 하지 말라잖아.”
“그들의 목적이 정말 테러일지도 모르잖아. 중국 주석은 몰랐다고 하니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은 타국뿐만 아니라 자국에서까지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빌어먹을.”
더구나 소형 수소폭탄은 협상을 위한 위협용이지, 단순히 시민을 학살하기 위해 배치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 정부가 협상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소형 수소폭탄의 존재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장인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저 영상이 조작된 건 아니겠지?”
아니, 상식적으로 지금은 그럴만한 장비도 시간도 부족했다.
“마법의 힘으로 만든 환상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한국 정부가 해당 영상이 공개되고 중국과의 통신망을 재구축하면서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마법의 가능성을 점치긴 했지만, 설마 영상 속의 주석이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에서 자신의 신변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그는 주석의 이야기에 따르기로 했다.
장인수가 전달받은 행동강령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지역군 사령부로 향했고, 용건을 묻는 군인에게 답했다.
“접니다.”
“네?”
“수소폭탄을 가지고 있는 중국 요원이요.”
그에 헛바람을 삼킨 군인은 바로 상부에 보고했고, 장인수는 한국 정부가 했던 약속대로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수소폭탄과 함께 중국으로 돌려 보내졌다.
그리고 장인수뿐만 아니라 미국을 위협하던 요원까지 중국으로 돌아왔다.
“고생 많았네. 극단적이긴 했지만, 자네들은 누구보다 중국을 위하는 애국자들임이 분명하네.”
두 요원은 주석이 직접 반겨 주었다.
그에 장인수는 감격했지만, 그 감격스러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형 수소폭탄이 완전히 해제가 되자마자 그들은 의문스런 장소로 안내되었다.
“이제야 왔네, 테러리스트 새끼들.”
“다, 당신은?”
해당 장소에서 두 사람을 반겨준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중국의 적대국인 베르트 공화국의 수장 조지훈이었다.
장인수는 어떻게 된 일이냐며, 자신들을 안내한 주석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바닥에 넙죽 엎드려 지훈에게 예를 올리고 있었다.
“무슨?”
혼란스런 눈빛의 두 요원은 그때서야 주석이 세뇌가 된 상태라는 것을 알아챘다.
“서, 설마 이 모든 상황이.”
“그래, 네 녀석들을 잡기 위한 삼류 연극이었지.”
장인수와 다른 요원은 얼른 해당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날렸으나, 지훈이 손가락을 튕기자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졌다.
“편히 죽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마라.”
제2 주석궁 깊은 곳에서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그렇게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규모 인질극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 꺼릴 것이 없어진 베르트 공화국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대량의 군인을 앞세워 이를 막아내던 중국은 완패 끝에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9서클 마법사인 델피로 공작의 앱솔루트 쉴드가 수소폭탄의 막강한 폭발력을 온전히 막아내는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이는 수소폭탄을 믿고 있던 중국인들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공간이동으로 피했다면 모를까, 현대 기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수소폭탄을 일개 개인이 막아냈다는 것은 과학 기술의 패배를 의미했다.
베르트 공화국은 패전국인 중국을 7개의 나라를 쪼개기로 마음먹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그래서 중국은 티벳, 위구르, 내몽골처럼 독립의지가 강했던 지역과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 주요 도시를 중심의 4개 지역으로 나눴다.
그런데 분리된 구역 안에 만주 지역도 있어서 베르트 공화국이 대놓고 한국을 키워주려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국가들도 있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투정 수준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은 베르트 공화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지 못했다.
더불어 찔리는 것이 많은 일본은 이번 전쟁으로 괜히 다음 타겟이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며 기죽은 모습을 보였다.
* * *
그다지 독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베르트 공화국의 온전한 독재체재가 완성되었다.
나를 비롯해 베르트 공화국 정권에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세력은 같은 국가에 소속된 베르트 공화국의 국민뿐이었다.
덕분에 지상에선 천공의 도시 주민들이 그야말로 하늘 위의 존재가 되었다며, 세상에 인류의 등급이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 사람들을 특별취급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국가의 국민들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어디까지나 베르트 공화국은 나와 내 가족, 동료들의 가족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울타리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만든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요구에 고분고분 따르는 것은 좋지만, 기분이 이상한데.”
내 혼잣말에 함께 다과를 즐기던 김선아와 클로이가 한마디씩 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봐야겠죠.”
“생존을 위협받는 인류를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후대에서 이를 두고 뭐라 할지 궁금하네.”
세계에 대한 베르트 공화국의 지배 체제.
어떻게 보면 이전 미국의 포지션을 우리가 차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세계의 경찰이라 칭해지던 미국보다 더욱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베르트 공화국 내부는 의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행동을 결정하는 민주주의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직 의원 대부분이 수행자들이지만, 점차 공화국 내 일반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생각이다.
사실 공화국 국민 대부분이 수행자들의 가족인지라, 그게 그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네.”
중국이 상상치도 못한 일을 저지른 바람에 정신이 팔렸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권력 싸움이 아니었다.
“이걸 시엘라님이 전해주고 갔다고?”
나는 차를 홀짝이곤 테이블에 놓은 작은 상자를 집어 들었다.
“네, 그라프 경에게 전해줬는데, 너무 급히 떠나서 용도를 묻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찻잔을 내려놓은 나는 시엘라가 급히 전해주고 간 상자를 자세히 살폈다.
특별할 것 없는 나무 상자.
옻칠이 되어 있는 것 같지만, 너무 낡아서 툭 건들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데.”
솔직히 생긴 것만 봐선 그다지 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시엘라의 행동 패턴이 이해되지 않는지라, 그녀의 장단에 어울려야 할지 확신도 없었다.
결국, 나는 상자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김선아와 클로이 옆으로 이동하여 마리오네트들과 방어막을 잔뜩 펼쳐 놓고는 어검의 묘리로 나무 상자의 뚜껑을 조심히 개봉했다.
“…….”
우려와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방어막을 유지한 채 상자의 내용물을 살폈고, 한국인에겐 너무도 친숙한 태극무늬 형태를 띠고 있는 두 개의 옥이 등장했다.
지극히 동양적인 디자인의 붉은색의 옥과 파란색의 옥.
나는 그것이 요즘 한창 거론되고 있는 음양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아챘지만, 이걸로 뭘 어쩌란 건지 영문 모를 상황에 의아함을 표했다.
“응? 상자 안쪽에 무슨 글자 같은 게 새겨져 있는 것 같은데요?”
위협이 없음을 확인한 나는 방어막을 해제하곤 다시 상자를 집어 들었다.
“무슨 문자지?”
그 안에는 생전 처음 모는 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번역, 통역 서비스가 제공되는 아주 편리한 존재다.
그런데 자동적으로 문자의 내용이 머릿속에 입력이 되지 않자 나는 의문을 표했고, 김선아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문자라서 해석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갑골문자 같은 건가?”
계속 바라보니, 왠지 한자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전문가에게 의뢰를 해야겠네.”
전쟁이 끝나고 고분고분해진 중국을 써먹을 일이 생겼다.
아무래도 갑골문자 전문가라면 한국보다 중국 쪽에 월등히 많을 테니 말이다.
상자의 내용을 해석하면 태극 문양을 이루고 있는 두 개 옥의 사용처도 알 수 있지 않을까?
* * *
추측대로 시엘라가 주고 간 상자에 적힌 글자는 갑골문자였다.
[신의 분노에 하늘과 맞닿은 서쪽의 탑이 무너지고 찬란하던 낙양의 고도는 황허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번역된 갑골문의 내용을 건네 받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이게 뭔 개소리야?’
수수께끼도 아니고, 상자엔 영문모를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더구나 첨부된 두 개의 옥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단순한 기록인 걸까?”
나는 상자의 내용을 살피며 함께 있던 동료들에게 물었고, 누구 하나 내 물음에 쉬이 답을 하지 못했다.
내용만 봐선 고대 문명의 붕괴 과정이 적혀있었다.
공통점은 신의 분노를 사서 벌을 받는 형태로 보이는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단순히 생각하면 내용 속의 장소를 찾아가란 뜻으로 보이긴 하는데…….”
좌표를 적어 놓은 것도 아니고 탐색 범위가 너무 광범위했다.
그나마 황허에 가라앉은 낙양의 고도는 어느 정도 수색범위를 좁힐 순 있지만, 서쪽의 탑은 어디서부터 조사를 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하늘에 닿으려던 서쪽의 탑은 바벨탑을 뜻하는 건가?”
“잘 모르겠어요.”
지명도 이름도 제대로 거론이 되지 않아, 100% 추론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우린 서쪽의 탑을 배제하고 일단 낙양의 고도라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당연히 우리가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중국에 시켰다.
현재 중국에서 베르트 공화국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지라 어떤 요구를 하던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건 편하네.”
“아무래도 중국과의 전쟁은 이번 일을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