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40화
107. 패권(2)
그나마 뉴베르트 시 내부에 폭탄이 반입되지 않아 다행이다.
여러모로 테러대비를 잘해놓은 게 득이 됐다.
인구는 뉴베르트 시가 얼마 되지 않지만, 내 가족이 머물고 있는 만큼 중요도가 워싱턴DC나 서울과 비교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중국은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린 병신같은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대체 자존심이 뭐라고.’
만약 녀석들이 현실을 인정하고 순응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주요 도시의 인구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
녀석들도 무기가 사용되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쉽게 사용하진 못할 것이다.
분명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동안 협상을 하고 싶어 하겠지.
하지만 나는 중국의 장단에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람들이 피난 가는 걸 얌전히 지켜볼까요?”
“터뜨리면 거기서 끝이야. 그냥 위협카드로 쥐고 있는 편이 여러모로 낫지. 옛날에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혹시 공갈은 아닐까요?”
당연히 이 협박이 공갈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요즘 중국 정부의 성향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지상의 비난은 중국이 아닌 베르트 공화국에 향할 수도 있다.
애초에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이다.
누가 봐도 미친 것은 중국이지만, 사람들은 특별 대우를 받는 수행자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질투심이 이성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뜻.
더구나 정치질하며 선동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얻을 게 없는 중국보단 얻을 게 많은 베르트 공화국을 공격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즉, 이 사건은 길게 끌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시민들을 분산시킨 다음은요?”
“국가 간 통신회선을 끊으면 폭탄은 원격으로 터뜨릴 수가 없어. 하지만 녀석들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테니,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요원이 폭탄 근처에 대기시켜놨을 거야.”
인공위성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천만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직 인공위성을 운영하는 국가는 없었다.
“그 말씀은…….”
“그래, 폭탄을 지키는 녀석들도 실시간으로 중국의 정보를 얻진 못한다는 뜻이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본 상식이다.
이번에 녀석들의 협박에 굴하게 된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거짓 정보로 혼란을 주거나 진짜처럼 믿게 만드는 방법도 있어. 현재 해외 정보는 모두 정부를 중심으로 전달되고 있으니.”
“하지만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지시가 내려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지시 미전달 시 시간에 따른 행동강령이 있을 수도 있고요.”
“맞아, 정보를 통제해도 빠르게 위협을 찾아 제거해야 돼.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지.”
“따로 생각해두신 방법이 있습니까?”
이 사건을 해결할 방법은 깊게 고민할 것 없이 심플하다.
“정보가 통제되는 동안 폭탄 심은 새끼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어디에 숨겼냐고.”
“만약 그런 경우 마저 대비하고 있다면요?”
“그럼 마법이 공격과 방어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네?”
* * *
“한국과 미국이 국제 통신회선 모두 끊었습니다.”
“본국과 연결된 타국의 통신망 역시 하나씩 끊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 당사국들의 정보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입국과 출국도 금지된 상태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기쁜 듯이 보고하는 정보요원.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고립은 중국과 달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본인들이 직접 선택한 것이다.
그것을 갖고 기뻐해 봤자, 한심해 보일 뿐이다.
주석은 곧 발생할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가장 원치 않는 시나리오는 베르트 공화국이 두 국가의 위기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과 미국의 대처를 보면 공화국이 관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들이 진심으로 세계의 질서와 안정을 위한다면 이 사건을 피해 없이 해결하려 할 거야. 베르트 공화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승리나 마찬가지다.’
과정은 과격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르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중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며 주석은 자신들의 만행을 합리화했다.
당장은 비난을 받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누그러질 것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죄 없는 많은 사람을 학살한, 일본과 영국도 대격변 전에는 떵떵거리며 살지 않았던가.
나중에 잘못을 뉘우친 척 고개를 한 번 숙이면 극악한 이번 일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멀리 내다보고 이런 미친 짓을 선택한 것이었다.
“베르트 공화국의 움직임은?”
주석은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정보부 부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방금까지 소란스럽던 상황실 내부에 적막이 감돌고,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드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했다.
“조, 조지훈.”
현재 적이나 다름없는 조지훈이 9명의 미녀(마리오네트)를 대동한 채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주석은 급히 경호원들을 찾았지만, 마치 주변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사람들이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이 상황이 마법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눈치챈 주석은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반갑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지훈의 무표정에 마른침을 삼킨 주석이 말했다.
“협상을 하고 싶은가?”
그에 지훈은 피식 헛웃음을 흘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베르트 공화국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습니다.”
그다지 좋지 않은 반응.
주석은 애써 여유를 보이며 말했다.
“괜찮겠나?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상대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이 상황에 협박을 하는 것엔 큰 용기가 필요로 했다.
그런데 이어진 지훈의 행동은 그의 자존심을 짓이겨 버렸다.
“그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죠.”
지훈의 손짓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가장 작은 체구의 마리오네트가 다가와 주석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빠악!
작고 귀여운 주먹과 어울리는 않는 파괴음.
“끄악!”
주석의 어깨가 산산조각 나며 팔에 힘이 빠졌다.
마리오네트는 덜렁거리는 팔을 잡아끌어 주석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무차별한 폭행이 이어졌다.
발길질 한 번, 주먹질 한 번에 뼈가 조각나고 근육이 끊긴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주석은 애처럼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감정이 없는 마리오네트는 악랄하게 허벅지 사이를 걷어차 남성의 상징마저 짓이겨 버렸다.
“끄흐흑!”
“그만.”
지훈의 지시에 마리오네트의 폭력이 멈췄다.
짙은 미소를 흘린 지훈은 주석의 머리에 발을 올리며 물었다.
“수소폭탄. 어디에 숨겼어.”
눈앞의 인물은 협상 따위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주석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 점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지금 지훈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으면, 그의 발이 머리를 으깨버릴 것이다.
“모, 모른다. 혹시라도 이런 일을…… 대비해…… 현장 요원 빼고는 알 수 없게 조치를…….”
지훈은 한 마디 한 마디를 힘겹게 내뱉는 주석을 내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군.”
진실의 눈.
지훈 정도의 수행자라면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한 스킬이었다.
“큭, 크큭…….”
지훈의 맥빠진 표정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덕분에 주석은 온몸이 박살 났어도 이긴 것은 자신이라 생각했다.
“뭐가 그리 좋지?”
“좋다 마다, 네, 네놈의 아쉬운 표정만큼 재밌는 구경이 또 어딨겠나.”
주석은 자신의 말에 이어질 지훈의 표정을 추측했다.
분명 보기 좋게 일그러지겠지.
아니면 분노에 얼굴이 붉어지거나.
그런데 지훈은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의문을 표하는 주석을 향해 지훈이 가볍게 말했다.
“앞으로 내 개가 되어 살아갈 텐데, 그리 좋나?”
“무슨 뜻이지?”
“마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가 되지.”
“…….”
“공격마법, 방어마법, 보조마법, 마지막인 정신마법. 나는 이 중에서 가장 효율이 좋은 게 정신 마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몬스터를 상대로 사용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그걸 잘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
정신마법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주석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예 마법으로 네놈과 함께 중국을 지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지훈의 눈동자가 붉게 물드는 순간.
주석은 길게 비명을 내질렀고 세상은 곧 암전되었다.
* * *
흔히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게 조선족은 자신을 한국인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난 곳이 중국일 뿐이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뿌리만 한국과 같을 뿐이지 정신은 온전한 중국인이었다.
그들 또한 대국인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한국은 소국이라 생각했다.
조선족은 자신의 전통은 지키고 있지만, 흔히 말하는 중화사상이 깃든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단지 목돈 벌기 좋은 일자리 처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모두 같을 순 없지만,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한국인이 그런 조선족을 동포라며 끼고 도는데, 이런 점이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주요 도시 소개 작업이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원주 피난처의 임시 장터.
한 남성이 루트화를 들고 통조림을 판매하는 상인과 흥정을 시도했다.
“어쩔 수 없어. 짱깨 새끼들 때문에 나라가 난리 났는데, 식품값이 오른 건 당연하지.”
비록 상인의 말속에 거슬리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조금이나마 가격을 깎는 데 성공한 남성은 자신의 임시거처로 돌아왔다.
그 남성의 이름은 장인수.
중국 조선족 출신인 그는 동포 비자를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 귀화를 거쳐 한국 국적을 손에 넣었지만, 뼛속까지 중화사상에 물든 중국의 정보요원이었다.
“짱깨라니, 소국의 인민 주제에 감히.”
장인수는 얼마 전 특수한 임무를 받게 되는데, 그건 바로 현재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수소폭탄의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몇 가지 행동강령을 주지 받고 여차하면 폭탄의 버튼을 누르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수소폭탄의 기폭제가 마법 스크롤로 대체가 되면서 놀라울 정도의 소형화가 됐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평범한 백팩이 수소폭탄의 정체였다.
아무래도 소형화가 되면 위력은 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수소폭탄의 위력이 같은 중량의 핵폭탄을 크게 압도하는지라 도시하나 궤멸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두고 봐라. 중국은 다시 일어설 테니.”
그는 대국의 재건을 의심치 않았다.
혹시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모든 것은 조국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다짐을 흔들리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수소폭탄을 통한 협박은 일부 인사의 단독행동이다? 중국 주석의 입장 발표.]
[현재 관련자는 모두 체포되었으며, 곧 처벌될 예정이다.]
[중국 주석: 수소폭탄이 미국과 한국에 유출된 것은 분명한 사실. 백팩 사이즈로 소형화된 수소폭탄 두 기가 반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분명히 밝히는데 이는 본인의 의도가 아니다. 부디 관련자의 자발적인 고백으로 해결에 도움을 주기 바란다.]
단순한 기사라면 무시를 하겠지만, 그건 분명히 주석의 입을 통해 발표되는 영상 메시지였다.